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장] 그린 와이번 로드 (2) >
타탁, 촤르르르륵!
상혁은 그린 와이번 로드의 등에 올라타자마자 곧장 놈의 목에 만년금골편을 휘감았다.
전생에선 놈의 등에 칼을 꽂은 후 그걸 잡고 버티거나 혹은 놈의 날개 쪽에 매달려서 버티는 공략을 사용했었지만, 지금은 굳이 그런 어려운 방법을 선택할 필요가 없었다.
캬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그린 와이번 로드는 상혁이 올라타자마자 곧장 하늘 위로 치솟았다. 이제부턴 대략 15분간 놈의 등에 매달려서 놈이 지랄 발광을 하는 걸 버텨내야 했다.
떨어지면 끝이었다. 무조건 버텨서 놈이 제풀에 지치게 하는 게 바로 첫 번째 페이즈의 전부였다.
휘이이이잉, 콰과과과과!
놈은 하늘 위에서 몸을 마구 비틀며 어떻게 해서라도 상혁을 떨어트리려고 했다. 하지만 상혁은 양손으로 만년금골편을 꽉 말아 쥐고 놈의 등에 바짝 달라붙었다.
‘절대 떨어지지 않아!’
떨어트리려는 그린 와이번 로드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상혁. 그들의 치열한 공중전이 지금 시작되었다.
하늘 높이 치솟은 그린 와이번 로드는 등에 달라붙은 상혁을 떨어트리기 위해 별짓을 다 했다. 하지만 상혁은 이미 전생에 수없이 경험해본 일이었기 때문에 너무나 가볍게 와이번 로드의 발광을 견뎌냈다.
놈이 절벽을 거꾸로 내려가며 자신의 등으로 절벽을 훑고 지나갈 땐 재빨리 놈의 등이 아닌 배 쪽으로 이동해 위기를 벗어났고 놈이 몸을 마구 흔들며 상혁을 떨어트리려고 할 땐 등에 바짝 붙어서 몸의 중심을 굳건하게 유지했다.
심지어 상혁은 그 와중에도 틈틈이 미리 준비해온 단검을 이용해 계속 와이번의 몸을 찍으며 놈에게 데미지를 누적시켰다. 이렇게 첫 번째 페이즈에 놈의 생명력을 미리 깎아놓으면 두 번째 페이즈에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결국, 15분이 지났음에도 상혁은 그린 와이번 로드의 등에 매미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15분 동안 미친 듯이 발광하던 와이번은 결국 지쳐버린 후 힘없이 아래로 내려왔다. 정확히는 몬스터 설정 상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놈은 생명력과 기력이 50% 깎인 상태로 숨겨져 있던 자신의 둥지 위에 내려앉았다.
여기서 상혁이 틈틈이 깎아놓은 생명력은 추가로 더 깎였기 때문에 놈의 생명력은 거의 40%대까지 깎여 있었다.
놈은 바닥에 내려앉았지만 상혁은 놈의 등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전생의 경우를 얘기하자면 초기에 그린 와이번 로드를 잡을 땐 다들 자연스럽게 놈의 등에서 내려와 진형을 갖추고 싸웠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더 효율적인 공략법이 공개되었는데 그건 바로 공중전에 이은 지상전(地上戰)에서도 와이번 로드의 등에 올라타 싸우는 공략법이었다. 물론 이 공략법은 기본적으로 한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사사사사사사사사삭!
그린 와이번 로드의 둥지에 살고 있던 어른 손바닥만 한 와이번 기생충들이 그린 와이번 로드의 몸 위로 기어 올라왔다. 한눈에 봐도 수백 마리는 될 것 같은 놈들은 ‘흡혈’ 능력을 지닌 곤충형 몬스터들이었다.
바로 이게 문제였다.
솔직히 한 마리씩만 놓고 보면 정말 보잘것없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수백 마리라면 얘기가 달라졌다. 수백 마리의 기생충은 와이번 로드만큼이나 상대하기 어려운 대상이었다. 다행인 건 이 기생충들은 오로지 와이번 로드의 몸에서만 활동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유저들은 두 번째 페이즈가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땅에 내려와 와이번 로드를 상대했었다.
‘하지만 기생충들의 치명적인 약점이 알려지면서 새로운 공략법이 등장했지.’
상혁은 와이번 로드의 몸으로 기어오르는 기생충들을 바라보며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는 이미 상황이 이렇게 될 것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생충을 상대할 준비를 해온 상태였다. 상혁의 준비, 그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카드 조합스킬 ‘얼음 장판’!
퍼엉, 쩌저저저저저저저저적!
상혁은 자신의 발밑에 조합카드를 한 장 던졌다. 그러자 그의 발밑에 지름 4m 정도의 둥근 얼음 장판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기생충들은 그 얼음 장판 위로 올라오질 못했다.
