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8화 (8/127)

< [5장] 독식(獨食)하기 (1) >

@ 독식(獨食)하기.

네 개의 소울 홀을 뚫은 건 사실상 다른 유저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아무리 ‘절대 포기하지 않는 도전자’ 덕분에 필요 경험치가 8배가 아닌 4배로 줄었다고 해도 성장이 쉬워진 건 절대 아니었다.

초반은 하나의 소울 홀을 뚫은 유저와 큰 차이가 안 날 수도 있었지만, 레벨이 40을 넘어가면서 흔히 헬(Hell) 구간에 들어서면 진짜 소울 홀을 많이 뚫은 걸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되었다.

이걸 다 뚫어내야지만 진정한 최상위권 유저가 되는 것이었는데 이게 쉽지가 않았다. 물론 뚫어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현실에 있는 ‘돈’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고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죽지 않을 만큼 노력해서 기어 올라가는 것이었다.

무슨 방법을 선택하든 일단 뚫고 위로 올라갈 수만 있으면 확실히 소울 홀을 많이 뚫은 게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곤 했었다.

상혁이 감독으로 이름을 날릴 당시 활동하고 있던 프로게이머들만 봐도 80% 이상이 더블 소울이었고 나머지 20%가 트리플 소울이었다. 원 소울은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여기서 좀 더 세분화하면 흔히 프로게이머들 중에서도 최고라고 여겨지던 이들은 70% 이상이 트리플 소울을 지니고 있었다. 그만큼 트리플 소울이 지닌 잠재력이 뛰어나다는 뜻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상혁은 그 누구도 완성하지 못한 쿼드라 소울을 선택했다. 이 얘긴 제대로 성장만 한다면 진짜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서버가 열린지 이제 나흘째인가? 슬슬 여기저기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할 때군.”

EL의 압도적인 게임성은 EL의 오픈베타가 시작되고 대략 일주일 정도가 흐른 후부터 본격적으로 소문이 났었다.

물론 그럼에도 워낙 접근성 자체가 좋지 않은 게임이었기 때문에 그 소문이 흥행으로 이어지기까진 몇 개월이 걸렸었다.

‘사실 지금은 전생에 이름만 대도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랭커들도 이제 막 게임을 시작했거나 혹은 게임을 시작했어도 아직 뭐가 뭔지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때지.’

모든 정보를 게임 속에서 직접 찾아야 한다는 사실은 유저들을 상당히 피곤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라온소프트는 게임성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절대로 유저들의 편의를 봐주지 않았었다.

바로 이 부분이 상혁에겐 아주 좋게 작용했다.

“덕분에 수많은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나에겐 엄청난 것들을 독식(獨食)할 기회가 왔다.”

상혁은 아주 작게 중얼거리며 기분 좋게 웃었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은 흔히 유저들 사이에서 최고라고 평가 받았던 것들이었다.

물론 그걸 선점한 이들이 모두 최상위권의 유저가 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최상위권 유저들은 저마다 ‘최고’로 평가받는 뭔가를 가지고 있었다. 더욱이 상혁은 최고 중의 최고로 평가받던 것들을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현시점에서 상혁이 얻을 수 있는 것들이란 점이었다.

“아무래도 한동안 잠은 거의 포기를 해야겠네.”

솔직히 아무리 상혁이라고 해도 모든 걸 다 알고 있을 순 없었다. 그렇기에 그가 알고 있는 것들을 누가 언제 얻었는지는 거의 알지 못했다.

그 얘긴 선점을 하기 위해선 무조건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었고 그렇기에 한동안은 하루에 두 시간 정도만 자는 걸로 만족할 생각이었다.

이걸 위해서 그동안 몸을 만들며 휴식을 취한 것이었기에 적어도 한, 두 달 정도는 하루에 두 시간만 자며 게임을 한다고 해서 크게 무리가 될 것 같진 않았다.

‘우선은······ 최초의 산악인(山岳人)부터!’

상혁은 고개를 돌려서 팔콘시 뒤쪽에 우뚝 서 있는 성산(聖山) 푸얀(Puyan)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푸얀은 트리나크 행성을 대표하는 다섯 개의 산 중 하나였다. 높이는 그 다섯 개의 산 중 가장 낮았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가장 높았기 때문에 다섯 개의 산에 넣어주었다.

바로 이 다섯 개의 산 중 어떤 산이라도 상관없으니 일단 산꼭대기에 최초로 올라가면 한 가지 특별한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다.

최초의 산악인! 이것은 무려 유일등급의 호칭이었다.

비록 접두나 접미 효과는 없었지만 대신 상시지속 효과가 하나 붙어 있었는데 그건 바로 획득 카르마를 20%나 늘려주는 효과였다.

본래 이 호칭은 상혁의 전생에서 일명 ‘클라이머’라 불렸던 최상위권 랭커가 얻은 걸로 알려졌었는데 소문에 의하면 그는 푸얀이 아닌 다른 산의 정상에 올라서 얻었다고 알려졌었다.

