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장] 악인(惡人) 사냥 (1) >
@ 악인(惡人) 사냥.
대도서관에 간 상혁은 몇 시간 동안 열심히 책을 읽었다. 그가 읽은 책은 ‘기사도(騎士道)’ 1권에서 10권까지 총 열 권이었다.
완결권인 10권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드디어 기다리던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기사들이 가져야 할 필수 지식을 모두 습득했습니다.
고대의 지식 ‘기사(나이트:Knight)’를 얻을 수 있는 조건을 모두 충족했습니다.
비어 있는 소울 홀에 고대의 지식 ‘기사’를 흡수하겠습니까? 5분 안에 결정을 내려주세요.
5분 안에 선택하지 않으면 고대의 지식은 다시 기사도 책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물론 다시 기사도 책 10권 정독하면 똑같은 시스템 메시지를 띄울 수가 있었다.
“흡수한다.”
하지만 지금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걸 얻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기에 상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고대의 지식 ‘기사(나이트:Knight)’가 비어 있는 첫 번째 소울 홀에 흡수됩니다.
남아 있는 빈 소울 홀은 ‘3개’입니다.
슈우우우우우.
고대의 지식은 곧장 한 줄기의 빛이 되어 상혁의 영혼을 충만하게 채워주었다.
첫 번째 고대의 지식을 얻은 상혁은 곧장 시스템 창을 열어서 고대의 지식을 얻으며 생긴 기본 능력과 그와 함께 생성된 영혼 스킬들도 확인해 보았다.
고대의 지식 ‘기사(나이트:Knight)’
: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기사의 힘이 당신의 영혼에 스며들었습니다. 당신의 몸이 더 튼튼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숭고한 기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정신력도 강화됩니다.
상세 효과 : 기사의 힘(C)[힘, 체력, 민첩, 지구력이 상승합니다.], 기사의 정신(C)[정신력이 상승하고 정신공격에 대한 저항력이 향상됩니다.], 기사의 손재주(C)[검과 방패에 대한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하급 소드마스터리(Sword Mastery) [상시 지속 효과]
-모든 종류의 검을 더 능숙하게 다를 수 있게 된다.
[숙련도 : 0]
하급 삼단 베기
- 검을 빠르게 세 번 휘두른다.
- 재사용 대기시간 (9초)
[숙련도 : 0]
하급 검면(劍面) 막기
- 검면으로 상대방의 공격을 막는다.
- 재사용 대기시간 (20초)
[숙련도 : 0]
하급 돌격(突擊)
- 순간적으로 빠르게 4m 앞으로 돌진한다.
- 재사용 대기시간 (30초)
[숙련도 : 0]
상혁이 고대의 지식을 통해 얻은 영혼 스킬은 총 네 가지였다. 모두 하급이긴 했지만, 영혼 스킬은 숙련도를 올려서 등급을 올릴 수가 있었기 때문에 상혁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스킬 위력은 계속 달라질 수 있었다.
당연히 숙련도를 올리려면 스킬을 자주 사용을 해야 했다. 스킬은 그 자체로 강력한 위력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EL의 전투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졌다.
예를 들어 똑같이 검을 세 번 휘두른다고 해도 삼단 베기 스킬을 사용해 휘두르면 더 빠르고 강력하게 휘두를 수가 있었고 똑같이 검으로 적의 공격을 막는다고 해도 검면 막기를 사용해 막으면 더 수월하고 단단하게 방어를 할 수가 있었다.
대신 스킬을 사용하면 기사 같은 경우는 체력을 조금 더 소모했기 때문에 스킬을 사용하지 않은 것보다 조금 더 빨리 지칠 수 있었지만 그걸 고려해도 스킬은 무조건 사용하는 게 훨씬 좋았다.
“정말 추억의 영혼 스킬들이네.”
상혁은 눈앞에 떠 있는 네 가지 영혼 스킬의 정보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일단 퀵(Quick) 설정을 먼저 해야겠지?’
스킬을 사용하는 방법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스킬을 있는 그 자체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만약 상혁이 검을 들고 있는 상태에서 삼단 베기 스킬을 사용하면 상혁은 기계처럼 삼단 베기 동작을 펼쳤다. 다른 스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렇게 사용하면 아무래도 패턴 자체가 조금 단순해졌다. 그래서 존재하는 게 바로 퀵 설정이었다.
퀵 설정이란 바로 자신의 동작으로 스킬을 자연스럽게 발동시키는 설정이었다.
간단히 예를 들면 상혁이 검을 세 번 빠르게 휘두르면 그 동작 자체가 삼단 베기가 적용되어 스킬이 발동되는 것이었다. 이걸 퀵 설정이라고 했는데 사실 퀵 설정은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VRA가 높아야 하는 건 당연했고 거기에 자신이 가진 스킬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야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검을 세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삼단 베기를 발동시키려면 보통의 감각으론 힘들었다.
