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56화 (56/127)

< [29장] 인페르노 피라미드 (2) >

* * * *

지금 시점에서 인페르노 피라미드를 공략하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었다. 네임드 몬스터는 물론이고 그곳에 등장하는 일반 몬스터도 상당히 강력했다.

이걸 죄다 뚫고 네임드를 하나씩 공략한다는 건 대형 길드들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현재 인페르노 피라미드에 도전하고 있는 길드는 이름이 알려진 길드만 거의 열 곳이 넘어갔다.

그런데 그럼에도 그들이 대부분 첫 번째 네임드 몬스터인 검은 미라를 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여전히 공략의 핵심이 뭔지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테리쿨룸이 공략 이해도가 가장 높았지만, 그들마저 확실한 답을 찾은 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상혁이 BJ질풍의 모습으로 공개한 공략 영상은 다른 길드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일까? 그동안 첫 번째 네임드에서 헤매기만 하던 대형 길드들이 순식간에 2번째 네임드인 거대화염전갈 공략까지 성공할 수가 있었다.

BJ질풍이 핵심 요령을 모두 공개해버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쯤 되자 사람들은 최초 킬이고 뭐고 하루빨리 BJ질풍이 공략 영상을 공개해주길 바라기 시작했다. 하지만 BJ질풍은 세 번째 네임드부터는 영상을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블레이크의 전투 영상을 하나씩 공개하며 사람들의 애를 태웠다. 그러는 사이 상혁은 세 번째를 넘어 네 번째, 다섯 번째······ 결국엔 여섯 번째까지 총 네 개의 네임드 몬스터를 쓰러트렸다.

원래 상혁은 이틀을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렸고 결국 사흘 동안 쉬지 않고 도전해서 결국 모조리 최초 킬을 따냈다.

그 과정에서 카르마도 많이 얻고 몇 개의 희귀(레어) 등급 타이틀과 아이템들도 얻었지만 그다지 상혁의 관심을 끌 만한 건 없었다.

첫술에 부르지 않던 배가 그 뒤 세, 네 번의 숟가락질을 했음에도 여전히 똑같았다.

하지만 상혁은 실망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직 하나······ 바로 인페르노 피라미드의 마지막 네임드 몬스터이자 상혁이 인페르노 피라미드를 선택한 이유인 보스 몬스터 ‘스핑크스’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혁이 볼 때 인페르노 피라미드에 등장하는 7마리의 네임드 몬스터 중 1~6번째 네임드 몬스터는 전부 들러리였다.

진짜는 무조건 스핑크스였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지옥불 사막에서 잡을만한 네임드 몬스터는 스핑크스밖에 없었다.

그만큼 지옥불 사막이 팍팍하다는 뜻도 되었지만 어쨌든 스핑크스는 지옥불 사막 말고 다른 대륙의 네임드 몬스터들과 비교해도 상당히 괜찮은 네임드 몬스터였다.

물론 아직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유저는 아무도 없었다. 워낙 인페르노 피라미드의 난이도가 높다 보니 스핑크스가 꿀을 잔뜩 발라놓은 네임드 몬스터란 사실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인페르노 피라미드보다 ‘신기루 궁전’이라 불리는 레이드 던전이 더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상혁이 봤을 때 신기루 궁전은 정말 별로인 던전이었다. 신기루 궁전을 수십 번 올 클리어하는 것보다 인페르노 피라미드를 1번 올 클리어하는 게 더 나아 보일 정도였다.

다만 여기서 가장 큰 문제가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스핑크스를 잡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스핑크스는 공략법을 알아도 쉽게 잡을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다. 아니, 공략법을 알아내는 것만 해도 최소 수백 번의 도전과 논의가 동반되어야 했다.

그렇기에 그 지루한 과정을 건너뛰어 바로 공략 단계로 접근할 수 있는 상혁은 시간으로 따져도 최소 열흘에서 최대 한 달 정도의 이득을 보고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공략법을 알아도 막상 실제로 잡는 건 전혀 다른 얘기였다. 특히 상혁은 모든 걸 혼자 해결해야 했다. 그렇다 보니 자신이 알고 있는 공략법을 그대로 사용하는 게 불가능한 경우가 더 많았다.

상혁은 자신이 알고 있는 네임드 몬스터에 대한 지식을 최대한 활용해 공략법 자체를 이론적으로 변형한 후 그 공략법을 이용해 네임드 몬스터에게 들이댄 후 실전에서 공략법을 수정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아무리 상혁이라고 해도 네임드 몬스터를 원 킬 내는 건 쉽지가 않았다. 특히 스핑크스와 같이 까다로운 네임드 몬스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일까? 상혁은 오늘 온종일 스핑크스에게 16번이나 도전을 했지만 모두 실패를 하고 말았다.

스핑크스는 상혁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까다로웠다.

