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77화 (77/127)

< [40장] 경매 (2) >

* * * *

테리쿨룸의 경매 신청서는 가짜가 아니었다. 사실상 길드 창고의 아이템 목록만 봐도 그 신청서가 가짜가 아니란 것쯤은 알 수 있긴 했다.

연락을 받은 테리쿨룸은 언제라도 좋으니 최대한 빨리 거래를 하자고 바로 답변을 보내왔다.

답변을 받은 상혁은 대금산의 이름으로 거래 확정 메일을 발송했다. 음양동경과 천공의 부유석 그리고 무조건 가장 비싸게 팔릴 거 같은 아이템 하나를 골라잡았다.

세 번째 것은 당연히 페이크였다. 천공의 부유석이나 음양동경으로 향하는 시선을 분산시키는 강력한 페이크! 현시점에선 가장 좋아 보이는 아이템을 골랐기 때문에 테리쿨룸도 어느 정도는 납득을 할 것 같았다.

거래는 바로 다음날 진행되었다. 테라쿨룸에선 대표로 쿤이 나왔고 상혁은 대금산으로 변해서 쿤과 만났다. 그 뒤엔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상혁은 순식간에 받아야 할 아이템 3개와 200만 골드를 받았고 대신 와이번 블러드를 넘겨주었다. 쿤은 그걸 받고 무척이나 기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진짜 춤이라도 추고 싶은 사람은 상혁이었다. 무려 천공의 부유석을 얻었다.

천공의 부유석이라면 ‘천( 天 )급 하늘 배’를 만들 수가 있었다. 물론 다른 재료도 많이 필요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천공의 부유석이었다.

참고로 천급 하늘 배는 아무리 허접스럽게 만들어도 최소 현금으로 50억은 받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놈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만들 수 없지.’

상혁은 슬쩍 웃으면서 천공의 부유석을 자신의 전용 창고에 고이 모셔두었다.

‘이거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문제네.’

워낙 벌려놓은 일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해서 그럴까? 어쨌든 상혁은 하루에 겨우 4시간밖에 잠을 자지 않는데도 잠시도 쉬지 못하고 계속 움직여야 했다.

골드마운틴에 들어온 고가의 희귀아이템도 감정해야 했고 그밖에 금산상단에서 일하는 NPC를 살피는 건 물론이고 일리아를 만나 비선도 꾸준히 관리해야 했다.

그뿐인가? 방송을 위해 폭풍의 성채도 가야 했고 영약을 모으기 위해 검왕의 무덤도 틈틈이 클리어해야 했다.

특히 요즘은 하루에 두 시간 정도는 현실에서 운동까지 했기 때문에 더더욱 시간이 부족했다.

상혁은 시간을 쪼개서 해야 하는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했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남으면 돌거인을 사냥하며 계속 카르마를 쌓고 상급 큐브조각을 모았다.

2주일이란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2주일 동안 EL의 세상에선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중 가장 큰 화제가 되었던 일은 당연히 연합 라인 ‘트와일라잇’이 ‘저승길’을 뚫은 것이었다.

정확히는 라인 트와일라잇의 핵심 길드인 레드라인과 테라쿨룸이 길드의 모든 전력을 집중해 뚫어낸 것이었는데 어쨌든 누군가 원 길드 이후 처음으로 영웅의 대지에 진출했다는 게 중요했다.

그들의 성공은 다른 길드나 연합에겐 이정표가 될 수 있었다. 이제 곧 최상위권 길드들이 속속 저승길을 뚫고 영웅의 대지에 도착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저승길을 뚫는 가장 완벽한 루트가 공개될 예정이었다.

루트뿐만 아니라 상황별 공략법은 물론이고 등장하는 몬스터의 약점까지······ 모든 게 공개되면 아무래도 저승길 공략은 더 쉬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일반 유저들이 저승길을 뚫고 영웅의 대지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좀 더 많이 필요했지만 이미 오라 시스템까지 업데이트된 이상 적어도 넉 달 안에는 일반 유저들도 저승길을 뚫고 영웅의 대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라 업데이트가 되었을 때부터 상혁은 이런 흐름을 예상하였기 때문에 그에 맞춰 여러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영웅의 대지 지도를 판매하는 건 물론이고 슬슬 독고불패를 세상에 등장시키기 위해 독고불패만의 스킬과 아이템 세팅을 완벽히 끝내놓기 위해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독고불패는 블레이크와는 또 다른 스타일로 플레이해볼 생각이었다.

