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장] 검투의 전당 (1) >
@ 검투의 전당.
검투의 전당에 도착한 레드선은 우선 검투사로 등록부터 했다. 그와 함께 8명의 레드라인 길드원들도 모두 검투의 전당에 검투사 등록을 마쳤다.
그렇게 레드선까지 총 9명의 유저가 검투사가 되었다.
검투사가 된 그들은 제일 먼저 검투의 전당을 이용하는 방법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다행히 검투의 전당에 상주하는 NPC들이 특별한 퀘스트 없이 친절하게 검투의 전당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NPC는 레드선에게 현재 리그를 생성할 수 있는 전장이 세 곳이라고 얘기했다. 물론 검투의 전당엔 그보다 더 많은 전장이 존재하긴 했지만, 지금은 세 곳의 전장만 열려 있는 상태였다.
1 : 1 무제한 대결을 할 수 있는 ‘증명의 길’
3 : 3 무제한 대결을 할 수 있는 ‘그림자 숲’
7 : 7 차륜 대결을 할 수 있는 ‘달의 신전’
이렇게 세 전장이 존재했는데 이 전장들은 시간이 흘러도 계속 인기가 유지될 곳이었다. 특히 증명의 길 같은 경우는 사실상 EL의 최강자를 선별하는 전장처럼 여겨지며 수많은 강자가 다른 곳은 몰라도 증명의 길에서 만큼은 왕좌를 차지하고 싶어 했다.
검투의 전당은 물론이고 필멸의 전당도 같은 길드원들끼린 매칭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리그를 열기 위해선 또 다른 길드에 소속된 상대가 필요했다.
“설마 테리쿨룸한테 밀리진 않겠죠?”
레드선과 함께 끝까지 살아남아 영웅의 대지에 도착한 레드라인의 루드밀라는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레드선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테리쿨룸은 리그를 열기 위한 초반 매칭에 응할 거야. 물론 어뷰징으로 판정받는 걸 막기 위해 그쪽도 전력을 기울이긴 하겠지만······ 레이드 전문 길드한테 밀릴 정도면 그냥나가 죽어야지. 결국, 궁극적으로 우리 상대는 원 길드가 될 거야.”
레드라인과 테리쿨룸은 서로 초반 리그 생성을 위해 교차 지원을 해주기로 했다. 어뷰징을 하고자 하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지금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어뷰징 기미를 보였다간 두 길드 모두 큰일 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서로 최선을 다해주기로 합의를 한 상태였다.
“원 길드는 검투와 필멸 두 곳 모두 먹으려고 하겠죠?”
“그렇겠지. 그래서 더더욱 초장에 찍어 눌러야 해. 그렇게 해서 원 길드가 검투의 전당을 포기하고 필멸의 전당에 집중하게 하면······ 우린 아주 편하게 검투의 전당을 먹을 수 있을 거야.”
레드선의 의도는 간단했다. 분명 그는 테리쿨룸을 비롯한 라인 일루젼과 대규모 연합을 구성했지만 그렇다고 그들과 모든 걸 공유할 생각은 없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레드라인과 자신이 이득을 취하는 것이었다.
“우선 팀을 좀 구성해보자.”
레드선은 EL은 아니었지만 수많은 게임을 경험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런 투기장 스타일의 콘텐츠를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실력도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그의 VRA는 240 수준이었는데 이 정도면 거의 프로게이머급이라고 보면 되었다. 실제로 몇몇 DN 게임에선 잠깐씩 프로게이머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경험도 많고 실력도 좋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증명의 길 같은 경우는 가장 먼저 자신의 이름을 제일 위에 올려놓았다.
‘검투의 전당! 이곳은 이제부터 나의 영역이다!’
자신감이 넘치는 레드선······. 하지만 그가 팀을 구성해 검투의 전당을 먹으려고 할 때 이미 한 사람은 모든 전장에 ‘전투 준비’를 걸어놓은 상태였다.
[···3, 2, 1, 0. 전장으로 소환됩니다.]
레드선은 ‘증명의 길’에 전투 신청을 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매칭이 잡히자 깜짝 놀랐다. 미리 테리쿨룸에게 얘기를 해놓긴 했었지만, 설마 벌써 전투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었다.
하지만 매칭이 잡히고 상대방의 소속과 이름이 뜨는 순간 레드선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원 길드였다. 원 길드의 독고불패란 유저.
처음 듣는 이름이긴 했지만 중요한 건 소속이 원 길드라는 점이었다.
번쩍, 빛이 사방으로 부서지며 눈앞에 하나의 커다란 통로가 나타났다. 그 통로의 전체 폭은 대략 15m 정도였는데 한가운데에는 폭이 1m 정도 되는 좁은 흙길이 일직선으로 뻗어 있었다.
