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59화 (59/127)

< [31장] 저승길 너머에……. (1) >

@ 저승길 너머에······.

“정확한 일정과 여러 중요 정보들은 수시로 보내드릴 겁니다. 아마 라이브 채널 공개가 가까워지면 저희랑 조율할 것들도 많아질 건데······ 그땐 상혁님 채널을 전담하게 된 여기 이 친구와 계속 말씀을 나누시면 됩니다.”

상혁은 LGN과의 계약을 마무리 지었다. 계약 조건도 마음에 들었고 김운호가 붙여준 전담 직원도 마음에 들었다.

이미래 PD, LGN의 몇 안 되는 여성 PD 중 한 명인 그녀는 상혁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지금은 갓 입사한 신입 PD였지만 전생의 상혁이 만났던 이미래는 EL의 모든 방송 콘텐츠를 컨트롤 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CP였다.

당시 그녀의 별명은 ‘여왕벌’.

마음에 안 들면 상대가 누구건 간에 가차 없이 독침을 쏴서 정신을 쏙 빼놓았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었다.

물론 지금은 약간 어리바리하게 느껴질 정도로 멍해 보였지만 이 바닥에 적응하고 난 뒤엔 사람이 전혀 달라질 예정이었다.

‘까다롭긴 해도 일 처리 하나는 똑 부러지는 사람이니까 나쁠 건 없네. 오히려 이런 사람이 낫지.’

상혁은 어차피 비즈니스 관계로 엮이는 것이라면 이미래처럼 확실한 사람을 더 선호했다. 괜히 개인적인 친분을 더 중요시하는 어중간한 사람이 전담 직원으로 있으면 스트레스만 쌓일 것 같았다.

상혁은 간단하게 이미래와 인사를 한 후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원래 상혁이 알고 있던 이미래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서 살짝 적응이 안 되었지만 그래도 초롱초롱한 눈빛 속에선 어렴풋이 여왕벌의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오프라인에서 모든 일을 마친 상혁은 바로 집으로 돌아와 아주 오랜만에 집안 정리를 했다. 아무래도 최근에 너무 바쁜 일이 많았기 때문에 집안 상태가 엉망이었다.

상혁은 오랜만에 집 안 청소와 정리를 한 후 집 백화점에 가서 옷 몇 벌을 샀다. 얼마 전 그동안 푸 TV에서 받은 별사탕을 정산하자 통장에 수천만 원이 입금되었다.

이번에 인페르노 피라미드를 공략하며 받은 엄청난 양의 별사탕은 아직 정산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였다.

상혁은 새삼 개인 방송의 위력을 느끼며 고급 브랜드의 옷을 몇 벌 샀다.

어차피 밖에 별로 나가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옷도 없이 동네 백수처럼 살 생각은 없었다. 돈이 있으면서도 구질구질하게 사는 건 상혁이 원하는 게 아니었다.

상혁은 나중에 돈이 더 많이 모이면 집도 이사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현실보다 가상현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고 해도 결국 인간의 삶은 현실을 기반으로 했기에 상혁은 현실의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썼다.

* * * *

오랜만에 가상현실이 아닌 현실에서 즐겁게 지낸 상혁은 다시 게임에 접속했다. 삶의 기반이 되는 곳이 현실이었다면 삶의 즐거움을 주는 곳은 이곳 EL의 세상이었기 때문에 상혁은 접속할 때마다 매번 기분이 좋았다.

게임에 접속한 상혁은 우선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부터 처리했다.

금산상단과 비선의 관리창을 열고 특이사항이 없는지 확인한 후 처리할 일을 처리했다. 그리곤 ‘골드 마운틴’에 들려 혹시라도 자신이 감정해야 할 물건이 들어와 있는지 체크를 해보았다.

팔콘과 튠에 자리를 잡은 골드 마운틴은 유저들 사이에서 제법 유명해지긴 했지만, 아직 대박이라고 할 수 있는 물건이 들어오진 않았다.

그래도 자잘하지만 분명 이득을 볼 수 있는 물건들이 끊임없이 들어왔기 때문에 이득은 계속 발생하는 중이었다.

모든 게 잘 돌아가고 있었다.

이미 상혁은 금산상단과 비선을 교묘하게 맞물려 돌아가게 해놓았기 때문에 상혁이 살짝살짝 기름칠만 해도 알아서 잘 돌아갔다.

‘어디 보자······ 레벨은 53에 고대의 지식 숙련도도 제법 많이 올랐고······ 이 정도라면 슬슬 영웅의 대지를 생각해도 되려나?’

상혁은 지옥불 사막에서 한시라도 빨리 빠져나가고 싶었다. 사실 지옥불 사막은 진짜 트리나크 행성에 존재하는 4개의 대륙 중 가장 황량한 곳이었다.

그런데 지옥불 사막과 연결된 영웅의 대지는 상황이 완벽하게 달랐다.

상혁의 전생에 유저들은 영웅의 대지를 ‘젖과 꿀이 넘치는 풍요의 땅’이라고 불렀었다.

그만큼 할 것도 많고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았다.

