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51화 (51/127)

< [27장] 정산 시간 (1) >

@ 정산 시간.

혼자와 다수의 싸움은 무조건 다수가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꼭 결과가 늘 똑같은 건 아니었다.

간혹 예외란 게 존재했다.

특히 규격을 한 참 벗어난 규격 외(外)의 존재에겐 일반적인 상식이 통용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바로 지금처럼!

따다다다당!

블레이크는 자신에게 날아온 다섯 발의 화살을 오우거슬레이어의 검면(劍面)으로 막아냈다. 이건 특별한 스킬 같은 게 아니라 그냥 블레이크의 임기응변식 방어였다.

물론 이런 식으로 검면을 이용해 방어하는 스킬들이 따로 있긴 했다. 그리고 그 스킬들을 이용하면 훨씬 더 쉽고 견고하게 방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스킬을 익히지 않았다고 해서 비슷한 방어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실제로 회피 능력만 해도 기본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회피율(%)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지만, 단순히 회피율만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건 아니었다.

간혹 회피율이 좀 떨어져도 그걸 자신의 뛰어난 감각을 이용해 극복해내는 유저들이 있었다.

이건 EL의 핵심 시스템 중 하나였다.

어떤 이들은 이런 점을 두고 너무 재능 위주의 게임이라며 불평불만을 쏟아냈지만 애초에 게임이란 건 평등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게임회사들이 최대한 원래 불평등했던 걸 노력으로 어느 정도 상쇄시킬 수 있게 만들어 놓았을 뿐이었다.

어쨌든 블레이크는 오랜 경험을 통해 자신이 가지지 않은 스킬임에도 그걸 비슷하게 흉내 낼 수가 있었다.

타타탁! 휘이잉, 콰드득!

그리고 또 하나, 방어 후 반격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블레이크는 앞쪽에 있던 또 한 명의 갑 조 조원을 박살 냈다. 전투는 벌써 20분이나 이어지고 있었는데······ 여전히 블레이크는 살아 있었다.

오히려 갑 조 조원만 8명이 쓰러졌다. 물론 블레이크의 상태도 그리 좋은 건 아니었다.

그의 몸엔 일곱 발의 화살이 박혀 있었고 몸 여기저기에 제법 깊어 보이는 상처도 몇 개가 보였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흑구는 눈앞에서 또 한 명의 갑 조 조원이 빛가루로 변하며 사라지자 흔들리는 눈빛으로 블레이크를 바라보았다.

분명 블레이크는 지금 당장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도 놈은 계속 갑조 조원들을 쓰러트리고 있었다.

‘괴물도 이런 괴물이 없다.’

전투를 시작할 때만 해도 흑구는 오로지 블레이크를 어떻게 괴롭혀줄까만 고민했었는데 이제는 어떻게 하면 블레이크를 쓰러트릴 수 있는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얼마 안 남았어! 계속 밀어붙여!”

흑구는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다. 분명한 건 이 상황에서 물러날 순 없다는 점이었다.

‘생명력 21%······. 젠장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쉽진 않네.’

블레이크는 습관적으로 자신의 생명력을 확인하고 동시에 주변을 살폈다. 남은 생명력이 얼마 없었고 지금도 계속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앞에 잇는 6명의 적을 쓰러트리기 전에 먼저 쓰러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상혁에겐 아직 사용하지 않는 비장의 카드가 한 장 남아 있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진짜 카드였다.

조합 카드······.

코스트값은 무려 16이었고 오로지 5일에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있는 특수한 조합 카드. 그것의 이름은 바로······.

‘조합카드 불사조의 피 한 방울······ 이것이 내가 준비한 반전 카드다.’

조합카드 ‘불사조의 피 한 방울’은 현재 상혁이 만들 수 있는 조합 카드 중 가장 등급이 높은 것이었다.

특히 이 카드는 전생에 상혁이 그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던 조합 카드였다. 그 이유는 이 카드의 조합식을 알아낸 것 자체가 회귀하기 한 달 정도 전이었기 때문이었다.

게임 속에서 얻은 몇 가지 정보와 힌트를 가지고 거의 5년을 넘게 연구를 했었다. 너무 오랫동안 붙잡고 있어서 포기까지 생각했었는데 결국 마지막 순간에 기적적으로 조합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중급 정령 카드를 다수 사용하는 점과 희귀한 재료 카드를 사용했기 때문에 상급 정령을 이용한 S급 조합카드들보다 비싼 카드가 되었지만 어쨌든 효과 자체는 최고였다.

조합 카드 ‘불사조의 피 한 방울’ [특수, 제한]

: 중급 불의 정령 카드, 중급 피의 정령 카드, 중급 땅의 정령 카드, 중급 뇌전의 정령 카드, 화염 꽃잎 카드, 레드 오우거의 심장 카드, 불도마뱀의 혓바닥 카드, 플레임 스네이크의 뼛조각 카드까지 무려 8가지의 카드를 하나로 조합해 만들 수 있는 굉장히 특별한 조합 카드. 단언컨대 이건 조합식을 찾아난 것 자체가 기적이다.

