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64화 (64/127)

< [33장] 첫 방송 (2) >

[이거 진짜에요? 정말······ 거길 통과하신 거예요?]

“제가 설마 방송에서 사기를 치겠습니까. 사실입니다. 얼마 전에 간신히 통과했어요.”

[와, 대단해요! 도대체 원 길드원들은 어떤 분들이 계신 거예요? 몇 명이 함께 통과한 거예요? 통과하는 장면은 스틸 컷으로만 편집하셔서 생략된 정보들이 너무 많아요. 그걸 좀 더 보여주시면 더 대박일 거 같은데······.]

“아무래도 저희 길드엔 정체가 노출되는 걸 원하지 않는 분들이 많아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하아, 이거 참 보고 나니까 더 궁금하네요.]

“어차피 중요한 건 뒤에 나오는 ‘영웅의 대지’ 소개 영상이잖아요. 그 영상만으로 이미 대박 확정입니다.”

[그렇긴 하죠. 아무리 다른 길드들이 생방으로 강력한 한 방을 준비하고 있다고 해도 미공개 지역인 영웅의 대지를 소개하는 영상을 이길 순 없죠.]

“어차피 영상을 틀어주고 실시간으로 질문까지 받을 예정이니까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용을 써도 시청자는 무조건 제 방송으로 몰려들 겁니다.”

[당연하죠. 저 같아도 무조건 이걸 볼 거예요. 근데 복면은 꼭 쓰셔야 해요? 제가 볼 때 상혁 씨는 기본적으로 외모도 준수하고 몸매도 훌륭하셔서 메이크업만 조금 하면 여성 시청자들한테 상당히 많은 인기를 얻으실 거 같은데······.]

“약간의 콘셉트와 함께 사생활이 노출되는 게 별로 싫어서 쓰는 겁니다. 이해해주세요.”

[알았어요. 그 부분은 이미 얘길 끝낸 거니까 더는 얘기 안 할게요. 대신 첫 방송 시간인 3시간은 꽉 채워주셔야 해요. 이거 진짜 황금 시간대에 어렵게 얻어낸 시간이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일단 두 시간은 1부와 2부로 나눠서 저승길 통과 스틸 컷과 영웅의 대지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여주면서 제가 직접 질문을 받는 실시간 채팅 방송으로 채우고 나머지 한 시간은 제가 직접 영웅의 대지에 존재하는 미공개 던전을 클리어하는 도전 영상으로 채울게요. 이 정도면 풍성하죠?”

[말만 들어도 보고 싶어지네요. 좋아요. 저도 상혁 씨가 얘기하신 대로 최대한 완벽하게 준비할게요. 방송 장비는 전날 미리 상혁 씨가 원한대로 상혁 씨의 방에 세팅될 거예요. 근데 저번에 얘기한 것처럼 최대한 빨리 사무실을 따로 얻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네, 당분간만 집에서 방송하고 꼭 따로 사무실을 구할게요.”

[네, 그럼 나중에 다시 통화해요. 아! 근데 정말 저한테만이라도 살짝 원 길드의 길드원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말씀해주시면 안 되나요?]

“죄송해요. 그건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휴, 아쉽네요.]

이미래는 진심 아쉬운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LGN의 PD이면서 동시에 EL의 열혈 게이머였기 때문에 당연히 원 길드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래와 통화를 끊은 상혁은 다시 한 번 자신이 편집한 영상을 확인해 보았다. 영상의 완성도도 완성도지만 혹시라도 자신의 정체가 노출될만한 작은 실마리라도 없는지 계속 확인하는 것이었다.

벌써 이런 검토만 수십 번을 했지만, 여전히 상혁은 방심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정체가 노출되면 상당히 골치가 아플 수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언제나 신경을 써야 했다.

이미 LGN은 2주 전부터 EL의 ‘라이브채널’ 공개를 예고하고 있었다.

30개의 라이브채널과 그 채널들을 차지한 수많은 대형 길드들이 공개되자 사람들은 생각보다 더 열광했다.

