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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군단-9화 (9/127)

< [5장] 독식(獨食)하기 (2) >

앞으로 몇 주 후 악인을 잡는 게 몬스터를 잡는 것보다 더 많은 카르마를 얻을 수 있고 덤으로 꽤 좋은 타이틀까지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 것이고 그때부턴 흔히 최상위권 유저라 불리는 이들이 본격적으로 악인 토벌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순간적으로 악인들의 씨가 말라버리게 될 예정이었다.

그리곤 몇 달 후 유명한 악인 유저인 ‘킬링머신’이 등장하기 전까진 거의 악인 유저를 구경하기 힘들 게 되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타이틀을 잊고 있었구나.’

순간 상혁은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타이틀이 하나 떠올랐다. 아무리 상혁이라고 해도 모든 걸 다 기억할 순 없었기에 이렇게 간간히 놓치는 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 반응이 왜 이래?”

“쫄아서 그런 것이겠지. 딱 봐도 거지 같은데 얼른 죽이고 다음 목표나 찾아보자.”

세 악인 유저는 이미 수십 명의 유저를 죽인 악질 PK(Player Killer)들이었는데 그들은 상혁이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상혁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셋 다 완벽한 악인 유저. 그렇단 얘긴 정당방위 시스템에 따라 저놈들을 다 죽여도 절대 악업이 쌓일 일은 없고 오히려 쏠쏠하게 카르마를 얻을 수 있겠네.’

오히려 역으로 견적을 내고 있는 상혁. 물론 눈앞에 있는 PK들보다 레벨도 낮고 아이템도 구렸을 뿐만 아니라 머릿수에서도 밀렸지만 그럼에도 상혁은 자신이 당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스르릉.

세 명의 PK는 동시에 녹이 군데군데 슬어 있는 철검을 뽑아들었다. 이 철검은 팔콘시에서 가장 싼 값에 구할 수 있는 무기였다.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그냥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해. 대신 고통 없이 보내줄게.”

악인들은 이미 상혁을 죽이기라도 한 것처럼 얘기하며 상혁을 향해 다가왔다. 지금은 오픈베타가 시작되고 겨우 나흘밖에 흐르지 않은 때라 ‘고대의 지식’을 어떻게 얻는지조차 모르는 유저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보니 이렇게 세 명이 몰려다니며 한 명의 유저를 공격하면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었다.

서로 스킬 같은 걸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머리수가 많고 무기를 들고 있는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단, 보통의 경우라면 그렇다는 뜻이었다.

‘검을 잡은 자세부터 초짜다.’

상혁은 보통의 경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유저였다. 비록 그는 맨손이었고 고대의 지식도 장착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전혀 긴장하지 않고 있었다.

상혁에게 EL에서의 PvP(Player vs Player)는 밥 먹는 것보다 더 익숙한 것이었다. 무기나 고대의 지식은 없었지만 상혁이 가진 경험은 그것들보다 더 큰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가장 앞쪽에 있는 놈이 상혁을 향해 뛰어들며 검을 휘두르는 순간 상혁은 놈과의 간격을 오히려 좁히며 곧장 오른손으로 놈의 손목을 정확히 내려쳤다.

빠악!

놈이 들고 있던 녹슨 철검이 자신의 몸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상혁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과거 최상위권 유저들끼리 싸울 땐 아예 검이 살짝 피부를 스치고 지나갈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악!”

힘에 성장 포인트 10개를 모두 투자한 상혁이 전력을 다해 내리친 것이었기 때문에 악인 유저는 곧장 검을 놓치며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런데 상혁의 공격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상혁은 악인 유저가 놓친 녹슨 철검을 왼손으로 낚아채며 곧장 몸을 돌렸다. 이처럼 상혁이 상대가 들고 있던 무기를 강탈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악인 유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선 이게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는 유저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검을 빼앗긴 악인 유저는 크게 당황해서 순간적으로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했다.

서걱, “커억!”

상혁의 몸이 빠르게 돌아간 순간 녹슨 철검이 검을 놓친 악인 유저의 복부를 깊게 베고 지나갔다.

여러 가지 보정 덕분에 진짜 사람의 몸을 베는 감각이 아닌 전혀 다른 느낌이 났지만, 오히려 상혁에겐 이쪽 감각이 익숙했다.

