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장] 불의 망치 토칸(2) >
* * * *
그동안 피로가 누적되었던 걸까? 다섯 시간만 자려고 했는데 일곱 시간이나 푹 자 버린 상혁은 기상과 동시에 샤워 먼저 하고 그 후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두 시간이나 늦잠을 잤지만 그렇다고 마구 서두르진 않았다. 늦잠을 잤다고 허둥지둥 서둘러 접속을 하는 건 상혁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늦잠은 그냥 늦잠일 뿐이었다. 늦잠과는 별개로 상혁은 원래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을 전부 했다. 가볍게 운동을 하며 몸도 풀었고 배부르게 밥도 먹었다. 식사는 거의 하루에 두 끼 혹은 한 끼만 했기 때문에 한 번 먹을 때 제대로 먹어줘야 했다.
그렇게 깔끔하게 준비를 끝낸 후에야 캡슐에 들어갔다.
EL에 접속한 상혁은 곧바로 황금 모루를 찾아가지 않고 우선 위탁 판매소부터 들렸다. 상혁이 위탁 판매소에 올려놓은 물건들은 모두 현시점에선 상당히 좋은 물건들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전부 팔려 있었다.
상혁은 수수료를 내고 골드를 모두 받은 후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어차피 골편은 완성되기까지 며칠 걸릴 테니 그동안 하수도 던전을 매물로 올려놓아 볼까?’
이제 슬슬 유저들 사이에서 비밀 던전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확한 사실이 알려진 건 아니었고 그저 ‘비밀 던전’이란 게 있고 이곳이 진짜 꿀 바른 사냥터란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고 있었다.
이 시점이야말로 비밀 던전을 팔아치울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던전 거래는 여러 경로로 이뤄졌는데 가장 안전한 건 ‘위탁 판매소’ 혹은 ‘경매장’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아직은 아무도 던전을 매물로 올려놓지 않았기 때문에 이 두 곳에서 비밀 던전도 거래가 가능하다는 걸 알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현시점에서 상혁이 ‘77번 하수도 던전’을 위탁 판매소에 올린다면 위탁 판매소 구매 목록에 ‘D등급 비밀 던전 50/150’이란 이름으로 물건이 올라갔다.
던전의 상세 정보는 상혁이 공개한 것만 표시되었다. 지금은 모든 정보를 비공개로 해놓아도 비밀 던전이란 사실만으로 수많은 구매자가 몰릴 수밖에 없었다.
위탁 판매소는 기본적으로 모든 거래의 안전을 보장했다. 그렇기에 던전 거래도 양쪽 모두에게 인계와 인수가 확인함으로써 혹시나 있을 불상사를 방지했다.
즉, 던전을 파는 상혁이나 던전을 사는 고객이나 서로 위탁 판매소를 거치면 마음을 놓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상혁은 하수도 던전을 위탁 판매소에 올려놓은 후 팔콘시 근처에서 가볍게 사냥을 했다. 그렇게 대략 한 시간이 흐르자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 기다리던 위탁 판매소 중계 거래 신청이 들어왔다.
전신을 감싸고 있는 칙칙한 검은색 판금 방어구······ 상당히 조잡해 보이는 판금 방어구였지만 그래도 풀 세트로 갖춰서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똑같은 검은색 로브까지 걸쳐서 완벽하게 꽁꽁 싸매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은 물론이고 머리카락 하나도 볼 수가 없었다.
‘엄청나게 답답한 비쥬얼이네.’
상혁 앞에는 상혁이 내놓은 비밀 던전을 구매 신청한 유저가 서 있었다. 체구 자체는 그다지 커 보이지 않았는데 문제는 입고 있는 복장이었다.
아무리 판금 방어구의 방어력이 좋다고 해도 지금 이 유저처럼 온몸을 꽁꽁 싸매는 식으로 방어구를 착용하는 사람은 없었다. 거기에 검은색 로브까지 걸쳐서 답답한 패션의 끝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자기 자신을 판금 방어구 안에 가둬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답답한 건 이게 끝이 아니었다.
[당장 인계받을 수 있습니까?]
말 대신 날라온 메시지. 놀랍게도 이 유저는 말로 대화를 하지 않고 전체 공개 메시지를 통해 글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즉시 번역이 되어 한글로 보이긴 했지만 딱 보니 영어를 사용하는 유저였다.
‘와 필담(筆談)이라니······ 동시통역 기능이 생겨난 이후 아무도 DN에서 필담을 하지 않게 되었는데······ 진짜 특이한 유저······ 아! 온몸을 감싸는 검은색 판금 방어구와 필담. 흑기사(Dark Knight)!?’
