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장] 그린 와이번 로드 (1) >
@ 그린 와이번 로드.
킬링머신이 상혁을 열심히 찾고 있을 그때 정작 상혁은 와이번의 둥지에서 열심히 와이번을 학살하고 있었다.
와이번 사냥에 대한 이론적인 이해도는 이미 사냥을 시작하기 전부터 완벽했던 상혁은 실제로 사냥을 시작하자 실전 감각마저 확실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자 상혁은 마치 와이번 사냥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너무나도 빠르고 확실하게 와이번을 사냥했다.
4분, 와이번 사냥이 익숙해진 상혁이 한 마리의 와이번을 사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었다. 상혁은 4분에 한 마리씩 와이번을 사냥하면서 와이번 둥지에 있는 27개의 봉우리 전부를 거의 2시간 만에 싹쓸이해버렸다.
와이번의 리스폰 시간은 30분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상혁은 무한 사냥을 할 수가 있었다.
와이번은 많은 양의 카르마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질 좋은 재료 아이템도 여러 개 얻을 수가 있었다.
거의 100%의 확률로 구할 수 있는 와이번의 가죽과 발톱, 이빨은 현재 거래되는 재료 아이템 중 거의 최고 수준이었고 획득 확률은 낮았지만 ‘와이번의 심장’ 같은 경우는 상혁에게 꼭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그뿐 아니라 그 밖에도 여러 쓸 만한 아이템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와이번은 살아 있는 보물창고와 같은 존재였다.
아무리 상혁이라고 해도 언제 다른 유저들이 이곳에 올라올지는 전혀 예상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상혁은 자신이 혼자 사냥터 전체를 독식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은 와이번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상혁은 잠까지 최소한으로 줄여가며 와이번 사냥에 집중했다. 1분, 1초가 아까웠기 때문에 한눈은 절대 팔지 않았다.
순식간에 보름이 흘렀다. 상혁은 뱀 굴에서보다 훨씬 더 집중해서 와이번을 잡았고 결과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레벨은 44레벨까지 올랐고 고가의 재료아이템들이 창고에 가득 쌓였다.
현재 대외적으로 알려진 EL 최고 레벨이 43이었던 걸 고려하면 상혁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레벨을 올리는 중이었다. 이렇듯 정말 모든 게 다 만족스러웠지만 한 가지······ 상혁의 신경을 건드리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와이번 둥지의 유일한 수컷이자 와이번 둥지의 네임드 몬스터인 ‘그린 와이번 로드’였다.
‘분명 와이번 로드를 나타나게 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그게 기억이 안 나네.’
상혁은 전생에서 4개월 동안 와이번 둥지에서 캠프를 했었지만, 당시 와이번 로드를 불러내는 역할은 다른 사람들이 맡았었다. 상혁은 그저 나중에 전투에만 참여해 와이번 로드를 사냥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렇다 보니 와이번 로드를 어떻게 사냥해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지만 정작 와이번 로드를 불러내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
‘한 가지 확실히 기억나는 건 알을 이용했었다는 사실이야. 근데 그다음을 모르겠네.’
만약 상혁이 정상적으로 퀘스트를 얻어 이곳까지 왔다면 일반 그린 와이번을 사냥하는 퀘스트 이후 분명히 그린 와이번 로드를 사냥하는 퀘스트를 받았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퀘스트 도움말 같은 걸 통해 아주 쉽게 그린 와이번 로드를 불러낼 방법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상혁은 자신의 기억에 의지해 이곳을 찾아온 회귀자였기에 퀘스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상혁은 와이번을 사냥하면서 계속 고민했지만 좀처럼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린 와이번 로드처럼 일정 조건을 만족해야 나오는 네임드 몬스터를 조건부 네임드 몬스터라고 했는데 보통 이런 네임드 몬스터를 잡으면 부가적인 보너스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린 와이번 로드를 사냥하면 놈을 사냥해서 얻는 전리품과 별개로 사냥을 성공한 유저 모두에게 ‘와이번 로드의 위엄’이란 16시간짜리 버프 효과가 부여되었다.
이 버프 효과는 와이번에게서 얻는 전리품의 양을 2배로 늘려주는 건 물론이고 등급이 높은 아이템이 떨어질 확률이 상승했다.
한 마디로 그린 와이번 로드를 사냥하고 와이번 사냥을 하면 효율이 2배 이상이 된다는 뜻이었다.
‘로드를 잡아야 진짜 제대로 꿀을 빠는 건데······.’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기억이 나기 전까진 그냥 이대로 사냥을 할 수밖에 없었다.
