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66화 (66/127)

< [34장] 도발 (2) >

* * * *

채널 원은 이름 그대로 라이브채널의 원 탑(One Top)이 되었다. 시청자들은 방송이 끝난 후에도 계속 질풍이 보여준 영웅의 대지와 그곳의 콘텐츠에 관해서 얘기하며 무조건 저승길을 최대한 빨리 뚫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저승길이란 곳이 뚫고 싶다고 뚫리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질풍의 방송 덕분에 그나마 여력이 되는 길드들은 저승길을 좀 더 적극 공략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저승길은 다른 유저들의 통과를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원 길드? 그런 길드가 있었나요?”

서원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한 번 보고서를 확인해 보았다.

“소수정예와 신비주의를 콘셉트로 잡은 길드인데 나름 유명한 편입니다. 저번에도 보고서를 올렸던 BJ질풍이 바로 이 길드의 길드 마스터입니다.”

“아! 그 거인의 동굴 솔플 유저?”

“네, 맞습니다.”

질풍의 거인의 동굴 솔로 플레이 덕분에 한동안 라온 소프트가 골치가 매우 아팠었다.

“질풍이란 그 유저······ 핵을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방법을 써서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진도를 빼는 걸까요?”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카오스의 답변으로는 ‘쿼드라 소울’ 유저이고 지극히 정상적인 고대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쿼드라 소울요? 그게 가능합니까? 우리가 무슨 유료 아이템으로 카르마 증가권을 파는 것도 아닌데······.”

“저도 신기한데 그 이상은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허어······ 정말 특이한 유저네요.”

“저희 팀에서도 주의할 인물로 구분에서 최대한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유저입니다.”

“원 길드의 다른 길드원들은 어떻습니까?”

“그게······ 사실 아직 원 길드의 길드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워낙 비밀이 많은 길드라서 알려진 길드원이라고 해봤자 BJ질풍과 PvP유저인 블레이크 정도가 전부입니다. 나머진 누가 길드원인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아예 몇 명의 길드원이 있는지도 알려지지 않은 길드입니다.”

“질풍이란 유저만큼 특이한 길드군요.”

“아무래도 특이한 유저들이 모여 만든 극한의 소수 정예 길드인 것 같습니다.”

“이 길드도 당연히 주의해야 할 길드겠죠?”

“맞습니다. 질풍과 함께 집중 모니터링 대상입니다. 하지만······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워낙 아무런 정보가 없는 길드라서 저희가 알고 있는 게 별로 없긴 합니다.”

“그래도 모르는 것이지 계속해서 관리해주세요. 아! 그리고 어제 올린 절망의 길 난이도 조정안은 폐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보다 난이도를 낮추는 건 너무 현실에 휘둘려서 미래의 가치를 까먹는 것 같습니다. 난이도는 하향도 그리고 상향도 없이 원래 그대로 가겠습니다.”

유저들이 워낙 성화라 운영팀에선 살짝 절망의 길(저승길)의 너프를 건의했지만 서원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너무 과한 개입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건의를 반려했다.

“알겠습니다.”

운영팀장도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역시 그냥 건의만 했을 뿐이지 그렇게 꼭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EL은 워낙 완성도 있게 만들어진 세상이었기 어지간해선 건드리지 않는 게 제일 좋았다.

운영팀장이 나간 후에도 서원태는 한동안 책상을 두드리며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괴물 같은 유저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걸 충분히 가정하고 게임을 설계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괴물 같은 유저가 이렇게 많이 나타날 줄이야······. 확실히 세상은 넓고 괴물은 많다는 건가?’

서원태는 자신의 예상마저 훌쩍 뛰어넘은 질풍과 원 길드의 출현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서원태는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은 유저가 단 한 명이고 그 유저가 보통 유저가 아닌 미래에서 회귀한 유저란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 * * *

‘우리가 원(One) 길드의 거품을 제대로 빼주겠다!’

크루세이더의 선언!

그들은 뜬금없이 각종 EL 커뮤니티에 그런 선언을 하며 당장 내일 있을 라이브채널 정규방송에서 원 길드에게 당당히 도전하겠다고 얘기했다.

그와 함께 만약 원 길드가 길드전을 받아들이지 않고 도망 다닌다면 척살령을 내려서 원 길드원들을 무조건 공격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크루세이더는 원 길드가 길드전을 받아주든 주지 않든 이 과감한 도발은 무조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무토는 이 한 방으로 완전히 망한 채널 크루세이더도 살려내고 동시에 크루세이더의 인지도도 급격히 끌어올릴 수 있다고 믿었다.

물론 반응은 그리 좋진 않았다. 아무래도 너무나 쉽게 크루세이더의 의도를 읽을 수가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유저들이 크루세이더를 비난했다.

그나마 일본의 유저들이 조금 감싸주긴 했지만 일본 내에서도 이번 일에 대해선 반대 의견이 상당한 편이었다.

