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장] 황금 해골 기사 (2) >
이미 상혁은 첫 번째 페이즈 때 황금 해골 기사의 두 번째 페이즈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는 황금낙뢰를 이용해 바닥에 아주 멋진 작품을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과거 상혁의 전생에선 이걸 일명 ‘구덩이 작업’이라고 불렀었다. 이 구덩이 작업을 잘해놓을수록 황금 해골 기사의 두 번째 패턴을 쉽게 이겨낼 수가 있었다.
물론 유저들의 수준이 올라간 후에는 구덩이가 없어도 그냥 힘으로 버텨버리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건 한참 나중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적어도 지금은 무조건 구덩이 작업이 최선이었다.
상혁은 황금 해골 기사가 두 번째 패턴으로 넘어갈 것을 예상하고 은근슬쩍 놈을 자신이 멋지게 만들어놓은 작품 한가운데로 유인해 놓았었다.
그렇기에 상혁은 사방에 거미줄처럼 연결된 구덩이들을 이용해 차분히 놈에게 접근할 수가 있었다.
황금 해골 기사는 3초에 한 번씩 사방으로 아주 강력한 뇌전 폭풍을 뿜어냈지만, 구덩이 속에 숨은 상혁에겐 손톱만큼의 데미지도 줄 수가 없었다.
상혁은 구덩이를 이용해 조금씩 황금 해골 기사에게 접근했다. 이미 황금 해골 기사는 마지막 남은 모든 힘을 쏟아내는 중이었기 때문에 3초에 한 번씩 뿜어져 나오는 뇌전폭풍만 조심하면 다른 건 신경 쓸 게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지금의 황금 해골 기사는 모든 원거리 공격엔 면역이었지만 근거리 공격엔 매우 취약한 상태였다. 즉, 가까이 붙어서 제대로 한 방만 꽂아 넣어도 황금 해골 기사는 곧장 쓰러질 수 있었다.
이 모든 사실을 전생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던 상혁은 아주 능숙하게 구덩이 작업을 해놓았고 그 결과 너무나 간단하게 황금 해골 기사가 서 있는 바로 옆까지 올 수가 있었다.
이젠 놈에게 제대로 한 방만 꽂아 넣으면 길고 길었던 황금 해골 기사 사냥을 끝낼 수가 있었다.
번쩍, 파지지지지지지직!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다시 한 번 뇌전 폭풍이 사방을 휩쓸고 지나간 후 상혁은 곧장 몸을 일으키며 황금 해골 기사의 발등을 향해 있는 힘껏 여행자의 보검을 내리찍었다.
휘이잉, 콰득! 쩌저저저저저적!
어딜 공격하든 전혀 상관이 없었다. 중요한 건 그냥 놈의 몸에 공격을 직접 꽂아 넣기만 하면 되었다.
여행자의 보검에 꿰뚫린 발등부터 시작된 균열이 황금 해골 기사의 몸 전체로 퍼져 나갔다.
이걸로 끝이었다. 이미 황금 해골 기사는 한계점에 도달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 한 방도 견디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드드드드드드득.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황금 해골 기사.
2시간이 넘게 계속되었던 상혁과 황금 해골 기사의 전투가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필드 보스 몬스터 ‘황금 해골 기사’를 쓰러트렸습니다.
최초로 필드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며 차원 여행자 중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해냈습니다. 이것은 곧 당신의 업적이 되어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유일 등급 타이틀인 [최초의 필드 보스 사냥꾼]을 획득했습니다.
황금 해골 기사를 최초로 쓰러트렸기 때문에 최초 처지 보너스가 적용되어 황금 해골 기사에게서 얻을 수 있는 71종류의 아이템을 모두 획득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누적 카르마가 한계점을 돌파하며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이런 종류의 시스템 메시지는 아무리 듣고 또 들어도 절대 질리지 않았다. 그냥 듣는 것만으로 행복해졌기에 상혁은 기분 좋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대로 ‘최초의 필드 보스 사냥꾼’ 타이틀을 얻은 것도 행복했고 최초 처치 보너스를 통해 71개 아이템을 얻은 것도 너무나 좋았다.
최초 처지 보너스.
