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장] 도살자(屠殺者) (1) >
@ 도살자(屠殺者).
“며, 몇 명이라고?”
무토는 믿을 수가 없단 표정으로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것만 142명인데······ 비상연락망을 통해 계속 연락이 오고 있는 걸로 봐서는 최소 200명 정도는 당한 것 같습니다.”
“으음······ 범인은 역시 원 길드겠지?”
“네, 문그람에서 집중적으로 당한 걸로 봐서는 원 길드 녀석들이 아예 작정하고 문그람에 매복을 한 후 길드전 신청을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크으, 젠장! 보통의 길드였다면 이런 기습에 대비해놨을 텐데······ 설마 원 길드가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
무토는 물론이고 크루세이더의 운영진들은 모두 원 길드가 이번 길드전엔 전혀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들은 이미 영웅의 대지란 신대륙을 발견해 그쪽에 정신이 팔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소수정예 길드들은 보통 길드전을 선호하지 않았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느긋하게 생각했던 게 독이 되어버렸다.
“비상소집령은 내렸지?”
“네, 모든 길드원에게 비상소집령과 주의령을 동시에 내렸습니다. 최소 7명씩 한 파티 단위로 뭉쳐서 움직이라고 했으니 어이없게 당하는 경우는 없을 겁니다.”
“에이, 썅!”
콰앙!
무토는 두 주먹으로 앞에 있던 책상을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방송은? 방송 준비는 제대로 된 거야?
한 시간 후부터는 라이브채널의 정규방송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원래 무토는 두 시간의 방송 시간 동안 열심히 원 길드를 까주면서 여유롭게 방송을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여유는 고사하고 당장 원 길드의 길드원들을 찾아 박살을 내지 않으면 분이 안 풀릴 것 같았다.
“모든 길드원을 모아서 황혼의 땅과 지옥불 사막을 샅샅이 수색할 예정입니다. 주요 사냥터를 위주로 마구 쑤시면 제 어디선가는 튀어나오지 않겠습니까?”
“하긴 다른 것도 아니고 길드전인데 절대 정체를 못 숨기지. 그동안은 쥐새끼들처럼 잘 숨어 있었겠지만······ 이젠 다르다 이거야.”
무토는 원 길드와 같은 소수정예를 지향하는 길드는 오히려 박살 내기가 쉽다고 생각했다.
“타격조는 준비가 끝났지?”
“네, 1조부터 7조까지 7개의 조를 만들었습니다. 조당 14명씩 클래스의 상성을 조합해 최고의 효율이 나오게 해놨습니다.”
“그럼 방송은 어떻게 진행되는 거야?”
“조마다 메인 촬영 유저와 보조 촬영 유저를 정해놨습니다. 그들을 통해 최고의 화면을 뽑은 후 제가 직접 즉석에서 편집하며 방송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무토가 가장 신임하는 히나오카는 원래 영상 관련 일을 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런 걸 아주 잘했다. 그렇기에 무토는 라이브채널 방송을 그에게 맡긴 것이었다.
“좋군. 그럼 방송은 너한테 맡길 게.”
“네, 형님은 1조를 이끌면서 원 길드를 척살하시면 됩니다. 특별히 1조는 스페셜타격조로 꾸며서 우리 길드의 실력자들이 대부분 모여 있습니다.”
“오, 진짜 원 길드 쥐새끼들을 발견하면 제대로 짓밟을 수 있겠는걸?”
“그럼 전 그 영상을 생방송으로 내보내고······ 크루세이더가 얼마나 강한 길드인지 모든 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겠네요.”
“좋아, 좋아!”
무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쎄게 한 대 뒤통수를 얻어맞긴 했지만 그래 봤자 일반 길드원들이 좀 죽은 것일 뿐이었다. 아직 길드의 핵심 멤버라 할 수 있는 정예 길드원들은 쌩쌩하게 살아 있었다.
‘소수 정예? 적어도 EL의 길드전에선 그딴 허황된 콘셉트는 안 통한다는 걸 알려주마.’
무토는 원 길드의 특징으로 알려진 ‘소수 정예’와 ‘신비주의’가 적어도 길드전에서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그가 자신만만하게 노이즈 마케팅을 하고 실제로 원 길드에게 길드전까지 신청한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이 생각 때문이었다.
무토의 자신감.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낸 크루세이더와 원 길드의 길드전.
그들의 전쟁은 라이브채널의 정규 방송과 함께 제2막이 시작되었다.
* * * *
서걱, 콰드득!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칼날이 또 한 명의 목을 한 번에 날려버렸다.
사실 PvP에서 이렇게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상대방을 죽이는 건 어지간히 레벨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학살을 당하고 있는 크루세이더의 길드원들은 적어도 레벨이 40 이상은 되는 유저들이었다.
