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장] 골드 쓸어 담기 (1) >
@ 골드 쓸어 담기.
상혁이 떨어진 이 호수는 ‘태초의 호수’라고 불렸다. 이제 앞으로 수많은 유저들이 이곳으로 떨어질 것이고 이곳엔 자연스럽게 유저들이 만든 임시 마을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땐 이 임시 마을에서 유저들이 직접 만든 지도나 사막 여행에 꼭 필요한 소모성 아이템들 같은 걸 유저들이 노점상을 열어놓고 팔게 된다.
그때 팔리는 지도는 바로 태초의 호수와 연결이 되어 있는 지옥불 사막의 지도였다.
EL은 따로 월드맵 시스템 같은 걸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저들은 이렇게 직접 지도를 만들어서 사용하곤 했다.
다행히 지도를 저장할 수 있는 퀵슬롯은 따로 있어서 지도만 구하면 그걸 투명도까지 조절해 여러 크기로 눈앞에 띄울 수도 있었다.
물론 지도를 만들려면 ‘지도제작’이라는 일반 스킬이 필요했고 그걸 사용하면서 직접 발품을 팔아 전 지역을 돌아다녀야지만 지도를 제작할 수 있었다.
일단 시간은 아직 많았기 때문에 상혁은 지도 제작은 천천히 하기로 하고 우선 지옥불 사막의 첫 마을인 ‘푸른 오아시스’를 향해 이동했다.
사실 이정표 하나 없는 사막에서 마을을 찾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실제로 상혁의 전생에 최초로 지옥불 사막에 발을 들여놓았던 7명의 유저들도 무려 열흘을 사막에서 헤맨 끝에 겨우 푸른 오아시스를 찾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상혁은 불과 네 시간 만에 지옥불 사막의 뜨거운 열기와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의 공격을 뚫고 ‘푸른 오아시스’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이미 전생에 수없이 많이 돌아다녀 본 지옥불 사막이었기 때문에 길을 찾는 건 일도 아니었다.
순식간에 사막을 뚫고 푸른 오아시스에 도착한 상혁은 제일 먼저 마킹북에 마킹부터 했다. EL 유저라면 새로운 곳에 도착했을 땐 마킹부터 하는 게 기본이었다.
상혁이 들고 있는 마킹북은 팔콘시에서 산 최고급 마킹북이었지만 그럼에도 저장할 수 있는 마킹 포인트는 겨우 15개밖에 되지 않았다.
나중에 등장하게 될 몇몇 특별한 마킹북들은 더 많은 포인트를 찍을 수 있거나 혹은 특별한 기능이 내장되어 있긴 했지만 어쨌든 가장 쉽게 골드만 많이 주면 구할 수 있는 최고급 마킹북의 한계는 저장 포인트 15개였다.
대부분의 유저들이 사용하는 하급 마킹북은 겨우 4개밖에 포인트를 찍을 수 없었던 걸 고려하면 15개도 많은 것이긴 했다.
슈우우우우, 번쩍!
상혁은 최하급 마나스톤을 소모해 마킹을 끝낸 후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푸른 오아시스는 팔콘시의 1/20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물론 푸른 오아시스가 작은 게 아니라 팔콘시가 워낙 컸던 것이지만 어쨌든 도시 단위가 아니라 마을 단위였기 때문에 천천히 걸으면서 둘러보아도 25분 정도면 다 둘러볼 수가 있었다.
상혁은 혹시라도 바뀐 게 있는 지 한 번 둘러본 후 달라진 게 없다는 걸 확인하곤 곧장 은행으로 향했다.
대륙이 달라도 은행의 사차원창고는 공유했기 때문에 은행에 도착해 사차원창고를 불러오자 상혁이 지금까지 모아놓았던 스킬북과 아이템들이 쌓여 있는 창고가 눈앞에 나타났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상혁이 그토록 이곳을 남들보다 훨씬 빨리 오려고 노력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 그건 바로 아주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합성과 강화······ 이것을 나 혼자 독점할 수 있다면 난 남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의 돈을 벌 수가 있다!’
선점과 독점.
이것이 바로 상혁의 노림수였다.