상혁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한 단어. 검은색 방어구만 봤을 땐 떠올리지 못했지만, 거기에 필담이 합쳐지자 자연스럽게 흑기사가 떠올랐다.
‘설마 내가 아는 그 흑기사?’
상혁은 다시 한 번 상대방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키는 170cm 정도인 것 같았고 덩치는 판금 방어를 풀세트로 입고 있는 걸 고려하면 그리 크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등 뒤에 메고 있는 아주 커다란 검은색 방패와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전체 공개 메시지를 통해 대화하려는 모습······. 적어도 여기까진 모든 게 상혁이 알고 있던 흑기사와 일치했다.
[판매자님?]
“아! 죄송합니다. 인계는 당장 가능합니다. 다만 판매 조건을 보셨을 테지만 팔콘시 경비단과 친밀 이상의 호감도를 가지고 있으셔야 합니다.”
[이미 친밀 이상입니다.]
구매자, 아니 흑기사일지 모르는 그 유저는 짧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다행이군요. 그럼 따라오세요.”
일단 상혁은 그를 데리고 팔콘시 경비단의 지하실을 향해 이동했다. 이동 중에도 상혁은 계속 흑기사에 대해 생각을 했다.
‘EL 초창기에 최고의 탱커로 불렸던 인물······ 하지만 2년 뒤 EL의 첫 번째 대규모 패치인 죽은 자들의 역습이 업데이트되면서 튬 행성이 추가된 이후 갑자기 사라진 전설 속의 유저······ 워낙 2년간 보여준 임팩트가 강해서 오랫동안 올드 유저들 사이에서 언급되었던 인물이 바로 흑기사였지.’
비록 상혁과의 인연은 전혀 없었지만, 워낙 소문이 무성했던 유저라 상혁도 알고 있는 게 꽤 많은 유저였다.
‘진짜 흑기사일까? 일단 지금까지는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 같긴 한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금세 하수도 던전 앞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정말 흑기사인지 확인해 볼까?’
어중간한 것보단 확실한 걸 좋아했던 상혁은 상대가 흑기사인지 꼭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던전을 인계하기 전 원래는 예정에 없던 질문을 먼저 던졌다.
“그런데 혼자이신가요?”
[네.]
“이거 권장 공략 인원이 세 명인데······. 괜찮으시겠어요?”
[공략이 어렵나요?]
“많이 어렵진 않은데 까다로운 게 몇 개 있죠.”
자신은 혼자 100번이나 공략을 했으면서 괜히 겁을 주듯 얘기했다. 물론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다. 상혁이니까 혼자 손쉽게 공략한 것이었지 보통 유저라면 혼자 공략이 힘든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슬쩍 밑밥을 깐 상혁은 상대가 곧장 답변하지 않자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원하시면 열 바퀴 정도 같이 돌면서 던전 공략 요령을 자세히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단, 공짜는 아닙니다.”
상대가 흑기사인지 확인하는 것과 버스를 태워주고 보상을 받는 건 별개의 문제였기 때문에 당연히 돈은 받아야 했다.
[한 바퀴만 돌아주실 순 없나요?]
가만히 고민하던 구매자가 메시지를 띄웠다.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건가? 뭐, 나야 흑기사인지만 확인하면 되는 것이니까.’
“그렇게 하죠.”
어차피 돈보단 다른 목적이 있어서 제안한 버스였기 때문에 한 바퀴만 돌아도 상관이 없었다.
‘근데 진짜 흑기사일까?’
상혁은 구매자를 77번 하수도 던전에 등록하며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어차피 상혁의 이런 궁금증은 구매자와 함께 던전에 들어가 보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가 있었다.
상혁은 겉모습이나 필담보다 확실한 흑기사의 특징을 하나 알고 있었기에 그것만 확인하면 되었다.
* * * *
흑기사는 ‘침묵의 중전차’란 별명도 가지고 있을 만큼 과묵했다. 꼭 필요할 때만 아주 짧은 문장으로 메시지를 띄우는 흑기사.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답답할 수 있었지만, 막상 그와 같이 파티 플레이를 해보면 생각보다 별로 답답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흑기사의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수신호(手信號)와 알아서 자신이 역할을 120% 이상 수행하는 능력 덕분이었다.
흑기사는 손을 든 후 손가락을 세 개 펼치며 앞쪽을 가리켰다. 그리곤 망설이지 않고 앞쪽으로 달려들었다.
