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장] 포기를 모르는 불꽃 남자 (2) >
다행히 계백의 연패는 끊겼다. 하지만 독고불패를 연패를 끊은 게 아니었다. 45번째 경기에서 독고불패가 아닌 다른 유저와의 경기가 잡혔고 계백은 분풀이라도 하듯 그 다른 유저를 압살해버렸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연패들······.
중간중간 다른 유저를 만나 연패가 계속 이어지진 않았지만 독고불패만 놓고 보면 나흘 동안 거의 200연패를 당했다.
보통의 유저라면 몇 번이나 포기했겠지만, 계백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는 계백! 그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피이잉! 콰드드드득!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칼날 하나가 계백의 심장을 ‘또’ 꿰뚫었다.
‘시발······. 예상하고 있었는데······.’
심장을 꿰뚫린 계백은 욕이 먼저 튀어나왔다. 전장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독고불패의 암습을 가장 조심해야 했다. 계백은 그것에 당한 것만 따로 꼽아도 거의 100번이 넘을 지경이었기 때문에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었고, 조심까지 했는데······ 또 당했다.
진짜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이번엔 치명타까지 터져주면서 한 방에 100%의 생명력이 전부 사라졌다.
이제 이런 건 계백에게 워낙 익숙한 장면이라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치명타가 터지면 죽는다. 독고불패를 상대할 때 이건 마치 공식과 같은 것이었다.
계백은 상대가 치명타와 관련된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아이템 세팅도 치명타 쪽으로 맞췄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데미지였지만 어차피 이해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었다.
쿠쿵.
계백은 따 바닥에 쓰러지며 다시 한 번 독고불패와의 전투를 복기하기 시작했다. 계백은 진짜 질기디질긴 고무와 같은 인물이었다.
* * * *
“확실히 워로드는 워로드네.”
경기에서 승리한 상혁은 방송 준비를 하기 위해 접속을 끊었다. 상혁은 계백에게 두 가지 부분에서 감탄했는데······ 첫 번째는 정말 포기를 모르는 그 엄청난 끈기였고 두 번째는 아주 조금씩이긴 하지만 전투를 할 때마다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제 제법 반격을 하던데······ 확실히 독고불패의 공격들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느낌이야.’
물론 그래 봤자 여전히 계백은 독고불패의 상대가 될 수가 없었다. 기본적인 능력 차이가 워낙 커서 단순히 익숙해지는 정도로는 따라잡는 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계백이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반응을 한다는 건 확실히 그가 뛰어난 유저라는 걸 증명하는 사실이었다.
평범한 유저, 아니 적당히 뛰어난 유저였어도 독고불패의 움직임에 익숙해지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다.
‘나도 덕분에 마음껏 스킬 조합이나 여러 가지 컨트롤을 연습할 수 있으니까 서로 좋은 일······ 아, 계백한텐 좋은 일은 아니겠구나.’
상혁은 자신에게만 거의 200패를 당하고 있을 계백을 떠올리곤 쓴웃음을 지었다. 상혁은 잠시 만약 자신이 계백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무리야. 아무리 나라고 해도 100번 정도 졌으면 포기했을 거야.’
인내심이라면 상혁도 어디 가서 빠지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계백만큼은 자신이 없었다.
계백 덕분에 환상의 영약을 2개나 만들어 먹었다. 최초로 얻은 환상의 영약은 최초라는 특별함 덕분에 여지없이 더블 플러스(++)가 붙어 나와주었고 덕분에 상혁은 2개의 환상의 영약으로 모든 능력치를 영구적으로 +4까지 올릴 수 있었다.
그동안 꾸준히 검왕의 무덤을 돌며 영약을 캐고 또 캔 상혁은 결국 최대 클리어 횟수인 1000번을 모두 소모했다.
1000번을 클리어하며 상혁이 얻은 영약은 총 174개였다.
목표치인 150개를 상회하는 숫자라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특히 영약의 개수도 개수지만 종류가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힘의 영약이 28개, 민첩의 영약이 37개, 체력의 영약이 26개, 지능의 영약이 21개, 지혜의 영약이 22개, 활력의 영약이 21개, 매력의 영약 19개.
상혁에게 가장 필요한 민첩의 영약이 가장 많았고 그다음으로 힘의 영약과 체력의 영약이 가장 많았다. 이 정도라며 정말 훌륭한 결과였다.
영약들을 충분히 먹어서일까? 상혁의 기본 능력은 더더욱 강력해졌다. 상혁은 워낙 % 상승효과를 지닌 능력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서 영약의 효과가 극대화되었다.
속된 말로 영약빨 좀 받는 상혁이었다.
‘이제 슬슬 금산상단을 통해 던전 티켓 판매도 시작해야겠네.’