그리고 방송이 나흘 남은 지금······ LGN은 화려한 예고편을 제작해 포털사이트는 물론이고 옥외 광고판까지 무차별적으로 노출을 시켰다.

LGN의 공격적인 마케팅 덕분일까? 라이브채널에 대한 기대감은 더더욱 상승했고 EL의 유저들은 너도나도 라이브채널에 관해 얘기만 하고 있었다.

[캬, 라이브채널 예고편 봤냐? 완전 죽이더라!]

[라이징 길드에선 실시간으로 스핑크스 레이드를 방송하려는 거 같던데?]

[크루세이더에선 대규모 길드전을 시작한다던데?]

[라이징? 크루세이더? 지금 그런 잡 길드들이 문제냐! 원 길드 못 봤어? 미공개 대륙을 공개한다고 하더라. 클라스가 다르고.]

[진짜? 그게 어디 나오는데?]

[예고편 마지막 부근에 나오잖아. 정확하게 명칭까진 얘기하지 않았지만, 미공개 대륙이면 뻔한 거 아니냐. ‘영웅의 대지’를 공개한다는 거지!]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라 아무리 원 길드가 대단해도 지금 저승길을 뚫는 건 불가능해. 그냥 어디 좀 큰 비밀 던전 같은 걸 찾은 것이겠지.]

[맞아, 거품 쩌는 원 길드가 저승길을 뚫었을 리가 없지. 원 길드 거품이 꺼질 때가 됐는데 왜 이렇게 안 꺼지는 거냐?]

[BJ질풍빨이 워낙 크잖아. 나도 개인적으로 원 길드는 거품이 잔뜩 들어간 길드라고 생각해서 걔들이 저승길을 뚫었다는 건 믿을 수가 없다.]

[아직도 원 길드를 빠는 애들이 있네. 거품 빠진지 오래다. 그만 빨아라.]

[좆도 모르는 것들이 거품 타령하지. 최상급 유저들에게 최고의 10개를 뽑으라고 하면 무조건 원 길드가 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건 알고나 있냐?]

[열등감 폭발하는 거지. 원 길드는 제대로 알려진 게 없어서 그렇지 길드 저력은 끝내주는 길드지.]

[저력은 개뿔. 그냥 사기꾼 BJ 한 명한테 낚인 거지.]

[그럼 LGN도 그 BJ한테 낚여서 라이브채널을 준 거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맞아. LGN도 낚인 거야.]

[어휴, 여기 병신들이 만선이네.]

······

······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은 예고편만으로도 엄청나게 시끄러워졌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라이브채널에 관해 얘기했는데 대부분이 기대된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상혁의 전생에도 라이브채널은 흥행대박을 터트린 콘텐츠였다.

오죽하면 나중엔 EL은 직접 플레이하지 않지만 EL 방송은 꼭 챙겨본다는 ‘와칭(Watching) 유저’들이 대거 생겼을 정도였다.

상혁은 마지막으로 영상을 한 번 더 검토한 후 방송 때 사용할 호랑이 가면과 깔끔한 의상을 확인해 보았다. 상혁은 몇 가지 동물 가면을 번갈아 쓰며 신분을 숨길 생각이었다.

어차피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건 게임 화면이었지 상혁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면을 쓰고 나와도 문제가 될 건 별로 없었다.

물론 이미래의 말처럼 상혁은 가면을 안 쓰는 게 오히려 더 인기를 끌 수 있었겠지만 대신 다른 것들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에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준비는 끝났고······ 이제 터트리는 일만 남았군.’

상혁은 마스크와 의상을 한쪽에 걸어둔 후 다시 캡슐을 열었다. 남는 시간은 당연히 EL 안에서 보낼 예정이었다.

* * * *

상혁은 라이브채널의 첫 방송 전까지 검왕의 무덤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며 영약을 모았다.

직접 체험을 통해 알아낸 영약의 드랍 확률은 대략 20% 정도였다.

사실 20%면 그렇게 낮은 건 아니었다.

