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장] 대호( 大虎) 사냥 (2) >
* * * *
러시아의 사냥꾼들이 열흘 동안 사냥개를 풀었다면 DD는 대략 두 시간 동안 무려 99개의 조를 투입해 총 396명의 유저를 희생시켰다.
처음 등장한 300명으로도 모자라 추가로 100명이 더 투입되었다.
“후우…….”
두 시간 동안 396명의 유저를 상대한 불멸은 작게 호흡을 정리하며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불멸이라고 해도 두 시간 동안 1초도 쉬지 않고 계속 전투가 이어지자 어느 정도 피로가 누적될 수밖에 없었다.
‘60명? 70명?’
불멸을 둘러싸고 있던 인의 장막은 많이 얇아진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DD는 끌어모을 수 있는 모든 전력을 끌어모아 어떻게든 인의 장막을 유지하고 있었다.
‘끝없는 차륜전( 車輪戰)이라……. 제대로 준비했네.’
불멸은 DD를 인정했다.
DD가 들고나온 이번 전략은 제대로 걸리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 같은 전략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의 장막은 조금씩 두꺼워지고 있었다. 즉, DD는 완전히 불멸이 지쳤다고 생각하기 전까진 인의 장막을 풀어줄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이게 물량의 힘인가?’
불멸은 꾸준히 늘어나는 인의 장막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DD는 자신이 원하는 수준까지 불멸이 지치지 않으면 절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인의 장막을 유지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이겨낸다!’
강력한 힘을 더 강력한 힘으로 찍어누르는 불멸.
그 순간에도 대망의 100번째 조는 불멸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기에 그는 쉴새 없이 만념금골편을 휘둘렀다.
여전히 불꽃을 향해 날아드는 부나방처럼 순식간에 정리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멈추질 않았다.
사실 지금 이 순간 가장 안색이 좋지 않은 인물은 DD였다. 그는 두 시간 동안 자신의 눈앞에서 400명에 가까운 라인 다크의 유저들이 말 그대로 갈려버리는 걸 지켜보았다.
대략 30개 조가 갈렸을 땐 예상범위 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50개 조가 갈렸을 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70개 조가 갈렸을 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90개 조가 갈렸을 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 100번째 조가 갈렸다. 적은 마치 자신이 분쇄기라도 되는 것처럼 라인 다크의 유저들이 달려들면 그 즉시 모조리 한 방에 터트렸다.
‘이게 가능해?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싸웠는데 살짝 피곤한 표정만 짓고 있는 게…… 말이 되는 거야?’
분명한 현실이었지만 DD는 그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순간에도 그는 인의 장막을 유지하기 위해 라인 다크 전체를 닦달하고 있었다.
아무리 라인 다크가 거대 연합이라고 해도 인의 장막을 무한정 유지할 순 없었다. 실제로 슬슬 다크드래곤을 제외한 다른 길드들에서 아쉬운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게 좀 더 발전하며 불만이 될 것이고 거기서 더 발전하면 반발이 될 수 있었다.
‘활력과 생명력은 물론이고 스킬의 재사용대기시간까지 모두 철저히 계산해봤지만, 결론은…… 측정 불가. 이 녀석 정말 유저가 맞는 거야? 혹시 엄청난 인공지능을 지닌 NPC인데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냐?'
DD는 이제 현실을 부정하기까지 했다.
이건 DD의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워낙 믿기 힘든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100조에 이어 101조, 102조…… 계속 라인 다크의 유저들이 불멸을 향해 달려들었고 불멸은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고 달려드는 적을 학살했다.
‘이대로라면 인의 장막이 먼저 무너진다.’
이제 라인 다크에 악업이 쌓이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몸을 날려 희생할 유저는 거의 남아 있질 않았다. 사실상 희생된 유저가 400명이 넘어가는 순간부터 인의 장막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다. 충분하지 않지만,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
원래대로라면 불멸이 충분히 지친 후에 나설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모두 전투 준비! 104조가 투입된 이후 곧장 마지막 총력전을 시작한다!]
DD는 인의 장막 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다크드래곤의 정예 길드원들에게 준비 명령을 내렸다.
DD를 포함한 총 47명의 정예 유저.
이 정도 숫자라면 어지간한 길드는 순식간이 쓸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이었다. 하지만 DD의 표정은 그리 좋지가 않았다.
상대는 어지간한 길드가 아니었다.
적은 단 한 명이었지만 어지간한 길드 따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절대 무적의 괴물이었다.
[모두 봐서 알겠지만, 상대는 단순한 유저가 아니다. 레이드 보스…… 이제부턴 상대를 레이드 보스 몬스터라고 생각해라.]
