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26화 (26/127)

< [14장] 정령 카드 (1) -유료연재 시작입니다.- >

@ 정령 카드.

킬링머신은 자신을 짓누르는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용기를 쥐어짰다. 그 결과 상혁에게 달려들 순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용기를 냈다고 바뀌는 건 없었다.

따당, 따다당!

그가 휘두른 검은 살아있는 뱀처럼 꿈틀거리는 만년금골편에 의해 튕겨 나갔다. 애초에 지니고 있는 힘의 차이가 워낙 크기도 했고 거기에 PvP 능력마저 상혁에게 비벼볼 수준이 아니었다. 그뿐인가? 상혁은 악인 사냥에 특화된 타이틀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킬링머신은 불과 10초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콰드드득, 쿠쿵.

자신의 길드원들과 똑같이 머리가 통째로 날아가며 바닥에 쓰러진 킬링머신은 몇 가지 아이템을 바닥에 남기고 빛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렇게 킬링머신마저 사라지자 지하 광장에 남아 있는 건 수많은 아이템뿐이었다.

유령, 천명 그리고 마군의 길드원들이 남긴 흔적.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가져가듯 세 길드가 박 터지게 싸우고 정작 전리품은 모조리 상혁이 챙겨가게 되었다.

아이템이 워낙 많아 짐을 한가득 양 어깨에 메고 뱀굴을 빠져나온 상혁은 적당한 곳에 아이템을 숨겨놓고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며 그것들을 옮겼다.

상혁은 거의 모든 아이템을 위탁 판매소에 올려버렸다. 제법 값어치가 나가는 것들도 많았지만, 어차피 상혁이 쓸만한 물건은 없었기 때문에 모조리 팔아버리는 게 이득이었다.

어차피 위탁 판매소엔 판매자 이름 같은 게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누가 팔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유령이나 천명이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찾아도 결국 그들이 찾을 수 있는 건 마군 정도까지가 끝이었다.

그리고 그나마 상혁을 찾을 가능성이 있는 마군은 악인 유저라는 한계 때문에 당분간은 무조건 잠수를 타야 했다. 안 그랬다간 요즘 한창 유행하고 있는 악인 사냥꾼들에게 제대로 털릴 수가 있었다.

‘뱀 굴 사냥은 이제 그만해야겠네.’

뱀 굴은 좋은 사냥터였지만 이미 입소문이 날 때로 나버린 상황이라 경쟁자가 대거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번 길드전 자체가 여기저기에서 큰 화제가 되면서 엉뚱하게 뱀 굴이 유명해졌다.

‘레벨도 제법 올랐고······ 돈도 제법 모았으니 이제 슬슬 정령카드 작업을 해볼까?’

현재 상혁의 레벨은 무려 42였다. 40레벨부터 레벨을 올리는데 필요한 카르마가 엄청나게 상승했는데 41레벨은 사실상 40레벨을 두 번 만드는 것과 같은 노력이 필요했고 42레벨은 40레벨을 세 번 만드는 것과 같은 노력이 필요했다.

레벨을 올리는 게 워낙 힘들다 보니 40레벨 이후에는 레벨업을 잠시 잊고 다른 콘텐츠를 즐기는 유저도 많았다. 사실 EL에는 레벨을 올리는 것 말고도 수많은 콘텐츠가 숨겨져 있었기 때문에 유저들은 그걸 하나씩 찾아서 즐기고 있었다.

최근 들어 생산 계열 유저들이 늘어난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었다.

상혁은 오랜만에 팔콘시의 위탁판매소와 경매장을 동시에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동안도 팔콘시에 오면 틈틈이 위탁판매소와 경매장을 살펴보긴 했었지만 제대로 살피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디보자······ 일단 강철 비늘 가격은 폭풍 상승 중이고······ 모든 재료 아이템들도 동반 상승 중인 건가?’

