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84화 (84/127)

< [44장] 모험왕 (1) >

@ 모험왕.

호칭 - ‘포기를 모르는 검투사’

등급 – 유일( 唯一)

설명 – 이미 포기를 해도 백 번은 더 했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절대 포기를 하지 않는 당신의 끈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같은 전장에서 한 유저에게 1,000번을 연속해서 패배했지만, 여전히 당신은 포기하지 않은 눈치군요. 그런 당신을 위해 이 타이틀이 존재합니다.

효과 - [접두: 없음] [접미: 없음] [상시지속 효과: <패배에서 배운다(S) : 검투의 전당에서 패배할 때마다 자신에게 패배를 안긴 유저의 레벨에 따라 일정량의 카르마를 받을 수 있다.>]

계백은 조금 전 얻은 타이틀의 상세 효과를 띄워놓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유일급 타이틀을 얻은 건 분명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기분은 오묘했다. 독고불패에게 1,000번을 연속해서 진 후에 받은 타이틀.

보아하니 타이틀 효과도 굉장히 좋아 보였다. 일단 추가 카르마 획득은 나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젠장 이건 뭐······ 안심하고 계속 지라는 건가?’

조금은 어처구니없는 타이틀이긴 했지만 나쁜 건 절대 아니었다.

“그래, 어디 한 번 끝까지 해보자!”

계백은 다짐하듯 작게 중얼거리며 다시 한 번 증명의 길에 전투 신청을 했다. 이런 타이틀까지 얻은 이상 그의 도전은 더더욱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 * * *

퀘스트( Quest), ??? [전설]

- 신( 神 )이 잠든 산(자세히 보기)

- ???

- ???

- ???

상혁은 다시 한 번 퀘스트 창 하나를 띄워놓고 보고 있었다. 그것은 거의 1년 전쯤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받은 전설 퀘스트였다.

그동안 이걸 잊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여건이 되질 않아서 계속 뒤로 미뤄놨을 뿐이었다.

‘언제까진 미룰 수 없으니까······. 일단 두 곳이라도 정복해볼까?’

퀘스트에는 ???로 찍혀 있었지만, 상혁은 이것들이 결국 트리나크 행성을 대표하는 다섯 개의 산 중 보통의 방법으론 갈 수 없는 특별한 한 개의 산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개의 산이란 걸 알고 있었다.

지옥불 사막의 남쪽 끝에 존재하는 영원히 불타는 산 ‘부르’와 영웅의 대지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천공을 꿰뚫는 산 ‘코룬’.

상혁이 이번에 정복하려는 산은 이렇게 두 곳이었다.

두 산 모두 전에 정복했던 푸얀처럼 쉽게 정복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실제로 트리나크 행성엔 여러 크고 작은 산들이 많았고 또 그걸 전문적으로 타는‘산악인’들이 존재했다.

그들이 EL을 하는 이유는 오로지 산을 타기 위해서였는데 현실에 산을 타는 것보다 가상현실에서 산을 타는 게 훨씬 안전하면서 동시에 재미있었기 때문에 많은 전문 산악인들이

하지만 부르와 코룬은 그런 전문 산악인들도 아직 정복하지 못한 산이었다.

산이 높고 험한 것도 이유 중 하나긴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정상 부근에 존재하는 강력한 몬스터 때문이었다.

전문 산악인들은 아무래도 산을 타기 위해 게임을 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전투력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들도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주력분야 자체가 전투가 아닌 등반이었던 그들에겐 분명한 한계가 존재했다. 여러 번 최정상급 산악인들끼리 뭉쳐서 마치 레이드를 하듯 ‘부르’에 도전을 해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번번이 몬스터에게 막혀서 정상 정복에 실패했었다.

코룬은 영웅의 대지에 있는 산이기 때문에 산악인들의 도전은 아직 머나먼 얘기였다. 일단 지금 시점에서 EL을 즐기는 모든 산악인에게 최고의 목표가 되는 산은 영원히 불타는 산이라 불리는 '부르'였다.

‘모험가를 하나 정도 더 만드는 게 좋겠지?’

상혁은 원래 그냥 불멸의 모습으로 산을 정복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산을 정복하는 것 역시 좋은 방송 콘텐츠가 될 것 같았다.

아무도 정복하지 못한 산의 정상에 오르고 새로운 섬을 발견하는 등등 트리나크 행성에 숨겨진 수많은 지역을 탐험하는 모험가 이미지의 유저는 분명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상혁이 만든 위장 신분은 총 다섯 개였다.

