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장] 전설의 출현 (1) >
@ 전설의 출현.
“어디서 그 정보를 얻은 건지 얘기해달라고 하면······ 대답을 하지 않겠죠?”
골저스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상혁을 바라보았다.
“저한테 어디서 얻었는지 알아내시는 것보다 어디서 정보가 샜는지를 알아내시는 게 더 빠를 걸요?”
물론 정보가 샌 곳 따윈 없었다. 그냥 한동안 골치 좀 아파 보라는 심정으로 대답한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그건 포기하죠. 그리고······ 메일로 보내주신 제안······ 그것도 받아들이죠. 단! 알고 계신 저희 길드에 대한 비밀을 지켜주신다는 약속을 하셔야 합니다. 맹약의 서에 정확하게 비밀 유지 약속을 적어주시죠.”
“어이쿠, 감사합니다. 당연하죠. 어려운 제안을 받아주시는데 그 정도는 해드려야죠······ 라는 대답을 원하시는 건가요? 아직도 착각하시는 거 같은데 급하고 불안한 건 제가 아니라 골드 러쉬입니다. 비밀을 지켜준다고 약속하면 제안을 받아주겠다고요? 거참······ 첫 만남부터 어디서 근육 돼지 새끼 한 마리가 설쳐서 짜증 나게 하더니 이건 뭐 길드마스터를 만나도 변한 게 없네요. 제안을 바꾸겠습니다. 40배가 아니라 50배로 하죠. 비밀 같은 걸 지킨다는 약속도 없습니다.”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끝까지 들으세요. 이 제안은 딱 5분간만 유지됩니다. 다음 제안은 50배가 아니라 60배라 될 것이고 그 제안 역시 5분만 유지될 겁니다. 100배가 될 때까진 계속 올려드릴게요. 하지만 100배까지도 안 받으신다면 그 뒤는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되겠죠?”
휘청이는 상대에게 소나기 펀치를 퍼붓는 상혁. 그는 조금도 물러서질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앞으로 한 발을 더 나아갔다.
이게 진정한 갑의 위엄이었다.
“으음······.”
천하의 골저스가 기세에서 밀렸다.
‘이 미친놈은 절대 물러나지 않는다.’
골저스는 상대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정상이 아닌 놈을 상대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었다.
5분은 별로 긴 시간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흘러가는 시간······. 골저스는 무슨 결정을 하든 무조건 지금 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10초 남았네요.”
카운트는 하지 않았다. 아니, 카운트할 필요가 없었다.
“50배······ 받아들이겠습니다.”
결국, 미친놈의 배짱에 골저스가 항복 선언을 했다.
“오케이, 그럼 맹약의 서를 통해 정확한 계약을 하도록 하죠.”
“대금산님······ 맹약의 서에 비밀을 지켜달라는 내용 같은 걸 넣어달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계약까지 맺는 관계인데 아까 언급하셨던 그 비밀은 당분간만이라도 혼자만 알고 계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골저스는 미친놈에겐 협박보단 부탁이 더 잘 먹힌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상혁을 바라보며 정중하게 부탁을 했다.
“후후,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정도로 어리석은 놈은 아니거든요.”
‘그래,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그리고 솔직히 그런 자잘한 금맥 몇 개 날아갔다고 해서 무너질 황금충도 아니고······.’
상혁은 정말로 골저스를 위해서 비밀을 지켜주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더 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일시적인 인내일 뿐이었다.
흑구가 날뛰고 골저스가 슬쩍 튕겨본 대가로 물건값이 40배에서 50배로 뛰어버렸다.
폭리도 이런 폭리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무리 억울해도 참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골저스는 머릿속으로 계속 '참을 인(忍)' 자를 떠올리며 한계를 뛰어넘는 인내심을 발휘했고 그 결과 무사히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 * * *
또 한 장의 맹약의 서가 작성되고 또 하나의 벤더 NPC가 설치되었다. 이 벤더 NPC에선 천외천 쪽에 설치된 벤더 NPC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물건을 팔고 있었지만, 골드 러쉬는 무조건 이 벤더 NPC를 통해서만 전쟁 물자를 구매해야 했다.
맹약의 서에 그렇게 적어놨기 때문에 이걸 어길 시엔 엄청나게 큰 페널티를 물게 되어 있었다.
어쨌든 대금산은 천외천과 골드 러쉬 양쪽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원했던 그림을 완성했다. 이젠 이들이 계속 치고받고 싸우면서 전쟁이 더더욱 커지길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물론 조용히 옆에서 팝콘이나 먹으면서 지켜보는 건 상혁의 성향과 맞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고 있던 그림엔 또 하나의 자신이 등장할 예정이었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크고 이번엔 대금산하고는 정반대인 호감형 인물을 만들어보자.’