최하급 얼음 정령카드와 얼음의 정수 그리고 두 가지 싸구려 재료카드를 조합해 만들 수 있는 이 카드는 지금까지 상혁이 사용했던 ‘노(No) 코스트’ 조합카드가 아닌 ‘1’이라는 코스트 수치를 가지고 있는 조합카드였다.
보통 코스트가 높을수록 조합카드의 위력도 강해졌다.
현재 상혁이 사용할 수 있는 최대 코스트는 ‘50’이었다. 예를 들어 상혁이 얼음 장판 조합카드만 사용한다고 치면 50장의 얼음 장판 조합카드를 보유하고 있을 수 있단 얘기였다.
조합 카드는 재료 카드들을 모아놓고 정신을 집중해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만드는 것 자체가 시간이 걸렸다. 특히 코스트가 높은 조합카드일수록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결정적으로 전투 중일 땐 아예 시스템 차원에서 조합카드를 만들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최대 코스트는 카드 술사들에게 매우 중요한 지표였다.
마력이나 체력 같은 중요한 기운을 소모하지 않고 마음껏 조합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대신 이런 페널티가 붙어 있는 것이었다.
물론 상혁이 성장할수록 최대 코스트도 계속 늘었고 또 아이템 같은 것으로도 늘릴 수가 있었기 때문에 당장 최대 코스트가 낮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어쨌든 상혁은 조합카드 ‘얼음 장판’을 넉넉하게 10장이나 만들어 온 상태였다. 얼음 장판의 유지 시간은 5분. 이 5분 동안 기생충들은 절대 장판 위로 올라올 수가 없었다.
‘냉기(冷氣)! 이게 바로 기생충들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렇게 기생충들의 접근을 막은 상혁은 와이번 로드의 목에 감긴 만년금골편을 더욱 강하게 당기며 절대 놈의 등에서 떨어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표출했다.
덕분에 등을 내준 그린 와이번 로드만 괴로운 상황이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상혁이 등에서 내려왔어야 그린 와이번 로드가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상혁은 마치 지름길을 찾아낸 사람처럼 가장 쉽고 빠른 방법으로 그린 와이번 로드를 괴롭혔다.
약점을 모두 알고 그걸 집중적으로 노리자 아무리 그린 와이번 로드가 강력한 네임드 몬스터라고 해도 버틸 수가 없었다.
상혁은 와이번 로드의 등에 매달려 계속해서 놈을 공격했고 결국, 그린 와이번 로드의 생명력이 10% 이하로 떨어졌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린 와이번 로드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온몸에서 강력한 독을 내뿜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이이이이이이.
이건 자신의 몸속에 있는 독혈(毒血)을 있는 그대로 뿜어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자폭기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세 번째 페이즈였다.
이 세 번째 페이즈의 공략법은 간단했다. 그냥 미친 듯이······ 아니, 속된 말로 좆 빠지게 뛰면 되었다.
타타타타타타타탁, 이미 상혁은 그린 와이번 로드가 몸을 부르르 떨며 세 번째 페이즈로 넘어가려고 한 그 순간 놈의 몸에서 뛰어내린 후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린 와이번 로드의 자폭 범위는 자신의 둥지 전체였기 때문에 무조건 둥지를 벗어나야 했다.
부르르르르르, 콰과과과광!
결국 그린 와이번 로드의 몸이 폭발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사방으로 치명적인 독혈이 쏟아졌다.
“으아아압!”
상혁은 폭발과 동시에 와이번 로드의 둥지 밖으로 몸을 날렸다. 물론 이대로라면 독혈과 관계없이 그대로 떨어져 죽을 수 있었다.
촤르르르르륵!
상혁은 투신자살할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몸을 비틀며 만년금골편을 둥지 위쪽으로 날렸다.
휘리리릭, 철컹!
다행히 거미줄보다 더 강력한 접착력(?)을 지닌 만년금골편이 둥지 위쪽에 튀어나와 있던 암석 돌기를 휘감았다.
콰과과과과과과!
상혁은 둥지 아래쪽에 매달린 상태에서 머리 위로 독혈이 흩날리는 걸 바라보았다. 전생엔 이걸 피하려고 마법사들의 힘을 빌렸었지만, 지금은 마법사가 없었기에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건부 필드 네임드 몬스터 ‘그린 와이번 로드’를 쓰러트렸습니다.
최초로 와이번 류 네임드 몬스터를 사냥하며 차원 여행자 중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해냈습니다. 이것은 곧 당신의 업적이 되어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유일 등급 타이틀인 [최초의 와이번 로드 사냥꾼]을 획득했습니다.
