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장] 시간 가속(加速) (1) >
@ 시간 가속(加速).
이미 크루세이더가 원 길드에게 박살이 났다는 소문은 쫙 퍼져 있던 상황이었지만 그들이 블레이크 한 명에게 처참히 박살 났다는 건 이번 방송을 통해 처음 밝혀진 사실이었다.
사실 크루세이더가 무너지는 모습은 영상으로 보면 더 충격적이었다. 특히 이 영상이 공개된 이후 두 나라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는데 그 두 나라는 바로 한국과 일본이었다.
일단 한국 쪽 반응을 보면······.
[크하하하, 원 길드가 열도를 정복했다!]
[근데 원 길드 한국 길드 맞나? 질풍이 한국인인 건 알겠는데 블레이크 같은 경우는 말을 한마디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한국인인지 모르겠네.]
[딱 보면 모르겠어? 한국인 맞음.]
[어쨌든 확실한 건 원 길드가 일본을 대표하는 길드를 개박살 냈다는 사실이지.]
[에이, 크루세이더가 일본을 대표한다고 말하는 건 좀 아니다. 쿠르세이더가 크기로 따지면 일본인 길드 중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건 사실이지만 실제 전력으론 다섯 손가락 안에도 들어가기 힘들걸?]
[또 좆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놈들 등장하기 시작했네. 대부분의 일본 유저들이 일본 3대 길드 중 하나로 꼽는 게 크루세이더인데 뭔 개소리?]
[일본 애들은 원래 오래전부터 콘솔 게임엔 좀 강했지만, 온라인 게임엔 약했음. 특히 DN시대가 열리고 나서 일본 쪽 유저들이 유독 VRA가 낮은 걸로 유명했었는데 아직도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나 보네.]
[일본 애들 평균 VRA가 아마 전 세계 꼴찌 수준일걸? 걔들은 이런 쪽엔 재능이 참 없더라.]
[그래도 돈은 제법 투자하던데.]
[크루세이더가 대표적으로 돈빨로 큰 길드잖아. 거기 길마가 현실에서 상당히 부자라던데?]
[그러면 뭐해 한 명한테 개박살나는데.]
······
······
그리고 당연히 일본 쪽 반응은 이와 정반대였다.
[역시 일본은 안 된다.]
[결과는 늘 똑같아.]
[그래도 이건 너무하는 거 아니냐? 어떻게 한 명한테 이렇게 당하냐?]
[크루세이더 이 병신들 그냥 자결해라!]
[무토는 당장 캐릭 삭제해라. 넌 미야모토 무사시란 아이디를 사용할 자격이 없다.]
[왜 항복을 한 거야? 사무라이 정신에 따라 끝까지 싸웠어야지!]
[무조건 버그 플레이야! 한국에서 만든 게임이니까 한국인을 밀어줬을 거야!]
[맞아. 아무리 그래도 크루세이더가 한 명한테 무너졌다는 게 말이 되냐고? 이건 무조건 버그 플레이가 맞아.]
[그냥 모든 게임에서 한국인이 버그야. 걔들은 존재 자체가 버그인 놈들이라고! 게임에 미친 한국인들을 이기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니까 모두 포기해.]
[인정할 건 인정하자. 그냥 크루세이더가 원 길드, 아니 블레이크한테 발린 거야. 음모론은 결국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
[어휴, 역시 우리나라는 안 된다.]
[근데 원 길드 한국 길드 맞아? 다국적 길드 아니었어?]
[맞아, 우린 한국 길드한테 진 게 아니라고!]
······
······
일본 유저들은음모론을 제기하거나 혹은 유체이탈 화법을 사용하며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게임 쪽과 관련해선 한국을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던 일본이었기 때문에 이런 반응은너무나 익숙했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을 만들어낸 상혁은 한국과 일본의 반응 같은 것엔 손톱에 낀 때만큼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현시점에서 그는 라이브채널의 시청률 변화에만 관심이 있었다.
이슈가 되어서 그런지 정규방송의 시청률이 오히려 올라갔다. 최고 시청자 수는 비슷했지만, 평균 시청자 수가 올랐다. 특히 시청자들이 실시간으로 보내주는 ‘금별’의 숫자가 상당히 많이 올라갔다.
이 얘긴 유저들이 더더욱 열광하고 있단 뜻이었다.
현재 라이브채널 중 금별을 가장 많이 받은 건 당연히 원 채널이었다.
특별방송(첫 방송과 두 번째 방송) 두 번과 정규 방송 두 번. 총 네 번의 방송으로 원 채널이 얻은 금별은 총 14,989,742개였다.
금별 하나의 가격이 한화로 100원이었던 걸 고려하면 무려 15억 원 치의 금별을 받은 것이었다. 여기서 상혁이 가져가는 금액은 수수료 20%를 제외한 12억 정도였다.
