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장] 두 번째 고대의 지식 (2) >
상혁이 두 번째로 얻으려는 고대의 지식은 희귀도만 따지면 상급에 속하는 고대의 지식이었다. 하지만 인기도를 따지면 최하급, 아니 단언컨대 아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는 무조건 들어간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물론 이건 전생의 기준이었다. 지금은 이런 고대의 지식이 있다는 것 자체를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EL에 접속한 상혁은 우선 팔콘시의 환락가(歡樂街)인 식스나인(Six Nine) 스트리트를 찾아갔다. 이름부터 아주 노골적인 이 거리는 유저들에게 최고의 쾌락을 선물하는 장소였다.
EL은 성인용 게임이었다. 애초에 DN은 지문과 안면을 인식해 정확한 개인정보를 확인한 후에야 접속할 수 있었기 때문에 미성년자가 EL에 접속할 방법은 아예 없었다.
그렇기에 EL의 성인 콘텐츠는 굉장히 화끈한 편이었다.
물론 불법적인 콘텐츠는 없었지만, 법이 허용하는 한계 수준의 콘텐츠들이 즐비했다. 다만 이런 성인용 DN 콘텐츠들은 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정확하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무한정 이곳에서 지낼 순 없었다.
상혁도 남자는 남자였기 때문에 이런 성인 콘텐츠를 이용해본 경험은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아주 많지는 않았다. 그저 평범한 남자들이 즐기는 수준으로만 즐겨봤을 뿐이었다.
그리고 적어도 오늘은 성인 콘텐츠를 즐기러 온 게 아니라 구할 게 있어서 온 것이었다.
‘도박장이 어디 있더라······.’
상혁은 식스나인 스트리트에 3대 명소(?)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팔콘 카지노’를 찾고 있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상혁은 여기저기에서 호객하는 헐벗은 NPC들을 지나 팔콘 카지노에 들어설 수 있었다.
상혁이 카지노에 온 이유.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원하는 ‘고대의 지식’을 이곳에서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대의 지식 ‘카드 유저(Card User)’.
승급과 합성을 거쳐 결국 ‘카드 마스터(Card Master)’가 될 그 고대의 지식은 오로지 여기서만 구할 수가 있었다.
* * * *
카드 유저.
이 고대의 지식이 일반 유저들에게 공개가 된 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였다. 몇몇 유저들 사이에선 미리 공유되었다고 알려졌었지만, 어차피 그런 건 별로 의미가 없었다.
고대의 지식은 희귀하다고 해서 다 좋은 건 절대 아니었다. 특히 ‘카드 유저’ 같은 경우는 처음 공개가 되었을 땐 모두 신기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정작 그것이 가진 세부 능력이 알려지자 모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고대의 지식 ‘카드 유저’는 단순히 고대의 지식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고대의 지식에 딸려 나오는 영혼 스킬도 ‘카드 조합’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거 하나밖에 없었다. 뭔가 대단해 보였지만 실상은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계륵이었다.
물론 시간이 조금씩 흐르며 카드 조합이란 게 어떤 건지 대충 파악이 되었지만, 문제는 파악되었다고 해서 그걸 100%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란 점이었다.
결국, 카드 유저란 고대의 지식은 사용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후 버려졌다. 고대의 지식 중엔 이런 식으로 버려진 것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별로 신기한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대략 10년간 버려져 있던 그것을 다시 살려낸 사람이 바로 상혁이었다.
탁탁.
상혁은 테일을 가볍게 두 번 두드리며 다시 한 번 체크를 했다. 카지노에 들어오자마자 상혁은 가장 베팅 금액이 낮은 ‘세븐 포커’ 테이블에 앉아 계속 게임을 하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즐기기 위해 혹은 돈을 따기 위해 카지노에 왔지만 상혁은 전혀 다른 이유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이건 꽝이군.’
5번째 카드를 확인한 상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카드를 덮었다. 고대의 지식 ‘카드 유저’를 얻는 방법은 카지노에 있는 세븐 포커 테이블에서 세븐 포커를 통해 완성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카드를 완성하면 되었다.
정확히는 ‘원 페어, 투 페어, 트리플, 스트레이트, 플러쉬, 풀 하우스, 포 카드, 스트레이트 플러쉬’까지 총 8가지의 패를 완성하면 되었다.
언뜻 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세븐 포커는 카지노에서 그렇게 인기가 높은 게임이 아니었기 때문에 테이블에 앉아 있는 유저도 별로 없었다.
그런 세븐 포커에서 모든 종류의 패를 완성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포 카드나, 스트레이트 플러쉬 같은 경우는 정말 구경하기 힘든 패였다.
이런 점 때문에 상혁은 베팅 금액이 제일 낮은 세븐 포커 테이블에서 최대한 베팅을 약하게 하며 계속 자신의 패를 만드는데 만 집중했다.
어차피 상혁이 원하는 건 돈을 따는 게 아니라 8가지 패를 완성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패를 계속 확인하면 가능성이 전혀 없을 땐 과감히 카드를 덮으며 죽어버렸다.
‘휴, 이제 남은 건 포 카드랑 스트레이트 플러쉬 뿐인데······ 역시 더럽게 안 뜨네.’
