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40화 (40/127)

< [21장] 방송 시작 (1) >

@ 방송 시작.

상혁의 예상대로 정확히 열흘 만에 거인의 동굴을 돌파한 최초, 아니 두 번째 파티가 등장했다.

그들은 EL 5대 길드 라인 중 하나인 ‘레드(RED)’ 라인에 속 한 ‘장미기사단’의 정예 플레이어들이었다.

풍덩풍덩!

7명의 유저가 동시에 태초의 호수에 떨어졌다.

7명 모두 십 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들은 한 달 전부터 매일 같이 거인의 동굴에 헤딩했었고 매번 실패했었다.

그러다 드디어 기적적으로 성공했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파티가 하늘 거인을 열심히 들이받고 있을 걸 상상하면 더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으아아아아! 좋다! 좋아!”

장미기사단의 메인탱커였던 운휴는 아주 큰 소리로 외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진짜 시발 징글징글한 놈이었다.”

“와, 진짜 마지막에 형이 날린 작열탄 한 방이 아니었으면 하늘 거인은 분명 광폭화 했을 거야.”

“진짜 아슬아슬했지. 근데 그 전에 이미 네가 뿌린 독칼들이 놈의 생명력을 거의 다 갉아먹은 상태였어.”

장미기사단의 최정예 딜러인 롱티와 쌈Z는 서로 칭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자자, 일단 밖으로 나간 다음에 얘기하자.”

들뜬 분위기를 차분히 잡아준 건 역시 장미기사단의 길드마스터인 다크불이었다.

태초의 호수에서 빠져나온 7명의 유저들은 빠져나오는 것과 동시에 호숫가 근처에 서 있던 한 명의 NPC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응? 여기에 왠 NPC가 서 있지?”

“신대륙에 온 걸 환영해주는 NPC인가?”

7명의 유저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NPC를 향해 가까이 가보았다.

“어! 벤더인데?”

“뭐야? 여기에 왠 벤더가 있지? 설마 다른 유저가 여기에 벤더를 소환한 거야?”

“에이, 설마······ 우리가 최초인데 무슨 다른 유저가 여기에 벤더를 소환했겠어.”

“그냥 시스템적으로 소환된 NPC 벤더겠지.”

7명의 유저들은 서로 저마다 다른 의견을 얘기하며 벤더 앞에서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딱, 소리와 함께 그들 앞에 벤더가 팔고 있는 목록이 나타났다.

“팔성사이다와 이스트페이스 모래막이······ 그리고 지옥불 사막 지도?”

“거봐. 딱 사막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만 있잖아. 이거 유저가 소환한 게 아니네. 어떤 유저가 여기다 벤더를 소환하고 지도를 만들어서 팔겠어. 말도 안 돼.”

그들은 모두 다른 유저의 벤더 소환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 지도 왜 이렇게 비싸? 너무 심한 거 아냐?”

“컥! 뭐야? 왜 이렇게 비싸······. 심지어 팔성사이다랑 이스트페이스 모래막이도 엄청나게 비싼데······ 이거 완전 바가지 벤더네.”

유저들은 딱 상혁이 예상한 대로 반응했다.

상혁이 굳이 팔성사이다와 이스트페이스 모래막이를 지도와 같이 판매한 이유는 지도가 비싼 걸 바가지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다.

사막에서 몇 시간만 헤매도 어차피 살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기에 차라리 바가지란 걸 처음부터 알게 해서 이것 자체가 그냥 게임의 설정인 것처럼 느끼게 하려는 의도였다.

상혁이 마지막 순간까지 유저의 흔적을 완벽하게 지우려고 만든 일종의 노림수였다.

“대장, 이런 거 필요 없지 않을까요? 우리가 언제부터 지도 같은 거에 의지했다고······.”

“맞아, 이건 너무 비싸. 아무리 우리 중 한 명만 사도 되는 거라고 해도 이 가격은 너무해.”

“형, 일단 그냥 가보자.”

다크불 역시 길드원들과 마찬가지로 이 가격에 지도를 사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알았다. 그럼 일단 5분만 쉬었다가 바로 출발하자. 선두엔······ 마카, 네가 서라. 너 일반 스킬 ‘길 찾기’를 배웠지?”

“네, 제가 완벽하게 길을 찾아볼게요.”

마카는 자신 있는 표정으로 얘기했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배운 일반 스킬 ‘길 찾기’는 적어도 지옥불 사막에선 무용지물이었다.

10시간 후.

결국, 장미기사단의 유저들은 다시 태초의 호수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마카가 있어서 간신히 돌아올 수 있었던 거지 마카가 없었다면 돌아오는 길마저 제대로 찾지 못해서 헤맸을 가능성이 높았었다.

다크불을 비롯한 7명의 유저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했다. 지옥불 사막은 절대 지도 없이는 길을 찾을 수 있는 지역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렇게 비싸 보이던 팔성사이다와 이스트페이스의 모래막이마저 절실히 생각났었다.

이 모든 건 상혁이 예상한 그대로였다.

지옥불 사막. 그곳은 거대란 땅덩어리 그 자체가 하나의 던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환경이 좋지 않았다.