시청률 자체가 LGN이 제시한 최고 수치보다 훨씬 더 많이 나왔기 때문에 분배율은 당연히 상혁이 8이고 LGN이 2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오픈 특수가 좀 섞여 있다고 해도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12억 정도를 번 것은 엄청난 것이었다.
상혁의 전생에 제일 잘 나가던 라이브채널들 평균 수입이 한 달에 10억 정도였는데 이건 각종 유료콘텐츠의 수익을 모두 합친 수익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원 채널을 제외하고 가장 금별을 많이 받은 채널은 채널 라이징이었는데 그들이 받은 금별은 총 1,018,244개였다. 겨우 1억을 조금 넘는 수준······. 거기다 그들의 배분율은 상혁과 달리 6:4였기 때문에 무려 40%를 LGN에게 떼어줘야 했다.
아직은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실망할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어쨌든 원 채널과는 차이는 엄청나게 컸다.
[입금이 끝났으니 확인을 하시면 됩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24일까지의 소득을 정산해서 결재를 올린 후 매달 28일에 실제 입금이 될 겁니다. 세금 문제는 전에 드린 연락처로 연락하시면 잘 처리해주실 겁니다.]
강미래의 일 처리는 상혁이 기대했던 대로 똑 부러졌다. 그녀는 결제와 관련된 모든 서류를 상혁에게 미리 보여준 후 한 점의 의혹도 생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산을 해주었다. 그리고 실력 좋은 세무사도 소개해주었다.
덕분에 상혁은 더 물어볼 것도 없이 그냥 입금된 돈만 확인하는 걸로 이번 달 정산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상혁의 통장엔 거액의 돈이 들어와 있었다. 물론 세금을 내고 나면 줄어들 돈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보통 사람은 상상도 하기 힘들 소득을 한 달도 되지 않아 벌 수가 있었다.
강미래와 전화를 끊은 상혁은 게임에 접속하지 않고 옷을 차려입었다.
‘돈을 벌었는데 그걸 쌓아놓고만 있는 것도 참 병신 같은 짓이잖아.’
상혁은 오늘 그동안 생각만 하고 있던 것들을 모두 살 생각이었다. 옷을 차려입고 밖으로 나온 상혁은 우선 부동산에 들러 일산에서 가장 비싼 최고급 오피스텔을 현금으로 구매했다.
솔직히 서울로 갈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기에 그냥 일산에서 계속 살기로 했다.
돈이 좋은 점은 돈이 많으면 모든 게 일사천리로 빠르고 친절하게 진행된다는 점이었다. 어차피 요즘 같이 실시간으로 방값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시대에선 가격으로 장난을 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부동산은 최대한 좋은 매물을 싸게 연결해주었다.
덕분에 상혁은 불과 두 시간 만에 이사할 집을 구할 수가 있었다.
호수공원에 한눈에 보이는 최신오피스텔 건물의 스위트룸이었다. 가격은 모든 걸 다 합쳐서 대략 7억 정도였지만 상혁은 망설임 없이 이 방을 선택했다.
그렇게 집을 구한 상혁은 바로 이어서 한 독일차 전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첫 번째 차는 안전과 승차감을 생각해서 S클래스 정도로 만족하자.’
상혁이 선택한 그의 첫 번째 자동차는 벤츠 S클래스였다.
원래 그가 좋아하는 차종은 따로 있었지만 그건 다음에 다시 구매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냥 무난한(?) S클래스를 구매할 생각이었다.
이걸 구매하기 위해 얼마 전에 시간을 빼서 운전면허도 따 놓았었다. 그나마 전생에 운전했었기 때문에 학원 같은 곳에 가지 않고도 면허를 딸 수 있었다.
상혁은 다시 1억 7천만 원 정도를 더 써서 벤츠 S클래스를 구매했다.
실제로 차가 나오려면 좀 기다리긴 해야 했지만 어쨌든 상혁은 너무나도 쉽게 벤츠 오너가 되었다.
‘전생엔 E클래스 한 대를 사려고 일 년을 고생했었는데······ 참, 웃기네.’
벤츠 매장에서 나와 택시를 탄 상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이제는점점 잊혀가고 있는 전생을 떠올렸다.
‘돈이 좋긴 하구나.’
전생에 E클래스를 사기 위해 매장에 들렸을 때와 오늘 S클래스를 사기 위해 매장에 들렸을 때는 분명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기본적으로 고객을 응대하는 태도는 비슷했지만, 그 뒤의 여러 대응에선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다. 그 차이가 아주 크진 않았지만, 상혁은 확실히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부동산에서도 그랬고 벤츠 매장에서도 그랬다. 상혁은 이게 돈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돈은 없는 것보단 무조건 있는 게 좋은 거야.’
