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장] 라이브 채널 (2) >
* * * *
LGN의 김운호 CP는 상혁이 아주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상혁의 전생에 그는 LGN의 사장 자리까지 올라간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전생의 상혁은 그와 대화도 자주 했었고 약간의 개인적인 친분도 쌓았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금 시점에선 일어나지도 않은 전생의 일들일 뿐이었다.
“반갑습니다. 김운호입니다.”
상혁은 김운호와 직접 만났다. 아무래도 사안이 사안인지라 김운호는 직접 만나서 얘길 하고 싶어했고 상혁 역시 굳이 그걸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김운호는 상혁이 기억하는 것보다 조금 더 젊어 보였다. 실제로 전생의 상혁은 이보다 7년은 더 늙은 김운호를 만났었다.
“이상혁입니다. 아, BJ질풍이라고 해야 더 익숙하시겠죠?”
상혁은 미소를 지으며 김운호와 악수를 했다.
“게임 속에선 생각보다 모습을 많이 바꾸셨나 보네요? 실물이 훨씬 괜찮으신 거 같습니다.”
김운호는 가벼운 칭찬으로 대화를 이끌었다. 상혁도 적당히 맞춰서 대화했기 때문에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저희 LGN에선 질풍님, 정확히는 질풍님의 길드인 ‘원’ 길드와 같이 일하고 싶습니다. 대략 한 달 뒤에 먼저 30개의 라이브채널을 공개할 생각입니다. 현재 세계 유수의 길드와 팀들이 저희와 계약을 맺은 상태입니다. 단언컨대 저희와 함께하신다면 생각하셨던 것 이상의 것들을 얻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김운호는 본격적으로 라이브 채널에 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상혁이 라이브 채널이란 걸 잘 모른다고 생각해서인지 아주 상세하게 라이브 채널에 관한 설명을 해주었다.
물론 상혁은 김운호만큼이나 라이브 채널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서 김운호의 설명을 끊을 순 없었다.
상혁은 슬쩍 고민하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을 지은 후 그 상태로 김운호의 말을 경청해주었다.
“······이게 저희의 조건입니다. 혹시 수정하고 싶으신 부분이 있으신가요?”
김운호는 상혁에게 계약서까지 건네준 후 자신들이 원하는 계약 조건까지 모두 다 얘기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상혁의 기준에선 계약 조건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네,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좀 많네요.”
상혁은 슬쩍 웃으면서 계약서의 첫 페이지를 펼쳤다.
“우선 영상 저작권의 공동 소유부분부터 얘길 해볼까요?”
김운호는 상혁이 어떤 인물인지 전혀 몰랐기에 표준 계약서를 들고 상혁을 찾아왔지만 안타깝게도 상혁에게 표준 계약서는 절대 통할 수가 없었다.
상혁은 저작권부터 수익 배분율 심지어 채널의 넘버링까지 세세하게 얘길 하기 시작했다.
감독 생활을 하면서 SKY팀의 라이브 채널을 관리하는데 깊숙이 관여를 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이런 부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어떤 부분은 라이브 채널의 총 책임자인 김운호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기도 했다.
이렇게 되자 당황스러워지는 건 김운호였다.
그는 그냥 20대 초반의 꼬맹이 정도로만 생각했던 상혁이 자신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을 너무나 정확하게 지적하며 얘길 하기 시작하자 정신을 못 차리고 휘둘리기 시작했다.
백미는 수익 배분율을 얘기할 때였다. 상혁은 예상 시청자 수와 그에 따른 광고효과의 값어치 그리고 유료 영상 판매를 이용한 다양한 수익 모델을 쭉 얘기하며 김운호가 자세를 고쳐 잡고 경청을 하게 만들었다.
원래 LGN의 표준 계약서에는 LGN이 10중 7을 가져가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상혁은 이 배분율의 불합리함을 얘기하면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배분율이라고 얘길 했다.
상혁은 무조건 배분율을 바꿀 생각이었다. 그가 이렇게 강력하게 배분율을 조정하려는 이유는 이미 LGN이 몇몇 특별한 대형 길드들에겐 ‘5 : 5’를 제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김운호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기 때문에 쉽게 물러나진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가 논리적으로 얘길 한다고 라이브 채널의 모든 것을 상세하게 꿰고 있는 상혁에겐 전혀 먹히지가 않았다.
“결국은 시청률이 낮으면 라이브 채널을 반납해야 한다는 독소 조항이 존재하는 이상 LGN은 절대 손해를 볼 수가 없는 구조인 겁니다. 시청률에 대한 부담감은 직접 방송을 제작해야 하는 저희만 짊어지는 것이죠. 그런 상황에서 배분율까지 이렇게 차별을 두시는 건 좋지 않은 것 같네요. 솔직히 라이브 채널은 시작일 뿐이고······ 더 큰 것들이 존재하잖아요? 그러니 더더욱 시작을 확실하게 해야죠.”
