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86화 (86/127)

< [45장] 봉인 해제 (1) >

@ 봉인 해제.

‘이 새끼들은 전혀 변함이 없네.’

상혁은 당연히 라인 다크를 알고 있었다. 전생에도 라인 다크는 사냥터 통제로 큰 분란을 일으켰었다. 당시엔 라인에 속하지 않은 몇몇 대형 길드들이 연합해 라인 다크와 싸웠었다. 간단하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연합한 길드들이 처참히 패했다.

애초에 상대가 되질 않았다.

라인 다크를 막으려면 최소한 다른 라인들이 나서줘야 했는데 득보다 실이 더 클 수밖에 없는 라인 다크와의 싸움은 다른 라인들도 꺼리는 게 냉정한 현실이었다.

어차피 트리나크 행성은 넓었고 굳이 라인 다크가 통제하는 사냥터에 가지 않아도 사냥터는 많았다. 물론 몇몇 라인은 소소하게 라인 다크와 충돌하기도 했었지만, 그때마다 흔히 라인 관리자들이라 할 수 있는 웃대가리들끼리 만나 합의를 하고 싸움을 끝내곤 했다.

‘한 마디로 최상급 길드, 연합 간의 더러운 좆목질이었지.’

상혁은 인상을 팍 구겼다. 그는 이런 걸 정말 싫어했다. 그가 결국엔 SKY팀에서 쫓겨나게 된 결정적인 이유도 좆목질과 연관이 있었다.

몇몇 선수와 코치가 모여서 게임단 전체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친목모임을 만들고 그걸 토대로 자신들의 지위를 확고히 다졌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이들을 연습생으로 뽑아 결국 게임단을 자신들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했었다.

당연히 상혁은 그걸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그들과의 파워게임에서 밀린 건 상혁이었고 그래서 쫓겨나는 절차를 밟게 된 것이었다.

“라인 다크? 다크드래곤? 좆 까라고 해.”

상혁은 작게 중얼거리며 모든 변신을 풀어버렸다.

봉인 해제!

상혁은 봉인을 해제하고 ‘불멸’의 모습을 드러냈다.

어차피 조만간 불멸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낼 생각이었고 얼마 전부터 가장 좋은 타이밍을 찾고 있었다. 상혁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이 자신이 찾던 타이밍 같다고 생각했다.

‘다크드래곤······ 그 미친개를 잡으려면 최대한 강력한 몽둥이를 준비하는 게 좋겠지.’

상혁이 알고 있는 유저 다크드래곤은 제대로 미친놈이었다. 그냥 단순히 미치기만 한 놈이 아니라 실력이 완벽하게 뒷받침되는 능력 있는 미친놈이었다.

그는 상당히 많은 수의 프로게임단에서 거액의 오퍼를 했음에도 그 제안들을 모조리 거절하고 끝까지 미친놈으로 남은 유저이자 프로게이머들도 도망 다녔을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지닌 유저였다.

상혁은 전생에 다크드래곤이 잘나가는 중견기업의 후계자라는 신뢰도 높은 소문을 들은 적도 있었다.

‘시작은 역시 다크블러드겠지?’

사냥터 통제를 한다는 건 결국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유저들을 쫓아내겠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비정상적인 방법엔 일반 유저가 아닌 악인 유저가 동원될 수밖에 없었다.

다크블러드.

그들은 라인 다크가, 아니 다크드래곤이 부리는 ‘어둠의 사냥개’ 같은 존재였다.

“한 놈이라며? 근데 왜 나까지 가야 하는 거야? 한 명 정도는 그냥 너희 둘이면 충분하잖아.”

다크블러드의 안드레이는 잔뜩 귀찮은 표정으로 계속 불평을 쏟아내고 있었다.

“어차피 할 일도 없었잖아? 그냥 셋이 후딱 처리하고 내가 어제 찾은 사냥터나 가자.”

안드레이, 라보프 그리고 페트로바는 블러드에 들어오기 전부터 셋이 뭉쳐 다니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러시아 유저였는데 아주 초창기부터 악인 유저가 되어 나름 악명을 쌓고 쌓다가 결국 원한이 커져서 감당하기가 힘들어지자 셋이 동시에 블러드라는 우산 밑으로 숨어들었다.

그 뒤 블러드는 다크블러드가 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길드에 남아 있었다.

“괜찮아? 길드에서 당분간 자중하라고 했잖아.”