이것은 필드 보스급 이상의 네임드급 몬스터들에게만 적용되는 시스템이었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최초로 네임드 몬스터를 사냥하면 단 한 번에 한해서 그 네임드 몬스터가 떨어뜨릴 수 있는 모든 아이템을 한 방에 다 주었다.
예외는 없었다. 그냥 그 네임드 몬스터에게서 얻을 수 있는 건 모두 얻을 수 있었다.
이 시스템 덕분에 EL의 모든 유저들은 ‘최초’ 공략에 모든 걸 걸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네임드급 몬스터를 잡으면 당연히 늘 최고의 아이템만 주진 않았다.
이해하기 쉽게 상혁이 쓰러트린 황금 해골 기사만 봐도 황금 해골 기사를 황금 해골 로또라 불리게 한 ‘만년금골(萬年金骨)’은 거의 0.01% 확률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한 마디로 10,000마리를 잡아야 한 번 얻을까 말까 한 아이템이란 뜻이었는데 최초로 황금 해골 기사를 잡으면 이 아이템을 무조건 얻을 수 있었다.
이렇듯 EL에선 네임드 몬스터를 최초로 공략하면 단순히 명예만 얻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엄청나게 큰 이득도 얻을 수가 있었다.
‘역시 최초 공략이 최고야.’
상혁은 눈앞에 수북이 쌓여 있는 아이템들을 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상혁이 가진 공간 확장 가방이 너무 작아서 몇 개는 카드화시켜서 들고 가야 할 정도로 아이템이 많이 쌓여 있었다.
* * * *
상혁이 이번 유령고성 사냥에서 얻은 이득은 일일이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큰 이득들이 세 가지가 있었다.
일단 첫 번째는 로또를 맞아야 얻을 수 있다는 황금 해골 기사의 만년금골이었다.
만년금골은 말 그대로 커다란 황금 뼈다귀였다.
이것은 재료 아이템이었는데 이것을 이용해 아이템을 만들면 아이템의 등급은 무조건 유일(유니크)로 고정되었다. 시간이 많이 흐르면 결국 유일 등급 아이템이 제법 풀리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유니크는 고사하고 희귀(레어) 아이템도 등장하지 않은 상태였다.
마법(매직) 등급 아이템만 되어도 아주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게 지금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유일 등급의 아이템을 얻는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특히 만년금골을 이용해 만든 제작 아이템을 질이 좋기로 아주 유명했었다. 이런 점 때문에 유저들의 레벨이 올라가고 더는 황금 해골 기사를 잡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지경이 되었음에도 수많은 유저들이 눈에 불을 켜고 황금 해골 기사를 찾아다녔었다.
솔직히 황금 해골 기사가 떨어트리는 다른 아이템은 별 볼 일 없었다. 로또는 오로지 만년금골 뿐이었다. 사실 다른 아이템의 드랍 확률은 평범했다. 아무리 낮은 것도 5% 정도였다. 유독 만년금골만 특별했을 뿐이었다.
만년금골을 얻는 순간 진짜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대박이 나는 것이었다.
이러한 만년금골을 이용해서 만들 수 있는 아이템은 무려 24가지나 되었는데 상혁도 그 중 10가지 정도는 직접 사용해본 경험이 있었다.
물론 상혁이 만년금골로 제작한 아이템을 다수 사용했을 때는 그것보다 등급 자체가 더 높은 아이템들이 많이 풀렸을 때라 만년금골 제작 아이템의 가격이 많이 저렴했다.
그땐 싸고 질 좋은 아이템을 사용하는 의미에서 만년금골 제작 아이템을 사용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이템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는 점이었다.
두 번째는 ‘최초의 필드 보스 사냥꾼’이란 타이틀이었다. 이 타이틀의 효과는······.
호칭 - ‘최초의 필드 보스 사냥꾼’
등급 – 유일(唯一)
설명 – 누구보다 먼저 필드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리며 자신의 강함을 증명했습니다.
