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82화 (82/127)

< [43장] 포기를 모르는 불꽃 남자 (1) >

@ 포기를 모르는 불꽃 남자.

‘원 길드의 독고불패······. 들어본 적은 없지만 일단 원 길드니까 조심해야겠지?’

계백은 독고불패란 이름보다 그가 속한 원 길드에 더 집중했다. 원 길드는 일당백( 一當百), 아니 일당천( 一當千) 이라고도 불리는 최고의 소수정예 길드였다.

그렇기에 만만히 볼 수가 없었다.

계백은 자신의 영혼 구슬인 ‘오미호( 五尾狐)의 보주’를 꺼낸 후 오른손가락과 왼손가락을 각기 다르게 움직여 서로 다른 퀵 마법 두 가지를 완성했다.

하나는 복싱으로 따지면 잽이라고 할 수 있는 ‘얼음 파편’이었고 하나는 상대방의 발을 묶어놓을 수 있는 ‘얼어붙는 공기’였다.

두 기술은 연계 보너스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계백이 종종 사용하는 조합이었다.

‘일단 발부터 묶어볼······.’

계백은 얼어붙은 공기를 사용해 독고불패의 발을 묶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얼어붙은 공기(퀵)를 사용하려는 순간 독고불패의 검에서 튀어나온 한 줄기의 검기가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위력 자체는 별로 강력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검기가 파고든 타이밍이 너무 교묘했다. 퀵 마법은 수인을 이용해 캐스팅 시간을 대폭 줄인 마법이었기 때문에 캐스팅 시간이 매우 짧았다.

지금 사용하려던 얼어붙는 공기는 캐스팅 시간이 겨우 0.7초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검기는 바로 그 0.7초의 사이를 파고들었다.

콰쾅!

비록 계백을 직접 타격한 게 아니라 계백의 발 앞을 때리는 빗나간(?) 공격이었지만 어쨌든 그것만으로도 캐스팅은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계백은 얼어붙는 공기를 제대로 뿌리질 못했다.

파아앗,쩌저적!

얼어붙는 공기는 계백이 원했던 방향보다 좀 더 오른쪽으로 치우쳐져서 뿌려졌고 그 결과 독고불패는 너무나 쉽게 얼어붙는 공기를 피해버렸다.

‘우연이겠지?’

계백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로 이어서 얼음 파편을 날렸다. 그나마 얼음 파편은 퀵 마법으로 사용하면 즉시 시전이 가능한 마법이었기 때문에 방해받을 위험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검기가 계백의 손에서 얼음 파편이 튀어나오자마자 곧바로 정확하게 반으로 쪼개버렸다.

따다당!

그 짧은 순간 거의 시속 200 km로 튀어 나가는 얼음 파편을 검기를 날려 쪼갠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독고불패가 뿌리고 있는 이 검기는 섀도우 나이트의 대표기술 중 하나인 ‘섬전흑영( 閃電黑影)’이었는데 이건 섬세한 컨트롤과는 거리가 먼 영혼기술이었다.

그가 뿌린 두 번의 섬전흑영은 공격을 가장한 방어라고 할 수 있었다.

굳이 표현한다면 적극 방어란 말이 어울렸다. 상대방을 직접 공격하지 않고 단지 바닥을 때리거나 허공을 격하는 것만으로도 공격 흐름을 공격으로 차단해 방어 효과를 얻어냈다.

‘장난이 아니잖아?’

순간 계백의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당연히 계백은 단 두 번의 공격만 보고도 상대방이 얼마나 대단한 유저인지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를 할 계백은 아니었다.

계백은 재빨리 ‘윈드 워크( Wind Walk)’를 사용하며 뒤로 물러났다. 전투 마법사에게 윈드 워크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기 때문에 계백의 마법 발현은 너무나도 간결하고 빨랐다.

파파팟!

순식간에 몇 미터를 물러난 계백은 양손의 수인을 다시 고쳐잡으며 독고불패를 바라보았다.

계백이 익힌 고대의 지식은 ‘원소 마법사(얼음)’과 ‘블러드 메이지’였다.

원소 마법사(얼음)은 현재 5클래스까지 성장시킨 상태였고 블러드 메이지는 4클래스까지 성장시켰다.

마법사 계열 고대의 지식은 이처럼 클래스를 성장시킬 수 있었는데 고대의 지식마다 한계가 존재했다.

계백이 익힌 ‘원소 마법사(얼음)’은 8클래스가 한계였고 블러드 메이지는 7클래스가 한계였다. 재미있는 건 모든 마법사 계열의 고대의 지식을 익힌 유저들은 ‘공용 마법’이란 이름으로 1~2클래스의 하위마법은 골라서 익힐 수가 있었다.