그는 자신을 모두 가릴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커다란 타워 쉴드를 앞쪽으로 내민 후 그대로 앞으로 돌진했다.
텅텅텅, 놀랍게도 별로 크지도 않은 체구에서 강력한 힘이 뿜어져 나오며 앞쪽에 있던 세 마리의 몬스터가 모두 뒤로 밀려났다.
흑기사는 그렇게 몬스터들을 밀어붙인 후 방패를 들어 올려 그것으로 몬스터들을 때려잡기 시작했다.
쾅쾅, 콰드득! 콰득!
방패를 이용해 몬스터을 말 그대로 피떡을 만들어 버리는 흑기사. 확실히 그는 평범해 보이지가 않았다.
상혁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뭐 더 확인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특유의 수신호와 돌진방패술(突進防牌術)······ 이로써 흑기사일 확률은 99% 이상이네.’
모든 정보가 그를 흑기사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아직 레벨도 별로 안 높고 장비도 엄청나게 구린 거 같은데······ 잘 싸우네. 호오, 저 방패 흘리기는 그냥 자연스럽게 터득한 건가? 확실히 내가 들었던 소문이 과장되었던 것은 아니었구나.’
상혁은 흑기사가 싸우는 모습을 보며 감탄을 계속했다. 프로게임단 감독 생활을 몇 년간 하며 수많은 프로게이머를 바로 옆에서 지켜봤던 그였다. 그 밖에도 일명 싹수가 보이는 아마추어 유저들의 플레이도 모두 찾아서 봤었다.
그런 상혁이었기에 적어도 EL 안에서 다른 유저를 평가하는 건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다.
‘방패를 거의 한 몸처럼 다루네. 아직 재능이 만개하진 않은 거 같은데······ 제대로 키우면 금강철벽(金剛鐵壁) 칭위엔이나 Mr퍼펙트 이반보다 더 뛰어난 실력자가 되겠는걸.’
칭위엔과 이반은 상혁이 알고 있는 최고의 탱커들이었다. 그들의 실력은 최상위권에서도 특별한 편이었는데 지금 흑기사는 그런 특별한 이들의 재능을 뛰어넘는 느낌이었다.
상혁이 77번 하수도 던전의 특징과 공략방법을 간단하게 설명해주면 흑기사는 아무 말 없이 상혁이 설명해준 공략을 그 자리에서 자신에게 맞게 수정해서 활용했다.
이것만 봐도 흑기사의 게임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있었다. 결국, 흑기사는 순식간에 77번 하수도를 올 클리어했다. 상혁은 그저 공략이나 주의점만 알려줬을 뿐 전투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는 걸 고려하면 사실상 흑기사가 혼자 솔로 클리어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감사합니다.]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온 뒤 흑기사는 약속한 사례비를 그 자리에서 챙겨주면서 고개를 숙였다.
“별말씀을요.”
상혁은 골드를 챙긴 후 잠시 흑기사를 바라보았다.
‘왜 2년 만에 게임을 접었을까?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고 절대 동료를 놓고 물러나지 않는 믿음직스러운 유저라고 들었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겨우 한 번만 같이 던전을 돌았을 뿐이었지만 상혁은 흑기사가 마음에 들었다. 그의 우직한 게임 스타일은 물론이고 아직 만개하진 않았지만 엄청난 가능성이 보이는 재능도 마음에 들었다.
회귀를 해서 과거로 돌아왔고 이제는 감독 같은 주변인이 아니라 모든 관심을 끌어모으는 주인공이 되어 큰 성공을 거두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상혁에겐 감독 생활을 할 때 생겨났던 선수 욕심이 남아 있었다.
‘알아둬서 나쁠 사람도 아니니 미약하게나마 끈을 남겨둬야겠군.’
“혹시 친구 등록 가능할까요?”
[네.]
갑작스러운 상혁의 요청에 흑기사는 잠시 생각을 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반갑습니다. 전 불멸이라고 합니다.”
상혁은 이름을 말하며 오른손을 내밀었고 흑기사는 말없이 악수를 받아주었다. 이름을 말하고 손을 내밀어 악수하는 게 친구신청 절차였다. 여기서 악수를 받아주면 서로 친구가 되는 것이었다.
텅텅 비어 있던 상혁의 친구목록에 흑기사, 아니 ‘아스피스’란 이름이 추가되었다. 물론 흑기사 쪽도 똑같이 텅 빈 친구목록에 ‘불멸’이란 이름이 추가되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뵙죠.”