그런 유저들을 한 방에 쓰러트린다는 것 자체가 비이상적인 일이었다. 무토를 비롯한 크루세이더의 운영진이 놓친 가장 큰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아니, 그들뿐만 아니라 실제로 당한 크루세이더의 길드원들도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었다.
상혁, 아니 블레이크의 공격력은 일반 유저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상혁은 % 옵션이 붙은 타이틀을 워낙 많이 보유하고 있어서 기본적으로 힘이나 민첩 같은 능력치 자체가 말도 안 되게 높았다.
거기에 추가로 장비마저 일반 유저들, 아니 최상급 유저들도 부러워할 정도로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특히 상혁은 모든 세팅을 치명타 확률과 치명타 데미지쪽에 집중시켰기 때문에 상혁의 공격은 10에 7은 치명타가 터졌다.
치명타가 터지지 않아도 한 방에 끝낼 수 있을 정도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치명타가 터지면 더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치명타가 터지면 모든 걸 따지지 않고 당연히 한 방이었고 치명타가 터지지 않아도 특별히 클래스가 탱커 쪽에 가깝지 않으면 한 방에 보낼 수가 있었다.
간혹 치명타가 터지지 않았는데 상대가 버티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한 방에 죽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바로 이어서 들어가는 연속 공격을 맞고 쓰러졌기 때문에 실제로 당하는 이들 입장에선 별반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한 방, 아니면 두 방.
그렇게 블레이크가 박살 낸 크루세이더의 길드원은 총 247명이었다.
아직 보고가 늦게 들어가서 그렇지 사실상 크루세이더의 일반 길드원은 대부분 블레이크에게 죽었다.
스르릉, 철컥.
블레이크는 오우거슬레이어를 허리춤에 다시 꽂은 후 천천히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방송까지 남은 시간은 50분······. 이제 슬슬 방송 준비를 해야겠군.’
당연히 채널 원도 라이브채널 정규방송을 해야 했다. 이미 오늘 방송 분량은 충분히 뽑아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빠르게 편집만 끝내면 되었다.
사실 편집할 것도 거의 없었다. 애초에 방송을 고려해 칼질 한 번, 한 번을 신경 써서 했었다.
그렇기에 영상은 그냥 통으로 틀어도 될 정도로 완벽하게 뽑혔다.
‘이번 사냥은 방송분량만 뽑은 게 아니라 대박 타이틀도 하나 얻었으니 진짜 말 그대로 개이득이네.’
블레이크가 더더욱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방송에 쓰일 죽이는 영상을 뽑아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타이틀을 하나 얻었다.
200명의 크루세이더 길드원을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쓰러트리자 아주 훌륭한 타이틀을 하나 얻을 수가 있었다.
호칭 - ‘이것이 바로 일격필살(一擊必殺)!’
등급 – 유일(唯一)
설명 – 불과 하루 만에 200명의 적대 관계에 있는 유저를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쓰러트렸다. 그러면서 자신은 한 번도 죽지 않았기에 이것이야말로 일격필살의 살아있는 교본이라 할 수 있다.
효과 - [접두: 없음] [접미: 없음] [상시지속 효과: 선빵필승(A) : 상대에게 날린 첫 공격이 치명타가 터지면 치명타 데미지가 2.5배로 늘어난다.]
상혁도 이런 타이틀이 있다는 건 얻고 난 뒤에야 알았다.
접두, 접미 효과는 아예 없었지만, 상시지속 효과가 대박이었다.
무려 치명타 데미지가 2.5배로 늘어나는 엄청난 위력을 지닌 효과······ 비록 상대에게 날리는 첫 번째 공격에만 해당하는 얘기고 그마저 치명타가 터져야지 효과가 발동되었지만 일단 발동만 되면 그 위력이 무시무시했다.
가뜩이나 치명타 데미지에 세팅을 많이 투자해서 뻥튀기가 많이 되는 편이었는데 이게 또 2.5배로 늘어난다면······ 상혁의 첫 공격 한 방은 치명타만 터진다면 진짜 어마 무시한 방이 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상혁에게 더더욱 좋은 타이틀이었다. 등급은 유일이었지만 상혁의 기준에선 거의 전설급 타이틀처럼 느껴지는 타이틀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부수입을 얻은 상혁은 기분 좋게 방송을 준비했다.
이제 일격필살 타이틀을 얻어서 블레이크의 기습은 더더욱 강력해졌다. 이 얘기는 곧······ 크루세이더는 더욱 힘든 길드전을 치러야 한다는 뜻이었다.
첫 방송 이후 이틀을 쉰 후 드디어 정규방송이 시작되었다. 오늘 정규 방송은 첫 방송과 마찬가지로 30개 채널이 모두 같이 방송하겠지만 다음 주부터는 일주일에 네 번씩(하루에 두 시간) 방송하게 되었다.
