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32화 (32/127)

< [17장] 팔콘시의 그림자 공작 (1) >

@ 팔콘시의 그림자 공작.

“우리는 이걸 ‘그림자의 다섯 가지 시련’이라고 부릅니다.”

일리아는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비선주가 되기 위해선 이 다섯 가지 시련을 통과하셔야 합니다.”

상혁은 조용히 일리아의 말을 경청했다.

“순서는 관계없지만, 이 다섯 가지 시련을 열흘 안에 끝내셔야 합니다. 참고로 기회는 한 번뿐입니다. 그리고 도전에 실패하시면 그에 응당한 대가를 치르실 겁니다.”

이건 분명한 경고였다. 도전할 기회는 절대 공짜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라 상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한 가지 이 시련은 오롯이 혼자서만 감당하셔야 합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면······ 시련은 실패한 게 됩니다.”

“네, 그것도 알겠습니다.”

다른 유저였다면 실망을 했을지 몰라도 상혁은 이 말에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는 혼자였다. 오히려 일리아가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고 말해줘서 고마울 지경이었다.

“그럼 불멸님에게 그림자의 축복이 함께하길 빌겠습니다. 아, 오신 김에 놀다 가시죠. 저희 가게 에이스를 불러드릴까요? 아니면······.”

일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뇌쇄적이란 말이 너무나도 어울릴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며 가뜩이나 짧아서 아슬아슬해 보이던 치마를 슬쩍 위로 끌어올렸다.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아찔한 허벅지······ 정말 당장에라도 달려들고 싶은 남자의 본능이 상혁의 몸속에서 미친 듯이 꿈틀거렸다.

만약 상혁이······ 전생에 후배로부터 그 말을 듣지 않았다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이 가게를 나가는 순간까지 절대 긴장을 풀면 안 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자신의 음심(淫心)을 있는 힘껏 찍어 눌렀다.

“다음에 놀도록 하죠.”

히든 퀘스트 ‘비선주가 되기 위한 자격 증명’의 숨겨진 조건을 클리어했습니다. 퀘스트가 새롭게 갱신되어 ‘그림자의 다섯 가지 시련’으로 바뀌었습니다.

조금 전 일리아의 두근두근 심장 어택은 일리아의 마지막 시험이었다. 이걸 통과하지 못했다면 상혁은 ‘그림자의 다섯 가지 시련’ 퀘스트를 받지 못하고 환락(歡樂)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퀘스트 실패 페널티를 얻은 채로 쫓겨났을 것이다.

“호호호, 평정심이 대단하거나 혹은 고자이거나 둘 중 하나인 거 같네요. 뭐, 둘 중 어디에 속하건 비선주가 될 기본적인 자격은 갖추신 거 같네요.”

웃으면서 얘기하는 일리아. 순간 상혁은 왜 ‘고자’가 비선주가 될 기본적인 자격에 들어가는 건지 이해할 순 없었지만 어쨌든 가볍게 웃으며 레인보우를 나왔다.

“휴, 진짜 죽을 만큼 힘들었다······.”

상혁은 레인보우를 빠져나오자마자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차라리 네임드 몬스터를 혼자 잡고 말지······ 저긴 진짜 마굴(魔窟)이다. 마굴······.’

상혁도 남자였고 그의 마음속에도 음란마귀가 몇 마리 정도는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음란마귀가 날뛰는 걸 억지로 참고 있다 보니 몸에 뒤틀리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일이 모두 마무리되면 기필코 다시 찾아와서 봉인을 풀고야 만다!’

상혁은 호흡을 몇 번 길게 내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곤 곧장 퀘스트 창을 열어서 자신에게 주어진 다섯 가지 시련을 확실히 확인해 보았다.

[ Quest ] ‘그림자의 다섯 가지 시련’ <연계 횟수 4>

: 발 없는 말의 주인 일리아가 제시한 다섯 가지 시련. 이것은 비선주가 되기 위해선 무조건 이겨내야 하는 것들이다. 제한 시간은 열흘. 그 안에 다섯 가지 시련을 모두 이겨내어 비선주가 될 자격을 증명하라!

