소설리스트

일인군단-93화 (93/127)

< [48장] 나쁘지 않은 기분 (2) >

* * * *

흑기사와 계백은 성향이 많이 다른 유저였지만 기본적으로 예의가 없는 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둘은 별다른 문제 없이 같이 손발을 맞출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일리아도 같이 움직였다.

불멸은 이렇게 세 명이라면 암흑달 신전의 통제실을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암흑달 신전은 주 통로와 비밀 통로의 호흡이 잘 맞으면 잘 맞을수록 난이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던전이었다.

특히 비밀 통로로 들어간 별동대가 제대로 활약해주면 주 통로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숫자가 줄거나 혹은 강력한 약화 효과가 걸리곤 했다.

세 사람은 파티 채널 통해 서로 활발하게 대화를 했다. 이 던전 자체가 소통이 매우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에 서로의 상황을 정확히 얘기해줘야 했다.

확실히 유저와 NPC는 달랐다. 일리아가 그토록 힘들어하던 걸 흑기사와 계백은 너무나 간단히 해결했다.

탱커와 딜러는 있는데 힐러가 없어서 살짝 걱정되었었는데 스스로 자생하며 통제실로 향하는 비밀 통로를 잘 뚫고 나아갔다.

그사이 불멸도 주 통로를 초토화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흑기사와 계백은 암흑 수정을 통해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저게 가능해? 미친······ 독고불패가 자기보다 훨씬 강하다고 한 게 진짜였네.’

‘궁극의 강함! 내가 찾던 그것이 여기에 있었네.’

계백과 흑기사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불멸은 원래 10명의 유저들이 힘을 합쳐서 할 일을 홀로 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눈앞에 나타난 몬스터들을 도륙 내버렸다.

이 던전 안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적어도 흑기사나 계백 입장에선 상당히 레벨이 높은 강력한 놈들이었지만 죄다 불멸의 손에 걸리면 한 방을 버티지 못하고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오히려 세 명이 있는 비밀 통로 쪽이 더 힘겨운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그나마 불멸이 붙여준 용병 NPC가 제법 강력해서 별다른 위기를 겪지 않고 무난히 넘어갈 수 있었다.

파죽지세로 돌격하는 불멸과 그런 불멸의 속도를 간신히 따라가는 흑기사와 계백.

원래는 비밀 통로 쪽에서 여러 가지 조작을 해서 주 통로의 공략 난이도를 낮춰줘야 했는데 지금은 비밀 통로는 그냥 길만 뚫어주는 역할을 하고 주 통로에선 난이도와 관계없이 힘으로 모조리 쓸어버리는 식의 진행이 되었다.

첫 번째 중간 네임드 몬스터 역시 아무런 약화 보너스 없이 순식간에 정리당했다. 그리고 두 번째 중간 네임드 몬스터는 아예 약화 보너스가 아닌 강화 보너스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상혁에게 박살 났다.

이쯤 되자 흑기사와 계백은 스스로 창피하단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이건 거의 불멸이 두 사람을 양어깨에 짊어지고 억지로 끌고 가는 수준이었다.

물론 두 사람이 길을 뚫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것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하질 못했다.

흑기사와 계백은 바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 자신들이 흔히 말하는 ‘버스’를 타고 있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그것도 그냥 버스가 아니라 성능이 거의 초강력 부스터가 서너 개는 달린 것 같은 슈퍼 울트라 파워 버스였다.

제대로 버스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흑기사와 계백.

그들은 결국 암흑달 광장에 도착했다. 상혁은 암흑달 광장으로 진입하는 입구에 서 있었고 흑기사와 계백은 암흑달 광장의 달빛 제어실로 들어가는 문 앞에 도착했다.

이곳의 기본 공략은 이러했다.

일단 달빛 제어실에선 별동대가 ‘달빛 섬광포’라 불리는 레이저 포를 장악한 후 그 포에 한 명이 탑승해서 계속 ‘추방된 달의 거인’에게 달빛 섬광을 맞춰줘야 했다.