상혁의 사업 아이템 중 하나인 ‘던전 티켓’은 우선 오래전에 킵을 해놓은 ‘허리케인 홀’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다. 상혁은 허리케인 홀을 시작으로 더 많은 비밀 던전을 찾아낸 후 던전 티켓 판매를 금산상단의 주력 사업 중 하나로 키워볼 생각이었다.
‘할 건 많고······ 시간은 없고. 이럴 땐 정말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네.’
상혁은 계백의 멈추지 않는 도전 덕분에 나흘 정도를 증명의 길에서 살다시피 했고 덕분에 할 일이 쌓여 버렸다. 상혁은 지금도 할 일을 일찍 끝내고 다시 계백을 상대하러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른 걸 모두 떠나 계백과 싸우는 건 재미가 있었다.
계백은 분명 상혁의 상대가 되질 않았지만, 순간순간 그가 보여주는 센스는 상혁을 매우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방송 준비를 끝낸 상혁은 잠깐 게임에 다시 접속했다.
그리곤 B급 NPC 상인을 두 명 더 고용해 금산상단에 합류시켰다. 당연히 그들은 ‘허리케인 홀’의 던전 티켓을 판매할 NPC들이었다.
티켓은 영웅의 대지에서 가장 큰 대도시인 ‘코트니’에서 판매할 것이고 그 판매소에 한 명 그리고 허리케인 홀에 한 명. 이렇게 두 명을 배치할 생각이었다.
간단한 업무였기 때문에 B급 NPC로도 충분했다.
그 밖에 여러 볼일까지 모두 끝낸 상혁은 방송을 위해 일단은 다시 게임 밖으로 나왔다.
계백은 천상 방송이 끝내고 상대해야 할 것 같았다.
오늘 방송에선 드디어 독고불패가 등장했다.
질풍은 ‘무적의 사냥꾼’이란 말로 독고불패를 소개했다. 원 길드의 새로운 길드원이 소개되자 시청자들은 모두 환호했다.
이미 몇몇 유저들은 은밀히 퍼진 레드라인과 테라쿨룸의 처참한 패배 소식을 알고 있었고 심지어 그들을 짓밟은 단 한 명의 유저가 독고불패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독고불패의 존재를 모르는 시청자가 더 많았기 때문에 시청자 대부분이 잔뜩 기대하며 이어지는 영상을 지켜보았다.
시작은 증명의 길에서 레드선과 싸우는 장면부터였다.
물론 레드선의 모습은 필터링 기능을 통해 철저히 가려졌다. 하지만 이미 채팅창에서 그의 정체가 적나라하게 까발려지고 있었다.
독고불패에게 처절하게 짓밟히는 레드선의 모습을 보며 대부분의 유저들이 즐거워했다. 레드선은 평판이 그리 좋은 유저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더 통쾌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영상은 계속 이어졌는데 증명의 길에 이어 그림자 숲 그리고 달의 신전까지 연속해서 독고불패가 홀로 검투의 전당을 씹어먹는 모습이 방송되었다.
그리고 반응은 당연히 폭발적이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언더독을 좋아했다. 그렇기에 당연히 홀로 다수를 상대하는 독고불패는 시청자들의 열열한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독고불패가 레드라인을 박살 내는 건 업셋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독고불패가 혼자라는 점 때문에 당연히 약자 쪽이 독고불패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정반대였지만 어차피 시청하는 쪽에선 그런 세부적인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눈에 보이는 장면을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었다.
소수가 다수를 찍어누르는 장면은 언제나 통쾌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냥 찍어누르는 것도 아닌 아예 산산조각을 내버리는 수준의 압살이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잔뜩 흥분하며 너도나도 금별을 날려주었다.
최근에 살짝 시청률이 하락하고 있던 채널 원이었는데 오늘 제대로 다시 위로 수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오오오! 새로운 괴물 출현이다!]
[독고불패? 이름도 죽이네. 당연히 한국인 유저겠지?]
[생김새도 그렇고 이름도 그렇고 99% 한국인 유저다.]
[결국, 원 길드는 한국 길드가 확실해. 근데 외국 애들은 이 사실을 계속 부정하더라.]
[걔들 입장에선 EL 최강의 길드인 원마저 한국 길드라는 게 불만인 거지. 사실 EL에서 알아주는 길드 중 절반 이상이 한국 길드잖아.]
[게임은 한국인 종특이잖아. 특히 EL은 한국에서 만든 게임이기도 하고.]
[와, 근데 아무리 원 길드의 괴물들 중 한 명이라고 해도 저게 가능해? 어떻게 혼자서 3명을 저렇게 박살 낼 수가 있지? 도대체 레벨이 얼마나 되는 거야?]
