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장] 고래 싸움에 고래 등 터진다 (2) -무료연재 끝- >
“죽여!”
콰과과광!
천명 길드의 정예라 할 수 있는 시라소니 일행과 함께 유령 길드의 뒤를 치게 된 킬링머신은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크게 외쳤다.
그에게 PK는 삶 그 자체였다. 특히 지금처럼 분명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PK는 너무나 즐거웠다.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적당히 싸우는 시늉만 하면서 최대한 몸을 사려라. 오늘 무조건 유령과 천명을 둘 다 잡아먹는다.]
킬링머신은 마지막으로 확인을 위해 길드원들에게 단체 메시지를 전송했다.
천명 길드의 시라소니는 킬링머신을 믿고 있었지만, 천성이 쓰레기였던 킬링머신은 유령은 물론이고 천명까지 모조리 잡아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이제 천명도 단물이 다 빠졌어. 오늘 확실하게 마지막 단물을 쪽쪽 빨아 먹은 후 버리는 게 좋아.’
유령 길드와 천명 길드를 한꺼번에 작업하는 건 정말 큰 건수였다. 물론 정상적인 경우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지금처럼 유령과 천명이 서로 물어뜯느냐고 정신이 없을 땐 충분히 가능했다.
‘그럼 난 잔칫상이 차려질 때까지 마음껏 즐겨볼까?’
킬링머신은 제법 PvP 실력이 좋은 유저였다. 레벨도 높고 장비도 어느 정도 괜찮았기 때문에 무리만 하지 않으면 이 혼전 속에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마군의 유저들 역시 모두 빠꼼이였기 때문에 적당히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유령과 천명의 유저들은 죽기 살기로 뒤엉켜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마군 유저들의 이런 행동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어둠 속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던 상혁의 눈엔 마군의 노림수가 고스란히 보였다.
‘이것 봐라······ 이 새끼들 지금 두 길드를 한꺼번에 쌈 싸먹으려고 하고 있네?’
마군 길드의 의도를 정확하게 포착한 상혁은 재미있단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역시 마군답다고 해야 하는 건가? 어쨌든 저 두 길드는 오늘 미친개한테 제대로 물리겠네.’
상혁은 이름도 모르는 두 길드의 유저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상혁은 그 두 길드를 도와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전생의 상혁이었다면 어쭙잖은 정의감 때문에 도와주러 나섰을 수도 있었지만, 지금의 상혁은 더할 나위 없이 냉정한 눈빛으로 그들의 전투를 지켜보기만 했다.
‘아무리 마군이라고 해도 저 두 길드를 먹어치우려면 쉽지 않을 거야. 그럼 난······ 배부른 마군을 먹어치우면 되겠네.’
간단했다. 마군은 천풍과 유령을 먹어치우고, 상혁은 그 둘을 먹어치운 마군을 먹어치우면 되었다.
‘자, 그럼 기다려볼까?’
어둠 속에 완벽하게 스며든 상혁. 그는 그곳에서 때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 * * *
유령과 천명은 정말 치열하게 싸웠다. 그들은 서로 이번 전투에서 밀린 쪽이 결국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피해가 커졌음에도 끝까지 뒤로 물러나지 않고 싸우고 또 싸웠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자 유령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눈치 보면서 살살 싸운다고 해도 천명을 돕는 마군의 유저들이 존재하는 이상 유령은 객관적인 전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대풍이 양손에 커다란 두 자루의 칼을 들고 분전하긴 했지만, 그마저 킬링머신에게 당하는 순간 승기가 급격히 천명 쪽으로 기울어졌다.
천명도 큰 피해를 입어서 길드마스터인 시라소니와 몇몇 정예 유저들만 남았지만 중요한 건 유령은 아예 전멸했다는 점이었다.
‘이겼다!’
시라소니는 이번 승리를 통해 길드 전쟁에서 확실히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여기서 죽은 놈들이 접속하지 못하는 12시간 동안 유령 길드의 잔당들을 깔끔하게 정리하기만 하면 이번 전쟁은 질래야 질 수가 없는······.’
시라소니는 후속 조치를 생각하며 승기를 확실하게 휘어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계속 이어지질 못했다.
“뭐, 뭐야! 커어억!”
본색을 드러낸 킬링머신. 아니, 마군 길드.
그들이 지쳐있는 천명 길드의 유저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머, 멈춰!!”
시라소니는 큰 소리로 소리치며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살아남아 있는 천명 길드원은 대략 10명. 그리고 그 10명을 포위하고 있는 12명의 마군 길드원들······.