DD는 명령을 내린 후 자신도 재빨리 ‘암흑 불꽃’을 활성화했다. DD가 가진 고대의 지식은 ‘암흑 파괴 마법’과 ‘어둠 기계 영혼’이었다.
둘 다 흑마법사 계열의 고대의 지식이었다. 두 가지 모두 2차 고대의 지식이었는데 조합이 워낙 좋기도 했고
하지만 그런 DD도 지금은 그냥 평범한 한 명의 딜러처럼 보일 뿐이었다.
한 방.
결국, 첫 번째 공격 한 번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다. 아무리 불멸이라고 400명이 넘는 유저를 연속해서 상대한다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다.
만약 불멸이 특별한 ‘첫’ 한 방의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면 오늘 진짜 DD에게 잡혔을 수도 있었다. 특히 이 능력은 힘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사기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간단히 예를 들면 불멸은 시작부터 거대한 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달리기 코스와 같은 존재였다.
그 벽을 넘는다면 좀 더 길게 달릴 수 있겠지만, 그 벽을 넘지 못하면 단 1 cm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최초의 한 방을 견뎌낼 수 있다면 불멸과 어느 정도 공방을 주고받을 수가 있었다. 실제로 불멸이 아닌 독고불패이긴 하지만 어쨌든 계백은 이제 독고불패의 최초의 한 방을 견디는 요령을 터득해 10번 중 4번 정도는 최초의 한 방을 견뎌냈다.
하지만 라인 다크의 유저들은 그러질 못했고 그 결과 그들은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곱게 갈려버렸다.
결국, 한 끗 차이였다.
넘느냐 넘지 못하느냐…… 이 간단한 차이가 만들어낸 두 가지 결과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차이가 났다.
“후욱, 후욱.”
불멸과 라인 다크의 전투가 시작된 지도 벌써 2시간 30분 정도가 흐른 상태였다. 길게 이어진 전투 때문일까? 이젠 불멸의 호흡도 상당히 거칠어져 있었다.
확실히 DD의 힘 빼기 전략은 대단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전략보다 불멸의 압도적인 힘이 더 대단하다는 점이었다.
휘리리릭, 콰드드득!
불멸은 한 명의 다크드래곤 길드원을 뛰어넘으며 재빨리 놈의 목에 만년금골편을 휘감았다. 몸과 목이 분리되는 다크드래곤의 길드원 하지만 그 게 끝이 아니었다.
불멸은 앞쪽으로 달려나오며 또 한 명의 다크드래곤 길드원 심장에 단검을 찔러넣었다.
푸우욱!
불과 2초 정도 만에 두 명이 당했다.
DD는 ‘피로의 저주’를 불멸에게 걸며 어떻게든 불멸의 움직임을 봉쇄하려고 했지만, 불멸은 ‘정신 마법 저항’이라는 결과로 DD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공격에 맞지 않은 게 아니다. 분명 꽤 많은 공격을 놈에게 적중시켰다. 그런데…… 왜 아직도 저렇게 쌩쌩한 거지?’
대부분의 다크드래곤 길드원들이 죽어서 사라진 지금 남아 있는 인원은 DD를 포함해 겨우 5명뿐이었다.
DD의 눈엔 불멸은 레이드 보스 몬스터 그 이상으로 보였다. 정말 무지막지하다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엄청난 공격력과 말이 안 나오는 회피 능력. 그리고 감탄이 절로 나오는 움직임. 그리고 이젠 쳐도 쳐도 쓰러지지 않을 것 같은 구토가 나오는 맷집까지…… 모든 게 DD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었다.
만약 이런 상대란 걸 미리 알았다면 아무리 호승심이 강한 DD라고 해도 절대 싸움을 걸지 않았을 것 같았다.
‘이길 수가 없다. 이 괴물과 싸우는 것보다 차라리 다른 라인들 모두와 전쟁을 치르는 게 훨씬 편하겠다.’
이쯤 되자 천하의 DD도 질려버릴 수밖에 없었다.
콰과과광!
그가 잠시 넋을 놓고 있는 동안 빠르게 다크드래곤의 길드원들이 정리되고 있었다.
이미 인의 장막 같은 건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남아 있는 건 라인 다크의 유저들이 범죄자가 되며 떨어트린 수많은 아이템뿐이었다.
DD는 양어깨에서 타오르고 있는 ‘어둠 불꽃’에 모든 힘을 밀어 넣었다.
이렇게 된 거 마지막까지 발버둥을 쳐볼 생각이었다.
어둠 불꽃의 힘이 강해지자 DD의 양팔과 양다리가 그리고 결국 몸까지 모두 기계로 바뀌었다. 비록 10분밖에 유지되지 않는 ‘암흑 기계화’였지만 이걸 사용하면 육체 능력이 200% 상승했다.