상혁은 이 정도 느낌이라면 기껏해야 레벨도 낮고 고대의 지식도 얻지 못했을 초짜 유저는 버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재빨리 몸을 숙이며 뒤따라 달려오던 두 명의 악인이 휘두른 검을 피했다.

사실 지금 이 3명의 악인 유저가 휘두르는 검은 상혁 입장에선 애들 장난과 같은 움직임이었다. 만약 스킬을 사용해 검을 휘두르는 것이었다면 쉽게 상대할 수 없었겠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알기 쉽게 예를 들자면 상혁은 유치원생들이 장난감 칼을 휘두르는 걸 지켜보고 있는 운동을 많이 한 어른의 입장과 비슷했다.

파팟, 상혁은 상체를 좌우로 두 번 비틀며 너무나 쉽게 두 명의 악인 유저들이 휘두른 두 자루의 검을 피해버렸다. 그리곤 곧장 들고 있던 녹슨 철검을 오른쪽에 있는 악인 유저의 머리에 박아 넣고 동시에 왼팔로 왼쪽에 있던 악인 유저의 목을 휘감았다.

우드드득, “끄르르륵.”

상혁은 왼팔을 강하게 조여서 남아 있는 마지막 악인 유저의 목을 비틀어버렸다. 비루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던 악인 유저들은 너무나 쉽게 상혁에게 당하고 말았다.

불과 몇 초 만에 많은 일이 일어났다. 최초 선두에 섰던 악인 유저가 바닥에 힘없이 쓰러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또 한 명의 악인 유저의 머리에 칼이 꽂혔고 바로 이어서 마지막 남은 악인 유저의 목이 부러졌다.

말로 하기도 어려운 이 일을 몇 초 만에 해낸 상혁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목이 부러져 죽어버린 악인 유저의 시체를 바닥에 던졌다.

붉은 피 대신 하얀빛 가루들이 사방에 흩날리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다소 잔인해 보이는 장면이 연속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정작 상혁의 표정은 정말 담담했다. 사실 그가 이렇게까지 담담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10년 전에 개발되어 DN 게임이 발전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사용자 정신 보정’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조금이라도 유저의 정신에 타격을 입힐만한 장면이나 상황이 만들어지면 무조건 사용자 정신 보정 프로그램이 발동되었는데 이렇게 되면 유저는 그 시점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꿈속의 일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물론 정확히 꿈을 꾸는 것과 일치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꿈을 꾸는 것과 매우 비슷한 느낌을 받게 만들어서 유저가 받을 충격을 최대한 줄여주었다.

이 프로그램 덕분에 거의 모든 DN의 게임들이 정식인가를 받고 일반인들에게 서비스를 개시할 수가 있었다.

이 프로그램이 없으면 자칫 사용자들이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입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이건 모든 DN의 게임에 무조건 적용된 필수요소였다.

이게 적용된다고 해서 상혁의 움직임이 제한된다거나 혹은 상혁이 자신의 몸을 컨트롤 하는데 지장이 생기진 않았다. 초창기엔 그런 게 좀 있었다고 알려졌었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선 전혀 없었다.

단지 자신이 잔인하게 적을 죽인 부분만 강제로 순화되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것뿐이었다. 이게 워낙 복잡한 메커니즘이라 말로 설명하면 뭔가 모순(矛盾)이 느껴졌지만 실제로 경험해 보면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할 수가 있었다.

간혹 이 시스템이 있음에도 충격을 받는 이들이 있긴 했지만 그런 사람들은 아예 DN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건 상혁이 이런 쪽의 경험이 워낙 많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모든 걸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악인들을 제거하며 그들이 쌓은 악업(블랙 카르마)의 일부분을 빼앗아 왔습니다.

축하합니다. 카르마가 쌓이며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세 명의 악인은 하얀 빛가루를 사방에 비산시키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놈들은 상혁에게 상당한 양의 카르마를 선물해준 건 물론이고 동시에 자신들이 여기저기에서 빼앗았던 아이템들도 상당수 떨어트리고 사라졌다.

