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장] 탑 랭커(Top Ranker) (2) >
‘건곤단검과 일월단도(日月短刀). 그리고 음양동경(陰陽銅鏡). 이 세 가지를 모으면 칠용의 신전에 들어갈 수 있다. 이 셋 중 가장 까다로운 발동조건을 가지고 있는 게 건곤단검인데······ 크루세이더 이놈들 아주 대단한 보물을 가지고 있었네.’
물론 정작 크루세이더는 그게 얼마다 대단한 보물인지 모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창고에 넣어둔 것이었다.
건곤단검은 그냥 유일급 단검으로만 생각하면 중하급 성능을 지닌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인기가 별로 없었다.
건곤단검(乾坤短劍) [유일(Unique)]
-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단검. 하늘과 땅을 모두 돌아다니는 일반 몬스터에게서 아주 낮은 확률로 얻을 수 있다.
[기본 능력치] 체력 +10
[특수 능력치] 모든 속성 방어력이 10% 증가합니다.
[특수 효과] <높이뛰기(B) : 점프력이 30% 상승합니다.>, <완벽한 착지(B) : 높은 곳에서 떨어졌을 때 낙하 데미지가 50% 감소합니다.> <건곤지력(B) : 이 단검으로 몬스터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리면 건곤지력이 쌓입니다. 쌓인 건곤지력 1,000당 1씩 민첩이 상승합니다.>
[건곤지력 1,297.7/ 10,000 : 민첩 +1]
‘누군가 건곤지력을 쌓다가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포기했군.’
블레이크는 1,297까지 쌓여 있는 건곤지력을 확인하곤 슬쩍 웃었다. 그가 알기에 건곤지력은 보통 인내력으론 쌓을 수 없었다.
아무 몬스터나 마구 잡는다고 쌓이는 것도 아니었고 쌓일 때도 1단위가 아닌 0.1단위로 포인트가 쌓였다.
결정적으로 이렇게 죽으라고 고생해서 한계 수치인 10,000을 다 채워봤자 겨우 민첩을 10밖에 못 올렸다.
민첩 10을 올리자고 그 짓을 할 사람은 사실상 없다고 보는 게 좋았다.
물론 블레이크는 건곤지력을 꽉 채우면 생기는 또 다른 변화를 알고 있었다. 그걸 모르는 이들은 단지 민첩만 10이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건 뭐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니 차분히 쌓아 가면 되겠네.’
블레이크는 건곤단검을 따로 챙기며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창고를 다 턴 블레이크는 이번엔 크루세이더 길드원들이 떨어트린 아이템을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별로 비싸지도 않은 싸구려 아이템은 다 건너뛰고 돈이 될 만한 것만 선별해 거둬들였는데 거둬가는 도중에도 간간이 크루세이더의 길드원들이 길드 하우스로 돌아왔다.
당연히 그들은 모두 돌아온 동시에 바닥에 쓰러지며 광속으로 게임에서 쫓겨났다.
블레이크는 마치 크루세이더의 길드 하우스가 자신의 길드하우스라도 되는 것처럼 여유 있게 돌아다니며 아이템을 수거 했다.
크루세이더 입장에선 너무나 억울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어차피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블레이크는 마지막으로 길드 스톤을 파괴했다.
크루세이더의 길드 레벨이 5였기 때문에 길드 스톤의 내구력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방해하는 사람도 없었기에 블레이크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길드 스톤을 파괴할 수가 있었다.
길드원이 몰살당하고, 길드 창고가 털리고······ 마지막으로 길드 스톤까지 파괴되었다.
이 정도라면 크루세이더는 당할 수 있는 모든 피해를 봤다고 보는 게 좋았다.
원 길드가 크루세이더를 철저히 망가트리는 데 필요한 인원은 단, 한 명뿐이었다.
* * * *
인게임즈 공식 EL 파워 랭킹 <유저>
1위) 블레이크[원 길드] (42단계 상승)
2위) 질풍 [원 길드] (16단계 상승)
3위) 태풍[라이징 길드] (2단계 하락)
4위) 쿤[테리쿨룸 길드] (1단계 상승)
5위) 다크드래곤[다크드래곤 길드] (2단계 하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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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게임즈 공식 EL 파워 랭킹 <길드>
1위) 원 길드 (22단계 상승)
2위) 라이징 길드 (1단계 하락)
3위) 테리쿨룸 길드 (3단계 상승)
4위) 레드 라인 길드 (2단계 하락)
5위) 다크드래곤 길드 (1단계 하학)
······
······
이번 달 공식 랭킹이 집계되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번 달에 엄청난 활약을 한 원 길드가 엄청난 단계를 건너뛰어 1위 길드가 되었고 현재까지 알려진 원 길드의 대표 유저들인 블레이크와 질풍이 나란히 1, 2위 유저가 되었다.
인게임즈 파워 랭킹 1위에서 100위까지는 최상위(TOP) 랭커로 구분되었고 101위부터 1,000위까지는 상위 랭커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보통은 10,000위권 안쪽까진 랭커라고 불렸다.