카지노에 들어온 지 이틀이 흐른 지금 상혁은 잠깐의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 계속해서 세븐 포커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뭐, 언젠간 나오겠지.’
상혁은 조바심 같은 건 내지 않았다. 이건 답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만 가질 수 있는 여유였다.
* * * *
‘마지막 한 장······.’
상혁은 떨리는 마음으로 마지막으로 받은 7번째 카드를 살짝 뒤집어 보았다.
선명하게 보이는 하트 에이스!
그걸 확인한 순간 상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포 카드는 벌써 사흘 전에 나왔건만 스트레이트 플러쉬가 도통 나오질 않아 고생했었다.
‘정확히 일주일이 걸린 건가?’
법적으로 정해진 한계를 꽉꽉 채우며 일주일 동안 카지노에 계속 앉아 있었던 상혁은 결국 원했던 결과를 얻어냈다.
베팅이 끝나고 상혁이 바닥에 깔렸던 패를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주는 순간 테이블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
하지만 상혁은 그들의 반응보단 자신의 눈앞에 생겨난 시스템 메시지에 더 정신이 팔려있었다.
카드 유저가 될 모든 자격을 갖췄습니다.
고대의 지식 ‘카드 유저(Card User)’를 얻을 수 있는 조건을 모두 충족했습니다.
비어 있는 두 번째 소울 홀에 고대의 지식 ‘카드 유저’를 흡수하겠습니까? 5분 안에 결정을 내려주세요.
‘흡수한다!’
상혁은 옆에 다른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크게 외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대의 지식 ‘카드 유저(Card User)’가 비어 있는 두 번째 소울 홀에 흡수됩니다.
남아 있는 빈 소울 홀은 ‘2개’입니다.
고대의 지식은 비어 있던 영혼의 구멍을 채워주었고 상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하는 걸 다 얻었으니 더는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일주일 동안 돈도 제법 잃었지만 그다지 아깝진 않았다.
‘카드 유저. 이것이야말로 내가 생각한 쿼드라 소울의 핵심이지.’
과거 상혁이 키워낸 크래쉬 최상열은 더블 소울 유저였다. 그리고 그 최상열이 가지고 있던 두 개의 고대의 지식은 ‘섀도우 나이트’와 ‘카드 마스터’였다.
최상열은 사실상 상혁에 의해 만들어진 플레이어였기 때문에 상혁의 머릿속엔 최상열이 가지고 있던 모든 비밀이 담겨 있었다.
그렇기에 아직 두 개의 빈 소울 홀이 남아 있었지만 무조건 상혁은 우선 ‘기사’와 ‘카드 유저’를 소울 홀에 장착할 수밖에 없었다.
미련없이 카지노 밖으로 나온 상혁은 곧장 정보창을 열어서 자신이 얻은 고대의 지식 ‘카드 유저’를 확인해 보았다.
고대의 지식 ‘카드 유저(Card User)’
: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카드 술사의 힘이 당신의 영혼에 스며들었습니다. 카드 술사는 카드를 이용해 불가능을 가능으로도 바꿀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명심하세요. 이 힘은 쉽게 다룰 수가 없다는 것을······.
상세 효과 : 카드 제작 [모든 종류의 것들을 카드로 만들 수 있습니다.] 되돌리기 [모든 종류의 카드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습니다.] 카드 친화력 C [카드로 만들어진 모든 것을 능숙하게 다룰 수가 있습니다.]
카드 조합 [특수 기술]
- 4장 이상의 카드를 조합해 전혀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낸다.
[등록된 조합식 : 0개]
‘그대로네.’
고대의 지식 카드 유저가 상혁이 알고 있던 그대로였다. 상혁이 생각하는 모든 건 바로 이 카드 유저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실 카드 유저는 한눈에 봐도 굉장히 특이한 고대의 지식이었다.
카드 유저의 가장 큰 능력은 역시나 ‘카드 제작’이었다. EL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건 카드로 제작할 수 있었다. 물론 카드를 만드는 방법은 각기 다 다르긴 했다.
보통 아이템 같은 것들은 간단하게 소유권만 자신이 가지고 있으면 카드로 만들 수 있었지만, 살아 있는 몬스터나 동물 같은 것들은 여러 조건을 만족해야 카드로 만들 수가 있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카드 제작도 분명 요령이 있어야 잘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카드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는 되돌리기는 말 그대로 카드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낡은 철검이 한 자루 있다고 치면 이걸 카드로 제작한 후 가지고 있다가 되돌리기를 통해 다시 낡은 철검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었다.
다만 카드로 제작된 모든 것들은 카드로 만들어지는 것과 동시에 자신에게 귀속되었기 때문에 누군가와 거래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만약 거래만 되었다면 아마도 카드 유저는 최고의 상인용 고대 지식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사용하는 것에 한해서는 얼마든지 카드 제작과 되돌리기를 이용해 아주 손쉽게 장비들을 관리할 수가 있었다.
상혁이 돈이 충분히 모였음에도 굳이 비싸고 좋은 ‘공간확장 가방’을 사지 않았던 건 이것 때문이었다.