“걱정할 필요 없어. 여긴 새로운 루트라서 아직 헌터 새끼들도 모르는 곳이야. 적당히 뉴비들 좀 학살하고 헌터 새끼들이 냄샐 맡기 전에 빠지면 문제 될 게 없어.”

“너무 설치고 다니면 꼬리를 잡힐 수 있어.”

“아 새끼······ 넌 너무 몸을 사리는 게 문제야.”

“근데 니 새끼가 싸질러 놓은 똥을 치우는 건 나라는 걸 잊지 마. 저번에도 너 때문에 내가 오젠한테 얼마나 사정사정했는지 벌써 잊은 거야?”

라보프는 안드레이의 스타일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진 않았다. 하지만 안드레이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기 때문에 뭐라 반박을 하진 않았다.

“자자, 싸우지들 말고. 그 사냥터는 일단 이번 일을 끝낸 후에 생각을 좀 해보자.”

두 사람을 중재하는 건 언제나 페트로바였다.

“그나저나 이 새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진짜 탑 안에 있는 거 맞아? 귀환으로 토낀 거 아냐?”

“흐음, 몇 바퀴만 돌아보고 없으면 도망갔다고 보고하고 마무리하자.”

실제로 호기롭게 몽마의 탑까진 진입했다가 막상 진압조라 할 수 있는 다크블러드가 출동할 때 즈음엔 겁을 먹고 도망쳐버린 유저들도 꽤 많았다.

물론 그런 유저들은 추적만 확실히 되면 착실히 에프터서비스를 해줬기 때문에 탑 밖에서 죽는 경우가 많았다.

다시 한번 몽마의 탑을 돌기 시작한 세 사람. 그들은 타깃이 도망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찾고 있는 그는 여전히 탑 안에 있었다.

다만 세 사람이 그를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역량이 충분하질 않을 뿐이었다.

‘하나, 둘, 셋······ 일단 세 놈인가?’

특별함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하나의 그림자.

그 속에 상혁이 숨어 있었다.

섀도우 나이트의 영혼스킬 중 하나인 ‘그림자 숨기’와 조합카드 ‘그림자 덧칠’은 폭발적인 시너지를 자랑했기 때문에 설사 최정상급 유저가 이곳에 온다고 해도 어둠 속에 숨은 상혁은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세 악인 유저은 상급 유저였지만 그래 봤자 상혁의 기준에선 한 마디로 ‘쩌리’들이었다.

상혁은 장착한 타이틀을 확인해보았다.

접두에는 ‘홀로 절망을 뚫은 자’가 접미에는 ‘최초의 방문자’가 등록되어 있었다. 둘 다 전설급 타이틀이었고 지닌 효과도 무시무시했다.

사실 좀 더 치열한 전투가 예상될 땐 두 타이틀의 위치를 바꿨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차피 잔챙이들을 처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방어나 회피 따윈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자, 그럼 사냥을 시작해볼까?’

사냥은 다크블러드의 세 러시아 유저들이 하는 게 아니라 상혁, 아니 불멸이 하는 것이었다.

불멸은 태생이 사냥꾼이었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EL의 모든 유저와 길드를 뒤져보아도 불멸을 사냥할 수 있는 이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질풍, 블레이크, 독고불패, 흔남······.

모두 홀로 특정 콘텐츠를 씹어먹을 수 있을 정도로 절대 무적의 포스를 내뿜는 유저들이었다.

물론 알고 보면 이들은 결국 한 유저로 귀결되었지만 어쨌든 그들의 강함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30% 정도 봉인한 상태로 그 정도로 활약했다는 걸 알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봉인이 풀리고 제약이 사라지는 순간 등장하는 진정한 원 길드의 최강자.

그가 바로 불멸이었다.

번쩍, 쩌억! 퍼퍼펑!

마지막으로 도망치던 안드레이의 머리가 두 쪽으로 갈라지며 산산이 부서졌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하얀 빛가루.

잘 익은 수박을 검으로 쪼개면 딱 이렇게 될 것 같았다.

불멸이 세 악인 유저를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분이었다.

사실 원랜 더 짧게 끝날 수 있었는데 안드레이가 옆에 있던 라보프가 한 방에 심장이 꿰뚫려 죽는 걸 목격하고 모든 걸 내팽개치고 도망가는 바람에 시간이 약간 더 걸렸다.

드르르륵, 불멸은 안드레이에게 날렸던 만년금골편을 회수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세 악인 유저는 자신들이 악인 유저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많은 아이템을 떨어트리고 사라졌다.

