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17화 (17/127)

< [9장] 개인 방송 (2) >

유령고성(幽靈古城)이라 불리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팔콘시에선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거의 폐허가 된 고성이었다. 사실 그곳은 팔콘시 다음에 차원 여행자들이 모여들게 될 미녹(Minox)에 더 가까이 붙어 있는 사냥터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아직까진 잘 알려진 사냥터가 아니었다.

유저들은 이미 EL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냥터에 등급을 매기고 있었는데 유령고성은 유저들 사이에서 대략 D등급 사냥터로 분류되고 있었다.

망자의 계곡과 같이 인기가 많은 사냥터는 A등급을 받았고 적당히 괜찮은 사냥터들이 B나 C등급을 받았다. 그리고 사실상 D등급부터는 유저들이 거의 찾지 않는 사냥터로 분류되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지금까지 유저들이 찾아내서 공개 상태로 전환된 사냥터 중 가장 인기가 없는 사냥터가 바로 유령고성 사냥터였다.

EL은 넓고 좋은 사냥터들이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인기가 없는 사냥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인기가 없어질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아주 중요한 사실이 하나 공개되기 전까진 이런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었었다.

‘카르마 누적 시스템. 이 시스템이 대략적이나마 알려진 게 언제였더라? 워낙 알음알음 알려졌던 사실이라 정확한 시점을 모르겠네.’

카르마 누적 시스템. 이것은 오로지 필드에만 적용되는 시스템이었는데 이것의 존재 덕분에 EL엔 버려진 사냥터 같은 게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유저들의 레벨이 올라가 저 레벨 존에서 활동하는 차원 여행자들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게 된 후에도저 레벨 존의 사냥터들이 버려지는 일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유령고성이 공개 상태로 전환된 지 대략 삼 주가 넘었나? 확실히 이 정도라면 누적된 카르마가 상당해서 분명 카르마 특이점이 형성되었을 거야.’

상혁이 노리는 건 누적된 카르마가 몬스터들과 필드를 변형시켜 만드는 ‘카르마 특이점’이었다.

계속해서 리스폰 되는 몬스터들을 유저들이 주기적으로 사냥해주지 않으면 그 지역엔 카르마가 계속해서 누적되고 그것이 일정 시점을 넘으면 ‘카르마 특이점’이라는 특이한 현상을 일으켰다.

카르마 특이점은 단계가 많았는데 지금은 첫 번째 단계인 ‘보너스 필드 생성’과 두 번째 단계인 ‘필드 보스 탄생’ 정도까지만 적용될만한 시간이었다.

이 이상 기다리다간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 꿀단지를 빼앗길 수도 있었기 때문에 지금이 꿀단지를 열 정확한 타이밍이었다.

특히 유령고성은 지하로 층층이 내려가는 구조였기 때문에 카르마 특이점 때문에 보너스 필드가 생성되어도 아무도 가지 않는 지하 7층에서 8층 사이에 생성되게 되어 있었다.

상혁은 카르마 특이점에 대해선 알고 있었지만, 유령고성에 생성되었던 카르마 특이점을 언제 누가 선점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아무리 상혁이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온 존재라고 해도 모든 걸 다 알고 있을 순 없었기 때문에 불확실한 부분은 최대한 빠르게 일을 처리해 혹시라도 있을 불상사를 막는 게 좋았다.

* * * *

“영상 촬영 시작. 시점은 타워 시점으로!”

상혁은 틈날 때마다 영상을 찍어놓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유령 고성에 진입하기 전 촬영 설정을 미리 해놓았다.

스르릉.

촬영 설정을 끝낸 상혁은 여행자의 보검을 뽑으며 천천히 유령고성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유령고성에는 일명 해골 시리즈라 불리는 해골 병사, 궁수, 기사, 마법사가 등장했는데 층을 내려갈수록 더 강한 해골들이 나타났다.

해골시리즈는 트리나크 행성 전역에서 아주 흔하게 등장하는 녀석들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상혁도 해골시리즈와의 전투 경험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상혁은 해골시리즈의 끝판 왕과 같은 존재인 용아병(龍牙兵)들과도 수없이 싸워본 경험이 있었다. 물론 유령고성에서 용아병이 등장하진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해골 시리즈들의 전투 패턴은 거기서 거기였다.

위에서 아래로 빠르게 내리 찍히는 한 자루의 검. 해골병사가 있는 힘껏 휘두른 그 검에 실린 힘은 제법 강력했다.

하지만 상혁은 여행자의 보검을 비스듬히 세우며 그 검을 흘려버렸다. 이런 종류의 기술들은 나중엔 프로게이머라면 누구나 하는, 아니 프로게이머가 아니라도 EL 좀 한다는 유저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본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적어도 2~3년은 흘러야 했다.

지금 시점에선 이런 걸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까가가강.

가볍게 해골병사의 검을 흘려버린 상혁은 그 상태에서 몸으로 해골병사를 강하게 밀어버렸다.