상혁은 돈의 노예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궁색 맞게 쪼들리는 삶을 살고 싶진 않았다. 이미 전생에 그런 삶을 충분히 살아봤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살기 싫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게임을 즐기면서 현실에서도 여유롭게 살고 싶은 게 상혁의 마음이었다.
택시를 타고 다음으로 간 곳은 DN 캡슐 매장이었다.
여기서도 상혁은 자신이 가진 돈을 마음껏 썼다. 특히 캡슐 같은 경우는 상혁이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었기에 최신형 모델 중 상혁이 알기에 가장 안정성이 있는 모델을 골라 구매했다.
가격은 무려 4천9백만 원이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상혁은 시원하게 돈을 썼다. 그냥 단순히 캡슐만 산 게 아니라 개인적인 스페셜 오더까지 추가해서 가격이 더 비싸진 것이었다.
상혁의 스페셜 오더는 무척 복잡하고 전문적이기 때문에 매장의 판매사원이 듣다가 결국 포기하고 전문 설치 기사가 와서야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상혁이 스페셜 오더를 설명하자 전문 설치 기사는 깜짝 놀라며 나중엔 감탄까지 했다. 결국, 상혁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모든 스페셜 기능까지 추가한 최고급 캡슐을 일시금으로 결제한 후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한 상혁은 부동산에서 알려진 이삿짐센터에 전화하고 강미래에게도 전화를 했다. 당장 나흘 뒤에 이사를 해야 했는데 그냥 짐은 몰라도 방송 장비를 옮기려면 강미래의 도움을 받는 게 좋았다.
대충 해야 할 일을 다 끝내고 보니 오늘 하루가 거의 다 가 있었다. EL이 오픈하고 이렇게 오랫동안 게임에 접속하지 않았든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상혁은 온몸이 근질근질한 느낌을 받아 씻지도 않고 바로 캡슐에 먼저 들어갔다.
게임에 접속한 상혁을 가장 먼저 맞이해준 건 놀랍게도 EL의 공지사항이었다.
EL은 이런 공지사항을 띄우지 않기로 유명한 게임이었다. 사실 EL만큼 처음부터 완성도 있게 나오는 게임은 무척 드물었기 때문에 EL에서 공지를 보는 건 대단히 희귀한 일이었다.
특히 지금처럼 무려 ‘업데이트’ 공지를 보는 건 더더욱 희귀한 일이었다.
[친선전 업데이트]
[오라(aura) 시스템 업데이트]
- 해당 업데이트 내용은 게임 속에서 NPC들을 통해 정보를 모아 정확하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친절하게 업데이트된 것들인지 뭔지 설명 같은 건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알려줬다는 건 그만큼 큰 업데이트란 뜻이었다.
보통 자잘한 업데이트는 아예 공지조차 올리지 않고 그냥 NPC들 사이를 떠도는 소문 같은 걸로 처리를 해버렸다.
‘친선전? 오라 시스템?’
그런데 공지를 확인한 상혁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친선전은 그렇다 치더라도 오라 시스템이라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상혁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의 기억엔 친선전만 해도 3개월은 더 뒤에 업데이트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아니, 친선전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오라 시스템은 정말 말이 되지 않았다.
‘마갑(魔鉀)’ 업데이트의 전초 업데이트였던 오라 시스템 업데이트는 상혁의 기억으론 앞으로 1년은 더 있어야 업데이트되는 내용이었다.
그게 뜬금없이 친선전과 함께 지금 업데이트된다고 공지가 떠버렸으니 상혁이 당황하는 건 당연했다.
‘이건 뭐지? 설마······ 미래가 바뀐 건가?’
이 상황은 상혁이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었다.
물론 상혁도 미래가 영원히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흘러갈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건 좀 당황스러울 만큼 빨랐다.
‘원래 오라 시스템은 유저들이 영웅의 대지에서 태양의 땅으로 진출할 때 등장했던 건데······ 그게 이번 생에선 지옥불 사막에서 영웅의 대지로 바뀐 건가?’
상혁은 침착하게 왜 지금 시점에 갑자기 오라 시스템이 튀어나왔는지를 생각해보았다.
‘결국, 변화를 만들어낸 건 나다. 전생과 현생의 차이점은 모두 나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혹시 살아 있는 게임 시스템이라 불리는 카오스가 나란 존재 때문에 업데이트 시점을 앞당긴 것일까?’
상혁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모두 동원해 이런 변화가 일어난 이유를 예상해보았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생각보다 더 정확하게 진실에 접근했다.
상혁의 전생에선 카오스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권능인 ‘시간 가속(加速)’. 지금 시점에 친선전과 오라 시스템이 업데이트된 이유는 바로 이 시간 가속 때문이었다.
< [37장] 시간 가속(加速) (1) > 끝
ⓒ 성진(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