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장] 도살자(屠殺者) (2) >
* * * *
7,164,374와 4,933.
이건 방송이 끝날 때 채널 원과 채널 크루세이더의 시청자 수였다.
채널 원은 최고 790만 수준까지 시청자 수를 찍으며 이번에도 역시 자신들이 확고부동한 원 탑이란 걸 증명해냈다.
2등을 한 채널 라이징의 최고 시청자 수가 97만이었던 걸 고려하면 정말 엄청난 성적이었다.
그리고 채널 크루세이더······ 이들은 어그로로 끌어모은 인기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너무나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망했다. 그냥 망한 게 아니라 정말 폭삭 망했다.
그나마 남아 있던 몇천 명의 시청자도 대부분이 방송을 보려고 남은 게 아니라 채팅창에서 크루세이더를 잘근잘근 씹어먹으려고 남아 있는 이들이었다.
결국, 크루세이더는 두 시간 동안 헛고생만 하고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애초에 찾을 수가 없는 걸 찾았으니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게 너무나 당연했다.
반면 채널 원에선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한 영상을 틀어주는 건 물론이고 질풍이 직접 시청자와 소통하며 시청자들의 질문에 답변까지 해주었다.
시청자들은 다양한 질문을 했는데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역시 영웅의 대지에 관한 것이었고 그다음이 PvP를 잘하는 방법 같은 것이었다.
상혁은 자신이 답변해줄 만한 질문이 올라오면 간단하게 답을 해줬는데 그의 답변이 워낙 이해하기가 쉬워서 반응은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자 두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시청자들은 방송 시간이 너무 짧다며 연장을 해달라고 했지만, 아무리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방송이라고 해도 방송편성표가 존재하는 이상 연장은 불가능했다.
현재 LGN은 이 인터넷 기반의 라이브채널 방송을 통해 세계 5대 방송사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는 대기업이었다.
그런 곳에서 주먹구구식으로 방송을 진행할 순 없었다.
방송은 끝났다.
하지만 길드전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상혁은 방송할 땐 조용히 있었다. 졸렬한 크루세이더라면 당연히 방송을 보며 대응을 하는 식으로 방플도 가능했기 때문에 방송할 땐 별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았다.
크루세이더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괜히 그들에게 방송 거리를 제공해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상혁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철저히 크루세이더를 망가트릴 생각이었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라이브채널도 스스로 포기하게 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상혁은 곧장 일리아를 호출했다.
그는 지금쯤이면 상대가 슬슬 자신이 뿌려놓은 미끼를 물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크루세이더의 움직임은 어때? 그대로야?”
“변화가 있었습니다. 놈들은 비선주께서 은밀히 뿌려놓은 정보를 알아낸 후 재빨리 자신들의 길드 하우스에 정예를 소집했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한 결과 상당히 많은 수의 차원여행자가 길드 하우스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후후, 역시 물었군.”
상대가 미끼를 물었다는 걸 확인한 상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놈들을 한쪽으로 모아놨으니 다른 쪽을 치실 생각이신가요?”
원래 일리아는 질문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이번만큼은 상혁이 어떻게 하려는 건지 궁금해했다.
그녀는 당연히 상혁이 성동격서(聲東擊西)의 한 수를 사용했다고 예상했다. 실제로 지금 상황은 성동격서가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상혁은 평범함을 거부했다.
“아니, 기껏 한곳에 모아놨는데 왜 다른 곳을 쳐?”
미소를 띤 얼굴로 대답하는 상혁.
그가 준비한 한 수는 성동격서가 아닌 성동격동(聲東擊東)이었다. 동쪽에서 소리를 지르고 동쪽을 치는 이 방법은 보통의 상식과는 좀 맞지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상혁은 보통의 상식으론 설명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모았으니 이제 잡아야지.”
상혁의 전략은 간단했다.
모으고 쓸어버린다. 이게 상혁이 세운 너무나도 쉽고 간단한 전략이었다.
머리 좀 쓴다는 사람들이 보면 크게 비웃을 것 같은 전략이었지만 확실한 건 쉽고 간단한 게 통하면 그것만큼 무서운 게 없다는 점이었다.
“진짜 놈들이 여길 습격하는 게 맞아?”
무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한 번 확인을 해보았다.