친구등록은 했지만 그렇다고 흑기사에게 원하는 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순수하게 실력에 감탄해 친구로 등록했을 뿐이었다.
흑기사와 헤어진 상혁은 문득 떠오른 게 있어서 잠깐 로그아웃을 했다. 게임에선 나왔지만 그렇다고 DN의 접속은 끊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D룸에서 몇 가지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병일이는 아직 게임을 시작하지 않았을 테고······ 정우랑 정수만 찾아보면 되나? 근데 이 녀석들 초반엔 완전 호구였다고 했는데······.’
상혁이 찾는 이들은 그나마 상혁이 전생에 ‘동료’라고 부를 수 있었던 이들이었다. 더 정확히는 그나마 끝까지 상혁을 배신하지 않고 도움을 준 이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EL을 플레이했는데 믿을만한 사람이 겨우 3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건 참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그나마 3명이라도 남아 있는 게 다행이었다.
상혁은 그냥 잘 모르는 사람한테 뒤통수를 맞는 것보다 동료라고 믿었던 이들한테 뒤통수를 맞는 게 훨씬 아프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턴 동료를 만들지 못했었다.
상혁은 자신이 알고 있던 김정우와 김정수의 정보를 토대로 그들을 찾아보았다. 둘은 쌍둥이이었다. 솔직히 둘 다 재능은 그냥 평범했는데 엄청난 노력으로 랭커가 되었던 녀석들이었다.
상혁은 한동안 검색을 계속하며 정우와 정수를 찾았지만 도통 두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흐음, 하긴 얘들은 노력만으로 위로 기어오른 녀석들이라 그나마 두각을 나타내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긴 하겠다.’
찾을 수만 있으면 미리 어떤 식으로라도 도와주고 싶었지만, 문제는 찾을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들의 아이디는 알고 있었지만, EL 시스템은 중복 아이디가 허용되었기 때문에 아이디만 가지고 사람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더욱이 친구 등록마저도 서로 만나서 이름을 말하고 악수를 해야지만 가능했기 때문에 아이디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보는 게 좋았다.
‘아무래도 너희는 이번 생에서도 초반엔 고생을 좀 해야 할 것 같다.’
상혁은 잠시 어디선가 고생을 하고 있을 정우와 정수의 행운을 빌어주며 검색을 그만두었다.
대신 상혁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몇몇 길드와 유저들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다. 지금 검색을 하는 길드와 유저들은 대부분 동료가 아닌 복수를 해야 할 대상들이었다.
“역시 ‘골드러쉬(Gold Rush)’는 초반부터 활발하구나. 망할 새끼들······ 이번에도 예전과 똑같이 환기도 잘 안 되는 지하 작업장에서 어린 애들을 협박해서 미친 듯이 굴리고 있겠지.”
상혁은 여기저기에서 골드러쉬의 흔적을 발견하곤 침통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골드러쉬는 상혁을 5년 간 노예처럼 부렸던, 그리고 그를 폐인으로 만들었던 그 작업장의 관리자들이 만든 길드였다. 물론 겉으로는 보통의 평범한 길드처럼 위장하고 있었지만, 실제론 작업장의 막대한 생산력을 토대로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는 쓰레기 같은 길드였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 지켜만 보겠지만, 때가 되면 살이 오를 때로 오른 네놈들을 제대로 뜯어먹어 주마!’
빠드득, 상혁은 정말 이를 갈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뒤로도 상혁은 자신에게 인생의 쓴맛을 알게 해주었던 여러 세력이나 유저를 검색해보았다. 검색되는 이들도 있었고 되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휴우, 참 많이도 당하고 살았네. 전생엔 나도 참 병신 같았지······.’
착했다. 순수했다. 상혁은 이런 말로 자신을 포장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냥 멍청하고 병신 같았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게 맞았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어리석었기 때문에 늘 당하고 살았던 것이었다. 그나마 나중에 좀 정신을 차리고 살아서 감독으로서 성공하긴 했지만, 결국엔 또 뒤통수를 맞았었다.
‘이젠 아무도 믿지 않아. 정의? 의리? 그딴 건 이미 오래전에 내 머릿속에서 지웠다. 이제 난 오로지······ 나만 믿는다.’
상혁은 눈앞에 띄워놓았던 모든 검색창을 한 번에 닫으며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전생의 인연과 악연들을 모두 찾아보며 확실한 걸 하나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자신이 갚아야 할 빚보단 받아야 할 빚이 훨씬 더 많다는 점이었다.
< [11장] 불의 망치 토칸(2) > 끝
ⓒ 성진(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