물론 지금시점에선 영웅의 대지로 넘어간 유저들은 한 명도 없었다.

길이 막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험한 길이지만 분명 길은 연결되어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 길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들이었다.

그곳에선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들이 등장했는데 놈들의 평균레벨은 67이었고 심지어 다수의 엘리트 등급의 몬스터까지 길 근처를 돌아다녔다.

당연한 얘기지만 몇몇 도전하기 좋아하는 유저들은 이 길을 돌파해 영웅의 대지로 진출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단 한 명도 성공하질 못했다. 은신 능력이 뛰어난 유저, 달리기가 빠른 유저, 좋은 도주 기술을 지닌 유저······ 다양한 능력을 지닌 유저들이 수없이 도전했지만 모두 중간에 비명횡사했다.

그래서 유저들은 이 길을 ‘저승길’이라고 불렀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선 저승길은 진짜 저승길이었다. 이 저승길이 공략되려면 적어도 두 달은 더 있어야 했다.

유저들의 레벨이 더 오르고 지옥불 사막에서의 파밍이 어느 정도 끝나야지만 대규모 원정대를 구성해 저승길을 넘을 수가 있었다.

그나마 거인의 동굴과는 달리 그냥 단순한 필드였기 때문에 인해전술이 어느 정도 먹혔다. 그래서 두 달인 것이지 만약 거인의 동굴처럼 인원 제한이 있는 던전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면 두 달이 아니라 다섯 달이 지나도 지나갈 수 없었다.

상혁은 바로 이 저승길을 지나가려는 중이었다.

‘영웅의 대지······ 그곳이야말로 진정한 EL 라이프가 시작되는 곳이지!’

EL이 대단한 게임인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지옥불 사막까진 아주 살짝 부족한 느낌이 들 수도 있었다. 물론 워낙 뛰어난 점들이 많아서 단점이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긴 했지만 아주 냉정하게 분석을 하면 몇 가지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영웅의 대지에 도착하는 순간 완벽하게 사라졌다.

수많은 경쟁 콘텐츠가 넘쳐나는 곳!

그곳이 바로 영웅의 대지였다. 일단 대표적인 것만 몇 개 얘기해보자면······ ‘검투의 전당’과 ‘필멸의 전당’을 들 수가 있었다.

일단 검투의 전당은 모두에게 익숙한 단어로 얘기하자면 바로 ‘투기장’이었다. 다양한 조건으로 마음껏 PvP를 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검투의 전당이었다.

이곳은 한 달 시즌제로 운영되었고 당연히 매달 순위에 따른 특별한 보상이 지급되었다.

반년에 한 번씩은 정기적으로 ‘별 중의 별’을 뽑는 ‘불멸의 검투’도 진행되었다. 또한, 그 밖에도 여러 방식의 PvP를 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PvP를 즐기는 유저들에겐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필멸의 전당은 다른 말로 ‘타임어택 레이드 던전’이라 불렸다. 당연히 이곳은 PvP보다 PvE를 좋아하는 유저들을 위한 경쟁 콘텐츠였다.

내용은 이름 그대로였다.

다양한 종류의 레이드 던전이 존재했고 이 레이드 던전에서 여러 팀이 타임어택 경쟁을 통해 승부를 겨룰 수가 있었다.

예를 들어 ‘블랙 오우거 던전’이라는 타임어택 레이드 던전이 존재하면 이 던전의 대기실에 최소 2에서 최대 10팀까지 입장을 할 수 있고 그들은 동시에 던전 공략을 시작해 누가 먼저 공략을 끝내느냐를 두고 경쟁을 할 수가 있었다.

이것 역시 검투의 전당처럼 한 달 시즌제로 운영되었고 당연히 똑같이 보상도 존재했다.

PvP를 즐기는 유저는 검투의 전당으로 그리고 PvE를 즐기는 유저는 필멸의 전당으로 가면 되었다.

물론 이것 말고도 많은 것들이 존재했다.

심지어 공개 던전도 많았고 좋은 사냥터도 넘쳐났다. 괜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저승길만 통과하면 이 모든 걸 누릴 수가 있었다. 물론 상혁 혼자 저승길을 통과하면 상혁을 상대할 이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검투의 전당이나 필멸의 전당을 이용이나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것 말고 다른 것들 때문에라도 영웅의 대지엔 하루라도 빨리 진출하는 게 좋았다.

‘저승길······ 저승길······ 아무리 나라도 저승길은 살짝 위험하긴 하겠지? 하지만 긴급 상황을 탈출할 비기도 얻었으니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

여기서 더 준비를 해봤자 레벨이나 고대의 지식 숙련도를 좀 더 올리는 수준 정도였다.

즉,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이었다.

‘사실 망설일 이유가 없잖아?’

상혁은 슬쩍 웃으면서 저승길 공략을 결정했다.

* * * *

저승길의 길이는 대략 10km 정도였다. 길 자체는 험한 산길과 같았는데 길이 아닌 곳으로 가려고 했다간 진짜 큰 낭패를 볼 수가 있었다.

