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비밀 던전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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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로그가 워낙 약하기도 했지만 상혁의 전투 능력이 워낙 출중하기도 했기 때문에 상혁이 기록한 올(All) 클리어 시간은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좋았다.
무려 27분 22초.
아무리 멀로그의 보물 창고가 소형 던전이라고 해도 이 정도는 타임 어택 대회에 나가도 무조건 1위를 할 정도로 굉장한 기록이었다.
보통의 유저였다면 한 시간이 아닌 두 시간까지도 걸렸을 테지만 했지만 상혁은 동선(動線)을 최대한 짧게 만드는 것과 동시에 수많은 멀로그들을 한꺼번에 몰아 잡으며 아주 깔끔하게 던전을 올 클리어 했다.
“흠, 동선을 조금만 더 간결하게 바꾸고 마지막 보스를 잡을 때 더 확실한 타이밍에 폭딜을 넣으면 최소 5분은 더 단축할 수 있겠네.”
이미 엄청난 기록이었는데 상혁은 여기서 시간을 더 단축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그는 정상인과는 거리가 상당히 먼 인물이었다.
멀로그의 보물창고를 나온 상혁은 다시 팔콘시로 돌아왔다. 그가 찾아야 하는 두 번째 비밀 던전은 놀랍게도 팔콘시 안에 있었다.
던전의 정확한 이름은 이번에도 몰랐지만, 방송에서 그들은 이 던전을 ‘꿀 바른 하수도 던전’이라고 불렀었다. 그렇다면 왜 상혁은 더 가까이에 있던 이 던전을 놔두고 멀로그 던전을 먼저 찾은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방송에서 그들이 직접 멀로그 던전을 먼저 찾고 그다음 하수도 던전을 찾았다고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 얘긴 멀로그 던전을 선점할 수만 있다면 하수도 던전도 자연스럽게 선점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솔직히 그들이 얘기했던 극 초반이란 게 언제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멀로그 던전을 선점했으니 이제 남은 하수도 던전도 선점하면 되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건 팔콘시에는 이미 공용 던전인 ‘팔콘의 하수도’가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팔콘의 하수도는 EL을 시작한 유저들이 제일 처음 경험할 수 있는 초보자용 던전이었다.
그런데 초보자용 던전이라고 무시하면 안 되는 게 던전의 규모 자체가 다른 게임의 최종 레이드 콘텐츠 던전보다 더 컸다.
유저들은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이터널 라이프(EL)의 클래스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는데 오죽하면 ‘팔콘의 하수도’만 가지고도 하나의 독립된 게임을 만들 수 있을 정도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다.
물론 지금 시점에선 입장 조건조차 채우지 못한 유저가 절대다수였기 때문에 아직 팔콘의 하수도에 관한 얘기들은 거의 나오지 않고 있었다.
‘팔콘의 하수도가 대략 정식서비스가 시작되고 한 달 정도가 흐른 뒤부터 본격적으로 공략되기 시작했지? 아직 삼 주는 더 있어야겠네.’
자신이 선점할 수 있는 모든 걸 찾아 헤매는 상혁이었지만 팔콘의 하수도는 패스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상혁이 팔콘의 하수도를 공략하기엔 아직 부족한 게 너무 많았고 추가로 팔콘의 하수도가 쏟아야 하는 노력에 비해 얻을 수 있는 보상이 너무 작았다.
그래서 상혁은 팔콘의 하수도는 건너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신 비밀 던전인 ‘꿀 바른 하수도 던전’은 무조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팔콘시 외곽을 조금만 벗어나면 ‘팔콘 도적단’이 출몰하는 필드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 도적단에 소속된 NPC를 닮은 몬스터들을 잡으면 ‘도적단 명패’라는 아이템을 얻을 수가 있었다.
이 명패는 팔콘시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흔한 반복 퀘스트 중 하나인 ‘팔콘시 도적 박멸’이라는 퀘스트를 해결하는 퀘스트 아이템이었다.
이 명패를 가져가면 명패의 개수에 따라 추가 카르마를 획득할 수 있었는데 개인당 만 개의 명패까지 교환할 수 있었었다. 또한, 이 명패 교환을 통해 팔콘시 경비단과의 친밀도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유용하게 사용되는 아이템이었다.
EL에선 거래가 안 되는 아이템은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이 도적단 명패도 활발하게 거래가 되었다.
워낙 쓰임새가 많은 명패였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이 모두 많았다. 상혁은 위탁판매소에서 이 명패를 무려 천 개나 사들였다. 그동안 악인 유저들을 잡으며 모은 골드 대부분을 여기에 사용했지만 아깝진 않았다.