* * * *
상혁은 이미 며칠 전부터 팔콘시의 비선을 동원해 몇 가지 소문을 흘리고 있었다. 유저들은 NPC들로부터 흘러나온 얘기는 당연히 모든 게 진실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 소문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스킬북은 합성과 강화를 할 수 있다.’
‘심지어 아이템도 강화할 수 있다.’
‘강화된 합성 스킬북은 일반 스킬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좋다.’
비선을 활용해 상혁이 사용할 수 있는 스킬 중 하나인 ‘정보 조작’을 사용하면 NPC를 통해 이런 소문을 내는 게 충분히 가능했다.
대략 일주일 전부터 이런 작업을 해놓은 덕분에 유저들 사이에선 요즘 합성과 강화가 핫이슈로 떠올라 있었다.
상혁은 은행 창고에서 꺼낸 스킬북과 아이템들을 잔뜩 들고 푸른 오아시스 한가운데에 있는 조합 술사 NPC를 찾아갔다.
사실 원칙대로라면 이 조합 술사와 대화를 하려면 호감도 작업을 통해 ‘면식’ 단계까지라도 호감도를 올려야 했다. 그리고 그건 대략 며칠은 걸리는 지겨운 작업이었다.
그리고 또 여기서 합성이나 강화를 의뢰하려면 호감도를 ‘친밀’ 단계까지 올려야 했다. 이 부분도 며칠은 걸렸다.
하지만 상혁은 ‘팔콘시의 그림자 공작’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덕분에 이 단계를 모두 패스하고 곧바로 조합 술사와 대화는 물론이고 그에게 조합과 강화를 의뢰도 할 수 있었다.
“차원을 떠돌아다니는 여행자여. 원하는 게 무엇인가?”
“이걸 합성하고 싶습니다.”
상혁은 일반 스킬 ‘수영’이 담긴 스킬북과 ‘전력질주(비전투)’가 담긴 스킬북 두 개를 꺼내 조합 술사에게 건넸다.
이 두 개를 합성하면 상혁의 전생에 거의 모든 유저가 활용했던 일반 스킬인 ‘고속 수영’이 나왔다. EL에선 수영 관련 일반 스킬은 무조건 필수였기 때문에 누구나 고속 수영 정도는 익히고 있었다.
상혁은 그렇게 고속 수영을 스킬이 담긴 합성 스킬북을 60권 정도 만들었다. 그리곤 곧장 스킬북들을 1+1로 합성해 ‘+2 고속 수영’을 20권 정도 만들고 여기에 다시 한 권의 스킬북을 더 먹여서 ‘+3 고속 수영’을 20권 정도 만들었다.
강화하지 않은 고속 수영 스킬북 60권으로 ‘+3 고속 수영’ 스킬북을 20권을 만든 것이었는데 +4부턴 조금씩 강화실패 확률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3까지만 만들었다.
합성, 강화 비용 자체는 별로 비싸지 않았기 때문에 재료가 있고 호감도 작업이 충분히 된 상태라면 이 정도까진 한방에 모두 해버릴 수가 있었다.
NPC 조합 술사에겐 적당히 여기까지만 하는 게 좋았다. 여기서 더 복잡한 합성과 높은 강화를 하려면 NPC보다는 조합 기술을 배운 유저를 찾아가는 것이 좋았다.
그들이 성공 확률은 물론이고 추가로 명품이나 신품이 나올 가능성도 훨씬 높았다.
하지만 어차피 자신이 사용할 것도 아니고 팔아먹을 것이었기 때문에 무리해서 강화할 필요가 없었다.
스킬 북은 이렇게 같은 종류의 스킬북을 이용해 강화할 수 있었지만, 일반적인 아이템을 강화하려면 ‘강화석(强化石)’이란 게 필요했다. 근데 문제는 이 강화석이 황혼의 땅에선 구할 수 없는 물건이란 점이었다.
이것은 오로지 신대륙에서만 구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상혁도 지금 시점에선 아이템 강화까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스킬북은 미리 준비해둔 게 많았기 때문에 상당히 여유가 있었다. 상혁은 강화 합성 스킬북을 대략 100권 정도 만들었다. 그리곤 그것들을 모두 공간확장가방 안에 집어넣은 후 곧장 팔콘시로 귀환을 했다.