상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김운호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김운호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이 녀석······ 뭔가를 알고 있는 건가? 아니면 단순히 감이 좋은 녀석인가?’
김운호는 상혁과 대화를 하며 상혁에 대한 평가를 수없이 계속 고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그냥 게임 잘하는 BJ였지만 이제는 상대하기가 껄끄러운 노련한 방송 전문가를 상대하는 느낌이었다.
“그럼 뭘 원하시는 건가요?”
김운호는 이대로 계속 튕기기만 한다고 일이 해결되진 않는다는 걸 인정했다. 솔직히 원 길드는 규모는 너무나 작았지만, 화제성만큼은 단연 최고인 곳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잡는 게 좋았다.
그렇기에 대화가 이렇게 길어진 것이기도 했다.
“저라고 무작정 배분율을 올려달라고 고집을 피울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배분율을 조정하고 싶을 뿐이죠. 그래서 말인데······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결국, 방송이란 건 시청률이 깡패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시청률에 따라 배분율을 조정하죠. 시청률이 낮으면 ‘9 : 1’까지 분배율을 낮춰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시청률이 높아지면 전 최대 ‘2 : 8’까지 분배율을 조정해도 될 것 같은데······ 어떠세요?”
“그 시청률이 낮은 것과 높은 것의 기준은 어느 정도인 거죠?”
“그건 현재 LGN의 시청률을 기준으로 정하면 되겠죠. 그리고 여기에 더 정확한 판단을 위해 유료 시청권의 판매기록까지 결합하면 되겠네요. 아! 아예 유료 영상 판매지수도 포함해서 복합적인 수치 계산식을 만들어보죠.”
상혁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알아서 특이한 계산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실 이 계산식은 상혁의 전생에 라이브 채널이 큰 성공을 거둔 뒤 그쪽 시장이 커지는 과정에서 생긴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며 등장한 것이었다.
당시 이걸 만든 사람은 LGN관계자가 아닌 저명한 통계학자였는데 나중엔 이 계산식이 모든 라이브 방송의 인기척도를 정하는 고유 계산식이 되었다.
원래는 앞으로 10년은 더 있어야 나올 계산식을 미리 가져다 쓰는 게 좀 미안하긴 했지만 어쨌든 상혁은 능숙한 솜씨로 계산식 하나를 완성했고 그걸 지켜보던 김운호는 너무나 놀라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완벽했다.
진짜 상혁이 제시한 계산식은 완벽하게 라이브 채널의 인기도를 계산할 수 있는 최고의 계산식이었다.
그냥 어리고 게임만 잘할 것 같았던 일개 BJ가 이런 걸 생각해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자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하면 좀 그럴 듯 하죠? 이 계산식을 이용해 인기도를 계산한 후 그걸 토대로 러닝개런티 식으로 분배율을 책정하는 겁니다. 그럼 LGN도 손해 볼 게 전혀 없잖아요.”
상혁의 말이 끝났지만, 김운호는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상혁이 제시한 방식은 너무나 놀라운 것이었다.
상혁이 보여준 계산식도 그리고 그 계산식을 통해 계약에 접근하는 방식도 너무나 합리적이라 뭐라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얜 천재인가?’
김운호는 감탄어린 시선으로 상혁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그냥 단순히 게임만 잘하는 녀석이 아니란 건 아까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이 정도라면 그냥 천재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았다.
“흠흠, 일단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 계산식······ 혹시 제가 활용해도 되는 건가요?”
“네, 그러세요.”
이건 아주 복잡한 계산식도 아니었다. 저명한 통계학자가 만들었지만, 그 통계학자가 EL의 광팬이었기에 지극히 개인적으로 만들었던 것이었다. 더욱이 그 학자가 만든 후 바로 모두에게 공개를 해버렸기 때문에 상혁의 전생에선 이쪽 관계자들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이었다. 애초에 상혁은 이걸 만든 게 아니라 그냥 ‘결과’로 나와 있는 걸 차용한 것이었기에 누가 이걸 어떻게 만들었느냐고 캐물으면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선 전생에서 그랬던 것처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계산식이 되는 게 속이 편했다.
“그리고 말씀해주신 그런 방식의 계약은 저 혼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회사로 들어가 관계자들과 회의를 한 후에 결과를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러셔야죠.”
상혁도 이 자리에서 결정이 날 것이란 곤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김운호 CP가 현재 라이브 채널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총 책임자라고 해도 상혁이 제시한 방법을 수용하려면 상부의 결제를 받아야 했다.
물론 상혁은 김운호가 며칠 내로 좋은 소식을 알려올 것이라고 확신을 하고 있긴 했다. 상혁이 알고 있는 김운호라면 절대 이 합리적인 방식을 튕겨낼 리가 없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 튕겨낸다고 해도 대안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상혁은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혹시라도 김운호가 자신의 제안을 튕겨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다 생각을 해둔 상태였다.
