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76화 (76/127)

< [40장] 경매 (1) >

@ 경매.

‘폭풍우 성채.’

상혁이 방송을 위해 선택한 공용 던전은 조만간 유저들이 영웅의 대지로 넘어오면 가장 먼저 실패를 경험하게 될 공용 던전이었다.

물론 영웅의 대지엔 폭풍우 성채보다 난이도가 낮은 공용 던전도 있었다. 하지만 그 공용 던전들은 사실상 레이드 던전이 아닌 일반 파티용 소형 던전이었기 때문에 결국 제대로 된 레이드 던전의 시작은 폭풍우 성채부터라고 할 수 있었다.

솔직히 지금 시점에서 실시간 공략을 통해 이 던전의 정보를 유저들에게 공개를 해버리면 후발대로 따라오는 길드들은 큰 이득을 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상혁은 이제 그런 건 별로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오라 시스템도 업데이트된 이상 폭풍우 성채는 그리 오랫동안 유저들을 묶어둘 수가 없었다.

오라 시스템이 없을 때도 불과 열흘 만에 모든 보스가 공략되었었는데 오라 시스템이 업데이튼 된 지금은 나흘도 못 버틸 것 같았다.

그래서 상혁은 어차피 그럴 거라면 자신이 먼저 철저히 이용하고 버릴 생각이었다.

폭풍우 성채 이후 등장하는 ‘정령의 숲’이라면 정보를 최대한 숨기는 게 좋았다. 하지만 폭풍우 성채는 버리는 패로 쓰는 게 옳았다.

폭풍의 성채는 총 네 개의 개별 던전을 클리어하면 한 개의 메인 던전이 개방되는 형태였다. 상혁은 클리어 자체는 매주 할 생각이었지만 실시간 공략 방송을 통해서는 총 3주에 걸쳐 천천히 모든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

아직은 영웅의 대지 약발이 잘 먹을 때였으니 최대한 우려먹어야 했다. 나중에 너도나도 다 영웅의 대지에 진출하게 되면 폭풍의 성채 같은 건 방송 콘텐츠로 삼기

에도 민망해질 수 있었다.

상혁은 방송 준비와는 별개로 신경 쓰고 있는 게 하나 더 있었는데 그건 바로 ‘와이번 블러드’ 경매였다. 상혁은 비교적 초반에 와이번 블러드를 얻었다.

하지만 성급하게 처분하지 않고 차분히 적당한 때를 기다린 이유는 그것이 아주 비싸게 팔릴 수 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현재는 블러드 계열 고대의 지식이 알음알음 소문이 나 있는 상태이긴 했지만 적어도 와이번 블러드 수준의 물건은 등장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제 골드도 적당히 풀렸고 사람들의 관심도 많이 높아진 상태였으니 지금 시점에 공개 경매를 열어서 최대한 비싸게 팔아먹어야 했다.

지금보다 시점이 늦어지면 자칫 더 좋은 등급의 블러드들이 등장하며 값어치가 하락할 수 있었다. 뭐든지 대체할 물건이 있으면 가치는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상혁은 경매 자체를 자신의 상단인 금산상단을 통해, 아니 정확히는 금산상단의 대표매장인 ‘골드마운틴’을 이용할 예정이었다.

골드마운틴은 이제 EL에서 제법 유명한 상점이 되어 있었지만, 상혁은 그에 만족하지 않고 이번 공개 경매를 통해 더더욱 골드마운틴을 여러 사람에게 널리 알릴 생각이었다.

상혁은 일단 경매 공지를 하나 작성해서 각종 커뮤니티에 골드마운틴의 이름으로 올렸다. 글이 묻히면 몇 번이고 다시 올리려고 했는데 다행히도 유저들이 먼저 골드마운틴을 알아보고 그 글에 추천을 몰아줘서 화제의 글로 만들어주었다.

상혁은 경매 공지에 ‘와이번 블러드’의 상세 정보가 찍힌 이미지 파일도 첨부해주었기 때문에 유저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 무시무시한 아이템은 뭐냐?]

[요즘 핫한 고대의 지식 ‘블러드’ 네. 근데 와, 좋긴 좋다. 내가 얼마 전에 오크 블러드를 구경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보다 훨씬 좋네.]

[난 고블린 블러드랑 사왕혈( 蛇王血)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것들도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건 뭐 넘사벽이네.]

[이 정도 블러드라면 진짜 초 희귀인 거 같은데. 내가 아는 형한테 들은 오우거 블러드도 이것보다 살짝 효과가 떨어지는 느낌이었어. 참고로 그 오우거 블러드 현금 몇억에 팔렸다고 하던데······.]

[몇억? 아무리 그래도 억 단위는 오버 아냐?]