그렇기에 상혁의 전생에도 퀵 설정은 프로게이머들이나 혹은 프로게이머들에 뒤지지 않는 능력을 지닌 몇몇 상급 유저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었다.
상혁은 프로게이머는 아니었지만, 한때 프로게이머를 압도하는 베일에 싸인 고수로 이름을 날렸었기 때문에 퀵 설정 같은 건 기본으로 사용했었다. 물론 VRA가 완전 쓰레기처럼 낮아진 이후엔 퀵 설정을 사용하고 싶어도 사용하지 못했었지만 적어도 그때의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물론 퀵 설정을 사용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차이가 엄청나게 큰 건 아니었다. 하지만 미세한 차이로 승패가 결정되는 프로게이머들의 세계에선 당연히 퀵 설정의 사용 여부가 대단히 크게 다가왔다.
상혁은 팔콘시 외곽에 있는 빈 공터에서 검을 들고 퀵 설정을 하기 시작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퀵 설정은 순수하게 자신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었다.
즉, 능력이 부족해 스킬이 자신의 움직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는 미묘한 감각을 찾지 못하면 퀵 설정을 하지 못했다.
상혁은 반복해서 검을 휘두르거나 혹은 앞으로 달려나가며 자신이 얻은 스킬을 자신의 동작에 자연스럽게 적용하기 시작했다.
사실 다른 유저들은 퀵 설정이란 게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정확히는 시스템 창을 열면 퀵 설정이란 메뉴가 있어서 퀵 설정이란 게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걸 어떻게 설정하는 건지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대략 열흘 정도만 더 지나면 감각이 좋은 유저들은 퀵 설정을 어떻게 하는지 대략 알 수 있겠지만 정작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다.
반면 상혁은 정확히 한 시간 만에 자신이 얻은 모든 스킬의 퀵 설정을 완료했다. 이건 경험의 차이와 재능의 차이가 합쳐지며 만들어진 결과였다.
“쳇, 나도 참 많이 녹슬었네. 예전엔 정말 이런 하급 스킬 정도는 순식간에 완료했었는데.”
하지만 정작 상혁은 이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폐인으로 생활한 시간이 제법 길었기 때문에 전성기 때의 날카로운 감각이 조금 무뎌진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휴,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겠네.”
상혁은 벌써 16시간째 연속 접속 중이었다. 게임 중독 방지 법안 때문에 모든 유저들은 17시간을 연속 접속하면 강제로 접속이 끊기게 되어 있었다. 24시간 안에 두 시간을 쉬지 않으면 접속 자체를 못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루에 두 시간을 쉴 수밖에 없었다.
접속을 끊은 상혁은 잠깐 눈을 붙였다. 아무리 상혁이 그동안 운동을 열심히 해서 체력을 비축해뒀다고 해도 최소한의 수면 시간은 필요했었다.
두 시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잠을 자고 일어난 상혁은 일어나자마자 간단하게 고영양 시리얼에 필수 비타민 팩을 뜯어서 털어 넣은 후 저지방 우유를 부어서 맛은 별로지만 영양가는 좋은 한 끼 식사를 만들었다. 그리곤 그것을 먹으면서 각종 게임 전문 커뮤니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EL 해라. 두 번 해라. 진짜 개대박이다.]
[이터널 라이트가 대박인 건 맞는데 솔직히 너무 비싸다.]
[EL 확실히 재미는 있는데 너무 어렵다. 누가 초반 공략법 안 올려주나?]
[인게임즈에 가면 그나마 공략법이 하나 두 개 올라오고 있어요.]
[인게임즈 공략도 별거 없어. 제일 좋은 건 그냥 자신이 직접 게임 안에서 공략을 만들어가는 거야.]
[아아아, 너무너무 하고 싶다!]
[근데 이 게임 자유 PK인 거야? 눈깔이 씨뻘건 놈들이 왜 이렇게 많아?]
[요즘 트렌드가 악인 유저임.]
······
······
상혁은 글을 쭉 읽다가 공략이 많다는 인게임즈로 이동해 보았다.
[소울 홀은 몇 개나 뚫어야 하나요?]
[초반에 얻을만한 퀘스트 같은 거 없나요?]
[초반 레벨은 어디서 올리나요? 그리고 초반에 쉽게 얻을 수 있는 장비 같은 건 없나요?]
[고대의 지식 얻는 법 좀 알려주세요.]
[퀵 설정이 뭔지 아시는 분 있나요?]