상혁은 ‘팔콘시의 그림자 공작’ 타이틀을 이용해 또 하나의 인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번엔 상인이 아닌 무인(武人)이 될 캐릭터였기 때문에 그에 맞춰 모든 외모를 시원시원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30분가량을 집중하자 BJ질풍과는 또 다른 키도 크고 몸도 좋은 인물이 탄생했다.
‘이름은······ 블레이크. 그래, 블레이크로 하자.’
상혁은 이번에도 대충 생각나는 대로 이름을 지어서 붙였다.
순식간에 블레이크로 변한 상혁은 우선 블레이크에게 어울릴 아이템들부터 구하기 시작했다.
상혁이 구상한 블레이크의 가장 기본적인 능력은 ‘블레이드 나이트’였다. 이 고대의 지식을 기본으로 하고 그밖에 살짝 셀프 버프 형식으로 조합 카드 기술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아이템 세팅은 기존의 상혁이 유지하던 세팅과는 조금 달랐다.
상혁은 경매장에서 쓸만한 아이템들을 구매해 적당히 세팅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검은 꽤 좋은 걸 구매했다.
+5 오우거슬레이어 [희귀(Rare) ++]
- 오우거를 단번에 갈라버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위력을 지닌 대검(大劍). 길이가 1.4m로 아주 큰 크기는 아니다. 그렇기에 한 손으로도 사용할 수 있고 양손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한 손 반 검(hand-and-a-half sword)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 대검으로 오우거의 1,000마리 이상 사냥했기 때문에 특별함이 더더욱 깃들어 있다.
5번 강화가 되어 강력한 힘을 추가로 얻을 수 있었다.
[기본 능력치] 공격력 200(+40)(+100)
[특수 능력치] 힘 +40(+8)(+20)
[특수 효과] <오우거의 힘(A) : 힘이 10% 증가합니다.> <힘줄 끊기(A) : 검날에 ‘날카로움’ 효과가 적용되어 절단(切斷) 능력이 향상됩니다.>
[강화 효과] <+5강화 효과 : 힘 +40>
[보너스 효과] (1) 힘 +10 (2) 체력 +15
이건 상혁이 한동안 사용하던 여행자의 보검보다도 더 좋은 검이었다. 물론 만년금골편과는 비교하기가 힘들긴 했지만 어쨌든 당장 외부 경매사이트에만 올려도 천만 원은 우습게 받을 수 있는 아이템인 것만은 확실했다.
이 검과 함께 장인이 만든 수제 갑옷을 사 붉은색으로 염색한 상혁은 마지막으로 블레이크 전용 조합카드들을 챙기는 걸로 세팅을 끝낼 수가 있었다.
세팅을 끝낸 상혁이 찾아간 곳은 팔콘시의 용병 길드였다.
EL에서 용병은 직업이 아니라 자격이었는데 당연히 차원여행자라 불리는 유저들도 이 자격을 얻을 수가 있었다.
용병 자격을 얻으면 각종 상황에서 용병일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당연히 길드전 역시 그 상황 중 하나였다.
실제로 지금 천외천과 골드 러쉬는 용병을 모집 중이었다. 물론 이미 대금산에게 너무나 많은 골드를 뜯기는 중이었기 때문에 상혁이 기억하는 것만큼 대규모로 용병을 모집하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용병은 길드전에서 꼭 필요한 전력이었기 때문에 두 길드 모두 여력이 되는대로 계속 소집하고 있었다.
상혁은 용병 길드에서 레벨만 40을 넘으면 아무런 조건이 없이 받을 수 있는 C급 용병패를 지급 받았다.
용병패에는 또렷하게 ‘블레이크’라고 적혀 있었다.
‘혹시라도 불멸이라고 적히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었는데 다행이네. 타이틀 효과가 생각보다 더 강력한 거 같아.’
용병패를 블레이크란 이름으로 발급받은 덕분에 신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상혁은 용병패를 들고 곧장 천외천을 찾아갔다.
골드 러쉬의 저력은 생각보다 더 무시무시했기 때문에 아무리 상혁이 50배의 가격으로 골드를 마구 뜯어낸다고 해도 놈들은 충분히 버틸 여력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천외천을 찍어누를 힘까지 지니고 있었다. 전생에서도 천외천이 먼저 라인의 힘을 끌어다 썼었다.
그들은 초반부터 골드 러쉬에게 심하게 밀려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라인의 힘이라도 빌려 버틸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라인 대 라인이 붙은 첫 번째 전쟁인 천금전쟁이 발발한 것이었다.
상혁이 천외천을 찾아간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골드 러쉬에서 초반부터 밀릴 게 분명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근본적으로 상혁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골드 러쉬를 박살 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그걸 조금이라도 풀기 위해서였다.
“런닝 게런티? 용병 계약에 그런 것도 가능했어?”
천웅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태민에게 물었다.
“맹약의 서가 있는 이상 불가능할 게 뭐가 있겠어. 다만······ 아무도 그런 계약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등장하지 않았던 거지.”