달빛 섬광에 적중당한 거인은 4초간 기절 상태가 되며 모든 방어 능력이 사라지는 ‘무방비’ 상태가 되었는데 바로 이때가 극딜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이 달빛 섬광은 그냥 쏠 수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달려드는 ‘암흑달 정령’을 잡으면 나오는 수정 파편을 50개를 모아 ‘암흑달 수정’을 만든 후 그것을 달빛 섬광포에 장전을 해야 했다.

암흑달 수정 하나에 달빛 섬광포를 세 번 쏠 수 있었다.

만약 제어실에서 이걸 제대로 해주지 못하면 암흑 광장에 있는 이들은 ‘추방된 달의 거인’을 상대로 굉장히 어려운 전투를 치러야 했다.

추방된 달의 거인은 거인류 네임드 몬스터였기 때문에 당연히 버티는 능력이 엄청났다. ‘거인의 인내’는 당연히 S급으로 붙어있었고 거기에 달의 거인은 방어력까지 굉장히 높았다. 추가로 놈은 특수 공격인 ‘검은달 안광(眼光)’은 스쳐도 사망인 전멸 기술이었다.

이렇다 보니 더더욱 달빛 섬광포가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즉, 달빛 제어실에서 얼마나 달빛 섬광포를 자주, 그리고 정확히 쏴주냐에 따라 공략 난이도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나중에 유저들의 수준이 올라가 이 레이드 던전이 활발하게 공략되기 시작하면 심지어 ‘달빛 섬광포 마스터’라는 문구로 파티를 구하는 이들도 생겨날 정도였다.

실제로 달빛 섬광포는 많이 쏴본 이들이 더 잘 쐈기 때문에 달빛 섬광포를 잘 쏘는 이를 데리고 가면 레이드의 난이도가 확 내려갔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부담 없이 쏘세요. 빗나간다고 해서 큰일 나는 거 아닙니다.]

상혁은 본격적으로 레이드를 시작하기 전 계속 흑기사와 계백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달빛 섬광포는 계백이 쏘기로 했다. 그리고 흑기사와 일리아는 달빛 섬광포를 향해 끊임없이 몰려드는 암흑달 정령을 잡은 후 흑기사가 암흑달 수정을 만들어 계백에게 공급해주기로 했다.

물론 그 전에 암흑달 정령들이 장악하고 있는 섬광포를 되찾아와야 했지만 어쨌든 기본 얼개는 그렇게 짜놓았다.

[이 네임드는 광폭화 같은 건 없나요?]

[있죠. 근데 그것도 타이밍만 잘 맞추면 달빛 섬광으로 끊을 수가 있어요.]

[결국, 제가 잘하면 모든 게 술술 풀린다는 뜻이네요.]

[계백님 정도의 감각을 지닌 유저라면 몇 번만 쏴봐도 금방 감을 잡으실 겁니다.]

[얼굴에 아무리 금칠을 해주셔도 감흥이 없습니다. 아무렴 불멸님만 할까요.]

파티 채널에서의 대화는 주로 불멸과 계백이 많이 얘길 주고받았고 흑기사는 꼭 할 말만 한마디씩 간단하게 했다.

‘근데 딱 봐도 처음 잡는 거 같은데······ 어떻게 이런 정보들을 다 알고 있는 거지?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하네.’

사실 이곳까지 오면서 계백과 흑기사가 가장 궁금하게 생각한 건 이 부분이었다.

차마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 순 없었지만 둘 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단순히 정보를 NPC들에게 정보를 얻었다고 보기엔 너무나 세세한 부분까지 잘 알고 있었다. 이건 마치 수도 없이 클리어해본 경험자가 이 던전이 초행길인 유저들에게 공략을 설명해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수없이 클리어해봤을 리가 없잖아.’