“네, 90% 이상 확실한 정보입니다. 이 정보는 상당히 등급이 높은 NPC로부터 얻어낸 정보이기 때문에 신뢰도가 아주 높습니다. 아무래도 놈들이 진짜 우리 길드 하우스를 습격해 우리 길드를 제대로 무너트리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길드 하우스엔 두 가지 중요한 게 있었다.
일단 첫 번째는 길드 창고가 있었다. 길드 창고엔 길드 단위에서 모은 각종 아이템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여길 털리면 타격이 아줄 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길드 스톤이라 불리는 길드의 상징과 같은 것이 존재했다. 길드 스톤은 길드전 중엔 적대 길드원에게 파괴를 당할 수가 있었는데 그렇게 되면 그동안 모았던 길드 명성치가 절반으로 깎이며 길드 레벨이 확 떨어질 수 있었다.
길드 스톤은 3레벨 이상의 길드는 무조건 설치를 해야 하는 것이었는데 한 번 파괴당할 때마다 절반씩 길드 명성치가 대폭 깎였고 열 번을 파괴당하면 영구적으로 길드 스톤이 소멸하며 해당 길드도 해체되고 말았다.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길드 하우스는 무조건 지켜야 하는 곳이었다.
“젠장······ 이 와중에 역습까지 방어해야 한다니······ 일단 밖에 나가 있는 모든 타격조에게 언제라도 바로 길드 하우스로 복귀할 수 있게 준비하고 있으라고 해.”
무토는 진짜 원 길드가 길드 하우스를 치면 큰일 날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스페셜타격조는 물론이고 길드에 실력 좋은 유저들은 모두 비상소집을 해놓은 상태였다.
‘그래, 어쩌면 이렇게라도 싸워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 쥐새끼들처럼 숨어있지만 말고 제발 좀 습격해라!’
이미 방송을 하는 와중에 독이 오를 때로 올라버린 무토는 제발 원 길드가 습격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여전히 싸울 수만 있다면 원 길드 따윈 크루세이더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 * * *
크루세이더의 길드 하우스는 2층으로 이루어진 적당한 크기의 집이었다. 돈이 별로 없는 중소형 길드들은 기껏해야 단칸방 하나만 존재하는 제일 작은 길드 하우스를 사용했지만 그래도 크루세이더는 제법 규모가 큰 길드였기 때문에 그보단 더 나은 이층집을 길드 하우스로 사용했다.
여기서 좀 더 규모가 커지면 그때부턴 진짜 길드 하우스다운 타워(Tower)를 길드 하우스로 사용했는데 사실 길드 하우스로서 제대로 구실을 하려면 타워 정도는 되어야 했다.
특히 타워부터 고용할 수 있는 가드(Guard)는 길드를 지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였다.
만약 크루세이더가 타워를 길드 하우스로 사용하고 있고 가드까지 고용한 상태였다면 지금처럼 민감하게 방어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길드 하우스는 지키는 가드 자체가 워낙 강력했기 때문에 침략자들이 쉽사리 길드 하우스 안쪽으로 들어오질 못했다.
가드의 레벨은 무려 60이었고 그런 가드를 최대 세 명까지 고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어지간한 습격은 가드들만으로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타워를 길드 하우스로 사용하는 길드는 EL을 통틀어 겨우 네 곳뿐이었다.
그만큼 타워가 초기 건설비용도 비싸고 유지비용마저 비싸다는 뜻이었다.
어쨌든 크루세이더는 아직 타워를 건설하지 못했고 그렇기에 자신들이 직접 길드 하우스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젠장······ 결국 오늘 던전 사냥은 날아갔네.’
크루세이더의 정예 길드원 중 한 명인 타케이는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길드 하우스로 진입하는 길을 지키고 서 있었다.
그가 짜증이 난 이유는 간단했다. 비록 길드전이 시작되었지만 원 길드의 특성상 전투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몰래 던전 공략 약속을 잡아놨었다.
물론 길드엔 말하지 않은 약속이었기 때문에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그저 약속을 못 지키게 되어 같이 가기로 한 이들에게 미안할 따름이었다.
‘아, 오늘은 진짜 미스릴검이 나올 것 같았는데······ 아쉽다. 아쉬워.’
연신 아쉬운 표정을 지는 타케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길드의 명령이 먼저였기 때문에 자리에서 이탈할 생각은 없었다.
타케이 옆에는 그와 함께 보초 근무를 서고 있는 오츠카가 있었는데 그는 여자친구와 통화 중이었다. 원랜 그러면 안 됐지만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이 정도는 당연히 모른 척 해주었다.