그린 와이번 로드를 최초로 쓰러트렸기 때문에 최초 처치보너스가 적용되어 그린 와이번 로드에게서 얻을 수 있는 42종류의 아이템을 모두 획득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누적 카르마가 한계점을 돌파하며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그린 와이번 로드의 처치 보너스로 ‘와이번 로드의 위엄’이란 버프가 부여됩니다.
희귀 퀘스트 ‘와이번 로드의 분노’를 클리어했습니다. 보상으로 ‘에메랄드 반지’를 획득하셨습니다.
“됐어!”
상혁은 절벽에 매달린 상태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실 아무리 상혁이라고 해도 그린 와이번 로드 사냥은 반신반의했었다. 놈은 44레벨 이상의 유저들이 5명은 모여야 잡을 수 있는 몬스터였다.
그런 녀석을 혼자 잡는 것이었기 때문에 조금만 실수를 해도 사냥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었다.
어느 정도 독기(毒氣)가 사라지자 상혁은 조심스럽게 그린 와이번 로드의 둥지로 올라갔다. 이곳 둥지는 그린 와이번 로드가 등장했을 때만 나타나는 곳이었기 때문에 한 시간 안에 사라질 곳이었다.
그린 와이번 로드가 떨어트린 아이템을 확인도 하지 않고 모조리 공간확장가방에 쓸어담은 후 곧바로 넝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로 내려온 상혁은 일단 획득한 타이틀부터 확인했다.
호칭 - ‘최초의 와이번 로드 사냥꾼’
등급 – 유일(唯一)
설명 – 누구보다 먼저 와이번 로드를 쓰러트리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각인시켜주었습니다.
효과 - [접두: 독에 대한 저항력 상승] [접미: 낙하 데미지 대폭 감소] [상시지속 효과: <뜨거운 피(A) : 파충류 계열 몬스터를 잡을 때 모든 능력치 5% 상승]
‘오호, 파충류! 이건 진짜 쓸만하겠네.’
몬스터 중엔 생각보다 파충류 계열에 속하는 놈들이 많았다. 당연히 와이번도 파충류 계열에 속했고 그밖에 최강이자 최악의 몬스터인 드래곤도 파충류였다.
그렇기에 이 호칭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아이템은 나중에 확인하고 일단 사냥부터 하자.’
특수 버프인 ‘와이번 로드의 위엄’은 16시간 동안 유지되는 버프였다. 그린 와이번 로드의 리스폰 시간은 48시간이었기 때문에 일단 버프가 유지되는 동안은 와이번 사냥에 집중하는 게 좋았다.
버프를 통해 꿀을 두 배로 빨기 시작한 상혁. 그는 진짜 다른 유저들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는 속도로 초고속 성장을 하고 있었다.
* * * *
중간에 잠깐 한 시간 정도 쉰 걸 제외하곤 버프가 유지되는 16시간 동안 사냥을 멈추지 않았던 상혁은 버프가 끝나자마자 팔콘시로 돌아와 접속을 끊었다.
그리곤 충분히 잠을 잔 후 다시 접속했다.
워낙 피곤해서 아이템 같은 건 전혀 정리하지 않고 접속을 끊었었기 때문에 다시 접속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공간확장가방에 쌓여 있던 아이템들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템을 정리하던 상혁은 생각지도 못했던 물건을 하나 발견했다.
“헐······ 이게······.”
상혁의 손에 들려있는 길죽한 붉은색 수정······.
이건 평범한 아이템이 아니었다.
‘피의 지식, 이게 왜 여기에······ 아! 와이번 로드가 떨어뜨린 건가?’
피의 지식. 그것은 큰 범위에서 보면 고대의 지식 안에 포함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고대의 지식과 다르게 ‘피’를 통해 고유의 힘을 각인시켰다.
피를 이어받는다는 건 고대의 지식을 영혼에 흡수하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였다. 고대의 지식이 유저에게 직업과 비슷한 이미지라면 피의 지식은 유저에게 종족(種族)과 비슷한 이미지였다.
‘전생에 그렇게 많은 그린 와이번 로드를 잡았는데도 한 번도 얻은 적이 없었거늘······.’
상혁은 다시 한 번 아이템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와이번 블러드(Wyvern Blood)······. 이 타이밍에 이걸 얻을 줄이야.’
상혁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와이번 블러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와이번 블러드가 상혁의 비어있던 소울 홀과 반응했다.
와이번 블러드를 이어받을 준비가 끝났습니다.
피의 지식 ‘와이번 블러드(Wyvern Blood)’를 이어받아 와이번의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비어 있는 네 번째 소울 홀에 피의 지식 ‘와이번 블러드’를 흡수하겠습니까? 5분 안에 결정을 내려주세요.
상혁은 눈 앞에 메시지가 나타난 순간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흡수하지 않는다.”
단호한 상혁의 대답. 그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 눈빛으로 붉은 수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15장] 그린 와이번 로드 (2) > 끝
ⓒ 성진(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