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85화 (85/127)

< [44장] 모험왕 (2) >

* * * *

휘리리릭! 콰드득!

흔남은 채찍을 휘둘러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고 있던 용암불새의 목을 오히려 먼저 휘감았다.

그리곤 압도적인 힘으로 놈을 자신이 오르고 있던 가파른 암벽을 향해 던져버렸다.

콰과광! 키에에에엑!

용암불새들은 절벽에 매달려 있던 상대가 설마 먼저 공격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고 그 결과 나타나는 족족 흔남에게 박살이 나고 있었다.

용암불새들은 준 네임드 몬스터였지만 그래 봤자 돌거인보다 약한 몬스터였다. 놈들은 흔남이 지닌 ‘첫’ 한 방의 강력함에 처참히 망가진 후 이어지는 2차, 3차 공격에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번에도 역시 채찍이 용암불새의 목을 휘감은 순간 이미 불새의 목이 부러졌고 이후에 절벽에 아주 강하게 패대기쳐지며 깔끔하게 생명력이 0%가 되었다.

용암불새가 이렇게 속절없이 당하는데 화염산양은 더더욱 흔남의 상대가 되질 않았다.

부르산의 정상을 향한 마지막 관문은 대략 900m 정도의 수직에 가까운 암벽을 오르는 것이었고 그 구간에서 용암불새가 집중적으로 등장했다.

흔남은 가파른 절벽을 기어오르면서 동시에 접근하는 용암불새를 바로바로 처리해버렸다. 놈들의 숫자가 늘어나면 상혁도 골치가 아플 수 있었기 때문에 빠르게 제거하며 나아가야 했다.

어차피 화염산양은 훨씬 더 간단히 정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용암불새만 주의하면 되었다.

흔남은 맨몸으로 절벽을 기어오르며 접근하는 몬스터들을 쓸어버렸다. 안나푸르나의 산악인들도 이 정도 절벽을 오를 땐 아무리 게임이라고 해도 특수 제작한 몇 가지 안전 장비를 절벽에 설치하며 그걸 의지해 등반했다.

하지만 흔남은 안전장치 따윈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애초에 안전장치 같은 것을 사용하면 몬스터를 처리하는 데 방해를 받았기 때문에 과감히 안전장치를 버렸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능력 하나만 믿고 맨몸으로 절벽을 기어올랐는데 만약 전문 산악인들이 지금 흔남이 등반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기겁을 했을 것이다.

흔남은 손가락 몇 개만으로 절벽에 매달려 채찍을 날린다거나 혹은 위로 뛰어올랐다. 그의 등반 속도는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스파이더맨이 건물을 기어오르는 속도만큼 빨랐다.

그리고 심지어 안정감까지 느껴졌다.

엄청난 속도로 부르산의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흔남. 그의 표정에선 어려움이 전혀 느껴지질 않았다.

치이이이익.

흔남은 옆으로 흘러내리는 용암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있는 힘껏 위로 뛰어올랐다.

파아앗! 터억!

그리곤 손을 길게 뻗어 마지막 디딤돌이 될 작은 바위를 붙잡았다. 손가락 하나만 걸쳐도 안정감 있게 매달릴 수 있는 흔남이었기 때문에 한 손으로 몸을 끌어올리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스으으윽, 몸을 끌어올려 위로 올라서는 흔남.

바로 그 순간. 드디어 기다리던 메시지가흔남의 눈앞에 나타났다.

트리나크를 대표하는 다섯 개의 산 중 하나인 부르산의 정상에 최초로 올랐습니다. 아무도 정복하지 못한 곳에 최초로 오른 당신의 도전 정신은 모든 여행자에게 모범이 될 만합니다.

희귀등급 타이틀인 [화산( 火山 )의 정복자]를 획득했습니다.

영원히 불타는 산에 깃들어 있는 불의 기억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전설 퀘스트를 이루고 있는 하나의 조각입니다.

