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장] 악인(惡人) 사냥 (2) >
* * * *
“몇 놈만 더 잡고 적당히 마무리하자.”
타오신와 진극명은 오픈베타서비스 때부터 함께 EL을 시작한 친구였다. 그들은 중국 유저였는데 오래전부터 관심이 있던 이터널 라이프가 시작되자 망설이지 않고 시작했었다.
두 사람 모두 제법 VRA가 높았고 게임에 대한 이해도도 괜찮은 편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앞서 나갈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과정에서 나쁜 선택을 하나 했는데 그건 바로 악인 유저가 되는 선택이었다.
“오늘은 수입이 영 안 좋은 거 같네.”
“요즘 악인 유저가 너무 늘어서 정작 털어먹을 일반 유저들 숫자가 줄었어.”
타오신은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안 되면 악인 유저라도 털까?”
“악업은 물론이고 아이템도 못 얻는데 털어서 뭐해.”
악인 유저들은 서로 죽고 죽이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죽여 봤자 얻는 게 하나도 없었다.
“쩝, 뭔가 아쉽네.”
“어쩔 수 없어. 우리 사냥을 방해하는 악인 유저라면 모를까 그냥 무시해야 해.”
타오신과 진극명은 망령의 계곡을 돌아다니며 사냥감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현재 19레벨이었는데 이 정도라면 상당히 상위권에 속하는 레벨이었다.
거기에 그들은 각각 ‘궁수’와 ‘검사’라는 고대의 지식도 가지고 있었다. 레벨도 높고 고대의 지식도 가지고 있는 두 명의 악인 유저.
이 정도라면 확실히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일단 좀 더 찾아보자.”
사냥감을 찾는 두 악인 유저. 그들은 먹잇감을 찾아 떠도는 하이에나처럼 열심히 망령의 계곡들 돌아다니고 있었다.
“헉······ 헉······.”
타오신은 거침 숨을 토해내며 계속 달리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계속 달리면서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다시 한 번 10분 전 상황을 떠올려 보았다.
10분 전 타오신과 진극명이 발견한 한 유저는 그들이 보기엔 완벽한 사냥감이었다. 적어도 그 유저가 순식간에 진극명의 목을 날려버리기 전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건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타오신과 진극명의 PK는 타오신이 먼저 멀리서 화살을 날려 상대방을 괴롭히고 그 사이 진극명이 몰래 접근해 기습하는 형태의 패턴이었다.
언뜻 보기엔 상당히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꽤 위력적인 패턴의 PK였다. 지금까지 이런 패턴을 통해 수없이 많은 일반 유저들을 사냥했었다.
하지만 그 유저는······ 타오신의 화살을 너무나 쉽게 피했다. 타오신의 원거리 지원에 전혀 압박을 받지 않자 당연히 진극명의 기습도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습하려고 달려든 진극명이 역으로 당해버렸다.
진극명의 기습을 가볍게 검으로 막은 그 유저는 아예 진극명을 가지고 놀았다. 타오신은 어떻게든 상황을 만회해보려고 자신이 가진 영혼 스킬을 모두 사용해 계속 화살을 날렸지만, 오히려 그 유저는 진극명을 교묘하게 밀쳐서 타오신의 화살이 진극명에게 꽂히게 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진극명과 타오신 둘 다 악인유저였기에 둘은 서로를 다치게 할 수가 있었다. 이렇듯 일반 유저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 악인 유저들에겐 생각보다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고 결국 타오신과 진극명은 오히려 서로에게 방해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마지막 순간에 빠르게 휘둘러진 세 번의 칼질.
그 세 번의 칼질이 정확히 진극명의 팔과 몸 그리고 목에 적중되며 너무나 허무하게 진극명이 쓰러졌다.
당연히 진극명이 쓰러지는 순간 타오신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사냥감이라 생각한 그 유저는 사냥감 아닌 괴물이었기에 타오신은 미친 듯이 도망쳤다.
‘도대체 저런 괴물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타오신은 지금까지 수많은 유저들을 죽여 봤었지만 단언컨대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실제로 두 사람은 나름 레벨이 높고 경험이 많아 보이는 유저들도 많이 죽였었다.
그동안 한 번도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이건 절대 이길 수가 없어······.’
타오신은 진극명에겐 미안하지만, 지금은 자신이라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의 헛된 희망일 뿐이었다.
휘이잉, 빠각!
