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장] 대호( 大虎) 사냥 (1) >
@ 대호( 大虎) 사냥.
‘변함없이 여전히 전투적이네.’
상혁은 몽마의 탑 3층에서 사냥을 하며 틈틈이 증명의 길에도 전투 신청을 했었다. 그리고 조금 전 오랜만에 계백을 만나 한바탕 신나게 싸울 수 있었다.
결과는 언제나처럼 5 : 0 압승이었지만 경기 내용은 굉장히 치열했다. 계백은 독고불패에게 압도당하는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반발을 했기 때문에 전투 내용은 당연히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진짜 아이템 파밍을 좀 해야겠다. 그동안 타이틀과 골드에만 너무 집중했나? 장비 상태가 너무 별로네.’
물론 현재 상혁이 가지고 있는 장비들은 다른 유저들은 꿈에도 그리는 대단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상혁에겐 그냥 잠시 지나가는 아이템 정도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특히 이제 상혁은 아이템을 맞춰도 다섯 세트를 맞춰야 하는 처지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파밍이 절실해졌다.
‘대검도 좋은 거로 두 자루 정도만 더 있으면 좋겠고 단검도 좀 필요하고······ 방어구는 전체적으로 너무 부실해.’
상혁은 자신의 아이템 세팅을 전반적으로 살피며 인상을 찡그렸다. 사실상 그동안 아이템 파밍은 거의 금산상단을 이용해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금산상단에 소속된 NPC들이 경매장에서 구매한 아이템과 유저들이 골드 마운틴에 맡긴 후 찾아가지 않은 아이템 중 쓸만한 걸 골라서 사용했다.
하지만 상혁의 눈이 워낙 높다 보니 이런 방식으론 그를 만족하게 하기가 힘들었다. 일반 유저들이 경매장에 올리거나 골드 마운틴에 맡기는 아이템들의 수준은 아무리 높아 봤자 상혁이 지금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에도 한참 못 미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싸움이 끝나면 파밍 계획을 세워야겠네.’
어차피 마갑 업데이트 이전에 한 번 정도는 제대로 파밍을 해놓을 생각이었다. 그래야 나중에 마음 편하게 마갑 제작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단 지금은 이 싸움에 집중해야겠지?’
다크블러드를 쓸어버린 지 이틀이 지났는데도 특별한 움직임이 보이질 않았다. 이 얘긴 라인 다크, 아니 DD가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나오려나?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걸 봐서는 내가 원 길드라는 걸 눈치챈 거 같은데······ DD라면 어설프게 나오진 않을 거 같은데.’
상혁은 DD가 매우 치밀한 사람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DD가 단순히 싸움에 미친 컨트롤 좋은 유저라고 알고 있었지만, 상혁은 전생의 기억 덕분에 그 이상의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상혁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정작 걱정은 하지 않았다.
DD가 무엇을 준비하든 상관없었다.
상혁은 오로지 자신이 지닌 ‘힘’만으로 모든 걸 깨부술 자신이 있었다.
* * * *
“굳이 작전명을 붙인다면······ ‘대호( 大虎) 사냥’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중요한 건 세 가지야. 이 세 가지만 제대로 되면 아무리 대호라고 해도 절대 무사할 수 없어.”
DD는 몽마의 탑을 향해 이동하며 옆에 있던 필드닥터에게 이번 작전의 핵심을 요약해서 얘기해주었다.
“첫 번째, 유인하기. 두 번째, 힘 빼기. 세 번째, 마무리.”
필드닥터는 DD의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했다. 하지만 대충 어떤 식으로 작전이 펼쳐질지는 알고 있었다.
“잡을 수 있겠지?”
“잡아야지. 놈이 한 마리의 대호라면 우린 늑대들이잖아. 대호가 아무리 강해도 혼자선 늑대 무리를 당해낼 수 없어.”
DD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웃었다.
이번 작전에 무려 16개의 길드가 동원되었다. 라인 다크에 소속된 대부분의 길드가 참여했다고 보면 되었다.
물론 16개 길드의 모든 길드원이 총동원된 건 아니었지만, 특정 조건에 맞는 344명의 인원이 동원되었다.
한 마리의 대호와 344마리의 늑대의 싸움.
DD는 아무리 대호가 강하다고 해도 결국은 무너질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DD는 몽마의 탑에 늑대들을 풀어서 대호를 찾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다시 한 번 다크블러드의 악인들이 동원되었다.