상세 효과 : 이 카드는 오로지 본인에게만 사용할 수 있고 이 카드를 사용하면 모든 생명력과 활력이 100% 회복되고 각종 부상과 중독도 완벽하게 치료됩니다. 단, 이 상태는 일시적인 것으로서 10분간만 유지된 후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갑니다. 숙련도가 올라가면 유지 시간이 길어집니다.

유지 시간 : 10분 [재사용 대기 시간 : 120시간]

특수 효과 : 10분이 지나 카드의 효과가 사라지고 원래 상태로 돌아가면 ‘불사조의 흔적’이라는 특이한 효과가 몸에 남는다. [불사조의 흔적 : 48시간 동안 치유 효과가 절반으로 감소시키지만 대신 대상이 받는 모든 데미지가 10% 감소한다.]

카드 숙련도 : 0 / 250 [숙련도 등급 D]

CP(Cost Point) : 16

거듭 말하지만, 불사조의 피 한 방울은 정말 우라지게 비싸단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비싼 조합 카드였다.

한 장을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카드들의 원가만 따져도 거의 100만 골드 정도였다. 아무리 블레이크가 골드 모자랄 걱정을 하지 않고 사는 인물이라고 해도 이런 카드를 아무 때나 남발할 순 없었다.

“2라운드······ 시작이야.”

번쩍, 화르르르륵!

블레이크는 자신의 심장에 불사조의 피 한 방울을 꽂아 넣으며 웃었다. 그러자 그의 한 줄기의 화염이 그의 몸 전체를 휘감으며 순식간에 생명력을 100% 회복시키는 건 물론이고 모든 상처를 치유해버렸다.

10분 후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겠지만 적어도 10분간은 완벽하게 회복된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블레이크가 믿고 있던 한 수가 바로 이것이었다.

비록 5일에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조합 카드였지만 한 번 사용하면 모든 걸 판 자체를 뒤집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이게 바로 카드 술사가 가진 저력이자 매력이었다.

14명도 잡지 못했던 블레이크를 6명이 잡는다는 건 당연히 불가능했다. 물론 블레이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10분뿐이었지만 10분은 절대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 * * *

한 명당 1분.

정확히 5분 만에 5명의 갑 조 조원이 모두 쓰러졌다. 예외는 없었다. 오우거슬레이어는 무자비하게 그들의 몸을 절단해버렸고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던 6명의 갑 조 조원들은 그걸 견뎌내질 못했다.

결국, 전장에 남은 건 흑구뿐이었다.

정확히는 블레이크가 흑구를 마지막까지 남겨놓은 것이었다.

“이······ 이 새끼······.”

흑구는 상혁을 바라보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이 상황은 흑구가 예상했던 상황과는 완벽하게 반대의 상황이었다. 그는 자신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있는 블레이크의 모습을 상상했었다.

흑구는 이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기에 다시 한 번 상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상혁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흑구의 공격을 막았다.

따당, 따다다당!

오우거슬레이어를 이용해 흑구가 휘두른 커다란 도를 가볍게 쳐낸 후 강력한 몸통박치기 공격으로 흑구를 날려버렸다.

꽈광! 주르르륵, 쿠쿠쿵!

사정없이 내팽개쳐지는 흑구. 이미 그의 생명력과 활력은 5% 밑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그렇기에 볼썽사납게 바닥에 내팽개쳐진 흑구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크으······.”

흑구는 어떻게든 일어나보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사이 블레이크는 흑구에게 다가와 조용히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씨발······ 좆 같네.”

만약 EL에 자살기능이 있었다면 흑구는 그냥 자살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그의 기분이 최악이란 뜻이었다.

“어때? 이제야 좀 헛된 꿈에서 깨어나는 것 같지?”

블레이크는 흑구의 망상(妄想)을 비웃었다.

“너 이 새끼 내가 언젠······.”

푸우욱! 콰드득!

블레이크는 흑구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의 머리통에 오우거슬레이어를 쑤셔 박았다. 정교한 충격 방지 시스템이 발동해 고통은 느끼지 않겠지만 대신 기분은 아주 더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천외천 길드의 용병 ‘블레이크’님이 골드 러쉬의 길드의 ‘흑구’님을 쓰러트렸습니다.

축하합니다. 누적 카르마가 한계점을 돌파하며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흑구의 죽음을 기념이라도 하듯 레벨까지 올라주었다.

이래저래 기분이 상쾌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번 전쟁에서 크게 활약하며 카르마도 상당히 많이 얻을 수 있었다.

현재 상혁의 레벨은 52였다.

이번 천금전쟁에서만 무려 2레벨을 올린 상태였다. 레벨만 올라간 게 아니라 각종 숙련도 많이 올랐다. 그리고 고대의 지식도 은근히 업그레이드되었다.

‘때가 되면 적당히 빠져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상혁은 이미 오래전에 이런 그림을 예상했었기 때문에 실제로 상대가 이렇게 나오면 어떻게 할지 이미 생각을 다 해놓았었다.

“천외천······ 너흰 무조건 후회하게 될 거야.”