오히려 천 개를 구하겠다고 도적단을 사냥하는 시간이 더 아까웠다. 명패는 이런 종류의 아이템이 다 그렇듯 하나로 겹쳐졌는데 겹쳐진 명패의 위쪽엔 홀로그램과 같은 그래픽으로 1,000이란 숫자가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그렇게 겹쳐져 있는 1,000개의 명패를 가지고 팔콘시 경비단을 찾아간 상혁은 그걸 모두 경비단에게 넘기고 추가 카르마를 얻었다. 하지만 상혁이 원하는 건 이 추가 카르마가 아니었다.
축하합니다. 팔콘시 경비단과의 호감도가 크게 상승해 ‘친밀’ 단계가 되었습니다. 이제부턴 경비단 내부를 방문해 경비대장과 대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상혁이 원한 건 바로 이것이었다. 더 정확히는 경비단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꿀 바른 하수도 던전’은 바로 경비단 내부의 지하실에 존재했었다.
도적단의 명패를 천 개 가져다주면 팔콘시 경비단과 ‘친밀’ 단계까지 호감도를 쌓을 수 있었고 만 개를 가져다주면 ‘동료’ 단계까지 호감도를 쌓아 경비단에 들어갈 수도 있게 되었다.
하지만 상혁은 경비단 입단할 수 있을 정도로 호감도를 높게 쌓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정확히 천 개만 구매한 것이었다. 상혁은 자격을 얻자마자 곧장 경비단 내부로 들어갔다.
친밀까지 높여 놓은 호감도 덕분에 경비단에 소속되어 있던 NPC들은 모두 밝은 표정으로 상혁에게 인사를 해주었다.
EL에서 타이틀만큼이나 중요한 이 호감도 시스템은 크게 개인과 단체로 나뉘었는데 우선이 되는 건 개인이었고 그다음이 단체였다.
예를 들어 상혁이 팔콘시 경비단과의 호감도를 아무리 ‘동료’ 단계까지 올려놓는다고 해도 경비단에 소속된 NPC와의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 뭔가 실수를 한다면 다른 경비단 NPC와 다르게 그 특정 NPC는 상혁을 싫어할 수가 있었다.
어쨌든 이 호감도 시스템은 아직까진 유저들 사이에서 그렇게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지 않고 있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유저들도 이게 얼마나 중요한 시스템인지 알 수 있게 될 예정이었다.
아직까진 팔콘시 경비단의 NPC와 개인적으로 엮일 일이 없었기에 모든 경비단의 NPC들이 상혁에게 호의적이었다. 결국, 상혁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경비단의 지하실까지 내려왔다.
지하실에 내려온 상혁은 그때 방송에서 그들이 크게 웃으며 말했던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벽 쪽에 있는 낡은 책장······ 그 책장에서 팔콘시 하수도 지도라는 책을 뽑으라고 했지?’
상혁은 그들이 얘기했던 대로 지하실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낡은 책장 앞으로 가서 ‘팔콘시 하수도 지도’라는 책을 찾았다.
‘여기 있네.’
금방 책을 찾은 상혁은 망설이지 않고 책을 뽑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책장에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팔콘시 지하에 존재하는 또 다른 하수도를 찾았습니다.
비밀 던전 ‘팔콘시 77번 하수도’가 개방되었습니다.
팔콘시 77번 하수도는 차원 여행자 ‘불멸’에게 귀속됩니다.
본 던전에는 총 네 명의 사용자를 등록하실 수가 있습니다.
‘됐다!’
이번에도 역시 정답을 정확하게 알고 있던 상혁은 큰 어려움 없이 하수도 비밀 던전을 찾아냈다. 이렇듯 상혁은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얻어냈기 때문에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비밀 던전 두 개를 선점할 수가 있었다.
일반 유저가 이 두 개의 비밀 던전을 발견하려면 일단 수많은 곳에서 정보를 모으는 건 물론이고 그 정보를 조합해 여러 가능성을 뽑아내야 했고 마지막으론 그 가능성을 모두 일일이 테스트하며 찾아야만 했다.
당연히 결과만 쏙 빼먹는 상혁과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복잡했다.
비밀 던전 [팔콘시 77번 하수도]
- 차원여행자 ‘불멸’에게 귀속됨
- 등록된 차원 여행자 [불멸], [없음], [없음], [없음]
: 과거 팔콘시가 설립될 때 만들어졌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며 완전히 폐쇄되어 버린 하수도. 모두의 기억 속에서 지워진 하수도지만 이 하수도로 흘러들어온 것 중엔 상당히 특별한 것도 있었다.