보통의 유저들 같은 경우는 이 확률에 분배를 해야 하는 자신의 파티원들 인원 숫자도 더해야 했기 때문에 영약을 얻을 확률이 확 떨어졌다. 하지만 상혁은 솔플로 올 클리어를 했기 때문에 나눌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상혁은 지금까지 검왕의 무덤을 121번 클리어했는데 영약은 28개를 얻었다.

힘의 영약이 6개, 민첩의 영약이 5개, 체력의 영약이 3개, 지능의 영약이 4개, 지혜의 영약이 5개, 활력의 영약이 4개, 매력의 영약 1개.

그 중 최초로 얻은 힘의 영약만 더블 플러스였고 그 뒤엔 민첩의 영약 하나와 활력의 영약 하나만 원 플러스가 붙어 있었다.

플러스가 붙으면 당연히 영약의 효과도 올라갔다.

더블 플러스가 붙었던 힘의 영약은 복용하면 힘이 영구적으로 +3이 올랐다. 플러스가 붙지 않은 영약이 +1인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컸다.

당연히 원 플러스가 붙은 민첩의 영약과 활력의 영역은 +2씩 올라갔다.

이 세 개의 영약을 제외한 나머지 영약들은 모두 플러스가 붙지 않았기 때문에 +1씩만 능력치를 올려주었다.

어쨌든 상혁은 이 28개의 영약을 모두 먹어버렸다.

아낄 이유도 없었고 팔 이유도 없었다.조금씩 차이가 있긴 했지만 먹어서 나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상혁은 앞으로도 영약이 나오면 나오는 족족 다 먹어버릴 생각이었다.

‘이제 슬슬 준비해야겠네.’

상혁은 시간을 확인하곤 곧장 마을로 돌아와 로그아웃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라이브채널의 첫 방송이 3시간 뒤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첫날이었고 이것저것 알려줄 것도 많았기 때문에 이미래는 상혁의 집에 미리 와 있었다. 어차피 방송 장비는 요즘 최소화는 물론이고 자동화도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미래가 혼자서도 세팅을 할 수 있었다.

사실 그녀는 어쩌면 전설이 될지도 모르는 라이브채널 ‘원(One)’의 첫 방송을 옆에서 직접 목격하고 싶었다.

‘이건 무조건 대박이야. 이게 대박이란 사실엔 내 목도 걸 수 있어!’

이미래는 방송 준비를 끝내고 호랑이 가면을 앞에 놔둔 상태에서 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상혁을 바라보았다.

첫 방송인데 긴장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장비 세팅을 할 때도 너무나 능숙하게 장비들을 다뤘었다. 아무리 요즘 방송 장비들이 초보자도 다루기 쉽게 나왔다고 해도 지금 상혁의 방에 설치된 것들은 나름 전문가용 장비들이었다.

그런데 상혁은 그것들을 다뤄본 경험이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이미래가 나설 기회조차 없었다.

이건 마치 이미 전에도 이런 방송을 많이 해본 경험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지금만 해도 보통 사람이라면 저기 앉아서 졸고 있는 게 아니라 긴장감을 풀려고 뭐라도 했을 것이다.

‘진짜 특이하단 말이야······.’

이미래는 자신보다 상혁이 자신보다 7살이나 어리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상혁과 얘길 하다 보면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선배나, 상사와 얘기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듯 이미래는 상혁을 깨우진 않고 조용히 지켜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어차피 지금 깨워봤자 할 일도 없었다.

한 시간 정도 시간이 흐르자 상혁은 알아서 잠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깬 상혁은 자연스럽게 호랑이 가면을 쓰고 방송을 시작할 준비를 끝냈다.

이번에도 역시 이미래가 도와줄 건 없었다.

사실 상혁 입장에선 이게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전생에서 SKY팀의 라이브채널 관리는 상혁의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방송 준비는 물론이고 가끔은 방송에 출연해 경기 해설까지 했었다.

상혁은 그 짓을 거의 5년이 넘게 했다. 이런 상혁에게 방송 울렁증 같은 건 있을 수가 없었다.