흔남, 질풍, 블레이크, 대금산, 독고불패.

아직 두 개의 위장 신분을 더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상혁은 굳이 새로운 신분을 만들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거의 활용을 하지 않는 흔남을 원 길드 최고의 모험가 유저로 만들자.’

흔남은 이제 거의 쓸모가 없어졌다. 최초 흔남을 만들 땐 상혁이 정체를 숨기고 돌아다닐 때 사용하려고 만든 것이었는데 막상 위장 신분이 늘어나자 정체를 숨기고 돌아다니는 게 더 웃긴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는 이 기회에 흔남을 재활용할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모험가에게 최고의 무기는 채찍이겠지. 만년금골편은 너무 눈에 띄니까 적당한 채찍을 하나 구해야겠네.’

외모 설정을 끝낸 상혁은 차분히 모험가 흔남에게 어떤 능력을 부여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주력 무기는 채찍으로 하고 보조로 버프 계열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로 하면 딱 좋겠지?’

버프 계열 능력은 대충 조합카드들로 흉내를 낼 수 있었기 때문에 크게 어려운 게 없었다. 어차피 남을 버프할 것도 아니고 자기 자신을 버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조합카드를 사용해도 아무도 그게 카드 마법이란 걸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방어구는 가볍게 가죽 계열로 세팅하면 되겠고······ 요즘 시청자들 눈이 너무 예리하니까 아예 새로 다 구하자.’

상혁은 괜히 자신의 다른 위장 신분으로 사용하던 아이템을 재활용했다간 시청자들에게 괜한 꼬투리를 잡힐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눈썰미가 좋은 몇몇 시청자들은 이미 독고불패가 사용하는 검을 보고 블레이크가 사용했던 검이 아니냐고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나마 상혁이 변론하지 않아도 다른 유저들이 같은 길드원이니까 서로 거래를 해서 넘겼을 수도 있는 거라고 얘기해줘서 슬쩍 넘어가는 분위기이긴 했다.

상혁은 어쩔 수 없이 다음에 블레이크가 방송에 출연하게 될 땐 다른 검을 하나 구해서 사용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해야지 시청자들이 예상한 시나리오가 더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다.

어쨌든 상혁은 위장 신분끼리도 이제 함부로 아이템을 공유하면 안 된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에 흔남의 아이템은 전부 새로 구할 생각이었다.

방어구는 딱 상혁의 마음에 드는 게 있었다. 아주 오래된 핵 고전 영화인 인디아나 존스의 주인공이 입고 있던 옷과 비슷한 외형의 방어구······. 성능도 나쁘지 않았기에 상혁은 이 방어구를 바로 구매했다.

하지만 방어구와 달리 무기는 생각보다 구하기가 힘들었다. 만년금골편이 워낙 좋은 아이템이라 어쩔 수 없이 어지간한 채찍 아이템은 눈에 안 들어오기도 했고 채찍류 무기가 희귀하기도 했기 때문에 이틀 동안 모든 경매장을 계속 살피고 또 살펴서 겨우 +8까지 강화된 희귀( Rare)급 채찍을 하나 구할 수 있었다.

+8 와이번 가죽 채찍 [희귀( Rare)급 +]

- 와이번 가죽으로 만든 아주 단단한 채찍. 이것을 만든 장인의 혼이 녹아 있는 특별한 물건이다.

8번 강화가 되어 하늘과 땅을 뒤흔들 만큼의 거력( 巨力 )을 얻을 수 있다.

[기본 능력치] 공격력 70(+7)(+84), 치명타 확률 +10(+1)(+13)%

[특수 능력치] 치명타 데미지 +40(+4)(+52)%

[특수 효과] <강철 가죽(B) : 강철만큼 단단한 가죽입니다.>, <극심한 고통(B) : 치명타 확률이 5% 늘어납니다.>

[강화 효과] <+5강화 효과 : 민첩 +20>

<+7강화 효과 : 힘 +50>

[보너스 효과] (1) 치명타 확률 +3%

이건 희귀아이템치고는 매우 좋은 아이템이었다.

상혁은 이걸 무려 50만 골드나 주고 구매했다.

50만 골드를 현금으로 환전하면 3천만 원이 조금 안 되는 금액이었다.