효과 - [접두: 필드 보스 몬스터를 상대할 때 공격력 상승] [접미: 필드 보스 몬스터를 상대할 때 방어력 상승] [상시지속 효과: <꿇어라!(A) : 필드 보스 몬스터를 상대할 때 치명타 확률 7% 상승, 치명타 데미지 15% 상승>]
······이러했다. 아쉬운 건 효과의 적용 대상이 필드 보스 몬스터로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기본적인 효과 자체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상혁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타이틀이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보너스 필드를 싹쓸이하고 보스 몬스터까지 쓰러트리며 얻은 막대한 양의 카르마였다.
이번 사냥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남들이 열심히 자전거에 앉아 열심히 페달을 굴리며 달리고 있을 때 상혁은 고급 스포츠카를 타고 있는 힘껏 가속페달을 밟고 미친 듯이 달려나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유령고성에 들어가 전의 상혁은 최상위 그룹에 속한 유저들과 레벨 차이가 제법 났었는데 유령고성을 빠져나온 상혁은 최상위 그룹과 전혀 차이가 나지 않고 있었다.
현재 상혁의 레벨은 37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각종 커뮤니티에 알려진 사실만 놓고 보면 현재 EL에서 가장 레벨이 높은 유저는 어제 40레벨을 달성한 중국인 유저 ‘장쯔’였다.
하지만 그는 원 소울 유저였다. 실제로 상혁의 기억 속에도 장쯔란 이름을 가진 최상위권 랭커는 없었다. 그 얘긴 장쯔는 그냥 초반에 아무것도 모르고 원 소울로 달렸다가 결국 나중에 도태되어버린 그저 그런 유저란 뜻이었다.
중요한 건 장쯔의 미래가 아니라 상혁이 쿼드라 소울이란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원 소울 유저와 거의 비슷한 속도로 레벨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밖에 황금 해골 기사에게서 얻은 수많은 아이템 중에서도 몇 가지 쓸 만한 게 있었다. 그런 것들은 상혁이 사용하고 나머지 사용하지 않을 것들은 죄다 위탁 판매소에 올려놓았다. 카드화시킨 몇몇 재료아이템들은 나중에 사용할 것들이었기 때문에 따로 은행에 넣어두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카드 유저’의 길을 걷게 된 상혁이었기 때문에 앞으로 정말 많은 골드가 필요했다. 조합 카드는 사실상 골드를 소모해 스킬을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함부로 조합 카드를 마구 사용하면 순식간에 거지가 될 수도 있었다.
물론 돈만 있다고 해서 조합카드를 무한정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상혁이 처음으로 제작한 조합카드인 ‘플레임 스톤’은 코스트가 0인 하급 조합카드였기 때문에 1,000장이건 10,000장이건 무한정 쟁여놓을 수가 있었지만, 나중에 코스트가 존재하는 조합 카드들이 나오면 당연히 ‘카드 유저’의 유일한 단점인 코스트 계산 식에 따라 조합 카드들을 보유하거나 사용할 수가 있었다.
쓸모없는 아이템들을 모두 위탁 판매소에 올린 상혁은 곧장 팔콘시에서 장인 거리(匠人)거리라고 불리는 41번 거리로 이동했다. 이곳엔 각종 공방(工房)들이 모여 있었는데 상혁이 찾아가는 곳은 그 공방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황금 모루’라는 대장간이었다.
황금 모루는 팔콘시에서 가장 큰 대장간이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팔콘시를 포함해 초반 플레이 지역이라 할 수 있는 ‘황혼의 땅’에 속한 7개의 도시를 모두 합쳐놓고 봐도 이곳 황금 모루가 가장 큰 대장간이었다.
이 황금 모루 대장간의 주인은 붉은 망치라 불리는 ‘토칸’이란 드워프였다.
사실 토칸은 아무나 만날 수 있는 NPC가 아니었다.
지금은 아무도 모르고 있는 설정이었지만 그는 사실 드워프들의 왕이었다. 그런 인물이 왜 팔콘시에서 대장간을 운영하는지는 아주 나중에 메인 스토리 퀘스트를 통해 드러날 예정이었다.
널리고 널린 서브도 아니고 오로지 하나밖에 없는 메인 스토리 퀘스트는 워낙 중요한 퀘스트였기 때문에 상혁도 상세히 알고 있었다.