팔콘시는 여전히 평화로웠다. 상혁이 신대륙에 진출했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모든 EL관련 커뮤니티가 뒤집어지겠지만 상혁은 당분간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알릴 생각이 없었다.
솔직히 상혁으로선 이게 알려져서 좋을 게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얻을 수 있는 건 ‘유명세’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그걸 얻기 위해선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냥 공개하지 않는 게 제일 좋았다.
팔콘시에 도착한 상혁은 자신이 만들어온 강화 합성 스킬북을 맛보기로 위탁 판매소에 5권만 올려놓았다.
물론 가격은 엄청나게 비싸게 올렸다.
재룟값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대략 마진율이 2,000%는 되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재료로 쓰인 일반 스킬북의 가격이 상당히 싼 편이었다고 해도 이 정도라면 엄청난 폭리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걸 판매하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기 때문에 가격 따윈 별로 중요하지가 않았다.
‘일단 미끼는 던져졌고······ 이제 얼마나 빨리 이걸 무는지만 두고 보면 되나?’
상혁은 슬쩍 웃으면서 바로 게임에서 로그아웃했다.
밀린 잠도 좀 자고 밥도 먹고 하면서 대략 네 시간 정도만 쉰 후에 접속할 생각이었다.
로그아웃한 후 곧장 세 시간 동안 잠을 자고 일어난 상혁은 고영양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 먹으며 테블릿 PC를 켜보았다.
“역시······ 예상대로군.”
상혁은 인게임즈에 들어간 순간 자신이 던진 미끼가 얼마나 큰 파장을 불고 왔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가 있었다.
[지금 위탁판매소에 무려 강화 합성 스킬북 등장!!]
[와, 뭐 이렇게 비싸?]
[가격 보소······. 미쳤네.]
[와······ 저거 뭐지? 요즈음 떠돌던 소문이 사실이었던 거야?]
[뭐야, 일반 스킬북이 진짜 합성도 되고 강화도 되는 것이었어? 대애박!]
[어! 하나 팔렸다!]
[뭐, 뭐야······ 갑자기 순식간에 다 팔렸어!]
[이거 분명 대형 길드들이 움직인 거네. 하여튼 이런 초희귀 아이템들은 걔들이 다 쓸어간다니까. 나 같은 소시민들은 그저 손가락만 빠는 거지.]
[내가 한 권 샀다. 거지들은 꺼져라!]
[위에 인증해봐. 어디서 구라를 쳐.]
[근데 도대체 누가 올린 거지? 어떻게 스킬북을 합성하고 강화하는 거야? 이놈의 게임은 뭐 이렇게 정보가 없어.]
[그게 EL의 매력 중 하나임.]
[매력은 개뿔. 답답해 뒤지겠다.]
······
······
상혁은 관련 글들을 쭉 읽으면서 자신이 올린 강화 합성 스킬북이 올린 지 불과 10분 만에 모두 팔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와우,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뜨거운 반응인데? 그렇다면 가격을 좀 더 올려볼까?’
어차피 5권은 대략적인 반응을 살피려고 올린 미끼들이었다. 아직도 상혁에겐 많은 강화 합성 스킬북이 남아 있었다.
상혁은 밥을 모두 먹고 시원하게 샤워를 한 후 다시 게임에 접속했다. 그리곤 이번에도 역시 5권을 위탁 판매소에 올렸는데 아까보다 가격을 올려서 올렸다.
‘자, 이것도 순삭인지 한 번 보자.’
상혁은 그렇게 물건을 올리고 차분히 기다렸다. 대략 5분 정도가 지났을까? 갑자기 5권의 스킬북들이 모두 사라졌다.
‘와우! 끝내주는구나!’
상혁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열렬히 반응해주는 유저들. 이 모든 건 상혁이 NPC를 통해 밑밥을 제대로 깔아놓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상혁의 전생에도 이런 장사를 시도한 몇몇 인물들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엔 유저들이 신대륙으로 넘어가는 타이밍 자체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고 또 넘어가서도 일반 스킬북의 조합과 합성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아내는데도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강화 합성 스킬북을 팔콘시로 가져와 팔 때는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유저들이나 사는 호구 전용 아이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 타이밍엔 이미 유저들 대부분이 신대륙에서 어렵지 않게 스킬북 합성과 강화를 할 수 있단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비싼 돈을 주고 미리 강화 합성 스킬북을 구매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벽히 달랐다.