갑자기 허공에서 떨어진 그림자가 타오신의 몸을 정확히 때렸다.
“커억.”
달려가던 중에 제대로 얻어맞은 것이라 타오신은 순간 뒤로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를 넘어트린 건 당연히 진극명의 목을 날려버린 유저, 아니 상혁이었다.
타오신은 상혁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겠지만 아쉽게도 그건 불가능했다.
망령의 계곡은 전생에 상혁이 수없이 많이 돌아다닌 지역이었기 때문에 타오신의 도주 경로 따윈 너무나 쉽게 파악되었다.
그렇기에 상혁은 지름길로 질러와서 가볍게 타오신의 앞을 가로막을 수가 있었다.
“끄윽······ 넌 도대체 누구냐?”
타오신은 중국어로 외쳤다. 하지만 상혁은 그 말을 알아들었다. 이게 가능한 건 5년 전 개발된 DN용 동시 통역시스템 덕분이었다.
타오신이 말하는 순간 그의 말은 자연스럽게 통역이 되어 상혁의 시야 오른쪽에 글로 올라왔다. 거의 1초도 안 돼서 글이 올라왔기 때문에 실시간 대화를 하는데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다만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다수가 모여서 대화를 하면 시야를 어지럽힐 정도로 대화가 많이 올라올 수 있었지만 그건 간단한 설정을 통해 On/Off가 가능했기 때문에 중요한 순간엔 통역 기능을 꺼놓으면 되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스르릉.
상혁은 별거 아닌 악인 유저와 대화를 할 시간이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지금 100명의 악인 유저를 최대한 빨리 제거해서 최초의 악인 사냥꾼이란 타이틀을 획득할 생각만 가득 차 있었다.
타오신은 일어나서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일어나는 것보다 상혁이 하급 돌격 스킬이 담겨 있는 빠른 전진을 통해 거리를 좁히는 게 더 빨랐다.
그리고 이어진 삼단 베기!
상혁의 검이 순간적으로 타오신의 몸과 팔을 훑고 지나갔다.
“크윽!”
물론 고통 같은 게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대신 굉장히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이 불쾌한 느낌은 DN의 게임에서 유저가 고통 대신 느끼는 감각이었는데 대략 몸에 오물을 뒤집어쓰는 것 같은 불쾌감과 비슷했다.
타오신은 아직 생명력이 바닥난 건 아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싸워보려고 했다. 그의 몸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하얀 빛가루는 그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지만, 아직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발악을 해도 상혁은 그의 머리 꼭대기 위에 있었다. 정확히는 타오신의 단조로운 근접 공격을 너무나 쉽게 예측해서 피한 후 계속해서 타오신의 몸에 확실한 검흔(劍痕)을 남겨주었다.
결국, 타오신은 겨우 1분도 버티지 못했다.
애초에 원거리 공격 능력을 지닌 ‘궁수’를 고대의 지식으로 선택한 타오신이 상혁의 공격을 견뎌내는 건 불가능했다.
고대의 지식 ‘검사’를 선택해 근접 공격 능력을 선택한 진극명도 3분을 버티지 못했는데 타오신이 1분을 버티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휘릭, 푸욱!
결국, 타오신의 생명력이 0이 되는 순간 상혁이 들고 있던 여행자의 보검이 타오신의 심장을 꿰뚫었다.
타오신은 죽음 건너뛰기 설정을 해놨기 때문에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정확히 몰랐다.
“마흔일곱 번째······.”
상혁은 타오신을 쓰러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작게 중얼거렸다. 타오신은 그가 47번째로 죽인 악인이었다.
이제 남은 건 53명. 지금 속도라면 나흘 안에 채울 수가 있을 것만 같았다.
솔직히 지금은 악인 유저가 넘쳐났다.
흔히 얘기하는 ‘물 반, 고기 반’ 같은 상황이었다.
상혁은 타오신이 떨어트린 아이템들을 모두 주워들었다. 진극명이나 타오신이나 아주 비싼 아이템을 떨어트리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버리고 갈 정도로 쓰레기 아이템은 아니었다.
‘잡템이 좀 많아져서 팔콘시에 가서 싹 위탁판매하고 와야겠네.’
최초의 악인 사냥꾼 타이틀을 얻는 것과 별개로 악인들을 잡으며 상당량의 카르마를 얻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이 떨어트린 아이템을 가져다 파는 게 굉장히 쏠쏠했다.