인게임즈의 파워 랭킹은 나름 합리적인 기준으로 합산 점수를 계산해서 선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유저들이 가장 신뢰하는 랭킹이었다.
그래서일까? 원 길드와 원 길드의 질풍, 블레이크가 순식간에 위로 튀어 오르자 여러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가장 대표적인 말은 ‘거품’ 논란이었다.
여전히 원 길드와 원 길드의 길드원들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이들이 꽤 많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원 길드와 질풍, 블레이크의 실력엔 거품이 잔뜩 끼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대해 수많은 사람이 굉장히 논리적으로 반박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들은 끝까지 흔들림이 없었다.
그런데 정작 탑랭커가 된 상혁은 랭킹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 인게임즈 파워 랭킹 같은 건 크게 중요하지가 않았다. 물론 높은 랭킹을 기록하면 라이브채널 시청률에 살짝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나쁠 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위해 따로 노력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건 절대 아니었다.
그냥 높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정도였다.
탑랭커가 되었다고 해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보통의 길드와 유저라면 탑랭커가 되는 순간 이 순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랭킹 포인트를 얻을만한 어떤 움직임을 보여주었겠지만 상혁은 그러지 않았다.
무리해서 블레이크의 모습으로 PvP를 하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무리해서 질풍의 모습으로 새로운 던전을 공략한 후 그걸 공개하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랭킹은 랭킹을 뿐이었다.
크루세이더는 원 길드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이며 항복을 했다. 이 상황에서 버틴다는 건 그냥 길드를 폭파시키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항복은 당연한 순서였다.
상혁은 크루세이더에게 길드전 보상금으로 400만 골드를 요구했다. 당연히 일시금으로는 갚을 수 없는 금액이었기에 분할 상환을 허락했고 크루세이더의 무토는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
400만 골드라면 현금으로 2억이 넘는 돈이었지만 그가 아끼는 크루세이더를 지키려면 어쩔 수 없이 요구를 받아들여야 했다.
만약 상혁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다면 아무리 무토라고 해도 아예 크루세이더를 폭파시킬 기세로 버텼겠지만 400만 골드는 애매하게 선에 걸쳐 있는 금액이라 고민 끝에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상혁은 너그럽게(?) 총 5개월 동안 한 번에 40만 골드씩 총 열 번으로 나눠서 상환할 수 있게 해줬다. 한 마디로 뼈 빠지게 돈을 모아서 갚으란 뜻이었다.
어차피 상혁 입장에선 이 돈이 아니더라도 이미 길드전을 통해 상당한 이득을 본 상태였다. 일단 그렇게도 올리기 힘들던 레벨을 한 단계 더 올려서 54가 되었다.
그리고 아이템도 한가득 얻었다.
길드전 자체가 겨우 사흘 정도밖에 이어지지 않았던 걸 고려하면 정말 큰 이득을 봤다고 할 수 있었다.
‘아이템은 적당히 정리해서 팔아버리면 되겠고······ 이놈들이 생각보다 강화석을 많이 모아놓은 덕분에 오우거슬레이어와 은월편의 강화 수치를 좀 더 올릴 수 있겠다.’
상혁은 이번 길드전으로 얻은 것들을 정리하며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었다.
상혁은 결정을 내린 순간 바로 실행에 옮겼다.
크루세이더 길드 창고에서 잔뜩 털어온 모든 강화석들을 모아서 오우거슬레이어와 은월편을 강화했다.
어차피 그렇게 모은 강화석들 대부분은 중급이었기 때문에 질보단 양으로 밀어붙여야 했다.
상혁이 긁어모은 강화석들은 대략 2천 개에 가까웠는데 상혁은 이걸 이용해 오우거슬레이와 은월편을 최소 6강까지만이라도 강화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등급이 낮은 강화석으로 고강을 노리는 건 다소 미련한 짓이었다. 하지만 상혁은 어차피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강화석을 다 날려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
운 따윈 필요 없는 물량 공세!
이건 정말 EL 최고 갑부만 할 수 있는 시도였다.
* * * *
+7 오우거슬레이어.
+5 은월편.
+6 그림자 망토.
+5 심판의 투구.
+4 에메랄드 반지.
이건 정확히 740개의 하급 강화석과 1,014개의 중급 강화석 그리고 4개의 상급 강화석을 사용해 얻은 결과물들이었다.
사실 투자한 물량에 비해선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강화는 운이었기 때문에 상혁은 크게 불만이 없었다. 그는 이번에 잘 붙지 않으면 다음에 잘 붙을 것으로 생각했다.
예를 들어 중급 강화석으로 강화를 1,000번 정도 실패해도 현재 상혁이 아끼고 아끼는 ‘최상급 강화석’으로 한 번만 강화에 성공해도 그건 엄청난 이득이라 할 수 있었다.