진행 상황

- (1) 그림자의 강함 : 네임드급 몬스터를 한 마리 이상 처치해 업적을 남겨라. [완료]

- (2) 그림자의 친화력 : 한 명 이상의 레전드 등급의 NPC와 인연의 고리를 생성하라. [완료]

- (3) 그림자의 재능 : 두 개 이상의 ‘고대의 지식’을 소울 홀에 각인하라. [완료]

- (4) 그림자의 재력 : 유일(Unique)등급 이상의 아이템을 한 개 이상 소유하라. [완료]

- (5) 그림자의 근성 : 팔콘시 전역에서 발견되는 쥐를 3,000마리 잡아라. [0/3,000]

등급 : 히든(S)

“허어······.”

퀘스트 창을 열어본 상혁은 깜짝 놀랐다. 다섯 가지 중 무려 4가지가 이미 완료되어 있었다.

‘이거 완전히 나를 위한 퀘스트잖아!’

물론 우연의 일치겠지만, 기분이 매우 좋은 건 사실이었다.

‘쥐만 잡으면 되는 건가? 진짜 누워서 떡 먹기란 말이 절로 떠오르네.’

쥐를 잡는 건 어려운 일이 절대 아니었다. 다만 시간이 좀 많이 걸리는 매우 귀찮은 일일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마저 귀찮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만약 다른 네 가지 퀘스트까지 함께 해결해야 하는 것이었다면 열흘이란 제한 시간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런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뭔가 하늘까지 나서서 날 돕고 있는 기분이네.”

기분이 좋아진 상혁은 슬쩍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하늘 위엔 요즘 EL에서 한창 밀고 있는 하늘 광고판이 설치되어 구름으로 만들어진 신인 아이돌 그룹의 이미지가 떠 있었다.

물론 상혁은 연예계 쪽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돌 그룹의 이름조차 몰랐지만 그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슬쩍 추켜올렸다.

넓은 팔콘시 전역을 돌아다니며 쥐를 잡는 일은 역시 생각대로 지겨운 일이었다.

특히 팔콘시는 제법 깔끔하게 정비가 된 도시였기 때문에 쥐가 많이 돌아다니질 않았다. 결국, 구석진 곳을 샅샅이 뒤져야 찾을 수 있을 정도였는데······ 이게 참 고역이었다.

상혁이 10시간 동안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녀서 잡은 쥐가 정확히 279마리였다. 이 정도 속도라면 거의 엿새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쥐를 잡아야 3천 마리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이걸 다른 네 개의 퀘스트와 함께 진행해야 했다면······ 아, 생각만 해도 토할 것 같네.’

상혁은 직접 쥐를 잡아보고 나서야 왜 쥐 3,000마리를 잡는 게 거창하게 그림자의 근성이라고 불리는 건지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나마 상혁이 이런 노가다에 매우 익숙했기 때문에 아직까진 버틸 만했다. 하지만 아무리 상혁이라고 해도 다섯 가지 시련을 동시에 클리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굉장히 절망스러웠을 것 같았다.

* * * *

그나마 계속 쥐잡기에 집중하자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겨서 쥐를 잡는 속도가 빨라지긴 했다. 결국 상혁은 6일이 아닌 5일이 좀 안 되는 시간 만에 3,000이란 숫자를 다 채울 수가 있었다.

다섯 가지 시련을 모두 완료했습니다. 일리아를 찾아가 비선주의 자격을 확실히 증명하세요.

“후우······ 당분간 쥐는 정말 보기도 싫다.”

상혁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만년금골편을 팔에 감았다.

‘이제 마지막 관문인가?’

솔직히 상혁도 이제부턴 진짜 어떤 게 자신을 가로막을지 전혀 예상할 수가 없었다.

“대단하시군요. 솔직히 이 정도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닷새라니······ 열흘도 턱없이 부족한 그림자의 다섯 가지 시련을 닷새 만에 모두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일리아는 진심으로 감탄한, 아니 반한 표정을 지으며 상혁을 바라보았다.

발 없는 말의 주인 일리아가 당신에게 한눈에 반했습니다.

일리아와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일리아와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일리아와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일리아와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순간 상혁은 버그라도 생긴 줄 알았다. 하지만 버그가 아니었다. 이건 일리아가 상혁에게 한눈에 반하면서 생긴 폭발적인 호감도 상승이었다.

상혁도 아주 희귀하긴 했지만, 간혹 이런 경우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리아와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하여 한계점에 도달했습니다! 발 없는 말의 주인 일리아와 차원여행자 불멸 사이에 ‘인연(因緣)의 고리’가 생성되었습니다.

