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60화 (60/127)

< [31장] 저승길 너머에……. (2) >

* * * *

강하고 오래가는 몬스터 분쇄기는 전생보다 훨씬 더 강력해졌다. 그렇기에 굳이 지금 다시 별명을 붙여본다면······ ‘더럽게 강력한 파멸의 결전병기’ 정도가 어울릴 것 같았다.

실제로 상혁은 압도적인 힘으로 저승길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수많은 고레벨 몬스터가 상혁을 가로막았지만, 상혁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쉽게 놈들을 쓰러트렸다. 쿼드라 소울의 저력과 강력한 아이템들의 위력. 그리고 전생에 차곡차곡 축적했던 경험이 하나로 합쳐지자 상상 이상의 시너지가 나왔고 그 결과 상혁은 진짜 가뿐하게 저승길을 돌파해 나갈 수가 있었다.

물론 저승길의 진짜 고비라 할 수 있는 마지막 1km 구간을 남겨놓고 있긴 했지만, 이 기세라면 그 구간도 무난히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촤아아아, 드드드득!

오우거슬레이어를 가볍게 휘둘러 또 한 마리의 붉은 눈 오크를 세로로 갈라버린 상혁은 고개를 돌려 앞쪽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의 매우 좁은 협곡 지형. 빛조차 제대로 들어오질 못해서 어두컴컴한 그곳은 저승길의 마지막 1Km 구간인 ‘암흑 협곡길’이었다.

이 구간이 바로 저승길의 최고 난이도 구간이었다.

이 구간에선 지금까지 징글징글하게 달려들던 붉은 눈 오크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암흑 기사’라 불리는 언데드 몬스터가 튀어나왔는데 이 녀석들은 레벨이 무려 69였다. 붉은 눈 오크보다 더 강력한 몬스터인 암흑 기사는 암흑 협곡길에서 계속 튀어나왔다.

정확히는 암흑 협곡의 어둠 속에서 계속 솟아올랐다.

만약 상혁이 놈들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면 크게 당황했을 정도로 놈들은 자주, 그리고 갑자기 튀어나왔다.

하지만 상혁은 놈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놈들을 어떻게 상대하는 게 가장 좋은 지도 생각해 왔다.

스윽.

상혁은 품속에서 한 장의 조합 카드를 꺼냈다.

‘조합카드 성스러운 빛. 이것이라면 제아무리 암흑 기사라고 해도 버티기가 힘들지.’

중급 빛의 정령 카드를 주재료로 사용하고 추가로 성수(聖水) 카드와 고급 루비 카드, 고급 다이아몬드 카드를 조합해 만드는 ‘성스러운 빛’은 제법 비싼 조합 카드였다.

이것의 효과는 두 가지였는데 첫 번째는 카드를 나나 혹은 동료에게 직접 사용할 경우 제법 강력한 ‘치유’ 효과를 기대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카드를 아이템에 사용할 경우 아이템에 신성력이 20분간 깃들었다.

상혁은 만년금골편에 조합카드 성스러운 빛을 주입했다.

츠츳, 번쩍!

만년금골편에 빛의 힘이 주입되며 만년금골편은 성(聖) 속성의 추가 능력을 얻었다.

암흑 기사는 언데드 몬스터인 동시에 암흑 속성을 지는 녀석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놈에게 성 속성은 완전 상극이었다. 물론 상혁은 단순히 상극인 성 속성만 믿고 있진 않았다.

속성 인첸트는 그저 놈들을 상대할 무기를 손에 쥐게 된 것일 뿐이었다.

가장 중요한 거 역시나 상혁 본인의 전투 능력이었다.

촤르르륵, 퍼퍼펑!

상혁은 옆으로 몸을 날리며 동시에 옆쪽으로 만년금골편을 날렸다. 신성력이 깃든 만년금골편은 이제 막 어둠에서 기어 올라오던 암흑 기사 한 마리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워낙 많은 숫자의 암흑 기사가 동시 다발적으로 어둠에서 기어 올라왔기 때문에 무조건 놈들이 완전히 형체를 갖추기 전에 미리 박살을 내는 게 최고였다.