[오버 아님. 지금 EL 흙수저들은 모르는 금수저들의 세계에선 억 단위 거래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 몇천만 원 정도를 투자한 유저는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고 억 단위로 투자하고 있는 유저들도 생각보다 매우 많아. EL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엄청난 세상이야.]

[인정. 나 아는 형의 친구도 거의 2억 정도 EL에 투자했데. 근데 그 정도 투자해도 별로 티도 안 난다고 하더라. 우리가 사는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이 저 위에 있나봐.]

[하긴 라이브 채널 방송만 봐도 사는 세상이 달라 보이긴 하더라.]

[아, 진짜 나도 돈만 있으면 한 5억 정도 확 바르고 싶다.]

[5억으로 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볼 때 넌 5억을 써도 여전히 바닥일 거 같아.]

[5억이 뉘 집 애 이름이냐? 지랄들 하지 말고 능력 없으면 닥치고 구경이나 해.]

······

······

모든 커뮤니티 사이트의 반응은 다 비슷했다.

이렇게 일반 유저들이 ‘그림의 떡’처럼 바라보며 댓글이나 달고 있을 때 진짜 이것을 살만한 능력이 되는 유저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고급 ‘블러드’는 없어서 못 구하는 아이템이었다.

등급이 낮건 높건 블러드의 드랍 확률은 아예 나오지 않는다고 봐도 될 정도로 낮았다. 블러드는 무조건 한 종을 대표하는 수준의 몬스터를 잡아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쉽게 얻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블러드 중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알려진 ‘고블린 블러드’만 해도 고블린 로드가 1,000만 단위 정도로 쓰러져야 하나 떨어트릴까 말까 한 물건이었다.

아무리 고블린 로드가 흔하게 볼 수 있으면서 동시에 잡기가 쉬운 최하급 네임드 몬스터라고 해도 1,000만 단위의 사냥은 계획을 짜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현재 시중에 풀린 고블린 블러드도 10개가 되질 않았다. 당연히 와이번 블러드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던 최고급 블러드였다.

이런 블러드는 보통 현금에 많이 거래되었는데 골드 마운틴은 매우 특이한 조건으로 경매를 진행하고 있었다.

‘현금, 골드, 현물 등등 모든 종류의 방법으로 경매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경매 참여자는 모두 비공개로 처리될 것이며 심사를 거쳐 낙찰자에겐 개별적으로 연락이 갈 예정입니다.’

한 마디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경매에 참여하라는 것이었다.

골드마운틴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준 덕분에 많은 이들이 와이번 블러드를 노릴 수가 있었다.

어떤 이들은 현금으로 와이번 블러드를 사려고 했고 또 어떤 이들은 골드로 와이번 블러드를 사려고 했다. 그리고 현금도 골드도 없는 이들은 값비싼 아이템을 이용해 와이번 블러드와 교환을 시도했다.

다양한 제안이 상혁이 임시로 만든 골드 마운틴의 이메일로 쏟아져 들어왔다. 물론 대부분의 제안이 도둑놈 심보를 지닌 제안이었지만 모두 그런 건 아니었다.

분명 어느 정도의 기준선을 넘은 합당한 제안들도 많았다.

상혁은 수천 건이 넘어가는 경매 참여 신청서를 하나씩 검토하며 가장 좋은 제안이 담겨 있는 신청서를 찾기 시작했다.

‘천백만 골드? 천백만 골드면 현금 6억 정도인가? 나쁘진 않네.’

일단 골드로 가장 많은 금액을 제시한 제안은 천이백만 골드였다. 하지만 이게 가장 좋은 제안은 아니었다.

‘현금 7억? 이것도 나쁘진 않네.’

제안들을 보면 볼수록 드는 생각은 EL을 즐기는 갑부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그 밖에도 골드와 현금을 합쳐서 5억~6억 수준의 돈을 제시한 곳도 몇 군데 있었다.

‘현금보다는 골드가 좋은데······ 천백만 골드 쪽에 넘겨야 하나?’

상혁은 아무래도 와이번 블러드는 순수하게 게임 속 재화로만 팔고 싶었다. 현금은 이미 라이브 채널을 통해 충분히 벌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미련이 없었다.

일단 상혁은 신청서들을 전부 살펴보고 최종 결정을 내릴 생각으로 남은 신청서들도 계속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더 신청서를 찾아봤을까?

순간 상혁의 눈에 들어온 한 장의 신청서가 있었다.

[200만 골드와 함께 저희 길드의 길드 창고에서 세 가지 아이템을 선택해 가져가길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길드 창고의 아이템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략)······.]

이 신청서를 보내온 길드는 무려 ‘테라쿨룸’이었다. 테라쿨룸은 레드라인과 연합을 하기로 합의했지만, 연합을 해도 길드는 그대로 유지가 되었다.