검투의 전당과 필멸의 전당은 그냥 단순히 PvP와 레이드 정도로 보면 안 됐다. 검투의 전당에서 싸우는 건 일반 필드 PvP

당 역시 일반적인 레이드 던전과는 많이 다른 곳이었다.

그래서 독고불패란 전혀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상혁은 독고불패를 오로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스킬과 아이템으로 무장시킬 작정이었다.

‘몇 가지 특별한 조합카드와 내 말도 안 되는 선제공격 능력을 합쳐서 암습특화 세팅을 만들어보자.’

상혁은 독고불패를 최고의 사냥꾼으로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대상이 유저건 몬스터건 일격에 적을 사냥해버리는 무시무시한 암살자로 만들면 검투의 전당과 필멸의 전당에서 모두 굉장한 활약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블레이드 나이트’에 머물고 있는 자신의 첫 번째 고대의 지식을 ‘섀도우 나이트’로 승격시켜야 했다. 일단 다른 조건은 모두 만족해 놓은 상태였다. 심지어 고대의 지식 ‘그림자 도둑’도 구해놓은 상태였다.

이제 남은 건 블레이드 나이트와 그림자 도둑을 합성하면 끝이었는데 상혁이 이 합성을 미루고 있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고대의 지식 블레이드 나이트와 그림자 도둑을 합성하면 3차 고대의 지식이라 할 수 있는 ‘섀도우 나이트’가 탄생하면서 그에 해당하는 새로운 영혼 스킬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 아주 재미있는 비밀이 하나 숨겨져 있었다. 특수한 조건을 만족하면 원래는 합성과 함께 전부 없어져야 할 블레이드 나이트의 스킬 중 세 개를 선택해 남길 수 있었다.

특수한 조건은 바로 고대의 지식 ‘블레이드 나이트’의 숙련도를 무조건 MAX까지 올린 후 그림자 도둑과 합성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비밀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유저들은 블레이드 나이트 이후 섀도우 나이트라는 더 좋은 3차 고대의 지식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는 아무도 블레이드 나이트에 미련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고대의 지식 그림자 도둑도 별로 구하기 힘든 게 아니었기 때문에 이 정보가 유저들에게 공개된 이후엔 너도나도 블레이드 나이트를 버리고 섀도우 나이트로 갈아탔다.

그러다 보니 아무도 블레이드 나이트 숙련도 MAX를 찍을 여유가 없었다.

상혁의 전생과 마찬가지로 현생에서도 이미 5개월 정도 전에 ‘가장 손쉽게 획득할 수 있는 쓸만한 3차 고대의 지식 10가지’란 게시물이 온갖 커뮤니티에 여러 번 올라왔고 그 게시물엔 고대의 지식 섀도우 나이트를 얻는 방법도 상세히 적혀 있었다.

이렇다 보니 사실상 섀도우 나이트는 아무나 구할 수 있는 아주 흔한 고대의 지식이 된 지 오래였다.

실제로 상혁은 마음만 먹었다면 섀도우 나이트가 세상에 알려지기도 전에 가장 먼저 섀도우 나이트를 얻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한 이유는 바로 블레이드 나이트의 숙련도를 MAX까지 올리고 블레이드 나이트의 영혼 스킬 3가지를 남기기 위해서였다.

2차 고대의 지식인 블레이드 나이트가 아무리 3차 고대의 지식인 섀도우 나이트와 비교하면 부족한 점이 있는 고대의 지식이라고 해도 스킬 구성은 상당히 괜찮은 고대의 지식이었다.

특히 상혁과 궁합이 매우 잘 맞는 스킬들이 몇 개 있었는데 1초 동안 회피 능력을 대폭 상승시켜주는 촌극검보( 寸隙劍步)나 흔히 육감이라 불리는 미묘한 감각을 증폭시켜 그것을 잘 벼른 칼날처럼 만들어주는 육감증폭( 感增幅) 같은 경우는 상혁과 너무나도 잘 맞는 스킬들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챙기는 게 좋았다.

상혁은 이 두 가지 스킬과 함께 추가로 ‘칼날 세우기’라는 블레이드 나이트의 고유 패시브 기술까지 선택할 예정이었다.

칼날 세우기는 도검류 무기를 사용할 때 치명타 확률을 10% 올려주는 패시브 스킬이었기 때문에 이것 역시 상혁과 아주 잘 어울리는 스킬이었다.

‘99.4······. 조금만 더 노력하면 며칠 안에 MAX를 찍겠네.’