지금만 해도 암흑 기사 네놈을 동시에 상대하느냐고 정신이 없었는데 여기서 한 마리가 더 추가되면 골치가 아플 수 있었다.

키륵, 키륵.

암흑 기사들은 신경을 굉장히 거슬리게 하는 묘한 호흡 소리만 내며 끊임없이 상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상혁은 벌써 두 시간 동안 단 몇 분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계속 전투를 이어오고 있었다.

이쯤 되면 지쳐 쓰러질 수도 있었지만, 상혁은 여전히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활력 능력이 다른 유저들보다 훨씬 뛰어나기도 했고 방어 스타일이 무조건 피하는 무한회피 유형이었기 때문에 생명력의 소모도 지극히 낮았다.

오히려 지금 상혁은 그런 것보다 조합카드가 모자랄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상혁이 준비한 조합카드 ‘성스러운 빛’은 총 12장. 코스트값이 4였기 때문에 거의 이 카드만으로 조합카드를 꽉꽉 채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지금 벌써 5장을 써버렸다.

아직도 이 협곡 지대를 벗어나려면 600m는 더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기 때문에 조합 카드가 부족할 것만 같았다.

‘아오, 징그러운 놈들.’

지겹도록 암흑 기사가 튀어나올 것이란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연히 지겨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진짜 몸으로 겪는 지겨움은 차이가 클 수밖에 없었다.

치이이익, 휘리릭!

상혁은 만년금골편을 휘둘러 가장 가까이에 있던 암흑 기사 한 놈을 휘감은 후 자신 쪽으로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푸욱, 콰아아아아!

상혁은 제대로 반항도 하지 못하고 끌려온 암흑기사의 머리에 은검(隱劍)을 쑤셔넣었다.

은검엔 신성력이 주입되어 있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데미지가 안 들어가는 건 절대 아니었다.

드드드득.

상혁은 암흑 기사의 머리에 박힌 은검을 사정없이 비틀며 놈의 몸을 오른쪽을 움직였다.

퍼퍼퍼퍼퍽!

다른 암흑 기사들이 내뻗은 공격을 자신에게 죽은 암흑 기사의 몸뚱이를 이용해 막는 상혁. 사방에서 정신없이 암흑기사가 튀어나왔지만 상혁은 이 상황에서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있었다.

퍼억! 콰과광!

상혁은 이미 죽어버린 암흑 기사의 시체를 다른 암흑 기사들에게 발로차서 던져버리곤 곧장 오른팔을 기묘한 각도로 휘둘렀다.

휘리릭, 스팟! 콰드득!

이번엔 만년금골편을 검 날처럼 날카롭게 만든 후 오른쪽에 살짝 떨어져 있던 암흑 기사의 목을 날려버렸다.

이미 상혁과 싸우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데미지를 입고 있었던 놈이었기에 한 방에 목이 날아가며 바닥에 쓰러졌다.

이제 남은 건 두 놈.

두 놈은 언데드 몬스터의 대표적인 특징인 겁을 먹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여전히 공격적인 포지션을 취하고 있었다.

상혁 입장에선 이쪽이 더 편했다.

괜히 쓸데없이 겁먹고 도망가는 몬스터들을 따라가서 죽이는 건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었다.

스륵. 스륵.

하지만 딱 여기까지만 좋았다. 상혁은 양쪽 구석의 어둠이 일렁거리기 시작하자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솟아오르는 암흑 기사들.

카르마라도 많이 주면 덜 억울할 텐데 빌어먹을 암흑 기사들은 카르마마저 쥐꼬리만큼 주었다.

“아오! 쫌!”

휘리리릭!