다른 유저들이 신대륙에 진출하려면 최소 두 달은 더 있어야 했고 추가로 상혁이 비선을 통해 분위기를 제대로 잡은 덕분에 현재 강화 합성 스킬북에는 거품이 제대로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중요한 건 거품이 아무리 껴도 살 놈들은 산다는 사실이었다. 상혁은 첫날에만 대략 40권 정도의 강화 합성 스킬북을 팔았는데 마진율은 거의 2,500%에 가까웠다.
이건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봉이 김선달과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수준의 거래였다.
상혁은 일부로 첫날 모든 물건을 풀지 않았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고 합성과 강화를 할 물건들도 여전히 창고에 많이 쌓여 있었다.
이제 남은 건 골드를 싹싹 긁어모으는 일뿐이었다.
“어때? 분석할 수 있겠어?”
천외천 길드의 길드마스터인 천웅은 조바심이 나는 표정으로 자신의 오랜 친구인 태민을 바라보며 물었다.
“일단 내 영혼 스킬인 ‘분석’으론 분석할 수가 없다고 나와. 이 경우는 둘 중 하나인데······ 아직 내가 듣거나 보지 못한 기술로 만들어진 아이템이거나 혹은 그냥 이 상태 그대로 얻을 수 있는 완성템이란 뜻이야.”
“근데 완성템일 리가 없잖아. 강화 합성 스킬북······ 이게 어떻게 완성템이겠어.”
“그렇지. 그러니까 결론은 내가 듣거나 보지 못한 기술로 만들어진 아이템이란 거야.”
전형적인 열혈 게이머인 천웅과 달리 태민은 게임을 보통 사람과 다른 방식으로 즐겼다. 태민의 특기는 게임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는 EL도 그런 관점에서 즐겼었고 그 결과 굉장히 희귀한 고대의 지식인 ‘탐구하는 자’를 얻을 수가 있었다.
“그럼 뭐야 진짜 이걸 누가 만들었다는 거야? 우리도 모르는 새로운 기술로?”
“아마도······.”
“와······ 우리가, 아니 네가 모르는 새로운 기술이란 게 존재하긴 해? 하루에 20시간씩 사냥도 안하고 그런 것만 찾아다니는 게 넌데······ 너보다 더 지독한 녀석이 있다는 걸 믿어야 하는 거야?”
“세상은 넓고 능력자는 많다. 나라고 해서 모든 걸 찾아낼 순 없어.”
“쩝······ 그런가? 어쨌든 그럼 이게 대단한 물건인 건 사실인 거야?”
“대단하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이걸 지금 타이밍에 사는 건 좀 아닌 거 같아.”
“응? 왜? 내가 살펴보니까 아예 격이 다른 일반 스킬이던데······ 있으면 무조건 엄청나게 도움이 될 것 같아.”
“분명 도움은 되겠지. 그런데 내가 볼 때 이 물건엔 거품이 엄청나게 껴 있는 거 같아. 확실한 건 아닌데······ 한 명이 기술을 독점한 상태에서 가격 장난질을 치는 느낌이야.”
“그런가? 근데 그렇다고 해도 물건이 좋으면 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란 건 너도 잘 알잖아.”
“알지. 하지만 진짜 지금은 아니야. 내 말만 믿고 몇 달만 기다려봐······. 그럼 정말 말도 안 되게 가격이 내려갈 거야.”
확신에 찬 태민의 표정을 보며 천웅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나야 널 늘 믿지. 알았다. 적어도 우리 길드는 길드 차원에서 관망하는 걸로 하자.”
현재 EL 5대 길드라인 중 하나인 ‘천’라인의 마스터 길드인 천외천을 이끌고 있는 천웅의 결정. 그 결정은 곧 ‘천’라인 전체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결정했다고 해서 라인에 소속된 모든 길드원들이 그걸 지키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또 천 라인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개의 길드 라인은 모두 경쟁적으로 강화 합성 스킬북을 사들이고 있었다.
결국, 이 상황에서 웃을 수 있는 건 상혁뿐이었다.
< [20장] 골드 쓸어 담기 (1) > 끝
ⓒ 성진(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