전체적인 느낌은 울창한 밀림 한가운데 작은 소로가 쭉 뻗어 있는 느낌이었다. 레드선의 등 뒤에 커다란 붉은 수정이 빛나고 있었고 앞쪽으론 그 수정을 보호하고 있는 보호막 같은 게 존재했다.
규칙은 간단했다. 상대방을 먼저 다섯 번 죽이거나 혹은 보호막을 공격해 내구도를 0으로 만든 후 붉은 수정을 파괴하는 쪽이 승리했다.
증명의 길은 통으로 보면 일직선으로 길게 뻗은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그 직사각형의 폭은 15 m였고 길이는 1Km였다.
이 크기는 늘 똑같았지만, 안쪽의 지형과 날씨 같은 건 랜덤하게 변화했다. 지금은 밀림이었지만 다양한 형태의 지형이 나타날 수 있었다.
‘독고불패? 당연히 원 길드 쪽에선 블레이크가 나설 줄 알았는데······. 뭐, 어쨌든 누구든지 일단 쓰러트리면 되는 거잖아?’
레드선은 독고불패란 이름이 생소해 잠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어차피 상관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보호막 밖으로 나갔다.
아무래도 처음으로 증명의 길에 온 것이었기 때문에 살짝 긴장되긴 했다.
‘어차피 PvP는 다 똑같잖아? 편하게 생각하자.’
레드선은 마음을 편하게 먹고 그냥 필드에서 PvP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은 너무나 잘못된 것이었다. 증명의 길엔 필드에는 없는 버프 혹은 디버프 포인트가 몇 군데 존재했다.
그렇기에 같은 PvP라고 해도 필드와 증명의 길은 접근 방식 자체가 달라야 했다. 그걸 빨리 깨닫지 못한다면 그는 오늘 아무것도 못 하고 농락을 당할 수 있었다.
스윽, 레드선은 자신의 주력 무기인 두 자루의 권총을 꺼내서 양손에 들었다.
이 권총들은 일명 ‘마법공학총’이라 불리는 EL 세상의 마법 권총이었는데 장단점이 분명한 무기였다.
레드선은 더블 소울을 지닌 유저였다.
첫 번째 고대의 지식은 ‘건맨( Gun Man)’이었고 두 번째 고대의 지식은 ‘피의 사냥꾼’이었다.
‘우선 블러드 센스를 켜고······.’
블러드 센스는 고대의 지식 ‘피의 사냥꾼’에 귀속된 영혼 스킬 중 하나였는데 희미한 피의 향기를 증폭시켜 그것을 통해 상대방의 정보를 획득하는 능력이었다.
이 능력은 상대방이 상처를 입고 하얀빛(피)을 흘리면 더더욱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대신 상대방이 상처 하나 없고 멀쩡하면 가까이에 있는 상대방의 위치 정도만 파악할 수 있었다.
스으으으으.
블러드 센스를 발동시킨 레드선은 조심스럽게 좁은 길을 걸으며 주변을 살폈다. 레드선은 완벽한 원거리 딜러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벽한 근거리 딜러도 아닌 살짝 어중간한 전투 거리를 지닌 딜러였다.
사실 이 전투 거리는 때로는 장점이 되기도 하고 또 때론 단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거리만 잘 유지하면 상대가 아무것도 못 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나오지 않겠다? 후후, 나를 상대로 숨바꼭질을 하겠다고? 후회하게 될 거다.’
레드선은 블러드 센스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방이 어디에 숨어있건 무조건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륵, 스르르륵.
그는 일부러 수풀이 우거진 쪽으론 들어가지 않고 좁은 흙길로만 이동하며 최대한 정신을 집중했다.
‘나는 사냥꾼이다! 네놈이 아무리 어둠 속에 숨는다고 해도 내 감각을 피할 순 없다!’
레드선은 블러드 센스를 한껏 확장하며 차분히 독고불패를 찾았다. 그는 마치 어둠 속에 숨어있는 한 마리의 표범을 사냥하는 사냥꾼처럼 밀림을 정교하게 훑고 있었다.
스윽, 흠칫!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레드선의 후각에 비릿한 피의 향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곧 시각정보로 바뀌어 그의 눈에 사람 형태를 한 붉은 물체가 나타났다.
거리는 대략 12m.
이 정도라면 레드선이 가장 좋아하는 전투 거리였다.
‘찾았다!’
레드선은 적을 찾는 순간 망설이지 않고 총구를 붉은 그림자를 향해 겨누며 방아쇠를 당겼다.
찾는 순간 당긴다. 이게 사냥꾼의 기본이었다.
레드선이 들고 있던 두 자루의 마법공학총이 푸른 마염( 魔炎 )을 내뿜는 순간 두 발의 탄환이 총구에서 튀어나와 적을 향해 날아갔다.
기본적으로 총은 강력한 무기였다. 물론 EL의 세상에선 공격속도가 빠른 대신 순수한 위력 자체는 활보다 떨어지게 설정되어 있었지만 그건 EL의 설정일 뿐이었다.