그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몇 가지가 필수품이 필요했고 그것들이 바로 상혁이 벤더에 넣어놓은 물건들이었다.

최초는 장미기사단이었지만 그들이 이후 이틀 만에 또 한 무리의 유저들이 신대륙에 도착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최고 수준의 유저들이 속속 신대륙으로 넘어왔다.

그렇게 넘어온 유저들은 모두 상혁의 고객이 되었다.

지도를 거부할 순 없었다. 오히려 나중엔 한 명이 아니라 모두가 지도를 사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을 정도였다. 어떤 이들은 온라인에 자신이 본 지도의 이미지를 토대로 인터넷판 지옥불 사막 지도를 그리기도 했었지만, 특별히 기준점으로 삼을만한 지형지물 자체가 없는 사막에선 인터넷판 지도를 들고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상혁이 제작한 지옥불 사막 지도가 아무리 비싸다고 해도 그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아이템이란 걸 고려하면 확실히 비싼 값을 하는 물건이었다.

강화 합성 스킬북, 강화 아이템 그리고 지옥불 사막 지도.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마구 팔려나가자 상혁은 진짜 일개 유저가 평생 넘볼 수 없을 정도의 골드를 벌어들였다.

물론 대략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수입이 좀 줄어들긴 시작했다. 이제 유저들이 꾸준히 지옥불 사막으로 넘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강화 합성 스킬북과 강화 아이템을 통해 얻었던 폭리는 더는 얻기가 힘들어졌다.

뒤늦게 ‘푸른 사막 오아시스’에 와서 호감도 작업을 하다가 조합 술사의 존재를 알게 된 이들이 어설프게 상혁의 밥상에 슬쩍 숟가락을 들이밀기 시작하자 상혁은 비선을 이용해 소문 하나를 내버렸다.

‘지옥불 사막에 가면 조합 술사가 있고 이 조합 술사에게 부탁하면 아이템과 스킬북을 합성하거나 강화할 수가 있다!’

이 간단한 소문 한 방에 강화 합성 스킬북과 강화 아이템 장사는 말 그대로 망했다.

상혁이 굳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부(富)의 독점 때문이었다. 솔직히 그냥 놔뒀으면 상혁도 최소 일주일 정도는 적당히 더 골드를 벌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해서 남 좋은 일 시키는 것보단 부를 좀 더 자신이 독점해 다음 사업을 편하게 진행하는 게 더 좋았다.

어차피 이제는 지옥불 사막 지도로 재미를 봐야 할 시점이었기 때문에 버릴 건 과감히 버렸다.

* * * *

상혁은 대략 40일가량 강화 합성 스킬북과 강화 아이템 장사를 하며 너무나 바쁘게 움직였었다.

오죽했으면 제대로 씻지도 못했을 정도였다.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한다는 말처럼 상혁을 끌어당길 수 있을 때 최대한 골드를 끌어모으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움직였었다.

‘이제 좀 여유가 생겼으니까 미뤄뒀던 일들을 해볼까?’

사실 상혁이 해야 할 일은 무척 많았다. 그리고 그중 가장 급하다고 생각했던 일은 바로 개인방송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이제 진짜 몇 달만 더 있으면 LGN에서 몇몇 최상위권 유저들과 접촉해 LGN에서 직통으로 관리하는 라이블 채널을 하나씩 분양해주게 되었다. 이때 라이블 채널을 미리 선점해 놓는 게 좋았다.

나중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라이브 채널을 확보하는 게 쉽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라이브 채널을 얻어서 시청자들을 확보해놓은 채널들과 그렇지 않은 채널들과의 시청률 차이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무조건 최초에 분양되는 30개의 라이블 채널 중 하나를 얻는 게 좋았다.

라이브 채널은 노다지였다. 나중엔 게임 속에서 공략이 어려운 네임드 몬스터 몇 마리를 잡는 것보다 인기 있는 라이브 채널에서 몇 시간 동안 벌어들이는 돈이 많아질 정도였다.

라이브 채널을 통해선 단지 돈만 얻는 게 아니라 인기와 명예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 바로 나중엔 라이브 채널을 가지고 있어야지만 참가할 수 있는 대회도 생겨났다.

LGN에선 무조건 라이브 채널을 100개 이하로만 유지했기 때문에 이 채널을 얻는 건 절대 쉬운 게 아니었다.

어쨌든 상혁이 개인방송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 이유도 LGN이 분양할 최초의 라이브 채널 중 하나를 분양받기 위해서였다.

푸 TV를 통해 개인방송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인프라가 구축된 라이브 채널!

DN에서 게임 좀 한다는 이들은 자신만의, 혹은 팀만의 라이블 채널을 하나 가지는 걸 꿈처럼 생각했었다.

‘방제는 뭐로 할까······.’

상혁은 방제를 먼저 고민했다. 사실 전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개인방송이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생각이 좀 달라졌다.

‘팔콘시의 그림자 공작’. 이 타이틀이 있는 이상 정체가 걸릴 걸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상혁은 개인방송용 외모를 하나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거인의 동굴 솔로플레이 공략 방송. -BJ질풍-]

‘이게 좋겠군.’