[악인이 되면 무슨 페널티가 있는 건가요?]
······
······
인게임즈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공략이 있긴 했는데 거의 기초적인 공략이었고 수많은 질문 글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역시 아직까진 대부분 감을 못 잡고 있네.”
오픈베타서비스가 시작된 지 이제 겨우 일주일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유저들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을 수밖에 없었다.
더 충격적인 건 EL의 프리 오픈베타서비스가 내일 끝난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오픈 베타 서비스가 끝나도 끝없는 초원 같은 경우는 계속 무료로 경험할 수 있고 끝없는 초원에서 트리나크로 넘어올 때 결제를 해야 했다.
“그러고 보니 라온소프트 얘들······ 정식 서비스를 시작할 때 과금 패키지 이벤트 같은 것도 하나도 안 했었지? 와,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엄청나게 배짱을 부린 것이었네······.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는 건가?”
보통 게임들은 정식 서비스를 할 때 어떤 식으로라도 이벤트를 했지만 라온소프트는 그냥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었다.
특별한 행사는 물론이고 과금 할인 이벤트 같은 것도 없었다. 덕분에 욕을 무척 얻어먹었지만 라온소포트는 늘 초지일관 자신들의 정책을 고수했다.
훗날 라온소프트 뒤에 세계 최고의 자본력을 지니고 있었던 SJ 투자회사가 있다는 게 밝혀지기 전까진 그들의 배짱을 위험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라온소프트의 이런 무개입 정책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들은 게임 내부 모니터링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들이 관여하는 건 게임 내에서 발생하는 버그나 혹은 외부에서 사용되는 불법프로그램에 감시 정도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든 게 게이머들의 자율 의지로 결정되었다.
사실 이건 라온소프트가 게임을 워낙 완벽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어설픈 완성도를 지닌 게임이 이런 무개입 정책을 펼쳤다간 무조건 망했을 게 분명했다.
상혁은 인게임즈의 글을 쭉 살펴보며 각종 비타민과 영양제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는 하루 이틀만 게임을 하고 그만둘 게 아니었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의 건강과 컨디션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휴식을 끝낸 상혁은 곧장 캡슐로 들어가 다시 EL에 접속했다. 고대의 지식도 장착했고 영혼 스킬도 얻었다. 그리고 그 스킬의 퀵 설정까지 끝냈으니 이제 남은 건······ 놈들을 사냥하는 것뿐이었다.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고 열흘 정도······.
딱 이쯤까지가 악인 유저들의 시대였었다. 이후 그동안 조용히 레벨을 올리거나 혹은 여러 실험적인 시도를 했던 상위권 유저들이 악인 사냥에 나서면서 대략 일주일 만에 악인 유저들이 모두 박멸되었었다.
‘이번에 박멸되면 당분간은 악인 유저를 보는 것 자체가 힘들어질 테니······ 앞으로 일주일 안에 사냥을 끝내고 타이틀을 얻어야 한다.’
상혁은 지금이 가장 적합한 사냥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을 놓치면 최초의 악인 사냥꾼이란 타이틀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 망령(亡靈)의 계곡 쪽부터 가볼까?”
망령의 계곡은 팔콘시에서 가장 가까운 사냥터 중 하나였다. 주로 등장하는 몬스터는 여러 종류의 잡귀(雜鬼)들이었는데 귀신에 대한 공포감만 없다면 잡기도 쉽고 카르마도 쏠쏠하게 주는 사냥터였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많은 유저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EL의 세상이 워낙 거대했기 때문에 많은 유저가 몰렸음에도 그렇게 번잡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사실 망령의 계곡 하나만 봐도 다른 DN 가상현실게임의 커다란 사냥터 5~7개는 합쳐놓은 것 같은 넓이를 자랑했다.
망령의 계곡이 여행을 시작하는 단계의 유저들을 위해 설계된 사냥터라는 걸 고려해도 심하게 넓었다. 팔콘시 근처에는 망령의 계곡과 비슷한 크기의 사냥터만 10개나 존재했기 때문에 통합서버이고 동시접속자 수가 빠르게 늘고 있음에도 절대 사냥터에 사냥감이 부족하지 않았다.
이 모든 건 애초에 트리나크 행성 자체가 다른 게임들의 월드맵과 비교해 봤을 때 거의 40배 가까이 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방대한 세상에 등장한 여행자들.
무엇을 하든 자유였기 때문일까? 유저들은 본성(?)에 따라 나쁜 짓을 먼저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다수의 악인······.
하지만 악인들이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페널티가 워낙 안 좋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그들이 판치는 세상은 오래갈 수가 없었다.
< [6장] 악인(惡人) 사냥 (1) > 끝
ⓒ 성진(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