“하긴 내가 용병을 한다고 해도 그런 계약은 안 하겠다. 아니······ 킬 수에 따라 돈을 달라니······ 얼마나 실력에 자신이 있으면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거지? 보통 용병들이 더 몸을 사리지 않나? 걔 A등급 용병이라도 되는 거야?”
“아니, C등급이던데?”
“근데 그렇게 자신만만해? 혹시 아무것도 몰라서 용감한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어쨌든 우리로선 별로 손해가 아니잖아. 킬 하나당 천 골드를 달라고 하더라고. 그리고 백 킬이 넘어가면 그때부턴 킬 당 만 골드를 달래.”
“정말? 혹시 그 사람······ 한 번이라도 죽으면 용병 계약이 종료되고 그 뒤론 한 달이 지나야 다시 용병 계약을 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거 아냐? 무슨 용병이 백 킬을 얘기해 십 킬이라면 모를까······.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인 거 같은데.”
“일단 용병 계약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는 알고 있었어. 그리고 내가 친절하게 용병들이 평균적으로 기록하는 킬 수가 1~2킬이란 것도 얘기해줬고.”
“그런데도 런닝 게런티로 하겠데? 그냥 일반적인 계약을 하면 C급 용병이니까 최소 일주일에 4천 골드는 보장받을 수 있는데도?”
“응, 그렇게 하겠데.”
“와, 어떤 의미에서 정말 대단한 놈이네.”
“우리 쪽에선 어떤 결과가 나오던 손해가 아니니까 원하는 대로 계약해줬어.”
“당연히 해야지. 어차피 용병들은 적당히 고기 방패로 쓰려고 계약하는 건데 알아서 열심히 해주겠다면 우리야 고맙지.”
용병은 길드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길드전에서 패배해도 책임 같은 걸 질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그들은 절대 무리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용하는 쪽에서도 용병에게 엄청나게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다만 아무리 용병이 몸을 사려도 그들은 그 자체로 상당한 전력이었기 때문에 고용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건 큰 차이가 있었다.
“아, 그리고 마나 스톤도 거의 다 떨어졌고 아무래도 강화석도 더 사야겠다. 골드 러쉬에 비해 화력이 너무 부족해서 어떤 식으로라도 보강해야겠어.”
“크으······ 또 돈이 왕창 깨지겠네. 자금은 어때? 아직은 버틸 수 있지?”
“버틸 순 있는데······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어. 이대로라면 라인의 힘을 빌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건 네가 안 된다고 했었던 거잖아?”
“원래는 당연히 안 되는 건데······ 그렇다고 이대로 말라 죽을 순 없잖아. 길드전 자체가 거의 이판사판으로 흘러가고 있어서 지금은 할 수 있는 건 뭐라도 해야 할 판국이야.”
태민은 이제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적당히 수습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죽느냐, 죽이느냐······ 무조건 둘 중 하나였다.
* * * *
“아까 말씀드렸던 것만 명심하시면 됩니다. 저도 용병분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너무 심하게 몸을 사리시는 분은 차후 맹약의 서에 적힌 계약 파기 조항에 따라 위약금을 청구할 수도 있다는 것만 잊지 말아 주세요.”
천외천 길드의 ‘A-4 전투조’를 이끌고 있는 조장 김성훈은 새롭게 투입된 용병 세 명에게 주의사항을 얘기해주곤 곧장 자신의 마킹북을 펼쳤다.
“첫 번째 이동 지역은 얼음 계곡입니다. 어제 제가 세 분에게 미리 그곳 근처에 마킹을 부탁했었는데 해놓으셨죠?”
A-4 전투조가 맡은 지역은 세 곳이었는데 김성훈은 자신의 조에 편입될 용병들에게 미리 마킹을 부탁했었다.
세 명의 용병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면 다행히 낙오자가 발생할 일은 없었다.
“자, 그럼 이동하겠습니다!”
김성훈의 말과 함께 용병 세 명과 김성훈을 포함한 전투 조원 11명이 얼음 계곡으로 이동했다.
그들의 오늘 임무는 맡은 지역들을 정찰하며 골드 러쉬의 유저들을 찾아서 제거하는 것이었다.
태민은 일단 골드 러쉬의 돈줄을 막기 위해 그들이 비밀리에 운영하고 있다는 작업장을 찾아내 공격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골드 러쉬의 작업장들을 없애서 놈들의 돈줄만 막을 수 있다면 막대한 전쟁 자금을 쓰고 있는 골드 러쉬는 스스로 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골드 러쉬의 비밀 작업장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10개의 전투조를 이용해 황혼의 땅 전 지역을 뒤지고 있었지만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여긴 없는데······. 슬쩍 힌트라도 줘야 하나.’
블레이크는 얼음 계곡으로 이동하기 전 어떻게 하면 골드 러쉬의 전투 요원들과 만날 수 있을지부터 고민했다. 그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 골드 러쉬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박살 내는 것이었다.
< [25장] 전설의 출현 (1) > 끝
ⓒ 성진(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