‘아······ 당했다!’
시라소니는 지쳐 있는 천명 길드원들과 달리 아주 쌩쌩한 마군 길드원들을 보는 순간 자신들이 완벽하게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자, 어차피 결과는 안 바뀌니까 얌전히 가자.”
킬링머신은 시라소니를 바라보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이 새끼······ 너······.”
“설마 날 믿었어? 믿었으면 믿은 네가 병신인 거지. 어디 믿을 놈이 없어서 나 같은 놈을 믿냐?”
너무나도 당당한 킬링머신. 그는 과연 쓰레기 중의 쓰레기라 불릴만한 놈이었다.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치솟은 시라소니는 자신의 욕심이 결국 큰 화(禍)를 불렀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정말 순순히 죽어줄 순 없었다.
“이 좆같은 악인 새끼들! 네놈들 마음대로 되진 않을 거다! 천명의 저력을 보여주자!”
시라소니는 손에 들고 있던 창을 다시 고쳐 잡으며 킬링머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머지 천명 길드원들 역시 시라소니의 외침과 함께 마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천명 길드의 길드원들이 많이 지쳐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당장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은 마군에게 뒤통수를 맞은 게 억울해서라도 끝까지 저항해볼 생각이었다.
저항은 그냥 저항만으로 끝났다.
기적과도 같은 반전은 없었고 살아남았던 10명이 천명 길드원은 모두 마군의 유저들에게 당해버렸다. 특히 시라소니는 킬링머신에게 심하게 난도질당하며 욕심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스스스스.
킬링머신은 마지막까지 발악하다 쓰러진 시라소니가 빛가루 되어 허공에 흩날리는 걸 바라보며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새끼 더럽게 끈질기네.”
시라소니가 마지막으로 쓰러진 것이었기 때문에 남아 있는 천명 길드원은 없었다.
“뭐야 네 명이나 당한 거야? 다 죽어가던 놈들을 상대로 이게 뭔 개 쪽이야.”
킬링머신은 자신을 포함해 12명이었던 마군 길드원이 8명으로 줄어들어 있는 걸 보고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이놈들이 워낙 끈질기게 들러붙어서 어쩔 수가 없었어.”
마군은 악인 유저들이 모여 만든 길드였고 당연히 악인 유저들은 PvP에 익숙했지만, 레벨이나 장비 자체는 천명 쪽이 약간 더 좋았다. 그리고 거기에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천명 길드원들이 악착같이 달려들었기 때문에 조금 더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늘 말하지만 죽은 놈이 멍청한 거야.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일단 떨어져 있는 아이템들부터 수습······.”
킬링머신은 전투가 끝났으니 전리품들을 수확한 후 재빨리 떠나려고 했다. 보통 이렇게 크게 한 건을 하고 나면 당분간은 잠수 모드로 지내야 하는 게 좋았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죽은 녀석들이 다시 재접속이 가능해지기 전에 빨리 아이템 정리를 끝내는 게 좋았다.
하지만 킬링머신은, 아니 마군의 유저들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무수히 많은 아이템을 주워담을 수가 없었다.
피잉, 콰과과과과광!
갑작스러운 폭발!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갑자기 날아온 한 발의 화염 덩어리가 가장 뒤쪽에 서 있던 마군 유저의 몸에 꽂히며 폭발했다. 순식간에 화염에 휘감기며 쓰러진 마군 유저. 그 모습을 본 다른 마군 유저들은 모두 제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적이다!”
마군 유저들은 PvP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이 공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기습에 대비했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보다 더 빠른 게 있었다.
쐐애애애액, 촤르르륵!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가장 앞쪽에 있던 마군 유저의 목을 휘감은 괴상한 모양의 끈!
드디어 상혁의 하이에나 사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콰드득.
“커어억!”
만년금골편은 휘감은 목을 강하게 조였고 그 순간 마군 유저의 목뼈가 박살이 났다. 목을 내주었던 마군 유저는 설마 자신이 한 방에 죽을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지금 공격은 그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기에 비명도 제대로 못 질러보고 그대로 축 늘어지며 쓰러졌다.
순식간에 두 명의 마군 유저를 쓰러트린 상혁은 어둠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며 좌우를 살폈다.
‘남은 건 이제 여섯 명인가?’
상혁은 남은 여섯 명의 악인들을 상대하기 위해 모든 감각을 활짝 열었다.
“당황하지 마! 겨우 한 놈이야!”