“3, 2, 1, 시작합니다!”

상혁은 간단하게 카운트를 센 후 방송 시작 시각에 맞춰 미리 준비한 영상을 틀었다.

영상은 몇 장의 스틸 컷부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 스틸 컷들은 스핑크스가 무너져 내리는 스틸 컷들이었다. 그 스틸 컷 위로 천천히 새겨지는 글씨······.

‘원(One) 길드, 그들이 만들어가는 전설의 시작.’

문구가 또렷하게 새겨진 이후 영상은 그 상태로 멈추었고 그 밑에 작은 화면으로 상혁이 등장했다.

“안녕하십니까. 질풍입니다.”

그는 전혀 떨리지 않는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이번에 새롭게 LGN의 라이브채널을 통해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게 되었는데요. 우선 시작하기에 앞서······ 잠시 인사도 드리고 저희 채널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상혁이 바로 준비한 영상을 잠시 멈춰놓은 이유는 충분히 시청자가 모이길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시청자도 얼마 모이지 않았는데 처음부터 무작정 영상을 틀어주면 효율이 별로 좋지가 않았다. 밥도 뜸이 충분히 들어야 맛있는 것처럼 실시간 방송도 시청자가 충분히 입장을 해줘야 더 재미있는 법이었다.

상혁은 자신의 라이브 채널을 ‘원(One)’ 채널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이 채널은 원 길드의 공식 방송 채널이고 앞으로 원 길드의 유저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이 채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시청자들은 왜 가면을 쓴 거냐? 목소리가 좋다. 가면 좀 벗어봐라. 원 길드 가입 신청은 어디서 하는 거냐? 미공개 대륙이 어디냐? 등등 수많은 말을 쏟아냈지만 상혁은 아주 능숙하게 대답할 건 대답하고 무시할 건 무시했다.

그렇게 15분 정도를 뜸을 들이자 드디어 상혁이 원하는 수준만큼 시청자가 올라갔다.

앞에 서 있던 이미래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 정도라면 시작해도 될 것 같다고 신호를 주었다.

“자, 궁금한 것들이 많으실 텐데요. 그 궁금증은 다음 영상을 보고 제가 직접 대답해드리겠습니다.”

상혁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멈춰있던 영상을 다시 틀어주었다.

이번에도 역시 스틸 컷이었다. 그런데 그 스틸 컷이 평범하지가 않았다. 유저들이 흔히 말하는 저승길.

그 입구를 찍은 스틸 컷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스틸 컷 위로 글자가 새겨졌다.

‘Start!’

글자가 새겨지기가 무섭게 스틸 컷들이 동시에 마구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스틸 컷들은 모두 저승길 안에서 찍힌 것들이었다.

마구 학살당하는 ‘붉은 눈 오크’부터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그림자 시리즈까지······. 단순히 스틸 컷을 모아놓은 영상이긴 했지만, 워낙 편집을 잘해서 마치 보고 있는 사람이 직접 저승길을 뚫고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계속 스틸 컷이 이어지다 어느 순간 갑자기 어둠이 찾아왔다.

갑작스럽게 암흑천지로 변한 세상.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다. 어둠 속에서 미친 듯이 튀어나오는 암흑 기사들.

이건 마치 좀비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스틸 컷으로 찍어놓은 것 같은 장면이었다.

워낙 생생한 스틸 컷이라 모든 시청자가 순간적으로 움찔할 정도였다. 하지만 더 압권은 이어지는 스틸 컷들이었다.

길을 뚫고 있었다. 놀랍게도 수십, 수백의 암흑 기사들이 쓰러진 스틸 컷이 나오며 자연스럽게 길이 뚫리는 기분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마지막 장면!

하얀빛과 함께 보이는 미지의 대륙!

비록 몇 장의 스틸 컷이긴 했지만 어쨌든 영웅의 대지가 드디어 일반 유저들에게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 [33장] 첫 방송 (2) > 끝

ⓒ 성진(成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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