딱 여기까지만 보면 고대의 지식 ‘카드 유저’는 그냥 장비를 쉽게 보관할 수 있게 해주는 정말 별거 아닌 고대의 지식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카드 유저의 진짜 힘은 이런 카드 제작이나 되돌리기가 아니었다.
유일한 영혼 스킬인 ‘카드 조합’.
이것이야말로 EL에 존재하는 최강의 사기 스킬이었다.
카드 조합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카드 조합을 이용하면 온갖 종류의 스킬들을 아무런 제약 없이 사용할 수가 있었다.
최상렬이 EL 최강이란 타이틀을 획득했을 때 그를 상대했던 다른 프로게이머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약점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최상열이 사용한 게 바로 카드 조합이었다.
정확히는 상혁이 만들어준 ‘천룡패법’에 의거한 카드 조합이었지만 어쨌든 최상열은 카드 조합의 힘을 이용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가 있었다.
그럼 이토록 좋은 카드 유저가 왜 모든 유저들에게 외면을 받았던 것일까?
그 이유는 생각보단 간단했다.
‘카드 조합식이 그 어디에도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지······.’
카드 조합식.
결국, 이게 핵심이었다. 언뜻 보면 조합식 따위는 금방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실을 알게 되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카드 조합을 완성하려면 4장의 카드가 필요했다. 그런데 사실상 EL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게 카드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적어도 조합에 사용할 수 있는 카드의 종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보면 되었다.
만약 카드 조합이 쉽게 완성된다면 사람들은 꾸준히 도전했을 것이고 그럼, 생각보다 더 빨리 카드 조합식이 사람들 사이끼리 공유되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카드 조합은 그렇게 쉽게 완성이 되질 않았다.
거기다가 어렵게 완성이 된다고 해도 카드 조합식 중엔 쓰레기 같은 것도 엄청나게 많았다. 어떤 카드 조합식은 조합과 동시에 폭발해 조합을 시도한 유저를 죽여버리기도 했다.
더욱이 카드 조합에 사용된 카드는 성공하건 실패하건 그 즉시 모두 소멸하였기 때문에 비싼 물건을 카드로 만들면 함부로 시도하기가 힘들었다.
이렇다 보니 유저들은 함부로 카드 조합에 도전하지 못했다. 카드 조합에 도전했다가 망했다고 소문난 이들도 엄청나게 많았다.
그리고 설사 성공을 하더라도 워낙 어렵게 얻은 조합식이었기 때문에 절대 남과 공유를 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비싸게 팔아먹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실효성이 너무 없다는 이유로 고대의 지식 카드 유저를 선택하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었고 나중에는 카드 조합식을 연구하는 이들도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카드 유저가 외면받고 그 때문에 카드 조합식 공유가 사라지고 다시 그렇기에 더더욱 카드 유저가 외면받고······ 이것은 곧 악순환처럼 계속 반복되며 EL에서 고대의 지식 카드 유저는 거의 없는 것처럼 만들었다.
거의 쓰레기통 저 밑바닥에 처박힌 카드 조합을 다시 쓰레기통 밖으로 끄집어낸 건 당연히 상혁이었다. 그는 폐인이 된 후 자신이 다시 위로 기어오르기 위해선 도박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선택한 게 바로 카드 조합이었다.
거의 7년 정도를 밑바닥에서 아등바등 거리면서 여력이 될 때마다 카드 조합식을 모았다. 미천한 VRA를 가지고 힘겹게 접속을 해서 스스로 카드 조합을 시도하기도 했고 혹은 다른 이들이 연구하다 포기한 자료를 어렵게 구해 그걸 토대로 쓸만한 조합식을 찾아내곤 했었다.
그래도 상혁의 게임 지능 자체는 상당히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거의 7년 정도를 고생하자 드디어 뭔가 하나 결과물이 나왔다.
그게 바로 상혁이 크래쉬 최상열에게 전수해준 ‘천룡패법’이었다. 총 24가지의 카드 조합식으로 이루어진 천룡패법은 EL에 새로운 바람을 불고 왔다.
그건 간단하게 ‘카드 열풍’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너도나도 최상열과 같은 카드 마스터가 되겠다며 설쳐댔고 덕분에 카드 조합식 공유가 급격히 늘어났다.
하지만 적어도 상혁이 7년간 연구 끝에 완성한 천룡패법을 능가하는 조합식 모음 같은 건 공유되지 않았다.
오히려 상혁은 폭발적으로 늘어난 카드 조합식 공유를 이용해 아무도 모르게 천룡패법을 능가하는 새로운 카드 조합식 모음을 만들 수가 있었다.
상혁은 혹시라도 SKY팀에서 팽 당할 걸 대비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이용해 카드 조합식을 끌어모았고 덕분에 단기간에 아주 훌륭한 성과를 거둘 수가 있었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바로 이번 생(生)에서 내가 사용할 카드 조합식 모음이지.”
기분 좋게 웃으며 작게 중얼거리는 상혁.
그는 이미 자신이 사용할 카드 조합식을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 [8장] 두 번째 고대의 지식 (2) > 끝
ⓒ 성진(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