지금의 불멸에겐 그다지 별 볼 일 없는 아이템들이었지만 그래도 불멸은 아이템을 모두 주워서 가방에 넣었다.

‘미끼를 모두 깔끔하게 먹어치웠으니 어떤 식으로라도 반응이 있겠지?’

불멸이 기다리는 건 다크블러드 그 자체였다.

그리고 다크블러드를 먹어치운 후엔 그 뒤에 있는 더 크고 많은 먹잇감을 노리고 있었다.

불멸이 거대 연합인 라인 다크를 상대로 선택한 전략은 매우 간단했다.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기.’

너무나 간단한, 아니 단순무식하다 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할 수만 있다면 이보다 강력한 전력은 없었다.

“누구든지······ 와라.”

불멸은 몽마의 탑 한가운데 서서 웃고 있었다.

* * * *

“젠장!”

꽈광, 다크블러드의 길드마스터인 오젠은 분을 삭이지 못한 표정으로 주먹으로 옆에 있던 벽을 강하게 치며 소리쳤다.

그는 이 상황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최초 러시아 삼인조가 당했을 때만 해도 또 어쭙잖게 실력이 뛰어난 유저가 하늘 높은지 모르고 까불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러시아 삼인조와는 오프라인 커뮤니케이션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 유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더더욱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음에 보낸 7명의 다크블러드 길드원이 적의 존재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죽었을 때부턴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결국, 오젠은 자신이 직접 다크블러드의 정예 악인들을 모조리 이끌고 몽마의 탑으로 왔다.

오젠을 포함해 무려 42명의 악인 유저들이 단 한 명의 적을 잡기 위해 움직인 것이었다.

오젠은 40명이 넘는 정예 악인들을 이끌고 몽마의 탑에 올 때만 해도 상황이 이렇게 심각하게 될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는 아직 DD에게 상황 전달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너무나 창피해서였다.

오젠 일행이 몽마의 탑에 들어온 지 정확히 15분 만에 무려 10명의 악인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냥 ‘어어어어.’ 하다가 10명을 잃었다.

이쯤 되자 오젠은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흩어져 있는 애들부터 모아. 아무래도 이거 보통 놈이 아닌 거 같다.”

오젠은 우선 길드원들을 모은 후 저인망으로 물고기를 깡그리 쓸어가듯 대규모 인원이 뭉쳐서 몽마의 탑을 샅샅이 수색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가 그런 명령을 내린 순간에도 흩어져 있던 다크블러드의 악인들은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한 줄기 칼날 채찍에 목이 갈리거나, 심장이 꿰뚫리거나 혹은 머리가 터져버리고 있었다.

예외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한 번에 한 명씩······ 불멸은 마치 개미를 밟아 죽이듯 다크블러드의 악인들을 순식간에 터트렸다.

모든 능력치 30%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그리고 그러한 제약이 사라지며 봉인이 완전히 해제된 순간 불멸이 손에서 터져 나오는 모든 공격은 마치 레이드 보스의 전멸 기술처럼 강력했다.

특히 그의 첫 번째 한 방은 진짜 방어를 하거나 혹은 스쳐 맞아도 생명력 100%를 모두 날려버릴 수 있을 만큼 무자비하게 강력했다.

다크블러드의 악인 유저들은 PvP 경험이 대단히 많은 노련한 유저들이었지만 어둠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순간 튀어나온 공격은 그런 그들에게도 너무나 버거운 공격이었다.

나중에 이날 단 한 방에 터져버린 다크블러드의 악인 유저들은 모두 똑같은 말만 했다.

‘전 제가 왜 죽었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렇듯 불멸의 첫 한 방은 자신의 죽음조차 제대로 인지를 못하게 만들었다. 그 한 방을 맞아본 악인 유저들은 그것을 ‘파멸의 일격’이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나중엔 불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파멸의 일격’이 되었다.

물론 그건 미래의 일이었다.

지금 중요한 건 오젠의 소집령에 모인 다크블러드의 유저가 겨우 21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41명 중 20명의 유저가 사라졌다. 오젠이 황급히 소집령을 내리고 겨우 몇 분이 지났을 뿐인데 10명이 추가로 죽은 것이었다.

‘괴물이 나타났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한 오젠은 몽마의 탑 어디선가 자신과 자신의 길드원들을 노리고 있을 괴물을 떠올린 순간 가슴이 시리도록 서늘한 기운이 자신의 전신을 휘감는 느낌을 받았다.

< [45장] 봉인 해제 (1) > 끝

ⓒ 성진( 成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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