라이브채널마다 방송하는 요일과 시간을 지정할 수가 있었는데 오늘 시청률에 따라 순위를 매긴 후 1등부터 차례대로 요일과 시간을 정하게 되어 있었다.
완벽한 실력우선주의.
이게 김운호의 스타일이었다. 어쨌든 그 이유 때문에라도 각 라이브채널은 특히 오늘 방송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자칫 오늘 방송에서 순위가 크게 밀려버리면 진짜 영원히 손해를 볼 수가 있었다.
크루세이더가 더욱 발악했던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지금은 노이즈 마케팅이고 뭐고 일단 순위부터 올리고 봐야 할 때였다.
어쨌든 초반 시청자 수만 보면 크루세이더의 노이즈 마케팅은 어느 정도 성공을 한 것처럼 보였다.
일단 방송이 시작되고 불과 10분 만에 200만 시청자를 확보한 원 채널은 당연히 논외로 쳐야 했다.
원 채널을 제외하곤 다들 고만고만했는데 그 와중에 가장 높은 시청자를 확보한 곳이 채널 라이징이었다.
그들은 10분 만에 30만 시청자를 확보하며 저력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런데 크루세이더가 10분 만에 15만 시청자를 확보했다.
다른 채널들이 대부분 10만 수준이었고 하위권으로 떨어진 채널은 1~2만 대를 유지하고 있던 걸 생각하면 굉장히 선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채널 크루세이더에선 당연히 척살령과 함께 수많은 크루세이더의 유저들이 원 길드의 길드원을 찾아 나선 상태였다. 그런데 원 채널에선 어젯밤 일어난 블레이크의 학살 영상을 틀어주고 있었다.
한쪽은 실시간 방송이었지만 제대로 된 전투 한 번 일어나지 않는 지루한 영상을 보여주었고 한쪽은 녹화된 영상이긴 하지만 블레이크가 원 샷 원 킬로 크루세이더의 길드원들을 사냥하는 화끈한 영상을 틀어주었다.
당연히 반응이 극명하게 갈릴 수밖에 없었다.
[뭐야? 온종일 탐색만 하다 끝날 분위기인데?]
[에이, 난 뭔가 제대로 원 길드 거품을 빼줄 줄 알고 왔는데 아무것도 없네.]
[원 길드랑은 언제 싸우나요?]
[이 시각 채널 원에선 크루세이더 학살 영상 방송 중. 아, 개 웃기다. 이건 뭐 거의 개그인데?]
[너무 지루하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는 거냐?]
[에잉, 난 채널 원으로 다시 간다. 아무리 봐도 여긴 망했다.]
[역시 기대를 한내가 잘못이지.]
[크루세이더가 아니라 버블세이더였네.]
······
······
이게 채널 크루세이더의 반응이었고 채널 원은······.
[와우, 역시 블레이크! 죽인다!]
[진짜 아무리 봐도 EL 최고의 PvP 유저는 블레이크다.]
[어떻게 저렇게 한 방에 끝내는 거지? 님들 저게 원래 저렇게 쉬운 건가요?]
[쉽긴······ 형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줄게. 보통 레벨 차이가 30 정도는 나야 저 정도 결과가 나오거든. 근데 지금 양학 당하고 있는 크루세이더 유저들 최소 레벨이 40은 될 텐데······ 그럼 블레이크 레벨이 70이라고? 이건 말이 안 되지. 그냥 블레이크가 좆 사기인 거야.]
[도살자 블레이크! 이건 뭐 원 길드가 다 나설 필요도 없네. 블레이크가 혼자 정리하고 있어.]
[도살자 하드 캐리!]
[진짜 개 쪄내. 내 옆에서 친구가 채널 크루세이더 보고 있는데 거긴 이미 좆망각임.]
[크루세이더 시청자 수 꺾였다. 떨어지기 시작했어.]
[거긴 애초에 어그로로 긁어모은 시청자 수라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어.]
[역시 채널 원이 최고네! 오늘 천만 가자!]
[아무리 그래도 천만은 무리지. 첫 방송은 그냥 광고빨하고 오픈빨로 그 정도로 올라갔던 것이고······ 오늘 시청자 수는 대략 600~700만 예상한다.]
[또 좆전문가들 튀어나오시네.]
[어우, 예상충들 극켬!]
······
······
반응 그대로 채널 원은 계속 급격히 시청자 수가 늘어갔고 채널 크루세이더는 점점 시청자 수가 줄어들었다.
어그로라는 위험한 연료를 마구 태우며 최대한 한껏 불을 키워놓은 크루세이더. 하지만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키워놓은 불에 오히려 잡아먹히기 시작했다.
< [35장] 도살자(屠殺者) (1) > 끝
ⓒ 성진(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