하지만 무토는 이미 이런 반응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이런 짓을 감행한 이유는 결국 ‘노이즈’ 마케팅도 잘만 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노이즈는 사라지고 높아진 이름값은 그대로 남는 게 이 바닥 생리였다.

‘푸핫, 크루세이더? 길드전?’

일리아에게 보고를 듣던 상혁은 갑자기 길드전 알림이 뜨자 실소를 터트렸다.

‘크루세이더······. 이 길드가 언제까지 라이브채널을 유지했더라?’

상혁은 기억을 더듬으며 자신이 알고 있는 크루세이더에 대해 떠올려보려고 했지만 잘 떠오르지가 않았다.

애초에 크루세이더는 상혁의 관심 밖에 있던 길드였다.

그들은 상혁의 전생에도 최초 30개의 라이브채널 중 하나를 차지한 길드였지만 소리소문없이 라이브채널을 포기하고 사라진 길드이기도 했다.

“길드전 신청이라니······ 좀 황당하긴 하네.”

상혁은 작게 중얼거리며 각종 길드 관련 메뉴를 눈앞에 띄워보았다.

크루세이더의 길드전 신청.

이 상태에서 상혁이 길드전을 받아들이면 쌍방 간의 길드전이 성립되는 것이었다. 물론 받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받지 않으면 일정 수치의 길드 명성이 떨어지게 되어 있었다.

길드 명성은 길드 레벨을 결정하는 수치였기 때문에 자꾸 길드전을 거부만 하면 길드 레벨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떨어질 수도 있었다.

물론 한두 번 거부한다고 큰일이 나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상혁은 당장 길드 레벨을 올리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었다. 길드 레벨을 올리는 가장 큰 이유가 결국 길드의 길드 인원 한계치를 늘리기 위해서였는데 원 길드는 1인 길드였기 때문에 길드 인원 한계치 같은 건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나를 이용해, 아니 원 길드를 이용해 주목을 좀 받아보겠다는 것이겠지?’

상혁은 당연히 크루세이더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사실 누가 봐도 너무나 파악이 쉬운 상황이었다.

“일리아. 할 일이 하나 생겼다.”

상혁은 아직 남겨둔 비선 조직의 ‘정보 수집’ 스킬을 이용해 원하는 정보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크루세이더 길드. 이 길드에 대한 정보를 모아줘. 특히 주요 길드원들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 앞으로 4시간 안에 간단하게 1차 보고서를 올려줘. 그리고 다시 24시간 안에 상세하게 2차 보고서를 올려주고.”

“알겠습니다. 당장 비선의 정보망을 전부 가동해서 정보를 수집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정보 조작도 하나 하자. 원 길드가 크루세이더의 길드 하우스를 노린다고 은밀히 흘려. 너무 노골적으로 흘리지 말고 아주은밀하게······ 상대방이 꽤 노력해야지 알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조작을 해줘. 가능하겠지?”

“네, 가능합니다.”

상혁은 정보 수집과 정보 조작을 모두 사용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희가 싸우길 원한다면 싸워주마.’

상혁은 웃고 있었다.

애초에 상혁이 이번 길드전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 언뜻 보면 1 vs 다수의 대결이라 상혁이 무조건 불리할 것 같았지만······ 그건 상혁의 압도적인 실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순 계산법으로 계산할 때나 통용되는 얘기였다.

오히려 상혁 입장에선 혼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더 많았다.

“일단······ 가볍게 인사부터 시작해볼까?”

걸어온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 이게 상혁의 방식이었다.

크루세이더의 길드 레벨은 5였고 길드원의 인원은 5레벨의 길드가 받을 수 있는 한계 수치인 400명에 거의 가깝게 꽉 채워져 있었다.

그들은 원 길드에게 길드전을 선포하긴 했지만, 아직 딱히 특별한 움직임을 보여주진 않았다. 어차피 원 길드의 길드원은 찾아 나선다고 찾을 수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

특히 원 길드는 저승길을 뚫고 영웅의 대지에 진출한 것으로 알려졌었기 때문에 황혼의 땅이나 지옥불 사막에서 원 길드의 길드원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좋았다.

어차피 크루세이더는 앞으로 12시간 정도 후에 방송될 라이브채널의 정규 방송에서 대규모 척살령과 함께 원 길드를 찾아 나설 생각이었다.

설사 찾지 못한다고 해도 이렇게 소란스럽게 해줘야······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원 길드가 무서워서 도망쳤다고 주장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진 순수하게 크루세이더의 생각일 뿐이었다.

크루세이더는 자신들이 이번 길드전을 주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건 정말 너무나 크나큰 오판이었다.

‘크루세이더의 주 활동 무대는 지옥불 사막의 서쪽 도시인 이곳 문그람······, 아직 길드 하우스는 이전하지 않아 황혼의 땅에 있지만, 대부분의 크루세이더 길드원이 이곳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이거지?’

일리아에게서 받은 1차 보고서엔 간단한 정보가 적혀 있었지만 간단하다고 해서 정보의 질이 떨어지는 건 절대 아니었다.