“크어어어어!”
DD는 매우 크게 소리치며 바로 불멸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양손엔 이미 강력한 흑마법의 기운이 맺혀 있었다.
* * * *
우드드득.
결국, 하나 남은 팔마저 볼썽사납게 꺾이며 부러졌다. 이로써 사지가 모두 부러졌고 목도 반쯤은 잘려서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죽지 않고 버티고 있을 수 있었던 건 그가 가지고 있는 패시브 능력 중 하나인 ‘암흑 기계 심장’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능력이 불사( 不死)의 힘을 지닌 건 아니었기 때문에 이젠 정말 더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쳇, 그나마 위안이라면 한 방에 쓰러지진 않았다는 점인가?’
DD는 인상을 찡그리며 자신이 몇 번의 공격을 버텼는지 생각해보았다.
대략 20~30번…… 확실히 많이 버티긴 한 것 같았다. 다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기 때문에 버틴 의미가 별로 없긴 했지만 그래도
“……시발, 마지막인데 한 가지만…….”
그는 원랜 그냥 조용히 죽을 생각이었는데 자꾸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머리통을 날려버리려고 했던 불멸은 DD의 말에 잠시 공격을 멈췄다. 거의 세 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자신을 괴롭혀준 보상(?)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한 마디 정도는 들어줄 생각이었다.
“원 길드…… 맞지?”
끝까지 집착하는 DD. 불멸은 그런 DD를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콰드득, 퍼퍼펑!
불멸은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DD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이로써 드디어 길고 길었던 전투가 끝이 났다.
원 길드의 ‘불멸’님이 다크드래곤 길드의 ‘다크드래곤’님을 쓰러트렸습니다.
축하합니다. 누적 카르마가 한계점을 돌파하며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전투를 이겨내며 유일급 타이틀 ‘다 덤벼!’를 얻었습니다.
PvP 상황에서 400명의 적을 연속해서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쓰러트렸습니다. 이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유일급 타이틀 ‘한 방에 끝낸다.’를 얻었습니다.
“후우……. 징글징글한 놈들.”
결국, 힘으로 찍어누르긴 했지만 어떤 의미에선 불멸에게도 아슬아슬한 승부였다. 만약 라인 다크의 유저들과 불멸의 힘의 차이가 조금만 더 줄어들었다면…… 그래서 그들이 최소한 한 방에는 정리되지 않을 정도의 힘을 지녔었다
면…… 불멸이 먼저 쓰러질 수도 있었다.
물론 그는 아직 사용하지 않는 패가 두 개 정도는 남아 있긴 했었지만, 그 패들은 분명한 페널티가 존재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할 순 없었다.
‘앞으론 조금 더 조심해야겠어.’
아무리 불멸이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대책 없이 포위를 당하는 건 매우 위험했다. 특히 사실상 선공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일반 유저들로 인의 장막을 두른 후 협공을 하는 전략은 적어도 불멸에겐 큰 위협이 될 만했다.
‘그래도 이 녀석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이득을 얻었네.’
이번 전투로 불멸이 얻은 건 총 세 가지였다.
일단 레벨이 올랐다. 비록 전투 중이라 레벨업이 뒤로 미뤄져서 조금 전 올랐지만 어쨌든 그동안 정체 중이던 레벨이 알아서 카르마를 조공해준 라인 다크의 유저들 덕분에 생각보다 더 쉽게 올랐다.
그리고 유일 등급 타이틀을 두 개나 얻었다. 좋은 타이틀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마지막으로 많은 아이템을 얻었다. 바닥에 수북이 쌓인 아이템…… 개중에는 꽤 비싸 보이는 것들도 많았다.
“아! 또 하나가 있었네.”
바닥에 떨어진 아이템을 챙기던 불멸은 불현듯 뭔가가 떠올라 자신의 머리 위쪽을 바라보았다. 그 위에서 지금도 여전히 열심히 제 몫을 하고 있는 한 대의 액션 카메라.
불멸은 멋진 방송용 영상도 얻었다.
전체적으로 상당히 힘든 싸움이었지만 싸움이 끝난 후 질 좋은 보상들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을 금방 잊을 수가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라인 다크 같은 건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결국, 제일 불쌍한 건 대호를 잡아보겠다고 자신 있게 나선 DD였다.
DD의 대호 사냥은 애초에 무리였다. 상혁은 대호가 아니라 더 무시무시한 괴물이었고 심지어 DD와 라인 다크의 유저들은 늑대가 아니라 양이었다.
처음부터 상혁에게 그들은 맛있고 영양가 높은 먹잇감이었을 뿐이었다.
< [46장] 대호( 大虎) 사냥 (2) > 끝
ⓒ 성진( 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