* * * *
상혁은 나름 비싸게 준 공간 확장 가방이 가득 차자 어쩔 수 없이 팔콘시로 귀환했다. 이제 팔콘시는 어디를 가도 유저들로 가득 차 있었다.
황혼의 땅 자체가 어지간한 게임의 월드 맵보다 큰 건 사실이었고 팔콘시도 대단히 큰 도시였지만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EL의 유저들을 감당하기가 점점 힘겨워지고 있었다.
물론 너무 혼잡한 도심 지역은 채널을 생성해 인원을 분산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진 큰 문제는 없었지만 이대로라면 결국 사냥터가 부족해질 것 같았다.
실제로 지금 뱀 굴은 최소 다섯 개 이상의 대형 길드가 사냥 구역을 두고 서로 다투고 있었고 나머지 뱀 굴과 비슷한 사냥터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최초로 거인의 동굴을 통과했던 길드가 어디였지? 길드가 아니라 파티 단위 팀이었던가? 이건 기억이 잘 안 나네.’
누가 최초로 통과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언제 최초로 뚫렸는지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앞으로 정확히 넉 달 후 황혼의 땅이 진짜 포화상태 직전에 이르렀을 때 드디어 첫 거인의 동굴 통과자가 나온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최상위권 유저들이 줄줄이 통과한 후에야 거인의 동굴 공략 방법이 유저들에게 조금씩 알려지게 된다.’
황혼의 땅만 벗어나면 광활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엄청나게 큰 대륙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옥불 사막과 영웅의 대지 그리고 태양의 대륙이 나타나면 그때부턴 포화 상태란 말은 절대 나오질 않았다. 오히려 땅이 너무 넓어서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넉 달이라······. 좋아! 그럼 난 두 달 안에 황혼의 땅을 빠져나간다!’
원래 상혁의 목표는 남들보다 한 달 정도 일찍 거인의 동굴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모든 일이 잘 풀려서 생각보다 더 빠르게 성장했기 때문에 목표를 한 달 더 앞으로 당겼다.
상혁은 늘 그렇듯 위탁판매소와 경매장을 오가며 물건들을 정리했다.
팔 건 팔고, 살 건 샀다.
와이번의 둥지에서 워낙 열심히 사냥했기 때문에 팔 것도 그리고 살 것도 많았다. 뱀 굴에서 얻었던 강철 비늘을 독점으로 판매해 큰돈을 만졌던 것처럼 이번엔 와이번의 가죽과 발톱, 이빨을 독점으로 판매하며 마음껏 시세를 끌어올렸다.
사실상 그것을 공급하는 이는 상혁 밖에 없었기 때문에 아무리 비싸도 그 물건들이 꼭 필요한 사람들은 그 가격에 살 수밖에 없었다.
상혁은 비쌌지만 그래도 몇몇 상위 클래스 유저들이 간신히 살 수 있을 정도의 가격에 가죽과 발톱, 이빨을 조금씩만 올려놓았다.
창고엔 아직도 가죽과 발톱, 이빨이 가득 쌓여 있었지만 절대 그걸 한 번에 다 풀지를 않았다. 일명 프리미엄 판매 전력이었는데 어딜 가도 호구는 있는 법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가죽과 발톱은 아주 잘 팔려나갔다.
‘적어도 한 달 정도는 더 독점할 수 있으려나?’
마음 같아선 황혼의 땅을 떠나기 직전까지 독점하고 싶었지만 다른 유저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어쩌면 이미 와이번의 둥지를 찾는 선행 퀘스트에 근접한 유저가 있을 수도 있었다.
상혁은 결국 한 달 안에 다른 유저들이 와이번의 둥지로 올라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더더욱 빨리 로드를 잡아야 하는데······.’
대충 위탁 판매소와 경매장을 모두 둘러본 상혁은 몇 가지 소모성 아이템을 구매한 후 곧장 마킹 북을 열었다. 그리곤 마킹 북의 룬(Run)을 발동시키기 위해 손톱만 한 최하급 마나스톤 하나를 룬에 올려놓았다.
파아아앗!
그 순간 마킹 북에 저장된 리콜 마법이 발동하며 빛이 상혁을 휘감았고 상혁은 곧장 자신이 마킹한 와이번 둥지 입구로 이동할 수가 있었다.
마나스톤은 기본적으로 비싼 소모성 아이템이었지만 리콜이 워낙 편리한 이동 수단이었기 때문에 이 부분만큼은 아끼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솔직히 이동거리가 멀면 이렇게 마나스톤을 써서 한 방에 날아오는 게 더 이득이기도 했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해볼까?’