전설 퀘스트 ‘???’가 새롭게 갱신되어 ‘트리나크 행성의 탄생’으로 바뀌었습니다.

‘휴우, 그래도 나흘은 다 채우지 않고 정상에 올랐네.’

흔남은 부르산이 정상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뒤쪽에선 계속 용암이 쉴 새 없이 솟구치고 있었지만 흔남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강력한 힘을 지닌 차원 여행자였기 때문에 강력한 열기를 견디고 서있을 수가 있었다.

흔남은 그곳에서 주변 경치를 좀 더 촬영한 후 망설이지 않고 곧장 산에서 내려왔다. 전문 산악인들이었다면 여운을 좀 더 즐겼겠지만, 상혁은 그런 여운을 즐길 이유가 없었기에 그냥 ‘귀환’을 사용해 산에서 내려왔다.

퀘스트(Quest), 트리나크 행성의 탄생 [전설]

- 태초에 트리나크 행성이 탄생할 때 존재한 다섯 가지 절대적인 기운······. 만약 오랜 잠을 자는 그 기운들의 목소리를 전부 들어볼 수 있다면······ 이 세상의 큰 비밀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연계 퀘스트]

- 신( 神 )이 잠든 산(자세히 보기)

- 영원히 불타는 산(자세히 보기)

- ???

- ???

퀘스트는 확실히 변해 있었다. 이제 퀘스트 이름도 나왔고 대충이지만 진행 방향도 알 수 있었다.

‘네 개 산을 다 정복하면 마지막으로 한 산을 정복하라고 나오겠지? 결국, 당장은 절대 클리어할 수 없겠네. 과연 전설 퀘스트라는 건가?’

상혁은 가만히 이 전설 퀘스트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 결국 이 퀘스트의 마지막 무대가 될 곳을 떠올려보았다.

트리나크 행성에 존재하는 수많은 산 중 가장 특별한 산.

평범한 방법으론 절대 갈 수 없는 산.

산에 오르는 것 자체가 엄청난 도전일 수밖에 없는······ 그 산은 ‘마갑’ 패치는 물론이고 ‘하늘 배’ 정도는 제작해야 간신히 도전해볼 만한 곳이었다.

‘그래도 일단 코룬 산까진 정복해놓자.’

이왕 시작했으니 흔남의 활약상을 좀 더 촬영도 할 겸 코룬 산까지는 정복해놓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모험왕 콘셉트인데 달랑 부르산 하나만 정복하는 건 그동안 다른(?) 원 길드의 길드원들이 보여준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 * * *

코룬산 정복은 부르산 때보다 조금 더 오래 걸려서 6일을 채웠다. 아무래도 높이도 더 높았고 마지막 순간에 등장하는 몬스터의 레벨도 높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결국 정복을 해냈단 점이었다.

코룬산을 정복하니 부르산과 마찬가지로 희귀등급 타이틀인 ‘천공의 정복자’란 걸 얻었지만, 이것 역시 화산의 정복자 타이틀과 마찬가지로 별로 쓸모가 없는 타이틀이었다.

상혁은 워낙 타이틀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젠 가지고 있는 모든 타이틀을 활성화할 수가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래서 상혁은 이 두 타이틀은 비활성화를 선택한 후 한쪽에 처박아 두었다.

상혁이 부르산과 코룬산을 정복하는 사이 검투와 필멸의 전당의 ‘1-2’ 시즌이 끝났다. 상혁은 이번엔 거의 증명의 길에만 집중하긴 했지만, 그림자 숲도 간간이 랭킹 1위를 유지할 정도로는 경기를 뛰었었다.

덕분에 그는 1-2 시즌에선 ‘증명의 길’과 ‘그림자 숲’에서 1위를 기록할 수가 있었다. 나머지 달빛 신전이나필멸의 전당 같은 경우는 깔끔하게 포기를 했기 때문에 다른 길드가 1등을 차지했다.