시세는 상혁이 알고 있던 그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동안 상혁은 골드가 생기는 족족 재료 아이템들을 긁어모았었다. 상혁과 비슷한 예상을 한 전문 장사꾼들이 몇몇 있었기 때문에 재료 아이템을 전부 독점할 순 없었지만 그 장사꾼들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정말 특이한 몇몇 재료 아이템은 거의 상혁이 독점하듯이 쓸어 담을 수가 있었다.

‘장사꾼들은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한 투자종목이라 할 수 있는 광석 계열이나 혹은 보석 계열 재료 아이템을 선점했지만 난 미래를 알기 때문에 모든 재료 아이템을 쓸어 담았지.’

미래를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의 차이는 당연히 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장사꾼들의 감을 무시했다간 큰코다칠 수가 있었기 때문에 상혁은 늘 조심을 했다.

‘강철 비늘은 며칠 내로 거의 상한가를 찍겠네.’

강철 비늘은 특별한 무기나 방어구를 만들 땐 무조건 필요한 재료이고 구할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최고급 재료로 구분되었다.

사실상 앞으로 강철 비늘의 가격은 상혁이 정하는 대로 움직일 가능성이 컸다. 그가 창고에 쌓아놓은 강철 비늘의 양이 워낙 많았고 뱀 굴이 제대로 공략되어 안정적으로 강철 비늘이 공급되려면 여전히 시간이 더 필요했기 때문에 상혁은 강철 비늘의 가격이 상한가를 찍는 순간부터 순차적으로 물량을 풀 생각이었다.

‘파는 건 이제 슬슬 하나씩 정리를 시작하면 될 거 같은데······ 역시 문제는 정수(精髓)들을 사는 건가?’

상혁은 팔 물건도 많았지만 그만큼 살 물건도 많았다.

‘그나마 지금이 정수들을 구매할 적기다. 나중에 생산 계열 유저들이 속성 아이템들을 제작할 수 있을 만큼 실력이 좋아지면 그땐 정수 값이 지금의 몇 배는 더 뛴다.’

지금은 그래도 정수들이 위탁판매소와 경매장에 어느 정도 쌓여 있었다. 아무래도 정수들의 쓰임새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

상혁이 얘기하는 정수······. 그건 바로 각종 속성을 지닌 정수들을 의미했다.

불의 정수, 물의 정수, 바람의 정수, 빛의 정수, 어둠의 정수, 뇌전의 정수 등등, 거의 백 가지가 넘는 종류의 각종 정수들이 존재했다.

보통 편린 다섯 개를 뭉치면 정수가 되었다. 그리고 이 정수를 다시 다섯 개 뭉치면 ‘핵(核)’이 되었다. 편린을 뭉쳐서 정수로 만드는 건 말 그대로 그냥 편린 다섯 개를 모아놓기만 해도 되는 것이지만 정수를 모아 핵을 만드는 건 연금술을 배운 유저나 혹은 NPC만 할 수가 있었다.

또 핵을 다섯 개 뭉치면 ‘심장’이 되었는데 이건 특별한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에 지금은 만들 수가 없었다.

‘어차피 지금 시점에선 편린하고 정수밖에 안 올라오니 두 개만 집중적으로 사면된다.’

상혁은 편린과 같은 경우는 이미 조금씩 사 모으고 있었지만 정수는 가격이 조금 더 떨어지길 기다렸었다. 각종 정수들은 뭣도 모르는 유저들이 일단 좋아 보이니까 비싸게 판매를 했었다. 하지만 거래가 전혀 이뤄지지 않자 당연히 가격은 계속 떨어졌고 최근에 거의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이제 남은 건 주워 담는 것뿐이었다.

상혁이 이렇게 각종 편린과 정수들을 사재기하는 이유는 그걸 다시 되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기본적으로 정령과 계약을 하기 위해선 편린과 같은 속성 아이템이 필요했다.

편린은 최하급, 정수는 하급 그리고 핵은 중급······.

이렇게 정령의 등급이 높아질수록 필요한 속성 아이템의 등급도 높아졌다. 사실 정령술사에게 속성 아이템은 별로 부담이 되는 게 아니었다.