그들은 넓게 퍼져서 몽마의 탑을 구석구석 수색하고 있었는데 이건 너무 노골적인 움직임이었다.
‘죽여달라는 건가? 결국, 다크블러드를 먹잇감으로 던져주고 내 동선을 정확하게 파악하겠다는 것이겠지.’
불멸도 바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DD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차렸다.
‘물면 배탈이 날 게 뻔한 썩은 떡밥.’
불멸은 상대가 너무 노골적으로 나오자 웃음이 나왔다. DD가 이렇게 단순 무식하게 썩은 떡밥을 뿌리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상황에선 뭘 던져도 내가 물 것이란 걸 눈치챘군.’
어차피 미끼의 상태나 종류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걸 던져주어도 불멸은 그걸 먹어치울 생각이었고 그 사실을 DD도 눈치채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아예 노골적으로 썩은 떡밥을 던지며 불멸을 도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
불멸은 슬쩍 웃으며 앞쪽으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곤 썩은 내가 풀풀 풍기는 다크블러드의 악인 유저를 향해 만년금골편을 날렸다.
[놈이 미끼를 물었습니다.]
······
[이동 중입니다.]
······
[목적지에 가까워졌습니다.]
DD는 계속해서 전달되는 보고를 들으며 조용히 기다렸다. 처음엔 너무 썩은 떡밥을 던진 건 아닌지 살짝 걱정했었지만, 상대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미끼를 무는 걸 보고 역시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쳇, 건방진 놈. 무엇이 기다려도 다 부숴버릴 수 있다는 건가? 건방이 하늘을 꿰뚫겠군.’
모든 게 DD의 예상대로 되었지만, 기분은 오히려 좀 나빠졌다. 예상대로 되었다는 것 자체가 상대가 라인 다크를 엄청나게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은 네놈의 콧대를 제대로 뭉개주마!’
DD는 불멸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멍청하게 게임 속에서 기다리진 않았다. 게임에 접속하지 않고 현실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그렇게 얼마를 기다렸을까?
드디어 DD가 기다리던 신호가 도착했다.
[도착했습니다.]
그 신호는 간단한 단체 메시지였다. 당연히 DD만 이 메시지를 받은 게 아니었다. 대략 300명의 라인 다크의 유저들이 똑같은 메시지를 받았다.
그리고 그들 모두 메시지를 받는 동시에 게임에 접속했다.
준비는 메시지를 받기 전에 미리 다 해놨기 때문에 그들의 접속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고 몇 초 만에 300여 명의 라인 다크의 유저들이 접속을 하며 게임 속에 나타났다.
파팟, 파파파파파파파팟!
라인 다크의 유저들은 모두 똑같은 장소에 나타났다. 300여 명의 유저들이 동시에 나타나 광장 하나를 촘촘히 포위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들이 포위한 광장은 몽마의 탑 1층 중앙에 있는 커다란 광장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포위한 그 광장의 한가운데에는 한 명의 유저가 서 있었다.
‘와······ 이건 나도 예상 못 했네.’
이 상황에서도 여전히 웃고 있는 남자.
그는 바로 불멸이었다.
불멸은 자신이 썩은 떡밥을 먹어치우다 보면 결국 언젠간 DD가 본대를 이끌고 등장할 것이란 걸 알고 있긴 했었다. 하지만
했다.
그래서 별로 걱정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넓은 범위에 포위망을 펼친 후 그걸 조금씩 좁혀들어오면 그냥 한 점으로 돌파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별로 문제가 될 게 없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단번에 자신을 완벽히 포위할 것이라곤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대처도 할 수가 없었다.
300명이 넘는 라인 다크의 유저들이 불멸을 포위했다. 심지어 그들은 악인 유저도 아니었다.
한 마디로 인( 人 )의 장막을 만들어 불멸을 가둔 것이었다.
일단 불멸은 선공( 先攻 )은 하지 않고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서 인의 장막을 뚫겠다고 선공을 했다간 순식간에 악업이 쌓여 악인이 될 수 있었다.
그건 정말 최악의 결과였다.
스으으윽.
바로 그때 인의 장막이 살짝 갈라지며 한 남자가 불멸의 앞에 나타났다.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인데 대화를 하는 게 웃긴 일이란 건 알아. 근데 진짜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 말이야.”