상혁은 보고서 창을 닫으며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문그람 주변은 지옥불 사막에서 가장 덜 더운 지역이었기 때문에 사막의 열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지금은 밤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열기를 느낄 수 없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유저들도 지옥불 사막의 도시 중 문그람을 제일 선호했다.

일단 상혁은 문그람에 들어가지 전에 먼저 영상 촬영 세팅을 조정했다.

‘야간 촬영 설정을 하고······ 혹시 영상의 선명도가 부족하면 나중에 추가 보정을 통해 끌어올리면 되겠지?’

크루세이더가 내일 생방을 준비하고 있었다면 상혁은 내일 방송을 위한 영상을 미리 만들어놓을 생각이었다.

‘어디 보자······ 이런 상황에선 역시 블레이크가 등장해주는 게 좋겠지?’

상혁은 팔콘의 그림자 공작 타이틀을 접미에 장착한 후 인물 설정 ‘블레이크’를 불러왔다.

파아앗!

순식간에 상혁이 사라지고 블레이크가 나타났다.

‘자,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

상혁은 길드 관리 창을 띄운 후 망설이지 않고 크루세이더의 길드전 신청을 받아버렸다.

크루세이더의 길드전 신청을 수락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원 길드와 크루세이더 길드는 적대 관계가 되어 서로 자유전투모드가 발동됩니다.

이로써 원 길드가 길드전을 수락했다는 소식이 크루세이더의 길드 마스터인 마토에게 전해졌겠지만, 문제는 그 소식이 모든 크루세이더의 길드원에게 전해진 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 * * *

크루세이더의 유저들은 평소와 똑같이 게임을 즐겼다. 길드전이 선포되긴 했지만, 크루세이더의 운영진은 어차피 원 길드가 길드전을 받아들인 것도 아닌데 굳이 벌써 긴장감을 조성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내일 있을 정규방송에서나 좀 긴장감을 조성하면서 바쁘게 움직이면 되리라 판단했다.

그렇기에 크루세이더의 길드원들은 평소처럼 문그람을 자유롭게 오고 가며 자유롭게 행동하고 있었다.

“어차피 내일 척살령이 떨어지면 사냥은 꿈도 못 꿀 테니까 오늘 깔끔하게 레벨을 올리고 끝내자”

크루세이더의 일반 길드원이었던 이즈미는 레벨업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현실 친구이자 같은 크루세이더의 일반 길드원이었던 아사노에게 한 번만 더 쩔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얼마나 남았는데? 나 조금 있다가 나가봐야 해.”

“삼십 분 정도만 선인장 숲을 돌아주면 충분할 거 같아.”

“으음······. 알았어. 그럼 진짜 삼십 분 만이다.”

“고마워. 역시 너밖에 없다.”

“그런 얘긴 맛있는 밥이라도 사주면서 하는 거야.”

이즈미는 자신보다 레벨이 훨씬 높았던 아사노의 추천 덕분에 그토록 꿈에도 그리던 크루세이더에 들어올 수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요즘 더더욱 게임에 집중하며 크루세이더와 어울리는 유저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래 봤자 그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레벨을 올리는 게 전부이긴 했지만 어쨌든 이즈미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그럼 바로 가······.”

스팟! 서걱!

아사노는 몸을 돌려 당장 문그람 밖으로 나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는 몸을 제대로 돌리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말조차 끝내질 못했다.

털썩, 갑자기 옆으로 쓰러진 아사노. 순간 이즈미는 너무나 놀라 뭐라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그가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그의 입에 한 자루의 검이 박히는 게 더 빨랐다.

파앗, 콰드드득!

“커억!”

아사노가 일검(一劍)에 상체가 두 동강 났다면 이즈미는 간단한 찌르기 공격 한 방에 머리가 박살 났다.

어둠 속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한 자루의 검은 너무나 간결한 두 동작으로 두 명의 유저를 쓰러트렸다.

원 길드의 ‘블레이크’님이 크루세이더 길드의 ‘고독늑대’님을 쓰러트렸습니다.

원 길드의 ‘블레이크’님이 크루세이더 길드의 ‘사무라이즈미’님을 쓰러트렸습니다.

두 명의 크루세이더 길드원이 문그람 골목에서 죽었지만, 그 누구도 정확히 누가 그들을 죽였는지 보질 못했다.

그냥 어둠 속에서 칼날이 하나 튀어나와 순식간에 두 명을 제거하고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을 뿐이었다.

문그람의 어둠 속을 활보하는 괴물.

그 괴물은 빠르고 정확하게 크루세이더의 길드원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크루세이더가 제대로 반응도 하기 전에 그들의 목줄을 사정없이 물어뜯어 버린 괴물.

그 괴물은 오늘 문그람을 크루세이더의 거대한 무덤으로 만들어버릴 생각이었다.

< [34장] 도발 (2) > 끝

ⓒ 성진(成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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