같은 곳에서 같은 몬스터를 계속 잡는 건 솔직히 지겨운 일이었다. 게이머들은 이걸 일명 ‘노가다’라고 불렀는데 상혁은 이런 노가다에 익숙했다.
솔직히 작업장에서 혹사당했을 땐 이것보다 더 심각하게 반복 사냥을 했었다.
“아! 그래! 알이 먼저가 아니라 오크의 피가 먼저였어!”
다시 와이번 둥지로 돌아와 며칠 동안 와이번을 사냥을 계속하던 상혁은 드디어 가물가물하던 와이번 로드를 소환하는 방법을 기억해냈다.
‘멍청하게 오크의 피를 잊고 있었어. 그게 먼저고 그다음이 알이었거늘······.’
오크는 설정 상 와이번이 가장 좋아하는 몬스터였다.
‘먼저 가장 중앙에 있던 와이번의 둥지에서 와이번을 사냥한 후 그곳에 오크의 피를 뿌린 후에 기다리면 로드의 울음소리가 들렸던가? 어쨌든 뭔가 징조가 일어날 것이고 그걸 확인한 후 알을 깨버리면 하늘에서 와이번 로드가 내려왔었어. 맞아! 이제야 확실히 기억이 나.’
상혁은 꽉 막혀 있던 변기를 확 뚫어버린 것처럼 속이 시원했다. 그동안 기억이 날 듯 말 듯해서 무척 답답했었는데 이제야 살 것 같았다.
‘일단 오크의 피부터 구해야겠군.’
오크의 피는 오크를 잡으면 낮은 확률로 얻을 수 있는 재료 아이템이었다. 나름 희귀하다면 희귀할 수 있는 재료였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비싼 재료는 아니었고 경매장에 가면 바로 구매할 수 있었다.
상혁은 곧장 팔콘시로 다시 돌아가 오크의 피를 구해왔다. 넉넉하게 오크의 피를 구해온 상혁은 와이번 로드가 나타나는 중앙 둥지로 이동해 그곳의 와이번을 빠르게 사냥했다.
와이번이 사라지자 텅 빈 둥지엔 알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상혁은 사냥 준비가 다 되었는지 다시 한 번 꼼꼼히 점검한 후 점검이 끝나자 빈 둥지에 오크의 피를 뿌렸다.
촤아아악, 둥지에 피를 뿌린 상혁은 가만히 서서 징조를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기다리던 징조가 시작되었다.
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르륵, 그르르르륵!
와이번 둥지 전역으로 울려 퍼지는 웅장한 와이번의 울음소리. 그걸 듣는 순간 상혁은 이게 바로 와이번 로드의 울음소리란 걸 알아차렸다.
‘역시 울음소리가 징조였군.’
휘이잉, 콰직!
상혁은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곧장 검을 뽑아 피 묻은 알을 깨버렸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 순간 울음소리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그리곤 먼 하늘 위에서 한 개의 검은색 점이 아래로 급격히 하강했다.
암컷 그린 와이번보다 세 배는 더 커 보이는 거대한 녹색 와이번······ 드디어 그린 와이번 로드가 상혁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 희귀 퀘스트 ‘와이번 로드의 분노’가 발동됩니다.
생각지도 못한 희귀 퀘스트까지 생성되었지만 상혁은 와이번 로드에게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퀘스트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린 와이번 로드와의 전투는 결국 한 가지만 명심하면 된다. 떨어지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상혁은 전생에 수많은 그린 와이번 로드를 잡아봤었다. 물론 혼자 잡은 건 아니었고 최소 네 명의 동료와 파티를 해서 잡긴 했지만 어쨌든 경험이 많은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와이번 로드를 사냥할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첫 번째 페이즈는 공중전(空中戰)!’
카오오오오!
그린 와이번 로드는 나타나는 것과 동시에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이건 브레스를 사용하기 전에 하는 사전 동작이었는데 여기서 둥지에 가만히 서 있으면 몇 초 안에 무조건 전멸당했다.
이걸 피하는 방법은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그건 바로 그린 와이번 로드의 등에 올라타는 것이었다.
탁탁탁, 파팟!
이미 놈이 나타날 때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던 상혁은 둥지의 외곽에 쪽에 살짝 솟아나온 바위 몇 개를 연달아 밟으며 그린 와이번 로드의 등을 향해 뛰어올랐다. 사실 이 바위들은 애초에 이렇게 뛰어오르라고 만들어놓은 것들이었다.
전생엔 이걸 찾기 위해 무수히 많은 유저들이 죽어나갔었지만 상혁은 그들의 희생 덕분에 쉽게 첫 번째 페이즈로 돌입할 수가 있었다
< [15장] 그린 와이번 로드 (1) > 끝
ⓒ 성진(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