그는 DD였다. 불멸도 전생에 베스트 게임 영상 같은 걸 통해 DD를 많이 본 편이었기 때문에 그가 불멸이란 걸 한눈에 알아보았다.
“원 길드 맞지?”
굳이 불멸의 입을 통해 확인까지 하려는 DD. 불멸은 그런 DD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차피 상관없잖아?”
불멸의 말을 듣는 순간 DD는 크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우문현답( 愚問賢答 )이었다.
맞았다.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이 상황에서 상대가 원 길드가 아니라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그리고 원 길드라고 해도 역시 달라질 건 없었다.
“아, 미안. 괜히 쓸데없이 시간만 뺏었네. 그럼 하던 걸 마저 하자고.”
스으으윽.
DD는 말을 끝내며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나 인의 장막 속으로 사라졌다.
“시작해.”
인의 장막 속에서 들려온 한마디의 말.
그 말과 함께 인의 장막 중 가장 앞쪽에 서 있던 네 명의 유저가 불멸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은 1조였다.
당연히 그들은 악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불멸을 공격했다. 그들은 악업이 쌓이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상대방이 먼저 공격을 해줬기 때문에 여기서 불멸이 자신에게 달려든 네 명을 죽여도 정당방위가 인정되어 악업이 쌓이진 않았다.
촤르르륵! 콰득, 콰드드득!
불멸은 재빨리 만년금골편을 휘두르며 자신을 향해 달려든 네 명의 유저를 간단하게 처리했다.
두 명은 머리가 박살 났고 한 명은 심장이 꿰뚫렸다.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은 두 팔이 잘린 후 목이 잘려서 죽었다.
이 모든 건 불과 1분 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동료 네 명이 처참히 죽었음에도 인의 장막을 이루고 있는 라인 다크의 유저들은 미동도 하지 인의 장막을 유지하고 있었다.
DD가 16개의 길드에서 직접 선별한 300여 명의 유저들은 모두 철저히 이 상황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DD가 뽑고 훈련시킨 사냥개였다.
필드닥터가 이 전략에 대해 궁금해할 때 DD는 그에게 이런 얘길 해주었었다.
“형, 오래전 러시아의 사냥꾼들은 호랑이를 어떻게 사냥했는 줄 알아? 그들은 일단 호랑이를 발견하면 수십 마리의 사냥개를 풀어서 그 호랑이를 쫓게 했어. 물론 호랑이가 사냥개를 무서워하진 않았어. 하지만 호랑이는 단독 생활을 했기 때문에 자신을 쫓아오는 사냥개들과 계속 싸우게 되면 정작 먹잇감은 제대로 사냥하지도 못하고 지쳐갈 수밖에 없었지. 그런 식으로 대략 열흘 정도 호랑이를 흔든 후 호랑이가 지쳤다고 생각이 되면 그때 사냥꾼들과 사냥개들이 힘을 합쳐서 호랑이를 공격했어. 난 바로 이런 식으로 그놈을 잡을 거야.”
이게 바로 DD가 이번 작전을 대호 사냥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였다. DD가 직접 뽑은 300여 명의 사냥개······ 그들은 모두 한 번 정도는 다른 사람을 먼저 공격해서 악업을 쌓아도 악인이 되지 않는 이들이었다.
그 사냥개들을 이용해 인의 장막을 치고 미리 정한 조들이 차례대로 달려들어 불멸의 힘을 뺀다. 어차피 완벽하게 인의 장막에 포위당하면 빠져나갈 길은 없었다.
DD는 혹시라도 300여 명으로 인원이 모자랄까 봐 악업 수치가 아슬아슬해 제외된 100여 명의 라인 다크의 유저를 더 대기시켜놓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차륜전을 통해 불멸의 힘을 충분히 뺀 후 적당한 시점이 되면 다크드래곤 길드의 정예 길드원들과 함께 자신이 직접 마무리를 지을 생각이었다.
‘넌 오늘 무조건 이 자리에서 죽는다. 그리고 너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더더욱 큰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뒤로 멀찍이 물러난 DD는 1조에 이어 2조가 불멸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며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DD의 대호 사냥.
그 시작은 거의 완벽했다.
< [46장] 대호( 大虎) 사냥 (1) > 끝
ⓒ 성진( 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