길을 따라가도 수많은 고레벨 몬스터들이 나타났는데 길이 아닌 곳으로 가면 몇 발자국도 가지 못하고 몬스터들에게 포위를 당할 정도였다.

결국, 저승길을 통과하려면 이 좁은 길을 따라 10km를 뚫고 가야 했다. 다른 길 같은 건 없었다.

상혁의 기억으론 저승길을 뚫은 최초의 원정대 규모는 무려 150명을 넘었었다. 그나마 길이 너무 좁고 지형이 험해서 그 정도밖에 못 간 거지 길이 조금이라도 더 넓고 지형이 평탄했다면 천 명 단위의 인해전술 전법으로 길을 뚫었을 수도 있었다.

150명이 10km의 길을 뚫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일주일이었다. 당시 원정대는 일주일간 무척 고생을 많이 했었다.

고레벨의 몬스터가 무리를 지어 습격하고 간혹 등장한 엘리트 몬스터는 어둠 속에서 유저들을 몰래 습격해서 잡아먹곤 했기 때문에 원정대가 저승길을 완전히 통과했을 땐 겨우 50명의 유저밖에 남지 않았었다.

저승길 10km 그만큼 험난한 길이란 뜻이었다.

만만의 준비를 끝낸 상혁은 곧바로 저승길로 들어섰다. 저승길 안에선 마킹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로지 한번에 10km 길을 뚫고 나아가야 했다.

로그아웃조차도 아무 데서나 함부로 하다간 로그아웃 도중에 갑자기 어둠에서 나타난 몬스터에게 목이 날아갈 수가 있었다.

휘리릭! 콰드드득!

상혁은 만년금골편을 휘둘러 가볍게 어둠 속에 있던 그림자 늑대의 모가지를 비틀어버렸다.

그림자 늑대와 그림자 뱀 그리고 그림자 원숭이는 지옥길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암살형 몬스터였다.

이놈들은 지옥길을 더더욱 고단한 길로 만드는 주범이었는데 녀석들은 그림자 속에 숨어있다가 유저에게 달려들어 유저를 그림자 속으로 끌어들인 후 잡아먹었다.

워낙 갑작스럽게 암습을 했기 때문에 바로 옆에 있던 유저도 동료가 사라진 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놈들도 상혁에겐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은신, 어둠, 그림자.’ 이런 건 그림자 공작 타이틀까지 가지고 있는 상혁에겐 별 의미가 없는 것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놈들이 습격하기 전에 먼저 상혁이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놈들을 사냥했다.

암습 능력을 제외하곤 별 볼 일 없는 놈들이었기에 상혁의 만년금골편에 줄줄이 꼬치구이처럼 엮여 나왔다.

상혁은 그림자 시리즈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차분히 저승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그림자 시리즈의 몬스터들이 저승길을 은근히 고단하게 만드는 녀석들이었다면 저승길을 대놓고 힘겹게 만드는 놈들은 변종 오크들이었다.

평균 레벨이 65에 심지어 3~5마리씩 무리지어 돌아다니는 ‘붉은 눈 오크’. 놈들이야말로 저승길에서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몬스터였다.

취익, 취이이익.

그림자 늑대의 목을 꺾어버린 상혁은 앞쪽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네 마리의 붉은 눈 오크들.

놈들은 모두 변종 오크로 보통 오크보다 1.5배 정도 덩치가 컸다. 조금만 더 컸으면 오우거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놈들은 붉은 눈동자에서 위협적인 눈빛을 뿌리며 당장에라도 상혁을 찢어 죽일 것 같은 기세를 내뿜었다.

하지만 정작 놈들의 사냥감(?)이 된 상혁은 너무나 평온한 표정이었다.

“이 고자 새끼들······ 오랜만이네.”

붉은 눈 오크를 보며 웃는 상혁. 상혁이 놈들에게 고자 새끼들이라고 한 이유는 붉은 눈 오크가 자가 번식이 안 되는 변종 오크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건 그냥 게임의 설정일 뿐이었지만 어쨌든, 놈들이 고자인 건 맞았다.

그리고 상혁은 한때 이 고자들을 매일매일 도륙했었다.

많은 길드가 원정대를 꾸려 저승길에 도전했을 때 당연히 골드 러쉬도 원정대를 꾸렸었다. 그리고 바로 그 원정대의 선봉에 상혁이 서 있었다.

당시 상혁은 저승길에서만 수십 번이나 죽으며 온몸으로 저승길의 몬스터들을 상대했었다. 그는 작업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몬스터에게 풀었다.

마치 광전사처럼 몬스터를 학살했던 상혁. 그 모습을 본 같은 작업장의 동료들은 상혁에게 별명을 하나 붙여주었다.

‘강하고 오래가는 몬스터 분쇄기!’

이건 워낙 상혁이 화끈하게 몬스터들을 박살 냈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었다.

“너무나 또렷하게 떠오른다. 내가 너희를 어떻게 박살 냈었는지······.”

작게 중얼거리며 오우거슬레이어를 뽑는 상혁.

그는 오랜만에 분쇄기 실력을 발휘해볼 작정이었다.

< [31장] 저승길 너머에……. (1) > 끝

ⓒ 성진(成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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