여기서 모순(矛盾)이 발생했다. 물론 모순이 느껴진다고 해서 그걸 따질 순 없었다. 이런 공략법 같은 건 어떻게 보면 아주 중요한 비밀이었는데 이걸 친절하게 알려주는 불멸에게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은 것이냐고 따져 묻는 건 정말 잘못된 행동이었다.

흑기사와 계백은 그런 기본적인 도리를 아는 유저들이었기 때문에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달빛 섬광을 최대한 많이 맞추면 좋겠지만, 너무 무리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중요한 건 타이밍입니다. 타이밍은 제가 체크해서 이 채널을 통해 불러드릴 테니 그것에만 맞춰주세요.]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흑기사님은 꼭 여분의 암흑 수정은 하나씩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광폭화 때문에 모든 걸 날려버릴 수 있거든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설명이 모두 끝나자 불멸은 앞쪽을 바라보았다. 암흑 광장 중앙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달의 거인. 정확히는 추방된 달의 거인이지만 앞에 ‘추방된’이 붙는 건 전투가 시작되고 ‘달의 여신’이 저주를 내린 후의 얘기였다.

[한 번에 끝내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니 부담감은 최대한 내려놓고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해보죠.]

불멸은 마지막으로 흑기사와 계백의 부담을 한 번 더 풀어준 후 곧장 은신 상태로 천천히 달의 거인을 향해 접근했다.

[전투 시작은 무조건 달빛 섬광을 맞춘 후 시작합니다. 첫 번째부터 맞추는 게 힘들긴 하겠지만······ 맞출 수만 있으면 큰 이득을 보고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전투 개시는 달빛 섬광으로 하는 게 제일 좋았다. 하지만 달빛 섬광이 빗나가면 말짱 꽝이었다.

‘어차피 첫 트라이는 경험이라고 생각하자.’

길은 전부 뚫어났기 때문에 트라이는 계속할 수가 있었다. 물론 일리아의 소환 시간이 이번 트라이를 끝으로 끝날 거 같긴 했지만, 흑기사의 능력이라면 혼자서도 암흑달 정령들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불멸이 달의 거인의 거처인 중앙 광장으로 들어서자 불멸과 흑기사 그리고 계백의 시점이 하나로 고정되며 고유 이벤트 효과가 시작되었다.

뭐, 별건 없었다. 그냥 시나리오상 이곳은 원래 달의 신전이었고 달의 거인은 이곳을 지키는 수호자였는데 그가 암흑에 타락해서 이곳이 암흑달 신전이 되었고 달의 여신은 그걸 벌하기 위해 친히 이곳에 강림해 달의 거인을 추방해버리는 그런 이벤트였다.

이벤트가 끝난 후 달의 거인은 추방된 달의 거인이 되었다. 하지만 변한 건 없었다.

놈은 여전히 강력한 네임드 몬스터였고 불멸 일행은 놈을 잡아야 했다.

대략 10분이 지난 후 통제실 쪽에서 기다리던 소식이 들려왔다.

[섬광포 확보! 그 과정에서 암흑 수정 하나를 확보했는데 바로 쏠까요?]

[네, 바로 쏴주세요. 첫 번째 한 방만 맞춰주면 됩니다. 혹시 첫 번째 한 방이 안 맞으면 바로 두 번째, 세 번째 이어서 쏴주세요. 세 방 중 한 방만이라도 맞추면 됩니다.]

가장 좋은 건 첫 번째 한 방을 맞춰서 전투 시작과 함께 거인이 기절 상태(무방비)가 되고 그런 놈에게 불멸이 무지막지한 한 방을 날리고 시작하는 것이었지만 그게 안 되면 두 번째, 세 번째라도 맞춰서 최대한 강력한 최초의 한 방을 꽂아넣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백이 잘해줘야 했다.

[한때 내가 D-FPS 게임에서 프로게이머 제의까지 받았었는데 이걸 세 방 중 한 방을 못 맞추면 자존심이 너무 상할 거 같네요.]