즉, 중요한 건 결정적인 순간 강화에 성공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오우거슬레이어나 은월편은 결국 나중엔 바꿔야 할 아이템들이었기 때문에 큰 미련 없이 강화를 시도했고 이런 결과가 나왔다.
‘강화는 이 정도면 됐겠지? 그나저나 섬광의 흑안을 세공해야 하는데 좀처럼 보석세공 기술자가 섭외가 안 되네······.’
상혁은 비선을 통해 계속 보석세공 기술자를 찾고 있었다. 일단 NPC는 할 수 없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유저 중에 명장급 이상의 보석세공 기술을 지닌 이를 찾아야 했는데 아무리 비선을 통해 계속 찾아도 찾아지질 않았다.
‘이제 슬슬 명장급 생산 기술을 지닌 이들이 한두 명씩 등장할 때가 되었는데······.’
생산 관련 고대의 지식도 유저가 가지고 있는 재능에 따라 성장 속도가 전부 달랐다. 그냥 단순하게 물건을 많이 만들면 되는 게 아니라 품질 좋은 물건을 많이 만드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어설픈 막노동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은 장인급 정도까지만이었다.
명장급부턴 지니고 있는 재능에 따라 성장 속도가 확 달라졌다.
‘실력 좋은 보석세공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네.’
상혁은 실력 좋은 대장장이는 몇 명 정도 기억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실력 좋은 보석세공사는 그의 기억 속에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쉽지만 비선에서 찾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겠군.’
섬광의 세트는 만들 수만 있다면 상혁에게 엄청나게 큰 힘이 될 아이템이었지만 그렇다고 어설프게 아무에게나 제작을 맡길 순 없었다.
어차피 명장급 보석세공사를 찾아도 그가 ‘섬광의 세트’ 제작법을 배울 수 있게 도와줘야 하는 단계를 거쳐야 했기 때문에 실제로 상혁이 섬광의 세트를 구하려면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할 것 같았다.
어쨌든 이번 폭풍 강화를 끝으로 적어도 게임 속에서 해야 했던 모든 정리가 마무리되었다. 이제 남은 건 게임 밖에서 해야 할 일이었다.
상혁은 블레이크의 1인 길드전 영상을 잘 편집해서 다음 오늘 오후에 있을 정규방송에 방송을 예정이었다.
워낙 영상을 잘 뽑아놨기 때문에 편집해야 할 게 별로 많지도 않았다.
그냥 영상을 적당한 부분에서 자른 후 이어 붙여서 좀 더 속도감 있게만 바꿔주면 될 것 같았다.
상혁은 겨우 한 시간 만에 편집을 끝냈다.
덕분에 방송까진 아직 세 시간이나 남았고 늘 그렇듯 상혁은 시간이 남을 땐 검왕의 무덤으로 향했다.
열심히 영약을 캐고 또 캐는 상혁.
그에게 검왕의 무덤은 광산과 같은 곳이었다.
집중해서 영약을 캐다 보니 세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방송 시작 10분 전에 게임에서 나온 상혁은 10분 동안 간단히 준비를 끝낸 후 바로 방송을 시작했다.
탑랭커가 된 덕분일까? 아니면 오늘 방송할 분량이 블레이크가 혼자 크루세이더를 박살 내는 영상이란 소문이 돌아서일까?
어쨌든 일주일 전에 있었던 정규방송보다 초반 시청자 유입 속도가 조금 더 빠른 느낌이 들었다.
상혁은 적당히 10분 정도를 기다렸다가 바로 준비한 영상을 플레이시켰다.
시청자들은 단지 블레이크가 홀로 크루세이더의 길드 하우스를 향해 걸어가는 장면이 나왔을 뿐인데 벌써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었다.
엄청난 속도로 올라가는 채팅들.
그 채팅 내용의 90%는 환호성이었다.
그리고 시작된 블레이크의 무쌍(無雙) 영상!
한 번의 칼질로 크루세이더의 유저들을 쓸어버리는 블레이크의 모습은 말 그대로 일인군단(一人軍團)이었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도살자! 도살자! 도살자!]
[무조건 한 방! 와, 진짜 말이 안 나온다.]
[이거 진짜 버그 아닌 거 맞아?]
[버그를 이렇게 당당하게 공개하겠냐.]
[버그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저런 플레이가 가능한 거야?]
[애초에 원 길드의 길드원들에겐 상식을 바라면 안 돼.]
[그냥 즐겨. 난 이제부터 원 길드와 관련된 일이라면 모든 걸 그냥 있는 그대로 즐기기로 했어.]
[고고! 블레이크!!]
[좆밥 크루세이더. 결국, 바닥을 보이는구나.]
······
······
자신과 원 길드를 둘러싼 거품론 따윈 그냥 힘으로 압도하는 블레이크.
그는 오늘 방송에서 자신의, 그리고 원 길드의 위엄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 [36장] 탑 랭커(Top Ranker) (2) > 끝
ⓒ 성진(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