‘그래도 이제 한 시간만 더 고생하면 쉴 수 있겠네. 어우, 어제 잠을 조금 잤나? 왜 이렇게 피곤······.’
타케이가 생각은 딱 여기까지만이었다.
머리와 몸이 분리된 그는 더 생각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죽은 자신도 어떻게 죽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을 정도로 빠르고 강력한 공격이 그의 목을 갈라버렸다.
그리고 타케이가 쓰러진 그 순간 또 한 번의 검광(劍光)이 번뜩였다.
번쩍! 푸욱, 드드득!
여자친구와 통화를 하던 오츠카는 머리에 구멍이 생기며 타케이 옆에 똑같이 쓰러졌다.
쿠쿵, 두 명의 크루세이더 길드원들이 쓰러지며 자연스럽게 크루세이더의 길드 하우스로 가는 길이 뚫렸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걸어나온 블레이크가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영상 체크.’
상혁은 마지막으로 현재 촬영하고 있는 영상을 점검해 보았다.
시점은 오토 컨텍을 통해 자연스럽게 최적의 시야를 확보해주는 스페셜 타워 시점에 화질은 UHD(Ultra High Definition).
나머지 세부 설정도 문제가 전혀 없었다.
스르르릉.
마지막 점검을 끝낸 블레이크는 차분히 오우거슬레이어를 뽑았다.
블레이크가 길드 하우스로 당당히 걸어오고 있던 그 순간 이미 크루세이더 쪽은 비상이 걸린 상태였다.
그들은 원 길드가 실제로 습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무식하게 치고 들어올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당연히 아까부터 대비하고 있던 크루세이더의 타격조원들은 재빨리 길드 하우스에서 튀어나오며 블레이크를 포위했다. 그리고 그들은 블레이크가 혼자 왔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원을 나눠 또 다른 습격자들을 찾았다.
블레이크가 보기엔 정말 미련한 짓이었지만 크루세이더 입장에선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블레이크야! 저놈이 바로 도살자 블레이크야!”
크루세이더 쪽에선 단번에 블레이크를 알아보았다.
사실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도살자고 뭐고 일단 죽여!”
길드전을 하면서 상대방과 대화를 하는 게 더 웃긴 일이었다. 그렇기에 크루세이더의 타격조원 10명은 빠르게 블레이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10 vs 1.
이번에도 뭔가 굉장히 불합리해 보이는 전투가 벌어졌다.
‘맨 앞! 이 정도라면······ 닿는다!’
블레이크는 찰나의 순간 10명의 타격조원들 중 한 명이 유달리 다른 타격조원들보다 빨리 반응했다는 걸 눈치챘다. 그리고 그걸 눈치챈 순간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장면이 빠르게 완성되었다.
타타탁.
피잉! 푸욱!
블레이크는 오히려 앞으로 빠르게 달려들며 오우거슬레이어를 정확한 타이밍과 깊이로 찔러넣었다.
오우거슬레이어의 검 끝이 가장 앞에 살짝 튀어나와 있던 타격조원의 이마를 살짝 파고들었다.
이건 블레이크의 거리 계산이 너무나도 완벽했기에 가능한 공격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번 공격은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살짝 얕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얕아도 일단은 공격에 성공한 것이었기 때문에 치명타 판정을 받게 되었고 시원하게 치명타가 터졌다.
콰드드득, 퍼퍼펑!
치명타가 터지자 선빨필승의 효과까지 발동하며 이마를 살짝 찔린 그 타격조원의 머리가 그 자리에서 터져버렸다.
원래대로라면 머리에 상처를 입고 끝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치명타 + 선빵필승’ 효과가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하며 머리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허억!”
“크흥!!”
당연히 블레이크를 향해 달려오던 크루세이더의 타격조원들은 순간적으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서 동료가 한 번의 칼질에 머리가 박살 나 죽었다. 더욱이 그들이 보기엔 블레이크의 공격은 살짝 스친 수준밖에 안 되어 보였는데 그 스친 공격에 머리가 박살이 났다.
남아 있는 9명의 타격조원들은 모두 순간적으로 등줄기를 타고 솟아오르는 서늘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격이 다른 상대······ 아무리 봐도 오늘 그들의 일진은 너무나 사나울 것 같았다.
< [35장] 도살자(屠殺者) (2) > 끝
ⓒ 성진(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