상혁은 적당히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 수 있는 제목을 적어놓은 후 방송을 켰다.

EL은 자체적으로 DN의 여러 방송시스템과 연결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게임 속에서 방송을 진행하는 건 그리 낯선 장면이 아니었다.

방송을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사람들이 처음부터 마구 들어오진 않았다.

그나마 제목이 좀 자극적이었기 때문일까? 시간이 흐르자 아무런 인지도 없이 시작한 방송치고는 사람들이 제법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인의 동굴 솔로 플레이? 이건 또 무슨 어그로 방송이야?]

[다른 거인의 동굴 공략 방송을 자주 봤었는데 대부분 최상급 랭커 7명이 줄줄이 박살이 나던데······ 이 방제 그냥 어그로 맞죠?]

[솔로 플레이는 개뿔. BJ질풍? 이 새끼 레벨이 20 이하라는데 내 손목을 건다.]

[그냥 제목으로 어그로좀 끌고 말빨로 어떻게든 시청자 좀 붙잡고 있으려는 것이겠죠.]

[그래도 꼴에 거인의 동굴 1층 입구에 서 있긴 하네요. 진짜 혼자 들어가려고 하는 건 아니겠죠.?]

[당연히 안 들어갑니다. 그냥 쇼하는 거예요. 우리가 궁금해서 안 나가고 있으니까 계속 시청자가 들어오길 기다리며 낚시하고 있는 겁니다.]

[아, ㅅㅂ 낚시인 건 알겠는데 그래도 괜히 궁금해서 나갈 수가 없네. 5분만 더 기다려보련다. 그 안에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 그냥 나가야지.]

······

······

대화창엔 여러 가지 말들이 계속 올라왔지만, 상혁은 한 마디도 대꾸하지 않고 조용히 거인의 동굴 1층 입구에 서서 시청자 수만 체크했다.

‘104명······. 뭐, 이 정도라면 충분하려나?’

어차피 오늘은 입소문을 내줄 정도의 인원만 확보하면 그만이었다. 인지도가 전혀 없는 BJ질풍이란 아이디로 이보다 더 많은 이들이 들어와 주길 기대하는 게 더 웃긴 일이었다.

‘그럼 시작해볼까?’

스으윽.

상혁은 고개를 가볍게 흔들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의 외모는 개인방송용 외모인 ‘질풍’으로 바뀌어 있었고 만년금골편은 공간확장가방 안에 고이 모셔두었다. 오늘 방송에선 평범하게 여행자의 보검만 사용할 생각이었다.

[어! 움직인다! 뭐야? 진짜 혼자 들어가는 거야?]

[아따 그 새끼 끝까지 쎈 척하네.]

[들어갔다 나오겠지.]

[무조건 들어가는 척만 하거나 혹은 들어갔다가 바로 나올 거라니까. 내 손목을 건다고 했잖아.]

[근데 뭔 말도 한마디를 안 하냐?]

[신비주의 컨셉이여 뭐여?]

······

······

채팅창엔 빠르게 채팅들이 올라왔다. 하지만 상혁은 시청자들이 무슨 말을 하든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잡소리를 지껄이는 이들은 실력으로 닥치게 하면 그만이었다.

빠르게 거인의 동굴 1층으로 진입해 곧장 오우거를 향해 달려나가는 상혁, 아니 질풍.

질풍은 빠르고 간결한 움직임으로 오우거의 공격을 피하며 검을 몇 차례 휘둘렀다. 그러자 오우거의 몸 여기저기에서 피가 솟구쳤다.

[어어어······. 저, 저게······.]

[미, 미쳤다.]

[뭐야?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으엑!!!!]

······

······

지금까지 온갖 조롱과 비난만 일삼던 시청자들은 말문이 막혔는지 제대로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질풍은 다시 한 번 검을 세 번을 휘둘렀고 그 세 번의 칼질이 오우거의 가슴과 목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마에 적중되었다.

퍼퍼퍼펑!

잘 익은 수박이 터지듯 오우거의 머리가 터져 버렸다.

그러자 채팅창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그 누구도 함부로 떠들 수가 없었다.

오우거를 혼자서 불과 20초도 걸리지 않아 잡아버리는 유저가 EL의 세상에 몇이나 될까? 넷? 둘? 단언컨대 다섯 손가락을 넘진 않을 게 거의 확실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건 지금 상혁이 자신의 모습이 아닌 타이틀 효과로 변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고 심지어 만년금골편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모든 능력치가 30% 하락하는 페널티와 주 무기 봉인.

이 상태에서도 상혁은 오우거를 순식간에 쓰러트렸다.

‘좋아. 이대로 달린다!’

채팅창은 마치 거대한 얼음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순식간에 조용해졌지만, 상혁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고 거인의 동굴 공략에 집중했다.

얼어붙은 100여 명의 시청자······ 그들이 지금부터 보게 될 거인의 동굴 솔로 플레이는 두고두고 푸 TV 시청자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회자될 예정이었다.

< [21장] 방송 시작 (1) > 끝

ⓒ 성진(成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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