상혁이 이런 정보를 알고 있는 이유는 그가 데리고 있던 프로게이머들이 사석에서 이런 흘러간 옛 정보들을 많이 얘기했었기 때문이었다.

진짜 중요한 정보는 같은 팀원들끼리도 공유를 잘 하지 않았지만 알려져도 큰 상관이 없는 정보 같은 경우는 사석에서 자주 얘기하는 편이었고 덕분에 상혁이 그렇게 주워들은 정보는 상당히 많았다.

보통의 경우라면 아무리 산 정상에 오르면 특별한 호칭을 얻는다는 걸 알고 있다고 해도 절대 쉽게 도전하지 못했겠지만 이미 소드 앤 매직을 통해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파른 기암절벽을 돌아다니며 약초를 캤던 상혁에겐 푸얀산을 오르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직 레벨이 10이었고 트리나크 행성으로 넘어와 얻은 경험치(카르마)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설사 죽는다고 해도 잃을 게 없었다.

혹시 몰라서 여행자의 보검은 미리 팔콘시의 공용은행에 존재하는 상혁, 아니 차원 여행자 ‘불멸’에게 제공된 사차원 아공간에 넣어두었기 때문에 잃어버릴 아이템도 없었다.

거기에 푸얀산은 잠든 신(神)을 품고 있는 트리나크 최고의 성산(聖山)이었기 때문에 몬스터는 고사하고 맹수(猛獸) 조차 없는 산이었다.

말 그대로 신이 잠든 성스러운 산에는 잡스러운 존재가 살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그 덕분에 상혁은 불과 레벨이 10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푸얀산 등반을 시도할 수가 있었다.

부담이 없었기 때문에 상혁은 과감히 푸얀산을 오를 수가 있었다. 상혁은 푸얀산에 오르기 위해 그동안 모아놓은 성장 포인트 10개를 모두 힘에 투자했다.

아무래도 절벽에 매달려 기어 올라가려면 힘이 높아야 했기 때문에 이런 투자는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여러 노력을 한 끝에 상혁은 오히려 한 번도 죽지 않고 푸얀산의 꼭대기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무려 20시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기어오른 끝에 얻은 값진 결과였다.

트리나크를 대표하는 다섯 개의 산 중 하나인 푸얀산의 정상에 최초로 올랐습니다. 아무도 정복하지 못한 곳에 최초로 오른 당신의 도전 정신은 모든 여행자에게 모범이 될 만합니다.

유일등급 타이틀인 [최초의 산악인(山岳人)]을 획득했습니다.

성산에 잠들어 있는 신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것은 전설등급 퀘스트를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조각입니다.

“허어, 전설등급 퀘스트? 여기에 이런 게 숨겨져 있었나?”

생각지도 못한 소득을 얻은 상혁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재빨리 퀘스트 창을 열어보았다.

퀘스트(Quest), ??? [전설]

- 신(神)이 잠든 산(자세히 보기)

- ???

- ???

- ???

“전설등급 조각 퀘스트······.”

조각을 다 모아야 퀘스트가 활성화되는 조각 퀘스트는 난이도가 굉장히 높은 대신 보상이 엄청난 퀘스트였다. 상혁은 그걸 이 타이밍에 얻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이걸 이 타이밍에 얻을 줄이야······.”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였다. 비록 그가 알고 있는 퀘스트는 아니었지만 전설등급 퀘스트의 값어치는 무궁무진했기 때문에 당연히 굉장한 이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뭐, 일단은 킵 해두고 여력이 생겼을 때 도전해야겠네.”

지금 당장 전설등급 조각 퀘스트에 도전하는 건 미친 짓이었다.

호칭 - ‘최초의 산악인(山岳人)’

등급 – 유일(唯一)

설명 – 아무도 정복하지 못한 곳에 최초로 오른 당신의 도전 정신은 모든 여행자에게 모범이 될 만합니다.

효과 - [접두: 없음] [접미: 없음] [상시지속 효과: <도전정신(S) 획득하는 카르마의 양이 20% 증가합니다.>]

상혁은 타이틀 창을 열어 ‘최초의 산악인’의 효과를 확인하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비록 같은 유일 등급이라도 끝없는 초원에서 얻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도전자보단 살짝 떨어지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지만 사실 이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대단한 것이었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도전자가 워낙 대단해서 별게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었다.

“이제 이걸로 확실히 쿼드라 소울에 대한 압박은 벗어날 수 있겠네.”

최초의 산악인까지 얻으며 이제 상혁은 쿼드라 소울을 거의 더블 소울처럼 키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진짜 더블 소울을 선택한 이들보단 더 힘들겠지만 적어도 트리플 소울을 선택한 이들보단 쉽게 키울 수가 있었다.

여기에 상혁이 추가로 알고 있는 몇 개의 자잘한 카르마 상승 타이틀을 차근차근 추가해주면 획득 카르마 상승량을 거의 30%까진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휴, 그나저나 내려가는 것도 일이겠네. 그냥 확 뛰어내려버릴까?”