- 보너스 카르마 : +10%
- 던전 클리어 보상 : 하수도로 흘러들어온 특별한 물건들.
- 던전 클리어 후 재활성화 시간 : 1시간.
- 던전 유지 시간 : 무한(無限).
- 던전 최대 클리어 횟수 : 150회.
팔콘시 경비대의 지하실 책장이 열리며 만들어진 비밀 던전의 입구는 오로지 상혁에게만 보이는 입구였다. 그렇기에 상혁은 안심하고 던전 안으로 들어가 던전의 정확한 정보를 확인한 후 다시 밖으로 나왔다.
‘확실한 사냥터 두 개를 확보했으니 이제 남은 건 열심히 달리는 것뿐이겠네.’
상혁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경비대를 벗어나 곧장 팔콘시에서 가장 큰 마법상점을 찾아갔다.
멀로그 던전이 있는 버려진 어촌과 하수도 던전이 있는 팔콘시. 상혁은 이제부터 그 둘을 오고 가며 빠르게 레벨을 올릴 생각이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상혁은 버려진 어촌으로 갈 땐 말 그대로 그냥 뛰어갈 생각이었다. 버려진 어촌까지는 열심히 달리면 한 시간 정도면 갈 수 있었는데 솔직히 마킹북(Marking Book)을 이용해 리콜만 할 수 있다면 아주 간단하게 갈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마킹북을 사고 거기에 리콜 스킬을 충전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이 여유 있지는 않았다.
그나마 살 수 있는 건 충전용 귀환석 정도였다.
한 번 충전에 10번 귀환을 사용할 수 있는 충전용 귀환석이라면 버려진 어촌에서 팔콘시로 돌아올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선 한 번 충전에 100번 귀환을 사용할 수 있는 귀환석을 사고 싶었지만 당장 급하게 굳이 비싼 돈 주고 그걸 살 필요는 없었다.
팔콘시 영역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트리나크 행성 전역으로 여행자들이 흩어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마킹북은 모든 여행자가 필수로 들고 다녀야 하는 아이템이 되었다.
마킹북과 공간 확장 가방 그리고 귀환석은 차원여행자라면 무조건 사용해야 하는 필수 아이템이었다.
공간 확장 가방은 인벤토리 개념이 없는 EL에선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귀환석 역시 자신이 지정한 귀환 포인트로 빠르게 복귀하기 위해선 꼭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마킹북에 마킹할 수 있는 횟수는 레벨에 따라 조금씩 늘어났지만 결국 마킹북이 없으면 트리나크 행성 여행은 꿈도 안 꾸는 게 좋았다.
비싼 마킹북은나중에 사기로 하고 상혁은 우선 귀환석만 사서 바로 버려진 어촌으로 달려갔다. 마킹북이 있었다면 버려진 어촌과 팔콘시를 순식간에 왔다갔다 왕복할 수 있었겠지만, 어차피 두 비밀 던전의 재활성 시간을 고려하면 귀환석으로 편도 이동만 해결해도 문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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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준비를 끝낸 상혁은 두 개의 비밀 던전을 계속 오고 가며 단 1분도 낭비하지 않고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멀로그의 보물창고에선 많은 양의 카르마를 얻었고 팔콘시 77번 하수도에선 상당히 값비싼 아이템을 획득했다.
특히 하수도 던전에서 던전 보스인 ‘거대 시궁쥐’를 잡으면 낮은 확률로 마법(Magic) 세트 아이템이 떨어졌는데 이게 정말 좋았다.
일단 EL의 아이템 체계는 ‘일반(노말) -> 마법(매직) -> 희귀(레어) -> 유일(유니크) -> 전설(레전드) -> 신화(갓)’로 구분되었는데 세트 아이템 같은 경우는 대부분 한 단계 위의 아이템과 거의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지금 시점에선 마법 등급의 아이템도 거의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거의 희귀등급의 아이템과 비슷한 성능을 지닌 마법 세트 아이템은 엄청난 값어치를 지니고 있었다.
팔콘시의 영웅 ‘하르칸’의 장비들.
하르칸의 검과 방패는 물론이고 그의 방어구들과 망토까지······. 상혁은 계속해서 하수도 던전을 돌며 마법 세트 아이템을 모았다.
대략 하수도 던전을 80번 정도 돌자 하르칸 세트를 풀로 한 세트 겨우 맞출 수 있었다. 다른 장비들은 몇 개씩 나왔는데 ‘하르칸의 투구’가 안 나오다가 80번째 클리어에 한 개가 나와서 겨우 한 세트를 맞춘 것이었다.
< [7장] 비밀 던전 (2) > 끝
ⓒ 성진(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