다시 만년금골편을 휘두르며 짜증이 잔뜩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어둠에서 솟아오르는 암흑 기사들은 끈질기게 상혁에게 들러붙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고 출구에 가까워질수록 더 많은 암흑 기사가 튀어나왔고 그런 놈들에게선 저승길을 쉽게 지나가게 나둘 순 없다는 강력한 의지가 느껴졌다.

* * * *

만약 이 모습을 한 폭의 그림으로 그린다면······ 등 뒤의 어둠 속에서 뻗어 나온 수백, 수천 개의 손이 상혁을 붙잡았고 상혁은 그 손들 뿌리치고 앞으로 한 걸음씩 걸어 나오고 있는 것으로 표현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등 뒤의 어둠이 저승길이었고 수백, 수천 개의 손이 암흑 기사였다.

상혁은 저승길의 마지막 1km구간인 암흑 협곡길에서만 무려 8시간을 쉬지 않고 싸웠다.

저승길의 출구로 가면 갈수록 암흑 기사들은 더 많이 솟아올랐고 결국 상혁은 조합카드 ‘성스러운 빛’도 떨어진 상태에서 자신의 모든 힘을 쥐어짜 거의 억지로 협곡길을 뚫고 나왔다.

이제 남은 건 불과 40m 정도.

생명력과 활력도 거의 한계에 다다랐지만 이대로 여기서 무너지면 이 더러운 과정을 다시 처음부터 반복해야 했다.

‘때려 죽여도 그렇겐 못 해!’

저승길 공략은 아무리 상혁이라고 해도 반복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결승점이 코앞인데 여기서 무너지는 건 정신적으로 너무나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휘이이잉! 드드드드드드득!

상혁은 마지막으로 힘을 쥐어짜 만년금골편을 검편(劍鞭)의 형태로 둥글게 휘두르자 사방에서 몰려들던 암흑 기사 수십 마리가 동시에 머리가 날아가며 쓰러졌다.

하지만 이래봤자 그다지 큰 의미가 있진 않았다. 쓰러진 암흑 기사들 뒤로는 수백 마리의 암흑 기사가 더 있었다.

솔직히 상혁이 알고 있던 암흑 협곡은 절대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암흑 기사들은 마치 좀비 영화에 나오는 좀비 떼처럼 꾸역꾸역 상혁을 향해 몰려들었다.

상혁이 아무리 대단해도 이걸 모조리 쓰러트리는 건 불가능했다. 수십 마리 수준도 버거웠는데 수백 마리라니······ 이건 과해도 너무 과했다.

암흑 기사가 수백 마리까지 불어나면서부터는 상혁도 그냥 정신없이 만년금골편과 오우거슬레이어를 정신없이 휘두르기만 했다. 눈앞의 상대를 없애는 것조차 벅찬 상황······ 이 모든 게 마치 버그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상혁이 알고 있던 암흑 협곡길에선 절대 이렇게 많은 암흑 기사가 등장하지 않았었다. 버그가 아니라면 이 상황을 설명하는 게 불가능했다.

어쨌든 상혁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자신에게 가까이 접근한 수십 마리의 암흑 기사들을 쓰러트렸고 그 결과 대략 몇 초 정도의 시간을 벌 수가 있었다.

기껏해야 몇 초였다.

몇 초가 지나면 다시 새로운 암흑기사들이 빈자리를 채울 게 분명했다. 물론 상혁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그럼에도 마지막 힘을 쥐어짜 최후의 발악을 하듯 주변을 정리한 건······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정말 마지막 순간에 사용하려고 남겨두었던 한 수!

상혁은 그걸 통해 이 위길 벗어날 생각이었다.

‘협곡 출구까진 대략 40m.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바로 게임오버다!’

두 번의 기회 같은 건 없었다.

한 번의 시도에 모든 게 걸려 있었다.

스윽, 상혁은 빠르게 주변을 둘러본 후 곧장 출구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즉시 자신이 쓰고 있는 투구의 아이템 스킬을 발동시켰다.

심판의 투구 아이템 스킬 ‘작은 모래 폭풍’!