[전설(Legend)] 등급의 NPC인 ‘발 없는 말의 주인 일리아’와 인연의 고리를 생성하며 희귀 등급 타이틀인 ‘일리아의 남자’를 얻었습니다.]

‘으음? 일리아도 전설 등급 NPC였어?’

상혁은 일리아가 전설 등급 NPC란 사실에 깜짝 놀랐다. 사실 전설 등급 NPC는 그리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일리아와 인연의 고리가 생성되며 히든 퀘스트 ‘그림자의 다섯 가지 시련’의 숨겨져 있던 마지막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축하합니다. 모든 자격 증명이 끝나고 ‘비선주’가 되셨습니다. 특수 타이틀 ‘팔콘의 그림자 공작’을 얻으셨습니다.

[히든 연계 퀘스트를 클리어해 보상으로 은월편(隱月片)을 획득하셨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시스템 알림을 듣는 순간 상혁은 주먹을 불끈 쥘 수밖에 없었다.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던 일을 해냈을 때의 성취감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팔콘시 비선을 책임지고 있는 일리아가 비선주님께 인사드립니다.”

공손하게 상혁을 향해 절을 하는 일리아.

상혁은 그녀를 바라보며 묘한 성취감을 느꼈다. 마치 도도하고 까칠하게 굴던 여자를 결국 자신의 애인으로 만든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비선주가 되어 해당 비선에 속해 있는 모든 NPC와의 호감도가 ‘동료’ 단계까지 올라갔습니다.

S급 NPC 조직인 [팔콘시의 비선]을 장악해 조직 관리창에 생성됩니다. 조직 관리창을 통해 조직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유저가 NPC들의 ‘조직’을 장악해 그 조직을 관리하는 건 상혁의 전생에서도 흔히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흔해진 건 게임이 오픈되고 대략 5년 정도가 흐른 뒤였다.

처음엔 NPC의 조직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 자체도 알려지지 않았었다. 특히 S급 NPC 조직은 상혁도 처음 들어보았다. 전생에 NPC 조직을 장악한 수많은 유저들을 봤었지만, 맥시멈이 A급 조직이었다.

‘S급 조직······ 등급이 높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었지만, 설마 S급일 줄이야.’

상혁은 아무리 높아도 A급 정도일 줄 알았던 비선이 S급 조직이라 깜짝 놀랐다. 물론 그로선 등급이 높은 건 당연히 좋은 일이었다.

‘우선 조직 관리가 제일 귀찮으니까······.’

상혁은 슬쩍 일리아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NPC 조직을 관리하는 건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조심해야 할 것도 많아서 상당히 귀찮은 일이었다.

하지만 상혁은 이 모든 걸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비법을 하나 알고 있었다.

‘확실하게 믿을 수 있고 능력까지 출중한 NPC만 있다면······ 모든 게 해결되지!’

상혁과 같은 바쁜 유저를 위해 존재하는 ‘대리인 시스템’. 이것이라면 모든 걸 한 방에 해결할 수 있었다.

특히 일리아는 대리인 시스템에 최적화된 NPC라 할 수 있었다. 어쩌면 상혁이 직접 관리하는 것보다 더 잘할지도 몰랐다.

“일리아, 널 내 대리인으로 임명하겠다. 지금까지 훌륭하게 비선을 이끌어온 너의 역량이라면 내 대리인이 되기에 충분하다.”

“영광입니다.”

워낙 호감도가 높아서 반발이나 거절 같은 건 전혀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일 뿐이었다.

발 없는 말의 주인 일리아를 비선주의 대리인으로 임명하셨습니다.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일리아는 상혁에게 간단히 비선의 조직 구성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물론 그런 것들은 상혁이 조직 관리창을 열어보기만 해도 다 알 수 있는 정보들이었지만 상혁은 자신의 대리인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주었다.

물론······ 그의 마음속에서 일주일 전부터 계속 미쳐 날뛰고 있던 음란마귀의 봉인은 완전히 풀려버린 상태였다.

상혁은 고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피가 철철 끓어 넘쳐서 힘(?)이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젊은 청년이었다.

봉인이 풀린 순간 그는 한 마리의 성난 황소가 되었다.

< [17장] 팔콘시의 그림자 공작 (1) > 끝

ⓒ 성진(成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