뛰어내리면 가장 빠르게 바닥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차마 그러진 못했다. 아무리 상혁이라고 해도 가상현실에서의 죽음은 최대한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고 더욱이 지금은 모험을 통해 카르마를 얻었기 때문에 그 카르마를 잃는 게 아까워서라도 뛰어내리면 안 됐다.

잠시 호흡을 다듬으며 푸얀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치들을 마음껏 구경한 상혁은 다시 가파른 절벽을 거꾸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사진 찍기 기능이나 혹은 동영상 촬영 기능을 이용해 이 멋진 장면을 영원히 보관해 놨겠지만 상혁은 그런 소소한 감성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그냥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푸얀산에서 내려온 상혁은 다시 팔콘시로 돌아갔다. 아니,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팔콘시보다 그를 먼저 반겨준 건 뭔가 굉장히 세상에 불만이 많은 것 같은 표정을 한 세 명의 유저들이었다.

EL에서 레벨을 올리려면 카르마(업)가 필요했다. 재미있는 건 이 카르마가 두 종류라는 점이었다.

하나는 보통의 게임들과 비슷한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선(善) 속성의 카르마였다. 이건 흔히들 얘기하는 경험치와 거의 비슷한 역할을 했는데 몬스터를 잡거나 혹은 퀘스트를 해결하면 자연스럽게 쌓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과 완전히 반대 되는 카르마도 존재했다.

그것은 악업(惡業) 혹은 ‘블랙 카르마’라 불렸는데 이 블랙 카르마는 같은 유저를 죽인다거나 혹은 NPC를 살해하는 등 온갖 나쁜 짓을 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악업을 쌓아 그 악업을 통해 레벨을 1이라도 올리거나 혹은 블랙 카르마가 10,000 이상 쌓이면 악인(惡人)이 되었는데 악인이 되면 정상적인 도시를 이용하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목에 현상금까지 걸리게 되었다.

물론 악인을 위한 콘텐츠도 존재했고 악인들만의 도시도 있었던 건 물론이고 나중엔 악인들이 모여서 커다란 세력을 이루기도 했지만 어쨌든 악인이 되면 아무래도 좋은 점보단 나쁜 점이 더 많았다.

한 번 악인이 되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방법은 영혼의 전당으로 가서 모든 걸 내려놓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카르마를 대지모신과 천공군신에게 받치고 회개수행(悔改修行)을 하는 수밖에없었다.

회개수행을 하면 레벨이 10이 되는 건 물론이고 자신이 쌓은 악업만큼이나 오랜 시간 동안 아무것도 못 하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보통은 아무도 회개수행을 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악인이 된 상태에선 악인이 아닌 일반 유저들에게 자유롭게 공격을 당할 수가 있었고 그렇게 공격을 당해서 죽을 경우 자신이 보유한 총 블랙 카르마의 20%를 빼앗겼다.

20%의 블랙 카르마라면 레벨이 높은 악인인 경우는 한 번의 죽음으로 레벨이 몇 개나 떨어질 수 있을 정도 굉장히 많은 양이었다.

거기에 추가로 지니고 있던 아이템까지 랜덤하게 떨어트렸기 때문에 악인들은 죽음을 가장 두려워했다.

물론 악인이 되면 좋은 점도 있긴 있었다.

그건 바로······ 일반 유저들을 공격해 악업을 쌓는 건 물론이고 일반 유저의 아이템까지 강탈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에 일반 유저들에겐 NPC 취급을 받은 존재들을 공격해 이득을 취할 수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엘프, 드워프, 호빗과 같은 일반 유저와는 교류를 하는 특수 종족들을 마치 몬스터처럼 사냥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몬스터를 잡으면 아이템만 얻고 카르마를 얻지 못했지만 이런 특수 종족을 잡으면 아이템도 얻고 악업도 쌓을 수가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악인의 길을 선택하는 이유는 가장 큰 게 다른 유저의 아이템을 빼앗을 수 있다는 점이었고 두 번째가 바로 몬스터뿐만 아니라 특수 종족까지 공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 두 가지가 사람들이 악인이 되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리고 당연히 레벨이 낮을수록 악인이 되기가 쉬웠기 때문에 EL의 오픈베타서비스가 시작되고 초반에 한동안 악인들의 무차별적 PK로 인해 말이 많았다.

‘지금이 악인들이 설치고 다닐 때라는 걸 깜빡 잊고 있었네.’

상혁은 자신을 가로막은 세 명의 유저들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세 명의 유저들은 눈동자가 모두 붉게 물들어 있었다.

붉은 눈동자······ 이건 그들이 악인이라는 분명한 표식이었다.

“이젠 얘기하는 것도 귀찮네. 그냥 오늘 일진이 안 좋았다고 생각해라.”

놈들은 이미 다른 유저들을 많이 죽여 본 것처럼 보였다.

너무나 당당한 악인들의 모습······ 하지만 상혁은 악인들의 이런 당당한 모습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 [5장] 독식(獨食)하기 (1) > 끝

ⓒ 성진(成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