특히 놈의 모래 폭풍 공격은 한 명이 전담해서 한쪽 구석에 몰아서 깔아놔야 했는데 상혁은 혼자이다 보니 그게 불가능했다.

결국, 상혁은 모래 폭풍 공격을 여기저기에 난잡하게 깔아놓을 수밖에 없었고 그게 결국 상혁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모래 폭풍에 한 번이라도 휘말리면 아무리 상혁이라고 해도 버틸 수가 없었다. 결국, 방법은 그것을 피하면서 싸우는 건데······ 전투가 조금만 길어져도 모래 폭풍이 온 사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원래 공략법에선 한 명이 모래 폭풍을 전담해서 몸으로 모래 폭풍의 어그로를 끌어서 한쪽 구석에 겹겹이 쌓아놔야 했다. 문제는 상혁은 기본적으로 스핑크스의 어그로를 끌고 있었기 때문에 모래 폭풍을 한쪽 구석에 쌓아 놓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솔직히 이 문제만 해결하면 스핑크스를 잡는 건 어렵지 않아 보였다.

문제가 뭔지 확실히 파악한 상혁은 잠시 게임에서 나와 모자란 잠을 자며 재정비를 했다. 그는 쉬면서도 내내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모래 폭풍을 공략할 수 있을지 고민을 했다.

그렇게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상혁은 한 가지 실마리를 찾을 수가 있었다. 그게 되는지 안 되는지는 다시 실전에서 해볼 필요가 있었지만, 이론적으론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대충 답을 찾은 상혁은 빠르게 밥을 먹고 바로 접속을 했다. 잠깐 쉬는 동안 6번째 네임드에서 스핑크스가 있는 ‘심판의 전당’까지 가는 길에 일반 몬스터들이 다시 나타나 있었지만 네임드 몬스터마저 혼자 공략하는 상혁에게 일반 몬스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상혁은 순식간에 일반 몬스터를 정리한 후 다시 심판의 전당에 입구에 달린 횃불에 불을 붙였다.

화르륵!

이 횃불은 스핑크스를 불러내는 것과 동시에 방금 상혁이 잡은 일반 몬스터들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게 해주었다.

횃불에 불이 붙는 순간 심판의 전당 땅바닥에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그 아래에서 모래가 솟구쳐 올랐다.

크어어어어어어어어!

[누가 나의 심판을 원하는가?]

심판의 전당 전체에 쩌렁쩌렁 울리는 스핑크스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솟구쳐 오른 모래가 일정한 형체를 갖추었다.

실제로 이집트에 존재하는 스핑크스와 똑같이 생긴 거대한 몬스터가 등장했는데 바로 이게 인페르노 피라미드의 최종 보스 몬스터인 ‘스핑크스’였다.

‘자, 이제 다시 시작해 볼까?’

상혁은 스핑크스를 바라보며 슬쩍 웃었다. 어떻게 보면 다소 지겨울 수 있는 레이드 공략이었지만 상혁은 즐거운 마음으로 도전에 임하고 있었다.

사실 기계처럼 그리고 노예처럼 부려지던 예전과 비교하면 현생에서 하는 모든 게임 플레이는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상혁이 시도한 방법.

그것은 바로······ 특수 타이틀인 ‘사막의 그림자 공작’의 접두 옵션인 ‘모래 인형’을 이용한 모래 폭풍 드리블 공략이었다.

가능은 할 거 같았다. 일단 모래 인형의 유지 시간이 두 시간이었는데 스핑크스의 레이드 공략 시간은 40분이었다.

즉, 40분 후엔 놈이 미쳐 날뛰기 때문에 그 전에 잡아야 한다는 뜻이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두 시간이면 공략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다만 문제는 모래 인형이 어느 정도 데미지를 입으면 소멸한다는 점이었다. 자칫 드리블을 잘못하다가 모래 폭풍에 조금이라도 휘말리면 그대로 박살이 날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모래 인형을 조종하는 데 신경을 꽤 써야 했다.

스핑크스를 상대하면서 모래 인형을 신경 써서 조종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상혁도 이게 쉬울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이것도 반복 숙달이라고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모래인형이 소환 후 소멸하지 않은 상태로 집어넣으면 남은 유지 시간만큼은 얼마든지 재소환이 가능했다.

이 얘긴 하루에 최소 3번 정도는 도전해볼 수 있단 얘기였다.

재사용 시간이 16시간이라 무작정 사용할 순 없었지만, 분명히 시도해볼 만한 공략법이었다.

EL 레이드 역사에서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10년이 넘게 최고의 레이드 팀으로 인정받은 레이드 팀 ‘헬’의 수장인 프로이드.

누군가 그에게 레이드 요령을 물으면 그는 늘 똑같이 대답했었다.

‘나름의 공략법을 찾은 후부터는 다 똑같아. 그냥 미친 듯이 들이박는 거······. 결국은 그게 최고다.’