이젠 제법 많은 유저들이 영웅의 대지로 넘어왔기 때문에 검투와 필멸의 전당에 등록하는 유저들의 숫자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이제 계백이랑 미친 듯이 싸우는 것도 힘들겠네.’

등록된 유저들의 숫자가 많다는 건 곧 전투 신청을 하는 유저들의 숫자가 많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계백과 독고불패가 증명의 길에서 만나는 횟수는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진짜 나중에 한 번 따로 만나봐야겠어.’

상혁은 기회가 되면 계백과 따로 한 번 만나볼 생각이었다. 1,000을 넘게 대결하며 쌓인 정은 생각보다 큰 것 같았다.

어쨌든 코룬 산에서 내려온 상혁은 빠르게 밀렸던 일을 모두 처리했다. 할 일은 늘 많았다. 하지만 상혁은 아무리 할 일이 많아도 매일매일 일정 시간 동안 ‘사냥’을 하는 걸 빼먹진 않았다.

사냥은 여러 의미에서 빼먹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일단 아무리 레벨을 올리는 게 힘들어도 매일 꾸준히 카르마를 쌓아야 언젠간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이건 골드나 혹은 현금으로 살 수도 없었다.

‘오늘부터는 사냥터를 옮겨보자.’

그동안은 시간이 날 때마다 돌거인을 잡았었는데 솔직히 지겨워진 느낌도 있었고 매번 반복되는 패턴으로 싸우는 건 전투 감각을 성장시키는 데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혁은 사냥터를 옮길 생각이었다.

‘어디 보자······ 역시 지금 시점에서 가장 쓸만한 사냥터는 몽마( 夢魔)의 탑이겠지?’

몽마의 탑은 영웅의 대지가 유저들에게 개방된 초창기부터 꾸준히 높은 인기를 자랑했던 사냥터였다.

총 7층으로 되어 있는데 1~2층은 이제 막 영웅의 대지에 도착한 유저들이 파티를 구성해 무리 없이 사냥할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였다.

위로 올라갈수록 당연히 공략 난이도도 올라갔는데 최상층인 7층 같은 경우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공략이 될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사냥터였다.

‘1, 2층은 좀 그렇고······ 3층 정도면 충분하겠지?’

몽마의 탑 3층은 지금 시점에선 최상급 유저들이 완벽하게 파티를 맺어야 여유 있게 공략할 수 있을 정도의 사냥터였다.

하지만 이미 상혁은 최상급 유저들이 파티를 맺은 수준을 뛰어넘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3층은 물론이고 4층에서도 사냥을 할 수 있었다.

어쨌든 결정을 내린 상혁은 바로 몽마의 탑으로 이동했다. 그에게 시간은 그 어떤 재화보다 소중했기 때문에 함부로 낭비할 수가 없었다.

“너무한 거 아닌가요?”

잔뜩 화가 난 표정의 유저. 그만 화가 난 게 아니라 그의 뒤에 서 있던 여섯 명의 동료들도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화를 억지로 참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도 바뀌는 건 없습니다.”

몽마의 탑 입구를 막고 있던 다크드래곤의 길드원인 ‘완빤치’는 상대방이 화를 내건 말건 별로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그의 임무는 몸마의 탑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유저들에게 거의 협박에 가까운 경고를 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다.

“말로만 좋게좋게 경고하는 건 탑 안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만이란 걸 잊지 마세요. 누구라도 탑 안으로 들어오면 라인 ‘다크(Dark)'가 어떤 라인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해드릴 겁니다."

라인 다크······ 다크드래곤을 중심으로 뭉쳐 있는 이 연합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쓰레기들의 모임’이었다.

EL에 존재하는 온갖 양아치, 쓰레기들은 죄다 이 라인 소속이었다. 인정은 하지 않고 있지만, 비공식적으로 다수의 ‘악인' 유저들도 이 라인에 소속되어 있었다.