정령술을 배운 보통의 유저들은 최초 정령을 소환할 때만 이 속성 아이템을 필요로 하고 그 뒤부턴 자신이 소환한 정령과 계약을 하고 그 정령을 정성스럽게 키워나갔기 때문에 추가로 속성 아이템이 필요하지가 않았다.

아주 간혹 몇몇 특수한 경우에 정령이 소멸되기도 했지만 그건 아주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될 게 없었다.

그런데 왜 상혁은 속성 아이템을 사 모으는 걸까?

그 이유는······ 상혁이 정령을 활용하는 방식 때문이었다.

‘정령폭파술(精靈爆破術), 이건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돈지랄 기술이야.’

위탁판매소와 경매장에서 편린과 정수를 구매하던 상혁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령폭파술은 그가 개발한 기술이었지만 진짜 어처구니없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이 기술은 계약한 정령을 ‘정령 카드’로 만드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이 부분에서 사기적인 일이 하나 발생했는데 그건 바로 카드로 만들어진 정령의 코스트가 0이 된다는 점이었다.

원래 정령술을 배운 유저는 자신의 능력에 맞는 등급의 정령과 계약을 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능력으로 지정된 코스트의 한계 범위 안에서 정령과 계약을 할 수가 있었다.

이 코스트는 정령술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페널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령카드는 코스트가 0이었다. 물론 카드에서 정령을 꺼내놓는 순간 다시 코스트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상혁은 카드에서 정령을 꺼내지 않고도 그 정령의 힘을 사용할 수가 있었다.

이게 바로 카드 술사의 힘이었다.

과거 상혁이 나르엘에게 몰래 알려준 ‘엘레멘탈 버스터’라는 카드 조합법이 바로 이 정령폭파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모든 게 다 최고지만 기술을 사용할 때마다 정령카드가 소멸된다는 점 때문에 진짜 매번 허리가 휠 수밖에 없다.’

정령폭파술의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정령을 끊임없이 소모해야 한다는 점······ 그렇기에 끊임없이 정령 카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 이것 때문에 상혁은 편린과 정수를 사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지금은 최하급이나 하급 정령을 사용하지만 나중에 중급을 넘어 상급 정령 카드를 조합식에 사용하게 되면······ 어우,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물론 위력 면에선 확실히 비싼 값은 했다. 다만 너무 비싸서 가슴이 찢어지고 허리가 휠뿐이었다.

‘방법은 없다.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속성 아이템들을 사재기해서 미래를 대비해야한다.’

상혁은 계속 위탁 판매소와 경매장을 번갈아 살펴보면서 계속해서 편린과 정수를 구매했다. 다만 시세에 민감한 장사꾼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일정 기준 아래의 물건들만 매입하고 나머진 그대로 두었다.

당장의 이득을 위해 모든 편린과 정수를 싹쓸이하면 눈치 빠른 장사꾼들에게 빌미를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재료 아이템은 팔고 속성 아이템은 사고······ 상혁의 거래는 이게 핵심이었지만 그렇다고 딱 이것들만 거래하진 않았다. 그는 위탁 판매소와 경매장을 살피며 앞으로 가격이 오를 수 있는 아이템들은 보이는 족족 구매했다.

예를 들어 ‘저주받은 뼈다귀’란 아이템 같은 건 지금은  구매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인기가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몇 달 뒤에 훗날 데스마스터라 불리게 될 스틱스(Styx)란 유저가 자신의 플레이 동영상을 디튜브에 올리는 순간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예정이었다.

스틱스는 골수 네크로맨서 유저였는데 네크로맨서 유저에게 저주받은 뼈다귀는 초보부터 마스터까지 늘 모자랄 수밖에 없는 필수 마법 시약이었다. 그땐 없어서 못 파는 게 이 저주받은 뼈다귀였다.

이런 아이템은 몇 가지가 더 있었다. 진흙 속에 숨어 있는 진주들······ 상혁은 이런 진주들을 열심히 모아서 창고에 쌓아놓고 있었다.