한 유저 당 7개씩 고를 수 있었는데 이것도 나름 신경 써도 골라야 했다. 지금 계백이 사용한 윈드 워크가 대표적인 공용 마법 중 하나였다.

‘아이스 스피어와 블러드 핸드!’

계백의 선택은 3클래스 원소 마법(얼음)인 아이스 스피어와 3클래스 특수 마법인 블러드 핸드였다.

둘 다 3클래스 마법이었기 때문에 수인으로 퀵 마법을 발동시킨다고 해도 각각 1초와 0.9초의 캐스팅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계백은 이걸 동시에 더블 캐스팅하며 최대한 발동 시간을 줄여버렸다.

더블 캐스팅은 지금처럼 양손에 각기 다른 퀵 마법을 발현할 때만 가능한 것이었는데 최소 VRA가 250은 되어야 시도라도 해볼 수 있는 컨트롤이었다.

실제로는 VRA가 높아도 성향이 맞지 않으면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흔히 마법사를 위해 태어났다고 인정받는 몇몇 소수의 유저들만 가능한 더블 캐스팅······. 계백은 이 더블 캐스팅을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해냈다.

거리를 벌리는 것과 더블 캐스팅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렇기에 계백은 이번만큼은 절대 상대방의 견제에 맥이 끊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블러드 핸드로 붙잡고 아이스 스피어로 꿰뚫는다!’

블러드 핸드와 아이스 스피어의 연계 공격은 매우 간단하면서 위력적인 콤비네이션이었다.

특히 계백처럼 완벽하게 더블캐스팅을 해낼 수 있다면 거의 동시에 두 기술이 들어갔기 때문에 사실상 한 기술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정상적인 상대였다면 이 두 마법이 완성되는 순간 둘 중 하나의 리액션을 취했다. 공격을 피하려고 격렬하게 회피기동을 한다거나 혹은 공격을 막기 위해 방어 자세를 취하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독고불패는 달랐다.

그는 피하지도 그렇다고 막지도 않았다.

그냥······ 견뎌냈다.

드드드드득, 콰과광!

독고불패는 마치 불도저처럼 몸으로 블러드 핸드와 아이스 스피어를 꿰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장면이었다. 블러드 핸드가 몸을 휘감은 상태에서 아이스 스피어가 머리에 정확하게 꽂혔다. 이 정도라면 쓰러지거나 기절하진 않을지 몰라도 적어도 데미지를 입고 살짝이라도 몸이 흔들리거나 뒤로 밀려나야 했다.

그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독고불패는 작은 흔들림도 없이 그냥 몸으로 두 마법을 뚫어냈다. 그 대가로 독고불패가 얻은 건 거리와 시간이었다.

그는 원래대로라면 좁힐 수 없을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버렸다. 그리곤 계백이 공격 사정권이 들어온 순간 망설이지 않고 검을 찔러넣었다.

‘미친.’

계백은 생각지도 못한 상대의 반격에 깜짝 놀라며 재빨리 몸을 비틀었다. 그리곤 그와 동시에 오른손으로 수인을 하나 빠르게 완성했다.

이것만 봐도 계백이 보통 유저는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이 상황에선 누구라도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독고불패의 검에 심장이 꿰뚫리는 게 당연해 보였다.

그런데 이 찰나의 순간에 계백은 반응했다. 비록 늦었을지 몰라도 그는 끝까지 포기를 안 했다.

이 순간 계백이 가장 빠르게 선택할 수 있는 마법은 2클래스 마법인 ‘프리징( Freezing)’이었다.

계백은 독고불패의 검을 막거나 피할 순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검을 얼어붙게 하여 자신의 몸을 꿰뚫는 힘을 최대한 약화시키는 것과 동시에 몸을 비틀어 어떻게 해서라도 공격이 급소에 적중되는 걸 피한 것이었다.

이게 계백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쩌저저적! 콰드득!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계백은 결국 프리징을 발현시켰고 오우거슬레이어가 얼어붙었다. 하지만 독고불패는 오우거슬레이어가 얼어붙건 말건 우격다짐으로 계백의 몸에 검을 찔러넣었다.

몸을 황급히 비튼 덕분에 심장이 꿰뚫리는 것도 막았다. 대신 검은 폐를 관통했다.

계백은 이 정도라면 치명적인 타격은 최대한 피하고 오히려 반격을 노려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독고불패의 공격이 치명타가 터지는 순간 그 모든 생각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허어억!’

순식간에 100%였던 계백의 생명력이 20%로 떨어졌다. 그리고 당연히 강력한 경직 현상이 계백의 몸을 휘감았다.

‘이, 이게 무슨······.’

경직 효과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계백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말도 안 돼.’ 였다.

정말 말이 되질 않았다. 급소도 피하고 심지어 프리징 마법으로 데미지를 상당히 줄였다. 그런데 그럼에도 괴랄한 데미지가 계백의 생명력 대부분을 날려버렸다.