가장 유명한 악인 길드 중 하나였던 ‘블러드’가 이름을 ‘다크 블러드’로 바꾸고 다크드래곤의 밑으로 들어갔다는 소문은 이미 오래전부터 돌고 있었다.

물론 공식적으론 라인 다크도 지킬 건 다 지키는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그건 그냥 양아치와 쓰레기들이 자신을 스스로 양아치와 쓰레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정도일 뿐이었다.

“아무리 라인 다크가 몽마의 탑을 가장 먼저 선점했다고 해도······ 이렇게 입구를 막고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는 건 너무한 처사 아닙니까?”

“아, 시발 말 졸라 많네. 그렇게 억울하면 그냥 들어가. 그리고 그 뒤에 일어나는 일은 알아서 감당해.”

완빤치는 더는 말하는 것도 귀찮다는 표정으로 손을 휘저으며 길을 터주었다. 하지만 완빤치 앞에 있던 7명의 유저들은 모두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질 못했다.

“병신들 들어갈 용기도 없으면서 말만 많아.”

“커, 커뮤니티에 항의 글을 올릴 겁니다.”

“당장 가서 올려. 우리가 언제 그런 거 겁내디?”

완빤치의 말 대로 라인 다크는 커뮤니티의 평판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질 않았다.

몽마의 탑을 통제하는 라인 다크. 그들은 영웅의 대지로 넘어오자마자 가장 꿀 사냥터라 할 수 있는 몽마의 탑을 선점한 후 아예 탑을 자신들의 개인 사냥터처럼 만들어버렸다.

다른 라인들이 각각 다른 콘텐츠에 집중하고 있을 때 다크드래곤은 몽마의 탑을 점령하고 빠르게 성장을 하는 쪽을 선택했다.

완빤치은 그 뒤로 계속 도발을 했지만 결국 7명의 유저들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도 제법 규모가 큰 길드에 소속된 유저들이긴 했지만, 라인 다크에게 도전할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라인 다크는 최상위권의 길드나 연합들도 어지간해선 건드리지 않는 독종들이었다. 워낙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는 싸움꾼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적당히 양보하는 게 더 이득이었다.

그래서일까? 몽마의 탑 통제는 벌써 열흘 동안 아무런 소란도 없이 잘 이어지고 있었다.

7명의 유저들이 물러나자 완빤치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입구를 지키는 일은 매우 지루한 일이었지만 완빤치 같이 등급이 낮은 길드원은 이렇게라도 길드에 공헌해야 몽마의 탑에서 사냥할 기회가 주어졌다.

‘이번 타임엔 득템을 좀 해야 하는데······.’

완빤치는 두 시간 뒤 몽마의 탑 1층에 있는 7번 파티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라인 다크는 몽마의 탑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마치 공장을 돌리듯 사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순번을 미리 뽑고 기다려야 했다.

‘응?’

그런데 바로 그때 완빤치 앞에 또 한 명의 유저가 나타났다. 그 유저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완빤치가 서 있는 몽마의 탑 입구로 걸어왔다.

“여긴 못 들어갑니다.”

완빤치는 길을 막으며 경고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길을 막는 순간 갑자기 눈앞에 있던 유저가 사라졌다.

“헉!”

사라진 유저는 마치 마술처럼 완빤치를 뚫고 몽마의 탑 안쪽에 들어가 있었다.

“너, 너······ 거길 들어가면······.”

당황한 완빤치는 황급히 경고하려고 했지만, 그가 말을 하기 전에 몽마의 탑으로 들어간 유저가 먼저 소리쳤다.

“사냥터 통제? 어디 할 수 있으면 해봐.”

완빤치의, 아니 라인 다크의 경고를 너무나도 간단하게 무시한 유저.

그는 당연히 상혁이었다.

< [44장] 모험왕 (2) > 끝

ⓒ 성진( 成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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