아무래도 초반이고 악인 유저들 특성상 은행의 공용 창고를 이용하지 못하다 보니 모든 아이템을 가지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제법 값비싼 물건들도 자주 떨어트렸다.
당연히 악인 사냥을 하는 상혁에겐 이 모든 게 상당한 이득이었다. 심지어 일반적인 방법보다 악인들을 잡는 게 더 빠르게 카르마를 쌓아 갈 수가 있었다.
* * * *
“치명적인 버그 같은 건 없었고 자잘한 NPC 인공지능 오류만 네 건이 발생했습니다. 그 네 건 모두 ‘카오스’가 자체적인 오류수정프로그램을 이용해 수정을 끝냈습니다.”
마지막으로 개발팀의 보고가 끝났다.
정식 서비스를 한 이후 총체적인 점검 차원에서 이루어진 회의였기 때문에 모든 부서의 팀장들이 이번 화상회의에 참여한 상태였다.
“어차피 게임 내부에서 발생하는 오류는 카오스가 다 해결할 테니 개발팀은 그쪽보단 외부에서의 공격이나 혹은 불법프로그램의 존재 여부만 잘 파악해주세요.”
카오스는 라온소프트가 무려 10년간의 연구를 통해 완성한 현존 최고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이었다. 사실상 이 카오스 덕분에 EL이 탄생했다고 보는 게 옳았다.
카오스는 EL의 창조신이라 할 수 있었다. 카오스는 이터널 라이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신(神)의 눈으로 살피며 이 세상을 관리했다.
물론 카오스가 있다고 해서 개발진이 필요 없는 건 아니었다. 카오스를 관리하는 것 자체가 개발진이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에 라온소프트의 사장인 서원태는 늘 개발진을 직접 챙겼었다.
“운영팀, 유저 유입은 어떻습니까?”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거의 모든 커뮤니티에서 EL의 게임성에 대한 극찬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유저는 계속 더 빠르게 늘어날 것 같습니다.”
“좋군요. 유저수가 늘어나면 PPL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되겠죠?”
“네, 유저수만 늘어나면 아마 우리가 얘기하지 않아도 알아서 PPL 광고를 원하는 업체들이 줄을 설 겁니다.”
“천천히 하세요. 어차피 우린 급할 게 없습니다.”
서원태는 가볍게 웃으며 얘길 했다. 처음엔 천하의 서원태라고 해도 긴장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EL은 무조건 대성공한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그밖에 문제가 될 만한 게 있나요?”
“요즘 악인 유저들의 숫자가 너무 늘어나고 있는 게 약간 걸립니다.”
게임 벨런싱 팀의 팀장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얘길 했다. 아무래도 라온소프트의 기본 정책 자체가 게임에 관해서는 ‘무개입’을 원칙으로 했기 때문에 벨런싱 팀장은 이런 말을 할 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악인 유저가 많아졌다고 해서 우리가 게임 내부적으로 개입하는 건 절대 안 됩니다. 누차 강조했지만 이터널 라이프는 무한한 자유를 추구합니다. 그렇기에 악인 유저가 늘어난 것도 유저들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악인 유저가 너무 늘어나면 자칫 일반 유저들이 큰 피해를······.”
“거참 답답하네요. 누가 가만히 보고만 있으라고 했습니까? 게임 내부적으론 개입이 안 될지 몰라도 게임 외적에서는 개입할 수 있잖아요. 예를 들어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에 은밀하게 악인 유저들을 많이 잡으면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정보 정도만 슬쩍 흘려도 이번 일은 충분히 해결이 가능한 일입니다. 제가 이런 것도 일일이 답을 알려줘야 합니까? 게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이렇게 작은 정보들을 이용해 벨런싱을 조절하는 건 처음부터 제가 허락한 일이지 않습니까.”
서원태가 답답하다는 듯이 얘기하자 벨런싱 팀의 팀장은 연신 죄송하다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운영팀 역시 게임 내부 모니터링을 거의 하지 않아도 된다고 넋 놓고 있지 말고 그것과는 별개로 계속해서 각종 커뮤니티를 살피면서 유저들의 동향을 파악하세요. 우리는 게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서원태의 원칙은 간단했다.
직접 게임 내부에 개입은 하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게임 외부에서 내부를 조절한다. 이게 그가 EL을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 [6장] 악인(惡人) 사냥 (2) > 끝
ⓒ 성진(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