꽈광! 드드드득.

해골시리즈들은 기본적으로 버티는 힘이 약했기 때문에 상혁의 강력한 몸통박치기에 뒤로 확 밀려났다.

몸통박치기로 어느 정도 거리를 확보한 상혁은 여행자의 보검을 빠르게 세 번 휘둘렀다.

파파팟, 자연스럽게 발동되는 하급 삼단 베기. 그런데 칼의 각도가 묘했다. 삼단 베기라면 당연히 칼날로 적을 베어야 했는데 상혁은 가볍게 검의 각도를 비틀어서 검면으로 적을 베어, 아니 때렸다.

퍼억, 퍼퍼퍽!

해골시리즈에겐 베는 무기보다 패는 무기가 훨씬 효과적이었다. 제대로 상대하려면 검과 같은 무기가 아닌 둔기를 들고 왔어야 했지만, 기본적으로 여행자의 보검이 워낙 기본 공격력이 높았기 때문에 어중간한 둔기를 들고 오는 것보단 여행자의 보검을 사용하는 게 훨씬 좋았다.

대신 상혁은 검을 둔기처럼 사용했다. 사실 말로는 쉬워 보여도 실제론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이름에 무려 ‘베기’라고 붙은 스킬을 임의로 때리는 동작에 적용시키는 건 진짜 어지간한 감각으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두들겨라! 그러면 쓰러질 것이다!’

상혁은 해골시리즈를 상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마인드로 열심히 해골병사를 두들겼고 결국 해골병사는 머리가 박살 나며 쓰러졌다.

콰드득, 우르르르르.

눈앞에 해골병사가 쓰러지는 순간 상혁은 곧바로 몸을 옆으로 날렸다.

쐐애액, 퍼억!

그 순간 뒤쪽에서 또 나타난 해골궁수가 날린 화살이 상혁이 서 있던 곳을 스치고 지나가 벽에 꽂혔다.

이건 눈으로 보고 피한 게 아니라 순수하게 감으로 피한 것이었다. 해골궁수가 바닥에서 솟아난 건 해골병사의 머리를 날리기 직전에 힐끗 봤었지만, 눈앞에 있는 해골병사를 마무리하느냐고 놈이 화살을 날리는 타이밍은 정확히 눈으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놈의 공격은 무조건 감으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감각적으로 공격을 피한 상혁은 바닥을 가볍게 한 바퀴 구르며 곧장 해골궁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카드 조합스킬 ‘플레임 스톤’!

화르르륵, 콰과광!

미리 준비해놓은 조합 카드가 발동되며 상혁의 손에서 불붙은 돌멩이 하나가 빠르게 뻗어 나가 해골궁수의 머리에 정확히 꽂혔다.

상혁은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50장의 플레임 스톤 카드를 조합해 놓은 상태였다. 물론 50장도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최대한 아껴서 사용하긴 해야 했다.

위탁 판매소에 올라와 있던 블랙스톤 가루가 50개밖에 없어서 플레임 스톤을 50장밖에 만들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어차피 블랙스톤 가루는 희귀한 재료가 아니었기 때문에 계속 구할 수 있었다.

우드득, 콰르르륵.

플레임 스톤은 해골시리즈에겐 거의 상극(相剋)에 가까운 공격이었기 때문에 해골궁수는 머리가 박살 나며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사실 상혁이 플레임 스톤을 가장 먼저 준비한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해골병사는 가볍게 때려잡고 해골궁수는 플레임 스톤 한 방으로 저격해 잡았다. 해골병사와 해골궁수는 모두 레벨이 어느 정도 높은 몬스터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유저들 같으면 최소 두 명 이상 파티를 해서 사냥을 했을만한 몬스터였다.

하지만 상혁은 자신의 실력을 믿고 홀로 사냥을 하는 중이었다.

‘아, 역시 보너스 필드의 리스폰 속도는 무시무시하네.’

현재 상혁은 유령고성의 지하 7층에 내려와 있었다. 유령고성은 지하 8층까지 필드가 이어져 있었는데 7층부터가 카르마 특이점 효과 때문에 보너스 필드가 생성된 상태였다.

보너스 필드가 생성되면 몬스터를 쓰러트리고 얻는 카르마의 양이 20~30% 증가하고 몬스터들이 더 높은 확률로 질 좋은 아이템을 떨어트렸다.

보너스 필드는 일정 수준의 몬스터가 잡힐 때까지 계속 유지가 되었기 때문에 상혁은 적어도 보너스 필드가 사라질 때까진 이곳에서 계속 사냥을 할 생각이었다.

사실 순수하게 몬스터의 능력만 따지면 해골병사와 해골궁수를 상대하는 것보다 해골기사와 해골마법사를 상대하는 게 거의 두 배 정도는 더 힘들었다. 하지만 실제로 현실에서의 난이도 차이는 거의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해골병사와 해골궁수는 주로 3~5마리씩 몰려서 등장했지만 해골기사와 해골마법사는 대부분 1~2마리씩만 등장을 했다.