그런 점 때문에 당연히 레드선도 첫 번째 공격만으로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첫 공격으로 상대방을 흔든 후 추가적인 연속 공격을 상대방에게 꽂아넣어 완벽하게 사냥을 끝낼 생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레드선에게 지금 날아간 이 두 발의 탄환은 아주 만족스러운 공격이었다. 그는 상대가 이 공격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레드선은 암습을 준비하는 상대에게 역으로 기습했기 때문에 피하거나 방어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확신은 곧바로 깨져버렸다.
피잉, 피잉!
놀랍게도 상대는 공격을 피했다. 막은 것도 아니고 피했다. 만약 상대가 공격을 막은 것이었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동작이었기 때문에 이어지는 연속 공격을 자연스럽게 퍼부으며 다시 기회를 잡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무려 두 발의 총알을 피해버렸다.
그뿐 아니라 회피와 동시에 오히려 앞으로 튀어나왔다.
이렇게 되면 적과의 거리가 급속도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레드선의 연속 공격이 제대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타다다당!
그렇다고 이 상황에선 공격 기세를 끊을 순 없었다. 결국, 레드선은 어쩔 수 없이 방아쇠를 당기며 적을 향해 네 발의 탄환을 더 쐈다.
하지만 이미 적이 급속도로 거리를 좁히는 바람에 조준점이 심각하게 흐트러진 후였기 때문에 탄환들은 레드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날아가지 않고 사방으로 산탄이 되고 말았다.
두 번째 공격이 실패하는 순간 레드선과 독고불패의 거리는 불과 5m 정도로 줄어들었다.
‘일단 방어 먼저!’
레드선은 재빨리 포지션을 공격에서 방어로 전환했다. 여기서 자칫 계속 공격 스텐스를 유지하며 욕심을 내다간 역으로 당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이런 판단은 매우 현명했다.
철컥, 철컥.
두 자루의 마법공학총을 가슴 쪽으로 바짝 당기며 ‘건맨 백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그는 일단 다시 독고불패와의 거리를 어느 정도 벌릴 생각이었다.
여기까지 이어진 레드선의 대처는 실수가 전혀 보이질 않았다. 적을 찾고 선제공격을 하고 이어서 공격에 실패하자 곧장 방어 태세로 전환하기까지 그의 움직임엔 군더더기가 전혀 없었다.
확실히 그가 최상위권 PvP 랭커로 인정받고 있는 이유가 느껴지는 움직임들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에게 있는 게 아니었다. 그가 아닌 그의 적······ 독고불패가 원래는 없어야 했던 문제를 억지로 만들어냈다.
레드선이 백스텝을 밟으며 몸을 뒤로 내빼는 순간! 독고불패는 마치 레드선이 그렇게 움직일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곧바로 레드선을 향해 더 빠르게 파고들었다.
물론 레드선도 아무 생각 없이 백스텝을 밟은 건 아니었다. 그는 만약 상대가 여기서 자신을 따라 거리를 좁히고 들어오면 오히려 다시 한 번 스텐스를 전환해 강력한 역습을 할 생각이었다.
‘한 번 더 파고든다고? 죽으려고 환장을 했군.’
레드선은 독고불패가 자신을 무리해서 따라붙는 순간 망설이지 않고 건맨의 영혼스킬 중 하나인 ‘근접난사( 近接亂射)'를 사용했다.
타다다다다다다다당!
근접난사를 사용하면 사정거리가 매우 짧아지고 위력도 줄어들었지만 대신 연사속도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즉, 가까운 거리에서 상대방에게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무차별 사격을 퍼부을 수 있단 뜻이었다.
레드선과 독고불패의 거리는 3m 안쪽. 근접난사의 효과 범위가 3 m였기 때문에 레드선은 이번 역습만큼은 무조건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확신하는 그 순간······ 마치 저주처럼 다시 한 번 그 확신이 깨져버렸다.
따다당, 피잉, 피잉!
놀랍게도 독고불패는 그 짧은 거리에서 몇 발의 탄환은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비스듬히 눕히며 튕겨냈고 또 몇 발의 탄환은 몸을 교묘하게 비틀며 피해버렸다.
16발의 탄환 중 독고불패의 몸에 적중된 탄환은 단 한 발도 없었다.
‘마, 말도 안 돼!’
레드선은 독고불패의 몸놀림을 본 순간 도저히 믿을 수 없단 표정을 지었다.
이 거리에서 순간적으로 터져 나온 근접난사를 막거나 피할 순 없었다. 적어도 레드선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독고불패는 그걸 해냈다.
그뿐 아니라 그걸 해낸 것과 동시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팔을 뻗어 레드선의 심장에 칼을 꽂아넣었다.
푸우욱!
레드선은 차가운 금속이 자신의 몸을 파고드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안타깝게도 치명타가 터졌다.
< [41장] 검투의 전당 (1) > 끝
ⓒ 성진( 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