작게 중얼거리며 웃는 상혁. 그는 그대로 전장을 떠났다. 그리곤 자신이 알고 있는 골드 러쉬의 작업장을 무차별적으로 털기 시작했다.

전투조를 잡는 게 아니라 작업장에서 일하는 중국의 일꾼 유저들을 학살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전쟁을 최대한 길게 끌고 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젠 그럴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작업장들을 털기 시작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전투조원을 한 명 잡는 것이나 작업장 유저를 한 명 잡는 것이나 똑같이 1킬로 기록된다는 사실이었다.

즉, 상혁 입장에선 누굴 잡아도 1만 골드란 뜻이었다.

작업장 유저는 전투조원가 달리 모여 있는 곳만 알면 얼마든지 학살을 할 수가 있었다. 그 얘긴 상혁이 천외천에게서 받아야 할 골드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추가로 골드 러쉬가 타격을 입는 건 기분 좋은 보너스 같은 것이었다.

애초에 태민이 그렇게 큰 부담이 되는데도 상혁을 전쟁 중간에 전투조에서 빼지 못한 건 어차피 상혁을 전투조에서 제외해봤자 상혁이 혼자 돌아다니면서 골드 러쉬 길드의 유저들을 사냥하기 시작하면 상황이 별로 달라질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예상했던 태민도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만큼은 절대 예상하지 못했었다.

이틀······ 상혁이 골드 러쉬의 사냥터를 무차별적으로 턴 건 단 이틀뿐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 상혁의 킬 수는 무려 716킬이 늘어나 버렸다.

골드로 환산하면······ 7,160,000골드였다.

천외천으로선 사실상 상혁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용병 계약 하나를 잘못 하는 바람에 천외천은 물론이고 천 라인이 망하게 생겨버렸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상혁이 학살을 계속 이어가지 않고 나흘 만에 멈췄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학살을 멈춘 상혁은 태민에게 만나자고 연락까지 했다.

태민은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모든 게 끝이라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시점에서 정산만 다 끝내주면 깔끔하게 계약 종료에 합의해주겠다는 건가요?”

“네, 정확히 이해하셨네요.”

웃는 얼굴로 태민에게 얘기하는 블레이크. 솔직히 태민은 블레이크가 자신에게 욕을 한바탕 쏟아낼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블레이크는 태민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냉정한 인물이었다.

“대답을 드리기 전에······ 몇 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네, 말씀하세요.”

“왜······ 화를 내지 않으시는 거죠?”

“화요? 뭘 이런 걸로 화를 내요. 어차피 세상 사는 게 다 이런 거잖아요. 그런데 그깟 배신 한 번 당했고 화낼 필요 있나요? 그리고 솔직히 화를 내면 뭐가 바뀌는데요? 그냥 괜히 나만 기분이 나빠질 뿐이죠.”

블레이크는 웃는 얼굴로 말했지만 태민은 블레이크의 웃는 얼굴 속에서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운 기운을 느꼈다.

‘잘못 건드렸군.’

그는 이제야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확실하게 깨달을 수가 있었다.

블레이크는 절대 버려서는 안 되는 패였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또 하나만······ 왜 멈추신 건가요?”

“천외천, 아니 천 라인의 지급 능력. 이걸 넘어서면 결국 파산인데······ 그렇게 되면 말짱 도루묵이잖아요. 욕심이 너무 크면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는 법이죠.”

“크음······.”

블레이크의 대답을 들은 태민은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괴물이다. 진짜 괴물 그 자체다.’

태민을 질리게 한 블레이크의 판단 능력. 그의 판단 능력은 사실 태민에게 연락을 한 타이밍만 봐도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가 있었다.

지금 게임 바깥의 커뮤니티엔 천외천의 핵심 유저 중 한 명이었던 ‘제티’란 유저가 쓴 장문의 글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긴 글이었지만 요약을 하자면 결국 천외천의 파렴치함을 낱낱이 까발리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글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바로 앞에 서 있는 블레이크였다.

‘이미 여론마저 완벽하게 자신의 편이란 걸 알고 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태민은 절망했다. 이건 협상의 여지도 없었다.

그냥 상대가 원하는 걸 다 내줄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나 하나를 희생해서 길드와 라인을······.’

최악을 생각하는 태민. 하지만 블레이크는 그것마저 예상했다는 듯이 다음 말을 이어갔다.

“혹시라도 혼자 희생할 생각을 하는 것이라면 그러지 마세요. 저와 쓴 맹약의 서를 다시 한번 잘 읽어보세요. 전 마지막에 분명 계약 주체를 태민님이 아닌 천외천 길드라고 적어놨습니다.”

퍼퍽, 블레이크의 말이 커다란 작살이 되어 태민의 가슴에 깊숙이 박혔다. 이 정도라면 더 얘기할 필요도 없어 보일 정도였다.

태민, 아니 천외천의 완벽한 패배.

그렇게 블레이크란 거인(巨人)은 천외천을 지그시 발로 누르며 웃고 있었다.

< [27장] 정산 시간 (1) > 끝

ⓒ 성진(成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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