그렇기에 상혁 입장에선 어떤 놈들이 튀어나와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사실 상혁의 전투는 단조롭기 그지없었다. 근거리 공격을 하는 해골병사와 해골기사는 가까이에서 검으로 때려잡고 원거리 공격을 하는 해골궁수와 마법사는 거리를 좁힐 수 있으면 거리를 좁힌 후 때려잡고 도저히 거리를 좁히기 힘든 상황이면 플레임 스톤을 사용해 상성으로 찍어 눌렀다.

누군가 옆에 서서 상혁이 사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면 너무 지루하다고 얘기했을 정도로 단조로운 패턴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EL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유저가 사냥을 지켜봤다면 전혀 다르게 충격을 받을 수가 있었다.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사냥.

이게 지금 상혁의 사냥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었다. 너무나 군더더기가 없어서 보는 재미가 없을 뿐이었다. 원래 극한의 효율에 다다른 움직임은 너무나 단순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상혁은 해골마법사의 갈비뼈에 여행자의 보검을 끼워 넣는 것과 동시에 오른발로 그 검을 강하게 쳐올렸다.

빠각, 우드드득!

그 순간 해골마법사의 갈비뼈가 모두 부서지며 해골마법사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갈비뼈들을 모두 날려버린 상혁은 검을 다시 뽑아서 가장 빠르고 간결하게 해골마법사의 머리에 검을 꽂아버렸다.

콰드득, 쩌저적!

이미 첫 번째 공격으로 큰 타격을 입은 해골마법사는 이 한 방을 버티지 못했다. 상혁이 파고드는 순간 뭔가 마법을 사용해 상혁을 공격하려고 했지만, 문제는 해골마법사의 반응보다 상혁의 연속 공격이 훨씬 빨랐다는 점이었다.

쿠쿠쿵.

마지막으로 해골마법사까지 쓰러지면서 상혁은 한꺼번에 등장했던 또 한 무리의 해골들을 깔끔하게 처리했다.

“확실히 해골 기사 둘에 해골 마법사 하나가 껴 있으니까 까다롭긴 하네.”

상혁은 말로는 까다로웠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실제론 미리 수십, 수백 번 연습하고 온 것처럼 정확한 판단과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세 마리의 해골들을 처리했다.

사실 지금 상혁이 여기서 사냥을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보통 상혁의 레벨 정도 되는 유저는 아무리 좋게 쳐줘도 유령고성의 지상 필드나 혹은 지하1층 정도에서 한 마리씩 등장하는 해골병사 정도를 사냥하는 게 거의 한계였다.

그런데 상혁은 그런 한계를 가볍게 무시하고 지하 7층까지 내려와 혼자 해골 무리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작업장에서 5년간 기계처럼 부려지며 터득한 실전 경험에 그 뒤 감독생활을 하며 완성된 완벽한 이론이 합쳐지자 상상 이상의 시너지가 발생하는 중이었다.

처음엔 이론과 실전 경험이 제대로 융합이 되지 않아 힘들었지만, 그동안 계속 노력을 한 끝에 이제는 거의 90% 이상 상혁이 원하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었다.

“푸른빛이 많이 희미해졌네.”

해골마법사가 떨어트린 몇 가지 잡템을 줍던 상혁은 주변 바닥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 푸른빛이 눈에 띄게 희미해졌다는 걸 느꼈다.

푸른 빛이 희미해진다는 건 곧 보너스 필드 효과가 약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 정도라면 거의 삼십 분 안에 보너스 필드 효과가 사라지겠군. 그렇다면······ 이제 슬슬 아래층으로 내려가야겠네.’

지하 7층이 ‘카르마 특이점 [보너스 필드]’였다면 지하 8층은 ‘카르마 특이점 [필드 보스]’였다.

필드 보스는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당연히 잡았을 때 얻을 수 있는 보상도 일반 몬스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진짜 이 아래 있는 필드 보스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놈이라면······. 난 또 하나의 대박을 얻을 기회를 잡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힘들겠지?’

물론 필드 보스 생성은 순수하게 랜덤이었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녀석이 상혁을 기다리고 있을지는 몰랐다.

다만 해골류 필드 보스 몬스터 중 상혁이 원하는 놈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해골류 필드 보스 몬스터는 상혁이 알고 있는 놈만 7종류였다. 그렇기에 상혁이 원하는 놈이 등장할 확률은 7분의 1이었다.

“가자!”

쇠뿔도 단김에 빼는 법이었기에 상혁은 곧바로 8층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물론 마음속으로 꼭 자신이 원하는 필드 보스 몬스터가 등장하길 빌고 있었다.

< [9장] 개인 방송 (2) > 끝

ⓒ 성진(成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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