어쨌든 그런 토칸을 이제 겨우 초보 유저 딱지를 뗀 상혁이 만난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EL의 호감도 시스템은 매우 유기적으로 서로서로 물려 있었기 때문에 토칸을 만나기 위해선 선행적으로 먼저 다른 NPC나 단체의 호감도를 올려야 했다.
그 과정에 절대 쉽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상혁의 전생에서도 헬 구간에서 레벨을 올리는 것보다 등급이 높은 NPC의 호감도 작업을 하는 게 더 힘들다는 얘기가 많았었다.
특히 토칸같은 특수 NPC들은 그냥 단순히 만나는 것조차 엄청나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한 마디로 왕을 알현하려면 노력을 해라! 이것이었다.
‘하지만 난 지금 토칸을 한 방에 만날 수 있는 치트키를 가지고 있지.’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한 방에 토칸을 만날 수 있는 치트키······ 그건 당연히 만년금골이었다.
* * * *
“오오오오.”
토칸은 황홀한 표정으로 만년금골을 들어 올렸다. 그는 이미 만년금골에 단단히 홀린 것 같은 눈빛이었다.
토칸이 만년금골을 끔찍이 좋아한다는 사실은 상혁의 전생에선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리고 만년금골을 통해 그와 한방에 만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음알음 다 알려졌던 정보였다.
토칸은 게임 설정 상 ‘황금’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드워프였기 때문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만년금골에 홀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만년금골을 매우 질 좋은 재료아이템이었기 때문에 토칸은 만년금골을 이용해 뭔가를 만들고 싶어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드워프의 본능과 같은 것이었다.
“흠흠, 꽤 흥미로운 물건을 가지고 있구나.”
토칸은 애써 침착한 듯 얘기했지만 이미 상혁은 그가 만년금골에 푹 빠져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재수가 좋아서 얻게 된 물건입니다. 이걸 얻는 순간 토칸님이 떠올랐습니다. 대지 일족의 위대한 장인이자 염혼(炎魂)의 계승자이신 붉은 망치 토칸님이 아니라면 누가 이것을 다룰 수 있겠습니까?”
상혁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동원해 최대한 상대방이 듣기 좋게 얘길 했다.
EL의 NPC들을 단순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생각해서는 안 됐다. 그들은 인간과 완벽하게 똑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인간과 비슷한 사고(思考)를 하려고 노력하는 최첨단 인공지능들이었다. 특히 토칸과 같은 특별한 NPC들은 더더욱 뛰어난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NPC들도 당연히 자신들이 듣기 좋은 말을 듣고 싶어 했다. 물론 NPC들도 기본적으로 성향이 모두 달랐기 때문에 성향에 따라선 듣기 좋은 말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지만, 보통은 듣기 좋은 말을 좋아했다.
특히 토칸은 생김새와 다르게 칭찬에 약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상혁의 이런 어투는 그에게 제대로 먹혀들었다.
“하하하하, 그렇지.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이 세상 누가 와도 나보다 잘 만질 수 없지!”
한껏 기분이 좋아진 토칸은 기분 좋게 웃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망치 토칸의 기분이 매우 좋아졌습니다.
토칸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만년금골을 꺼내놓은 순간부터 계속해서 상승하던 호감도가 다시 한 번 대폭 상승했다. 확실히 토칸에게 만년금골은 너무나도 강력한 치트키였다.
“그래서 어떤 걸 만들고 싶나? 검? 갑옷? 방패? 창? 무엇이든 말해라. 내가 아주 멋진 놈으로 만들어주마.”
돌발 퀘스트 ‘토칸의 호의’가 발동되었습니다.
상혁이 말을 꺼내기 전에 토칸이 먼저 물건을 만들어주겠다고 나서준 덕분에 돌발 퀘스트까지 발동했다. 정말 모든 게 상혁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전······.”
상혁은 이미 이곳에 오기 전에 만년금골로 무엇을 만들지 생각을 하고 온 상태였다. 만년금골로 만든 물건 중 자신에게 가장 필요하면서 아주 좋은 성능을 지니고 있었던 그것······. 만년금골로 그것을 제작하는 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었다.
< [10장] 황금 해골 기사 (2) > 끝
ⓒ 성진(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