상혁은 그 물건들을 모조리 주워들었다. 아직 공간 확장 가방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손수 들고 갈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나중엔 쓰레기가 될 아이템들이지만 그래도 지금은 없어서 못 파는 것들이지.”

악인들이 그동안 다른 유저를 습격해서 강탈했던 아이템들은 적어도 지금 시점에 정리하면 꽤 쏠쏠하게 팔수가 있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버리고 갈 이유가 없었다.

* * * *

팔콘시로 돌아온 상혁은 들고 온 물건들을 모두 위탁판매에 올려버렸다. 위탁판매는 경매장과는 조금 다른 시스템이었는데 경매장이 비싼 수수료를 내는 대신 행성 전체 범위의 거래가 가능하다면 위탁판매는 수수료가 싼 대신 도시 내에서 NPC가 내 물건을 팔아주는 시스템이었다.

지금은 어차피 거의 모든 유저가 팔콘시를 기반으로 플레이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굳이 비싼 수수료를 내면서 경매장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가지고 있던 물건을 모두 처분한 상혁은 곧장 공용 은행으로 가서 창고에 넣어두었던 ‘여행자의 보검’을 꺼냈다.

원래 상혁은 최초의 산악인을 얻은 후 다른 몇 가지 아이템을 독점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세 악인을 쓰러트리며 그 생각이 바뀌었다.

‘최초의 악인 사냥꾼. 그 꿀 같은 타이틀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순 없지!’

특히 이 타이틀을 악인 유저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지금 타이밍에 획득하지 못하면 당분간은 획득할 기회조차 얻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타이틀이었다.

이런 건 얻을 수 있을 때 얻어놓는 게 좋았다. 특히 일단 ‘최초’가 붙은 타이틀은 무조건 게임 상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유일 등급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놓칠 수가 없었다.

“근데 효과가 뭐였지? 상당히 좋았다는 것만 기억나고 정확한 효과는 기억이 안 나네······.”

문제는 최초의 악인 사냥꾼이란 타이틀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어떤 효과를 지니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못 먹어도 고(GO)를 하는 게 맞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상혁은 곧장 악인 사냥을 위해 몇 가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대도서관. 그게 아마 거기에 있었지?”

상혁이 향하는 곳은 팔콘시의 대도서관이었다. 그가 그곳으로 가는 이유는 당연히 ‘고대의 지식’을 얻기 위해서였다.

상혁은 이미 자신이 뚫는 네 개의 소울 홀에 어떤 고대의 지식들을 채워 넣을지 결정을 한 상태였다. 그가 선택한 네 가지 고대의 지식은 당장 구해서 채워 넣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단은 가장 구하기 쉬운 것부터 구할 수밖에 없었다.

상혁이 대도서관으로 가는 이유는 그가 생각하는 네 가지 고대의 지식 중 하나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네 가지 고대의 지식 중 하나로 성장할 1차 고대의 지식이 그곳에 있었다.

궁극적으로 상혁이 원하는 건 ‘섀도우 나이트’ 혹은 ‘그림자 기사’라 불리는 고대의 지식이었다.

이것은 절대 희귀한 고대의 지식은 아니었다. 1년 정도만 지나도 많은 유저들에게 사랑받게 될 흔히 말하는 국민 고대의 지식이었다.

얻은 방법도 비교적 쉬워서 일찍 공개된 고대의 지식 중 하나였는데 먼저 1차 고대의 지식인 ‘기사(나이트)’를 얻고 그것을 차분히 2차 고대의 지식인 ‘블레이드 나이트’로 성장시킨 후 마지막으로 ‘그림자 도둑’이라 불리는 고대의 지식과 지식합성을 해 얻을 수 있었다.

그림자 도둑도 상당히 쉽게 얻을 수 있는 고대의 지식이었기 때문에 섀도우 나이트는 희귀도만 따졌을 땐 거의 하급에 속하는 고대의 지식이었다.

그럼에도 엄청난 숫자의 고대의 지식 조합법을 알고 있는 상혁이 이걸 선택한 이유는······ 상혁이 구상하고 있는 쿼드라 소울에서 중심을 잡아줄 만한 능력이었기 때문이었다.

< [5장] 독식(獨食)하기 (2) > 끝

ⓒ 성진(成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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