최고 수준의 경직 효과로 몸이 완전히 굳어버린 계백은 독고불패에겐 샌드백과 같은 존재였다.

우드득, 콰드드드득!

독고불패는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뽑은 후 곧장 그것을 다시 심장에 찔러넣었다.

개인적인 감정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승리를 위해 상대를 죽였을 뿐이었다.

쿠쿵.

바닥에 쓰러진 계백. 그는 쓰러지는 그 순간까지도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게 뭐야? 이게 가능해? 정말? 리얼리?’

아무리 상대가 원 길드의 길드원이라고 해도 계백은 자신이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죽었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일단 경기 자체를 패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독고불패와 제대로 싸워봐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부활과 함께 다시 돌진하는 계백.

그는 절대 이대로 말도 안 되게 패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계백은 세상일이 아무리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진 않는다고 해도 이건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계백은 첫 죽음 이후 내리 4번을 연속해서 죽었다. 첫 죽음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처참한 죽음이었다.

그는 그렇게 첫 번째 경기에서 패배했다.

당연히 계백은 경기 결과를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는 승부욕이 매우 강할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끈질긴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증명의 길’에 전투 신청을 했다.

그리곤 5시간 동안 무려 31번을 내리 패배했다. 31연패를 안겨준 이는 당연히 독고불패였다. 독고불패는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계백을 철저히 박살 냈다.

31연패와 함께 계백의 멘탈도 산산조각이 났다. 특히 그냥 단순히 31번을 패배한 게 아니라 31경기 모두 ‘5 : 0’의 킬스코어로 패배했다.

단, 한 번도 독고불패를 죽여보질 못했다.

심지어 독고불패에게 제대로 된 데미지 조차 주질 못했다.

이쯤 되자 계백은 거의 정신이 반쯤 나갈 수밖에 없었다.

계백은 나름 유명한 PvP 유저였다. 최고의 전투마법사를 뽑으면 늘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 진정한 탑 클래스 유저였다.

그런 그가 정말 철저히 짓밟혔다.

경기 내용을 보면 아무리 도전을 계속해도 이길 수가 없을 같았다. 사실 보통 유저였다면 대략 10연패 정도를 당했을 때 무조건 포기를 하고 더는 도전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계백은 포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31연패를 당해 멘탈이 박살이 나버린 지금도 포기를 생각하진 않고 있었다. 그에겐 박살 난 멘탈과 도전은 전혀 다른 영역의 얘기였다.

‘후우······ 난 포기하지 않는다!’

계백은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에 딱 10분만 쉬고 다시 도전할 생각이었다.

포기를 모르는 불꽃 남자.

그가 바고 계백이었다.

* * * *

“워로드 계백······ 그를 여기서 만날 줄이야.”

상혁은 증명의 길에 전투 신청을 다시 걸어놓고 슬쩍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계백이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계백은 워로드라 불리며 EL PvP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자 나중엔 프로게이머로도 활동하며 굉장한 실력을 자랑한 인물이었다.

상혁과는 특별한 접점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오다가다 인사나 몇 번 한 정도일 뿐이었다. 일단 소속 팀 자체가 달랐고 또한 주활동시기도 달랐다.

상혁이 감독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을 땐 계백이 프로게이머도 그만두고 슬슬 즐겜모드로 게임을 즐길 때였다.

그렇기에 둘이 인연을 만들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상혁은 계백이 어떤 인물인지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워낙 유명하기도 했고 수많은 프로게이머에게 그에 관한 얘기도 많이 들었었다.

‘그때 평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호인( 好人). 나쁜 평을 듣기 힘든 호인이었지.’

간혹 험담을 하는 이들도 있긴 했지만 상혁이 볼 땐 그 험담을 하는 애들이 더 이상한 녀석들인 경우가 많았다.

‘나름 EL의 전설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인물인데······ 내가 너무 심하게 밟았나?’

계백이 아무리 대단한 유저라고 해도 지금의 상혁에겐 절대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컨트롤은 둘째로 치더라도 아예 시작점 자체가 달랐기 때문에 절대 계백은 상혁을 이길 수 없었다.

‘31번······ 이제 포기한 건가? 포기를 모르는 굉장히 열혈 게이머라고 들었었는데······.’

상혁은 은근히 계백이 계속 도전해주길 바랐다. 솔직히 계백과의 경기는 거의 7~9분 안에 승부가 끝나는 진정한 스겜이었기 때문에 상혁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대였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드디어 경기가 잡히며 매칭 화면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상혁은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매칭 화면에 뜬 ‘계백’의 이름.

역시 계백은 전생에서 들었던 대로 포기를 모르는 열혈 게이머가 맞았다.

< [43장] 포기를 모르는 불꽃 남자 (1) > 끝

ⓒ 성진( 成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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