‘테라쿨룸? 오호! 얘들 창고를 털 수 있다면 대환영이지!’

테라쿨룸은 레이드 쪽에선 진짜 거의 최고 수준의 길드였기 때문에 당연히 길드 창고도 다른 길드와는 차원이 다를 만큼 풍족했다.

실제로 테라쿨룸은 굳이 길드 창고에서 뭔가를 빼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아이템 목록을 보내왔다. 지금은 만만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입찰에 성공하려면 자신이 들고 있는 패를 모두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상혁은 테라쿨룸이 보내온 아이템 목록을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저평가된 아이템을 골라내는 건 상혁의 특기 중의 특기였다.

아무리 테라쿨룸이체계적으로 아이템을 관리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정보 때문에 저평가를 받는 아이템은 절대 골라내질 못했다.

그건 오로지 상혁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만약 다른 길드였다면 적당히 목록을 살폈겠지만 테라쿨룸이었기에 더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결국······ 노다지를 찾아냈다.

상혁이 테라쿨룸의 길드 창고에서 찾아낸 노다지는 총 두 개였다.

하나는 언젠간 상혁이 꼭 구해야 했던 ‘칠용( 七) 신전의 열쇠’ 중 하나인 유일등급 아이템 음양동경(陰陽銅鏡)이었다. 이건 나중에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꼭 얻어야할 물건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상혁에겐 노다지라 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노다지는 이게 아니라 다음 물건이었다.

‘천공( 天空 )의 부유석( 浮游石)! 이 귀한 걸 테라쿨룸이 가지고 있었네!’

천공의 부유석. 그것은 일종의 재료 아이템이었다. 평범한 재료 아이템은 아니었다. 아이템 등급도 당연히 유일등급이었다.

다만 문제는 이걸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생산 기술자가 없다는 점이었다. 정확히는 이걸 누가 다뤄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이건 테라쿨룸도 최근에 얻은 재료 아이템이었는데 내부적으로도 뭔가 괜찮은 걸 하나 획득한 것 같은데 정확한 쓰임새를 알 수가 없다는 판정을 내린 후 창고에 넣어놓은 물건이었다.

사실 부유석 자체는 여기저기에서 종종 발견되었다. 하지만 부유석을 이용해 만들 수 있는 아이템은 적어도 지금까진 존재하지 않았다.

수많은 선구자가 여러 도전을 했었지만 성공한 건 하나도 없었다. 특히나 천공의 부유석은 보통의 평범한 부유석처럼 축구공이나 농구공만 한 것도 아니고 거의 커다란 양문형 냉장고만 한 부유석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 쓰임새를 찾기가 힘들었다.

테라쿨룸은 그런 상황에서 천공의 부유석을 얻었기 때문에 그것을 창고에 넣어둘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물건은 나중에 어떤 식으로라도 쓰인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까지 소중히 보관하려고 창고에 넣어둔 것이었다. 절대 아무 생각 없이 처박아 둔 게 아니었다.

사실 부유석은 어지간한 유저라면 전부 차곡차곡 모으고 있는 아이템이었다. 누구라도 부유석은 언젠간 중요하게 쓰일 것이란 걸 예상할 수 있었다.

사실 테라쿨룸이 조금이라도 와이번 블러드를 가지고 싶은 마음이 적었다면 천공의 부유석을 창고에서 빼놨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와이번 블러드를 꼭 가져야 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길드 창고에서 아무것도 빼지 않고 있는 그대로 상혁에게 공개를 해주었다.

‘지금 업데이트 속도라면 머지않아 이 천공의 부유석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꼭 구하고 싶었던 건데 운이 좋았네.’

천공의 부유석은 절대 쉽게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니었다. 정확한 건 알 수 없었지만, 현재 EL 세상에 존재하는 천공의 부유석은 이것 하나밖에 없을지도 몰랐다.

당연히 희귀하면서 쓸모가 많은 물건의 값어치는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혁이 경매에 내놓은 와이번 블러드도 그런 이치로 비싸진 것이었다.

천공의 부유석을 확인한 순간 상혁은 다른 모든 제안을 잊었다. 사실 상혁은 천공의 부유석과 와이번 블러드를 1:1로 맞교환하자고 해도 무조건 했을 것 같았다.

와이번 블러드는 시간이 지날수록 값어치가 내려갈 것이고 천공의 부유석은 시간이 흐를수록 값어치가 올라갈 것이기에 무조건 바꾸는 게 이득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하늘 고래 사냥을 일찍 시작할 수 있겠는걸?’

상혁은 천공의 부유석으로 만들 수 있는 ‘그것’을 떠올린 순간 자연스럽게 하늘 고래까지 연달아 떠올랐다.

그는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기분을 느끼며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었다.

< [40장] 경매 (1) > 끝

ⓒ 성진( 成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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