유일등급도 아니고 희귀등급의 아이템을 이렇게 비싸게 주고 산 건 일단 무려 +8까지 강화된 고강화 아이템이었고 옵션도 딱 상혁이 원하는 것들만 아주 훌륭하게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희귀급 아이템을 +8강까지 강화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아무래도 강화석을 낭비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선 유일등급 아이템이 그리 흔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간혹 이렇게 고강을 지르는 유저들이 존재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여기에 쏟아부었을 강화석 값만 해도 거의 몇십만 골드는 나올 것 같았다. 어쨌든 상혁으로선 싸게(?) 좋은 물건을 살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주력 무기를 구한 상혁은 그걸 손에 익히기 위해 몇 시간 동안 돌거인을 사냥했다.

대략 세 시간 정도를 집중해서 사냥을 하니 가죽 채찍이 금방 익숙해졌다. 아무래도 이 채찍보다 10배는 더 제어하기 어려운 만년금골편을 수족처럼 사용했던 상혁이었기 때문에 채찍에 익숙해지는 건 별로 어렵지가 않았다.

상혁은 채찍에 익숙해지자 바로 ‘부르’를 향해 떠났다.

* * * *

부르는 화산이었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용암을 계속 내뿜는 활화산······. 사실 현실이었다면 이런 산을 등반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등반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산의 출입을 통제하고 산 근처에 있는 사람들을 대피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현실이 아닌 가상현실이었다. 그것도 이터널 라이프라는 게임 속 세상이었다.

그렇기에 부르가 폭발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물론 대규모 패치에 의해 폭발을 할 순 있겠지만, 그런 폭발은 그냥 이벤트성으로 일어날 뿐 유저들에게 직접 영향을 주진 않았다. 이런 이유로 부르는 산악인들에게 더더욱 많은 도전을 받았다.

현실에선 오를 수 없는 활화산 등반! 이게 또 산악인들에겐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주었다.

상혁이 따로 조사해본 결과 산악인들의 길드 중 가장 크고 유명한 길드는 ‘안나푸르나’라는 길드였다.

실제로 현실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전 세계의 유명 산악인들이 소속된 이 길드는 EL에서도 가장 산을 잘 타는 유저들이 모여 있는 길드였다.

그런 안나푸르나도 부르 산은 정상은 고사하고 정상 근처도 가보질 못했다.

부르 산 정상에 등장하는 몬스터는 두 종류였는데 하나는 평균 레벨 57의 일반 몬스터인 ‘화염산양( 火焰山羊)'이었고 또 하나는 평균 레벨 59의 준 네이듬 몬스터인 '용암불새'였다. 안나푸르나의 산악인들을 번번이 좌절시킨 게 바로 이 두 몬스터였다.

특히 용암불새는 험한 산을 오르는 산악인들에겐 최악의 공격 패턴을 지니고 있었다. 놈은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이거나 혹은 활력이 떨어져 보이는 유저가 있으면 바로 자신의 강력한 발톱으로 그 유저를 낚아챈 후 산 아래로 던져버렸다.

아무리 유저들이 안전장치를 마련해 놨다고 해도 계속 그렇게 던져지면 언젠간 안전장치마저 뜯겨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끝이었다.

방어력이나 체력 같은 게 아무리 높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닥에 내팽개쳐지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안나푸르나의 길드원들은 전부 그렇게 추락사한 경험이 있었다.

안나푸르나의 길드원들은 이런 정보를 굳이 숨기지 않았기 때문에 상혁은 쉽게 부르산의 정보를 구할 수가 있었다.

안나푸르나가 정보를 공개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은 게이머이기 이전에 골수 산악인이었기 때문에 누구라도 이 정보를 이용해 산을 정복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후우, 얼마나 올라온 거지?’

열심히 산을 타고 오르던 상혁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안나푸르나 길드의 유저들은 아무리 게임 속이라고 해도 부르산의 정상에 오르려면 최소 일주일은 필요하다고 얘기했었다. 하지만 상혁은 일주일이 아니라 사흘 안에 정상에 오를 생각이었기 때문에 아주 빠르게 산을 타고 있었다.

‘이거 생각보다 더 높아 보이네······ 넉넉하게 나흘 정도로 잡아야 하나?’

상혁은 전문 산악인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게임 속에서 산을 타는 건 전문 산악인이라 불리는 이들보다 훨씬 잘 탈 자신이 있었다.

그는 전생에서 다년간 터득한 등반 경험과 높은 VRA. 그리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섬세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상혁은 그 어떤 산악인보다 강했다. 산악인들이 입을 모아 힘겹다고 얘기하는 두 종류의 몬스터······ 놈들은 절대 상혁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 [44장] 모험왕 (1) > 끝

ⓒ 성진( 成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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