상혁이 아끼고 아낀 마지막 한 수. 그건 바로 이것이었다. 물론 단순히 모래 폭풍을 사용한다고 이 위기를 탈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모래 폭풍은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 사기 스킬이 될 수도 있고 또는 쓰레기 스킬이 될 수도 있었다.

이걸 사용하는 요령은 몇 가지가 있었는데 지금 상혁은 모래 폭풍을 사용하는 요령 중 난이도가 가장 높은 ‘폭풍 서핑’을 시도할 작정이었다.

폭풍 서핑.

그것은 말 그대로 모래 폭풍을 이용해 허공에서 서핑을 타는 것이었다.

콰과과과과과과과!

상혁은 모래 폭풍을 협곡의 출구 쪽으로 힘차게 뿌린 후 곧바로 그 모래 폭풍을 향해 뛰어들었다.

모래 폭풍은 사용자인 상혁에겐 아무런 데미지도 주진 않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바람의 힘으로 상혁의 몸을 띄우는 건 가능했다.

상혁은 바로 그 물리적인 힘을 이용해 모래 폭풍타고 허공에서 서핑을 할 생각이었다.

무협소설 식으로 따진다면 허공답보(虛空踏步)의 한 수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상혁은 허공에서 몸의 균형을 유지하며 모래 폭풍을 타고 앞으로 이동했다.

암흑 기사들은 모래 폭풍에 휘말려 이리저리 튕겨나갔기 때문에 허공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상혁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허공을 날아가고 있는 상혁도 이 상황이 쉽지만은 않았다.

‘폭풍 서핑’은 절대 쉬운 게 아니었다. 일단 모래 폭풍 위에서 중심을 잡는 것 자체가 보통 감각으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생의 상혁도 무수히 많은 시도를 통해 반복 숙달한 후 사용이 가능했던 게 바로 이 ‘폭풍 서핑’이었다.

비록 얼마 전 심판의 투구를 얻은 후 감각을 찾을 겸 몇 번 연습을 하긴 했었지만 아직 감각이 완벽하게 돌아온 건 아니었다.

그리고 중심만 잡았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정확히 모래 폭풍이 나아가는 속도에 맞춰 바람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기까지 해야 했다.

대부분의 유저는 이 과정에서 바닥에 떨어지며 볼썽사납게 내팽개쳐졌다.

만약 상혁이 그렇게 된다면 그 뒤는 볼 것도 없이 뻔했다. 암흑 기사들에게 갈기갈기 찢겨 죽기 싫으면 무조건 폭풍 서핑을 끝까지 유지해 출구 밖으로 몸을 던져야 했다.

콰과과과과과과!

무서운 기세로 전방을 휩쓸고 지나가는 모래 폭풍.

그나마 다행인 건 협곡길이 워낙 협소해서 모래 폭풍의 위력이 몇 배는 증가되었고 그 결과 경로에 서 있던 수많은 암흑 기사들이 모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튕겨나갔다는 점이었다.

물론 모래 폭풍의 위력이 강해진 만큼 그 위에서 중심을 잡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상혁은 더욱 힘겹고 아슬아슬해질 수밖에 없었다.

‘떨어지면 끝이야!’

상혁은 모든 감각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후 전력을 다해 버텼다. 절대 이대로 떨어져 저승길을 처음부터 다시 뚫지 않겠다는 그의 간절한 의지가 그의 몸을 받쳐주었고 결국 그는 허공을 밟고 40m의 거리를 건너뛸 수가 있었다.

콰아아아아······.

상혁은 모래 폭풍이 소멸되는 것과 동시에 협곡 바깥쪽으로 몸을 날렸다.

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다른 건 필요 없었다. 나가기만 하면 저승길과는 영원히 헤어질 수가 있었다.

번쩍!

바로 그 순간 강렬한 빛이 상혁의 몸에 쏟아지며 상혁이 그토록 원했던 메시지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 [31장] 저승길 너머에……. (2) > 끝

ⓒ 성진(成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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