[난 레벨보다 소울이 더 궁금한데······ 혹시 저 독고불패란 유저 트리플 소울 아닐까?]
[에이, 아무리 그래도 트리플 소울은 오버다. 지금 더블 소울만 해도 레벨을 올리려면 엄청나게 많은 카르마가 필요한데······ 트리플은 레벨을 올리는 게 불가능한 수준일 걸?]
[혹시 모르지 뭔가 방법을 찾은 것일 수도 있잖아.]
[아냐, 더블 소울일 가능성이 커. 사용하는 스킬만 봐도 특별히 소울이 많아 보이진 않잖아.]
[그딴 게 뭐가 중요해. 그냥 닥치고 감상들이나 해라.]
······
······
새로운 강자의 출현은 어차피 그쪽 세상과 별로 상관도 없는 절대다수의 시청자들에겐 무조건 즐거운 일이었다.
원 길드의 독고불패.
그는 오늘 방송을 통해 다른 원 길드의 길드원들처럼 또 하나의 ‘괴물’로 등극할 수 있었다.
* * * *
방송이 끝난 후 상혁은 곧장 게임에 접속했다. 평고 같았으면 시청률 추이도 좀 보고 여러 커뮤니티의 방송 반응 같은 것도 검색해봤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곧장 증명의 길에 전투 신청을 했다. 그러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계백과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계백은 정말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상혁이 무엇을 하다 와도 계백은 언제나 증명의 길에서 상혁을 기다렸다. 재미있는 건 증명의 길의 랭킹이었다.
당연히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점수로 1위를 지키고 있는 건 독고불패였다. 그런데 2위가 독고불패에게 미친 듯이 계속 깨지고 있는 계백이었다.
98승 947패.
이건 계백이 증명의 길에 도전해 보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서 기록한 성적이었다. 당연히 947패는 오로지 독고불패에게만 당한 패배였다.
원래대로라면 승리의 횟수보다 패배의 횟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계백은 2위가 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2위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독고불패의 랭킹 포인트(증명의 길)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었다.
랭킹 포인트가 일정 수준 이상 차이가 나게 되면 패배를 해도 점수를 잃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제 계백은 독고불패에게 패배해도 1점도 빼앗기질 않았다.
대신 계백은 독고불패를 제외한 다른 유저들에겐 모두 승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2등을 차지하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증명의 길은 유일신( 唯一神) 독고불패와 인간계 최강 계백. 이 두 명이 꽉 잡고 있는 곳이 되었다.
증명의 길에서 탑 랭커가 되려면 어차피 유일신 독고불패는 논외로 치더라도 그나마 비벼볼 만한 계백과의 승부를 이겨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1-2시즌이 끝나려면 아직 열흘은 더 있어야 했지만 벌써 1, 2위는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란 의견이 많았다. 물론 이제 저승길을 통과해 영웅의 대지로 넘어오는 유저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긴 했지만 그래 봤자 독고불패와 계백의
굳건한 위치는 변함이 없을 것 같았다.
‘정말 재미있는 녀석이란 말이야······.’
상혁은 증명의 길에서 또 한 번의 경기를 끝낸 후 흥미롭단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이번에도 독고불패의 상대는 계백이었었다. 그리고 역시나 5 : 0으로 확실히 눌러주었다. 그런데 경기 내용을 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계백이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식의 전략으로 독고불패에게 처음으로 제대로 강력한 공격 한 방을 꽂아넣은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결과적으론 뼈를 주고 살을 취한 것밖에 되지 않았지만, 계백은 1,000패가 가까워진 지금 상황에서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뭔가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었다.
‘얘 나이가 나랑 동갑이었던 걸로 아는데······.
상혁은 계백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걸 떠올려보았다.
일단 나이는 현재 22살로 상혁과 동갑이었다.
그리고 직업은 적어도 상혁이 알기론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어릴 때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뽑힐 정도로 전도유망한 체조 선수였는데 훈련 중에 크게 다쳐서 운동을 포기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오른쪽 다리를 아주 살짝 절뚝거렸었다.
이건 상혁이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어렴풋이 기억하기론 사는 곳은 경기도 수원이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얘긴 해보고 싶네.’
증명의 길에서 워낙 많이 싸워서 그럴까? 살짝 정이 든 것처럼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정은 정. 승부는 승부!’
정이 들었다고 봐주는 건 상혁의 스타일이 아니기에 상혁은 다시 증명의 길에 전투 신청을 했다.
달리고 또 달리고.
상혁도 그리고 계백도 미친 듯이 증명의 길에 전투 신청을 했다.
< [43장] 포기를 모르는 불꽃 남자 (2) > 끝
ⓒ 성진( 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