가장 먼저 평정심을 되찾은 건 역시 킬링머신이었다. 그는 상혁이 혼자라는 걸 확인하곤 곧바로 다른 마군 유저들에게 큰 소리로 외치며 그들을 안정시켰다.
기습을 통해 두 명의 마군 유저를 순식간에 쓰러트린 실력은 상당히 대단해 보였지만 어차피 지금은 6명과 1명이 싸우는 상황이었다.
“쥐새끼 같은 놈이 간덩이가 너무 부었네. 감히 우리를 공사치려고 해?”
킬링머신은 상혁이 무엇을 노리고 지금 타이밍에 튀어나온 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1명이었다. EL의 PvP에서 머릿수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다.
그는 제까짓 놈이 아무리 잘나도 혼자선 절대 여섯 명을 이길 수 없다고 믿었다.
“다들 정신 차리고 제대로 포위만 잘해.”
스르릉, 채앵.
킬링머신은 다른 마군 유저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허리춤에서 두 자루의 단검을 뽑아들었다.
“눈깔을 뽑아주마.”
두 자루의 단검을 매우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킬링머신은 당장에라도 상혁의 머리에 단검을 꽂아버릴 것처럼 투지를 불태웠다. 그런 킬링머신의 명령을 받은 다섯 명의 마군 유저들은 둥글게 상혁을 포위한 후 천천히 상혁 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포위망을 좁히는 것이었는데 이대로라면 상혁이 상당히 답답한 상황에 놓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정작 여섯 명을 상대해야 하는 상혁은 아주 평온했다. 정확히는 여유가 넘친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하나······ 둘······ 셋! 지금!’
상혁은 가만히 서서 감각을 활짝 열고 마군 유저들이 자신을 포위하길 기다렸다. 그리곤 적들이 자신이 생각한 일정 범위에 들어온 순간 왼손을 바닥을 향해 뻗었다.
카드 조합스킬 ‘스몰 토네이도’!
휘이이이잉, 드드드드드득!
상혁의 왼손에서 뿜어져 나온 한줄기의 강풍이 상혁이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반경 4m 안쪽의 공간을 휩쓸며 치솟았다. 그리고 당연히 그 안에 서 있던 모든 이들도 그 강력한 바람에 휩쓸렸다.
“어헉!”
“크헉!”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상혁의 공간 안으로 들어온 다섯 명의 마군 유저들이 모두 중심을 잃고 크게 비틀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상혁은 몸을 빠르게 돌리며 오른팔을 크게 휘둘렀다.
철컥철컥, 채채채챙!
만년금골편의 작은 조각들이 일직선으로 결합되며 마치 한 자루의 긴 검처럼 변했다. 그리고 그 검은 그 어떤 것이라도 베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강렬한 예기(銳氣)를 뿌리고 있었다.
촤아아아아악, 서걱! 콰드드드드득!
상혁에게서 한 줄기의 날카로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아주 빠르게 360도 방향으로 번쩍였고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공간을 위와 아래로 나눠버렸다.
날카로운 빛이 만들어낸 결과는 무시무시했다. 상혁을 포위하고 있던 마군 유저 다섯 명······ 놀랍게도 그들의 머리가 모두 사라져 있었다.
정확히는 다섯 명 모두 머리가 제각각 다르게 잘려나가 있었다.
쿠쿠쿠쿵.
머리가 잘렸다는 건 그들이 상혁의 공격을 버티지 못했다는 뜻이었기에 다섯 명 모두 진한 빛가루를 뿌리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상혁의 공격력 자체가 상식을 초월했기 때문에 한 명도 버텨내질 못했다. 만약 그들의 방어력이 상혁의 공격력을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다면 머리가 잘리는 게 아니라 머리에 상처를 입는 정도로 끝났겠지만 그게 아니었기에 머리가 모조리 잘려나간 것이었다.
“이, 이게······.”
다행히 킬링머신은 그 빛의 영역에서 아슬아슬하게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콧잔등에 선명한 상처가 생기는 것만으로 끝날 수가 있었다.
주르르륵.
코에서 제법 많은 양의 빛가루가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졌지만 킬링머신은 그걸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말 그대로 압도(壓倒)당했다.
상식을 초월하는 힘이 사정없이 킬링머신을 짓눌렀다.
킬링머신 앞에 나타난 하늘 밖의 하늘(天外天).
그 하늘이 킬링머신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차피 결과는 안 바뀌니까 얌전히 죽는 게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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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진(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