상혁과 김운호는 거의 두 시간 동안 이어졌던 대화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젠 진짜 코앞까지 다가온 라이브 채널 서비스······. 상혁은 자신이 원하는 조건으로 꼭 이 라이브 채널을 따낼 생각이었다.
* * * *
상혁은 연락을 기다리며 인페르노 피라미드를 다시 한 번 클리어했다. 이번엔 시청자를 위한 서비스 타임으로 3~4번째 네임드까지 BJ질풍의 모습으로 공략했다.
스핑크스를 최초로 쓰러트리며 얻은 ‘최초의 인페르노 피라미드 정복자’ 타이틀 덕분에 생각보다 더 쉽게 질풍의 모습으로 4번째 네임드까지 공략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 공략 영상은 적당히 네 개로 쪼개서 나흘에 걸쳐 방송했다.
이 방송은 살짝 김운호를 압박하는 용도이기도 했다. BJ질풍의 방송이 흥하면 흥할수록 김운호는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상혁이 현재 푸 TV방송에서 가장 파급력이 높은 BJ라는 걸 고려하면 김운호는 절대 쉽게 상혁을 내칠 수가 없었다.
[인간이 아니야. 진짜 인간이 아니야.]
[뭐 질풍이 팀플을 했다고? 결국, 다 개소리였네.]
[팀플일지 모른다고 개소리했던 놈들 다 좆 잡고 반성해라.]
[대형 길드들은 또 이거 보고 주워 먹겠네. 공개하지 말라니까 왜 이렇게 자꾸 공개하는 거야? 에이, 짜증 나.]
[뭘 그렇게 꼬였냐? 그냥 누구라도 잡으면 좋은 거지. 하여튼 남 잘되는 건 못 보는 놈들이 많다니까.]
[나만 느낀 건지 모르겠는데 1, 2 네임드를 잡을 때보다 훨씬 더 안정적으로 보이던데······ 설마 그 짧은 시간 안에 뭔가 발전이 있었던 건가?]
[뭔 말이 필요가 있겠어. 그냥 외쳐라! 질풍 만세!]
[질풍 만세!]
[질풍 만세!]
······
······
오늘도 역시나 채팅창은 질풍을 찬양하는 글들이 미친 듯이 올라왔다. 지금 시점에서 BJ질풍은 푸 TV에서 거의 교주처럼 칭송을 받았다.
특히 시청자들은 대부분이 솔플 유저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더더욱 상혁에게 감정이입을 심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간혹 질풍을 시기하는 이들이 악의적이고 근거가 전혀 없는 말들을 지어내기도 했지만 전부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미약한 의견일 뿐이었다.
김운호와 대화를 하고 정확히 5일이 지난 후 드디어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상혁은 휴대전화를 게임과 연결해 놨기 때문에 사냥 중에도 전화가 온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상혁은 일단, 메시지 보내기 기능을 통해 자신이 게임에 접속해 있다고 메시지를 보낸 후 빠르게 사냥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곤 게임에서 로그아웃한 후 곧장 김운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김운호는 상혁이 예상했던 그대로 아주 긍정적인 대답을 해주었다.
[······이렇게 살짝 수치만 조정하면 계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혁은 이미 LGN에 이런 제안을 했을 때부터 그들이 수치를 조정할 것이란 사실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예 처음 제시할 때부터 수치를 좀 높게 잡았었다. 높게 잡았던 수치가 조금 깎인 것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게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 수치는 상혁이 생각했던 것보다 약간 높았다.
“알겠습니다. 그 조건으로 계약하도록 하죠.”
[잘 생각하셨습니다. 진짜 후회하시지 않을 겁니다.]
“계약서는 그때 만났던 거기서 만나서 작성하는 걸로 하죠. 시간은······ 내일 점심 어떠세요?”
[네, 가능합니다. 제가 출발하면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상혁은 김운호와 전화를 끊고 나서야 크게 미소 지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모두가 인정하게 될 EL 최고의 금맥 중 하나인 라이브 채널을 얻어냈다. 그것도 아주 좋은 조건으로······.
이건 게임 속에서 전설급 아이템을 몇 개 얻은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소식이었다.
물론 이 금맥을 진짜 황금이 펑펑 나오는 금맥으로 키울지 아니면 구리도 잘 나오지 않는 똥맥으로 키울지는 모두 상혁에게 달려 있었지만 상혁은 자신이 있었다.
‘넘버원 채널······. 그 수식어를 따내고 만다!’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상혁의 눈빛.
그는 이런 기회를 놓칠 인물이 아니었다.
< [30장] 라이브 채널 (2) > 끝
ⓒ 성진(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