상혁은 거의 일주일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위탁판매소와 경매장에서 구매와 판매를 반복했다.

그 결과 그의 창고에는 각종 편린과 정수가 가득 쌓였고 덤으로 진흙 속의 진주들도 많이 쌓였다. 반대로 그가 원래 쌓아놓고 있었던 것들은 거의 다 팔렸다.

어차피 이 수준이 앞으로 대략 1년간 유지될 최고가격이란 걸 알고 있었던 상혁은 미련 없이 재료 아이템들을 정리했다. 특히 강철 비늘 같은 경우는 상혁이 공급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정말 비싸게 팔아먹을 수가 있었다.

얼마 전부터 다른 유저들도 길드 단위, 혹은 파티 단위로 안 정적으로 뱀 굴 사냥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강철 비늘의 공급이 하루하루 다르게 늘고 있긴 했지만 어차피 상혁은 이미 강철 비늘을 모두 정리한 상태였다.

남은 골드는 거의 없었다.

보유한 골드를 탈탈 털어서 편린과 정수 그리고 미래를 위한 몇몇 아이템을 잔뜩 사재기했다. 바닥난 보유 골드를 보고 있으면 뭔가 허전하긴 했지만 창고에 쌓여 있는 아이템들을 확인하면 그 허전함이 말끔히 사라졌다.

상혁은 일단 수많은 종류의 편린들을 전부 꺼내서 정령 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직까진 최하급 정령만 소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정령 카드도 최하급 정령 카드만 만들었다.

상혁이 만든 정령카드는 총 16가지였는데 장수는 대략 2400장 정도가 되었다.

가장 많은 건 불의 편린으로 만든 최하급 불의 정령 카드로 대략 400장 정도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다음은 바람의 편린으로 만든 최하급 바람의 정령 카드를 250장 정도를 만들었다. 그밖에 물, 나무, 대지, 빛, 어둠, 강철, 뇌전, 얼음, 그림자, 돌, 달빛 등등 수많은 종류의 정령 카드가 100장 이상씩 만들어졌다.

이 모든 건 상혁의 정령폭파술의 제물이 될 카드들이었다.

‘모으는 건 힘들어도 쓰는 건 순식간이니까 아껴 쓰자.’

지금 당장 카드가 많다고 펑펑 쓰다간 정작 중요할 때카드가 바닥날 수도 있었다. 아무리 상혁이 다른 유저들은 모르는 정보를 이용해 큰돈을 벌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정령 카드를 낭비하는 건 별로 좋지가 않았다.

‘불의 정령 같은 경우는 이제 조금만 더 올리면 하급 정령도 소환할 수 있겠네. 그나마 정령폭파술 덕분에 정령술의 숙련도를 빠르게 올릴 수 있는 건 좋네.’

한두 마리의 정령으로 꾸준히 친화력을 올리며 정령술을 펼치는 보통의 정령술사보다 한 번에 한 마리씩 정령을 소멸시키며 정령술을 펼치는 상혁이 몇 배는 더 빠르게 정령술의 숙련도를 올릴 수가 있었다.

다만 정령폭파술을 사용하면 안타깝게도 정령과의 친화력은 아예 올릴 수가 없었다. 특정 정령을 카드에 보관하며 친화력을 올리려고 해도 같은 계열의 정령들을 무지막지하게 소멸시키는 상혁에게 마음을 열어주질 정령은 존재하지 않았다.

즉, 정령폭파술을 익힌 이상 평범한 정령술을 펼치는 건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제 대충 준비는 끝났고······ 이 정도라면······ 그린 와이번 둥지에 도전할 수 있겠지?’

상혁은 카드를 모두 정리해 공간 확장 가방에 넣은 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다음 목표로 삼고 있는 곳은 황혼의 땅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으면서 보상도 그에 맞게 훌륭한 사냥터인 ‘와이번의 둥지’였다.

< [14장] 정령 카드 (1) -유료연재 시작입니다.- > 끝

ⓒ 성진(成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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