계백은 슬쩍 웃으며 섬광포에 탑승했다. 기본적인 구조는 곡사포였다. 즉, 탄도의 각을 계산해 달의 거인을 맞춰야 한다는 건데······ 이게 생각보다 잘 빗나갔다.

감이 나쁜 유저들은 수없이 쏴봐도 잘 맞추질 못했다.

불멸은 계백의 감을 믿었다. 그가 아는 계백이라면 한두 번만으로도 감을 찾고 높은 적중률로 섬광포를 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곡사는 결국 감이지.’

계백은 D-FPS게임인 ‘배틀 워치’에서 조작 난이도가 가장 높다는 ‘신궁(神弓) 김산(金山)’이라는 캐릭터를 주로 다뤘었다. 신궁 김산 캐릭터의 특징은 곡사(曲射)라는 특유의 능력을 통해 말도 안 되는 공격 사거리를 뽑아내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계백은 섬광포 사격이 더더욱 자신이 있었다.

‘어차피 바람 같은 건 없다고 가정 한다면······ 이 정도 각도로······.’

계백은 첫 사격부터 최대한 신중하게 각을 쟀다. 어차피 첫 사격이 시작된 이후부터 전투가 시작되고 통제실로도 암흑달 정령들이 몰려오는 것이었기 때문에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신중하게 조준을 했다.

달의 여신에게 저주를 받아 추방된 달의 거인은 제자리에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돌아다녔다. 움직이는 놈을 맞추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정확한 조준이 필요했다.

‘바로 지금!’

조준을 하던 계백은 정확한 타이밍을 포착한 후 바로섬광포의 방아쇠를 당겼다.

번쩍! 한 덩어리의 에너지 포탄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그리곤 계백이 원했던 그 위치에 정확히 떨어졌다.

콰과광! 끄어어어어억!

놀랍게도 계백은 첫 번째 사격부터 정확하게 추방된 달의 거인의 몸에 달빛 섬광을 맞췄다.

그 순간 추방된 달의 거인은 마치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그대로 굳어버렸고 불멸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불멸은 이미 손에 들고 있던 그림자 왕의 대검에 온갖 강화 효과를 더 걸어놓고 그림자 속에서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인이 달빛 섬광에 맞은 순간 망설이지 않고 그림자에서 튀어나와 대검으로 놈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콰콰과과, 서걱!

대검에 실린 막강한 힘이 거인의 몸에 닿는 순간 치명타가 터졌고 그 결과 그 치명타는 어마어마한 수치로 증폭되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어둠의 축복 발동! 은신이 유지됩니다!

‘됐어!’

불멸은 거인의 몸을 확실히 베었음에도 은신이 풀리지 않는 걸 확인하곤 곧장 다시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가 첫 번째 한 방을 꼭 맞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상대는 여전히 기절 상태였기 때문에 ‘은신-공격-은신’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이 놈에게 인지되지 않았다. 이 얘긴 놈이 기절 상태에서 회복되어도 불멸을 발견할 수 없다는 뜻이었고 그렇게 10초만 은신이 유지 되면 놈과의 전투 상태를 해제할 수가 있었다.

원래 전투 상태가 해제되면 모든 게 초기화되어서 놈이 단번에 모든 생명력을 회복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통제실에서 섬광포를 쏜 계백이 추방된 달빛 거인과 전투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기화는 없었다.

즉, 불멸이 전투 상태를 초기화하고 계백이 두 번째 달빛 섬광을 다시 맞추면 또 한 번 무지막지한 최초의 한 방을 꽂아넣을 수도 있게 된 것이었다.

‘이거 시작이 너무 좋은데?’

불멸은 다시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며 슬쩍 웃었다. 생각보다 훨씬 잘 해주고 있는 계백과 흑기사.

그들은 불멸에게 믿음을 주었다.

누군가를 믿을 수 있을 때 느껴지는 이 감정 이건 정말······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 [48장] 나쁘지 않은 기분 (2) > 끝

ⓒ 성진(成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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