상혁은 고대의 지식 블레이드 나이트의 숙련도를 확인하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독고불패의 세팅은 상혁이 고대의 지식 섀도우 나이트를 얻는 것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다.

* * * *

“그럼 일단 합의한 대로 우리가 검투의 전당을 그리고 테라쿨룸이 필멸의 전당을 차지하는 거로 하죠.”

레드선은 쿤과 마지막 조율을 끝냈다.

그들은 저승길을 통과하면 많은 피해를 입긴 했지만 레드라인과 테라쿨룸 모두 10명 정도의 정예 유저들이 살아남아 영웅의 대지를 밟을 수가 있었다.

영웅의 대지에 도착한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전당을 장악하는 일이었다. 질풍의 방송을 통해 전당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 그들은 이것을 선점하기 위해 라인 연합이란 초강수까지 두며 이곳에 온 것이었다.

“검투와 필멸 모두 분명 최초 타이틀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것만 얻을 수 있다면 저승길을 통과하며 입은 피해 같은 건 단번에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근데 정말 원 길드가 최초 타이틀을 따지 못한 게 사실일까요?”

쿤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질풍이 라이브 채널에서 직접 아직 검투의 전당과 필멸의 전당에선 리그가 한 번도 열리지 못한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아마도 어뷰징 문제 때문에 한 길드에 소속된 유저들만으로는 리그가 생성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분명 찾으면 편법이 있었을 텐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편법을 쓰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희로선 환영할만한 일이죠. 아마도 자신감이 하늘을 꿰뚫고 있는 원 길드가 만용을 부리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럴 때가 기회입니다.”

“하긴 굳이 원 길드가 나무 그늘에서 잠을 자주겠다면······ 기필코 그들을 제치고 결승점에 먼저 들어가 주는 게 맞겠죠.”

쿤도 레드선과 똑같이 생각했다. 그들로서는 원 길드가 전당을 먼저 장악하지 않은 건 분명 기회였다.

최상위권 유저들은 최초 타이틀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솔직히 최상위권 유저들은 모두 ‘어떤 누군가’ 덕분에 만족할 만큼 최초 타이틀을 얻질 못했다.

그들은 그저 서로 ‘누군가는 먹었겠지······.’라고 생각할 뿐 중요한 최초 타이틀을 한 명이 거의 다 싹 쓸어갔다는 건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상위권 유저들은 한두 개 정도는 최초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최초 타이틀에 대한 욕망이 더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위해 뭉쳤으니 기필코 따내야죠.”

쿤과 레드선이 힘을 합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둘이 나눠 먹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쿤의 테라쿨룸은 자신들의 특기를 발휘해 필멸의 전당을 차지하면 되었고 레드선의 레드라인은 레이드보다 PvP에 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검투의 전당을 차지하면 되었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두 길드. 그들은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상혁이 손수 만들어 판 비싼 지도를 보며 검투의 전당과 필멸의 전당을 향해 나아갔다.

‘미끼를 물었군.’

상혁은 은밀히 레드라인과 테라쿨룸의 유저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는 그들이 전당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자 자신이 몇 주 전부터 꾸준히 뿌려놓은 떡밥을 레드라인과 테라쿨룸이 제대로 물었다는 걸 눈치챘다.

아직 남아 있는 전당의 최초 타이틀.

이게 바로 상혁이 던진 미끼였다. 물론 거짓 미끼는 아니었다. 진짜 아직 최초 타이틀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상혁이 미끼를 던진 이유는 조금이라도 빨리 검투의 전당과 필멸의 전당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였다.

혼자선 죽었다 깨어나도 그 두 전당에 리그를 생성시킬 수가 없었다. 레드선과 쿤은 상혁이, 아니 원 길드가 만용을 부린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만용이 아니라

불가항력 하게 리그를 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들을 이용해 최초 타이틀을 따낸다.’

상혁의 계획은 간단했다. 미끼를 던지고 누군가 미끼를 물면 그들과 경쟁해 자신이 원하는 걸 얻어낼 생각이었다.

그가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실력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상혁은 어제 드디어 고대의 지식 ‘섀도우 나이트’를 얻으며 독고불패의 세팅을 완벽하게 끝냈다.

스킬부터 아이템까지 독고불패는 상혁이 의도한 그대로 암살자 스타일의 사냥꾼이 되었다.

모든 걸 사냥하는 독고불패.

그의 첫 상대는 레드라인과 테리쿨룸이 될 예정이었다.

< [40장] 경매 (2) > 끝

ⓒ 성진( 成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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