물론 이 전에 정확한 공략법을 찾는 게 선행되어야 하긴 했지만, 공략법을 어느 정도 찾은 후부터는 결국 누가 더 실수하지 않고 공략법에 익숙해지느냐의 싸움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상혁이 유리한 점은 혼자 공략을 하는 것이었기에 실수하지 않고 익숙해지는 과정이 급격하게 짧아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그는 전생에 수없이 많은 경험을 쌓았던 인물이었기에 더더욱 실수 같은 걸 거의 하지 않았다.

* * * *

모래 인형을 사용한 공략법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모래 인형을 조종하면서 스핑크스를 상대하는 게 굉장히 어렵긴 했지만 일단 모래 폭풍을 한쪽으로 쌓아놓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잘한 실수가 나오면서 정작 자신이 큰 타격을 입거나 혹은 모래 폭풍과 함께 꼭 피해줘야 하는 ‘스핑크스의 질문’ 디버프가 쌓여버려 계속 공략을 포기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집중력이 분산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스핑크스의 질문’ 디버프는 놈이 다양한 방법으로 내뿜는 일종의 브레스와 같은 공격이었는데 이건 살짝만 닿아도 디버프가 쌓였고 이 디버프는 하나만 쌓여도 딜이 50% 이상 낮아졌기 때문에 상혁 입장에선 무조건 피해야 하는 공격이었다.

원랜 탱커가 전담해서 디버프를 쌓으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이라 기본 공략법에선 가장 쉽게 해결되는 공격이었지만 솔로 레이드는 하는 상혁에겐 그게 불가능했다.

어쨌든 여러 이유로 계속 실패를 하긴 했지만 상혁은 실패 속에서 가능성을 엿볼 수가 있었다.

가능성이 엿보였다면 그다음은 프로이드의 말처럼 계속 반복해서 들이박는 게 최고였다.

상혁은 꼬박 사흘을 스핑크스에 들이박았다.

아무래도 모래 인형 스킬 자체가 16시간의 재사용대기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무한정 도전할 수가 없었다.

사흘 동안 대략 14번의 도전을 반복할 결과 결국 상혁은 스핑크스의 마지막 5번째 페이즈에 도달할 수가 있었다.

[심판의 시간이다! 심판 시간이다!]

다섯 번째 페이즈에 돌입하자 스핑크스는 다른 모든 스킬 사용을 멈추고 오로지 두 눈에서 ‘심판의 안광(眼光)’이리 불리는 녹색 안광을 쏘아대기만 했다.

이 심판의 안광은 한눈에 봐도 절대 맞으면 안 될 것처럼 보였는데 실제로도 스치기만 해도 즉사(卽死)하는 무시무시한 공격이었다.

이런 안광을 사방으로 마구 쏴댔으니 당연히 그걸 피해야 하는 입장에선 굉장히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번 페이즈가 스핑크스의 다섯 개의 페이즈 중 가장 난이도가 어려워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공략법만 알면 너무나 쉬운 페이즈가 바로 이 다섯 번째 페이즈였다.

이 다섯 번째 페이즈의 핵심은 ‘스핑크스의 질문’이라 불리는 디버프였다.

심판의 안광은 모든 생명체를 즉사시킬 수가 있었지만, 유일하게 예외가 하나 존재했다. 그건 바로 스핑크스의 질문에 대답을 한(디버프가 쌓인) 존재에겐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디버프는 많이도 필요 없었다. 하나만이라도 있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기에 상혁은 이미 다섯 번째 페이즈로 넘어가지 직전에 디버프를 하나 쌓아놓은 상태였다.

물론 이 디버프가 생기면 디버프가 하나씩 중첩될 때마다 데미지 감소가 50%씩 곱 연산으로 계산되어 계속해서 증가하였다.

현재 상혁은 데미지가 절반으로 감소한 상태였다.

이 상태에선 아무리 방어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공격만 하면 되는 상황이라고 해도 스핑크스가 광폭화하기까지 불과 5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칫 딜이 부족할 수가 있었다.

실제로 상혁의 전생에도 다섯 번째 페이즈를 만만히 봤다가 딜이 부족해서 전멸한 팀들이 수없이 많았다.

특히 스핑크스가 가진 패시브 스킬 중 하나가 ‘끈질긴 모래 사자’였는데 그 스킬은 생명력이 10% 미만으로 떨어지면 자신이 받은 모든 데미지가 50% 감소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즉, 만만히 보다간 딜이 부족해서 광폭화 된 스핑크스를 마주할 수밖에 없단 뜻이었다.

그런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상혁이었기에 당연히 이 상황을 만만히 보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아껴두었던 조합카드 ‘흑염룡’까지 사용했고 그밖에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버프형 조합카드를 지금 사용했다.

방어 따윈 필요없는 화력 싸움!

상혁은 이 모든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끈하게 스핑크스를 향해 공격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 [29장] 인페르노 피라미드 (2) > 끝

ⓒ 성진(成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