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4화 (4/127)

< [3장] 절망을 벗어나다 (1) >

@ 절망을 벗어나다.

상혁의 약초 채집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속도가 붙었고 그 결과 상혁은 생각보다 더 많은 골드를 얻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정작 상혁의 손엔 남아 있는 골드가 없었다.

상혁은 골드가 생기는 족족 경매장을 뒤져서 아이템을 구매했는데······ 상혁이 몇 개월 동안 계속 사 모으고 있는 아이템은 바로 ‘봉인된 수정’이란 아이템이었다.

이 아이템은 현시점에선 소매 유저들 사이에서 일명 쓰레기 뽑기 아이템이라 불리고 있었다.

그렇게 불릴 수밖에 없는 게 봉인된 수정을 열어서 나오는 아이템들 자체가 유저들이 거의 쓰지 않는 잡동사니가 대부분이었다.

가끔 강화석이 나오기도 했지만, 확률도 낮았고 또 그냥 아무것도 안 붙은 강화석 자체는 별로 비싸지도 않아서 그 누구도 봉인된 수정을 까서 강화석을 얻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경매장엔 봉인된 수정이 넘쳐났다. 봉인된 수정 자체의 드랍율은 그렇게 높진 않아서 유저들이 획득하는 봉인된 수정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문제는 이게 소비가 안 되고 경매장에 쌓인다는 점이었다.

상혁은 봉인된 수정의 시세를 적당히 조절해 가며 최대한 많은 봉인된 수정을 구매했다. 경매장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일을 주업으로 삼고 있는 유저들 꽤 많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누군가 봉인된 수정을 사들이고 있다는 걸 눈치채게 하면 안 됐다.

대부분 경매장 장사꾼들은 눈치가 100단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봉인된 수정을 사재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면 괜히 봉인된 수정의 가격이 폭등할 수가 있었다.

상혁은 그걸 최대한 조심하면서 차근차근 봉인된 수정을 모으고 또 모았다.

상혁이 이렇게 봉인된 수정을 모으는 이유는······ 소매의 4번째 대규모 패치에 포함된 한 가지 중요한 변경점 때문이었다.

유저들이 모두 경악하며 개발사를 욕했던 봉인된 수정의 폭풍 상향······ 사실 패치 내용 자체는 간단하게 한 줄로 표현할 수 있었지만, 그 간단한 한 줄의 패치가 불러온 파문은 엄청났다.

‘앞으로 봉인된 수정에서 낮은 확률로 축복받은 강화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정확하진 않았지만 대충 이런 문구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상혁은 4번째 대규모 패치 이후에 소매를 플레이했기 때문에 막연히 커뮤니티 게시판 같은 곳에서 전설처럼 떠돌던 얘길 주워들었던 것이라 패치 문구까지 정확하게 알진 못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패치 후에 봉인된 수정에서 축복받은 강화석이 나올 것이란 사실이었다. 패치 전에 존재하던 봉인된 수정에서도 똑같이 축복받은 강화석이 나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유저들은 더더욱 개념 없는 패치라고 욕을 했었다.

축복받은 강화석은 그냥 일반 강화석과는 차원이 다른 아이템이었다. 축복받은 강화석은 엄청나게 고가의 아이템이라 주로 현금으로 거래되었을 정도였다.

일반 강화석을 현금 가치로 따지면 대략 2만 원 정도였고 축복받은 강화석은 무려 200만 원 수준의 아이템이었다. 애초에 비교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패치 내용엔 낮은 확률이라고 했지만, 패치가 된 첫날 바로 접속해서 봉인된 수정을 깠던 사람들은 봉인된 수정 열 개 중 하나 정도에서 축복받은 강화석을 얻었고 결국, 개발사에서 한 시간 만에 황급히 긴급 패치를 해 그 이후엔 백 개를 까면 하나 정도가 나오는 수준으로 바뀌었다는 꽤 신빙성이 높은 정보도 있었다.

물론 상혁도 이건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게 아니라 정확한 사실 여부를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설사 백 개를 까서 하나가 나온다고 해도 지금 시점에서는 일단 봉인된 수정은 사 모으는 게 무조건 엄청난 이득이었다.

지금 봉인된 수정의 현금 시세는 대략 오천 원이었다.

그렇기에 설사 이걸 100개를 까서 축복받은 강화석 1개를 얻는다고 해도 큰 이득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이 봉인된 수정 사재기는 사람들의 말대로 첫날 비이상적으로 축복받은 강화석이 많이 나오면 초대박이고 그렇지 않아도 대박은 충분히 되었다.

상혁의 목표는 봉인된 수정을 3,000개 이상 모으는 것이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상혁은 그 목표를 위해 정말 미친 듯이 절벽을 타며 약초를 캤다.

*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 순식간에 해가 바뀌고 완연한 봄이 왔다.

2027년 9월 11일.

드디어 상혁이 알고 있던 대로 소드 앤 매직의 4번째 대규모 패치인 ‘볼로얀의 강림’이 시작되었다.

상혁은 패치가 끝나자마자 접속하기 위해 만만의 준비를 다 끝내놓고 있었다.

7개월 정도의 시간 동안 상혁이 모아놓은 봉인된 수정은 무려 3,116개였다.

만약 소문으로 떠돌던 대로 정말 봉인된 수정 열 개당 축복받은 강화석 한 개가 나올 수만 있다면 상혁은 간단히 계산해도 축복받은 강화석을 300개가량 얻을 수 있었고 그것의 값어치는 무려 6억 원 정도였다.

물론 이렇게까지 나올 것 같진 않았지만 어쨌든 최소 몇천만 원은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상혁은 패치가 끝나기가 무섭게 게임에 접속했다. 이미 패치 전에 창고 앞에서 접속 종료를 해놓았기 때문에 상혁은 접속과 동시에 창고를 열고 봉인된 수정을 까기 시작했다.

대략 몇백 개쯤 봉인된 수정을 까보니 자신이 들었던 소문이 100% 맞는 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봉인된 수정 100개당 한 개 정도 나온다는 축복받은 강화석이 대략 40개당 하나씩은 나왔다. 아무래도 원래 이 정도 수준이었는데 사람들이 다소 과장해서 10개당 하나씩 나왔다고 얘기한 것 같았다.

어쨌든 상혁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3,116개의 봉인된 수정을 순식간에 다 깠고 그 결과 정확히 74개의 축복받은 강화석을 얻을 수가 있었다.

300개와는 다소 차이가 크긴 했지만 74개만으로도 현금화를 통해 1억 5천만 원 정도의 돈을 얻을 수가 있었다. 수수료를 제외하면 1억 3천만 원 정도를 얻는 것이었지만 6개월 동안 아무런 기술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고등학생이 번 돈치고는 굉장히 큰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애초에 상혁도 자신이 보육원에서 나와 자립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려고 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가 있었다.

“어차피 딱 여기까지만 하려고 했던 게임이니 정리하고 끝내자.”

상혁은 소매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어차피 이제부턴 슬슬 EL을 영접할 준비를 하는 게 좋았다.

앞으로 6개월 후면 상혁이 그토록 기다리고 있는 이터널 라이프(EL)의 서비스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 7개월 동안 소매를 계속하면 금전적으론 좀 이득을 볼 수도 있겠지만 상혁은 그것보단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EL에 집중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을 만드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정리하고자 마음을 먹은 상혁은 단 며칠 만에 모든 걸 깔끔하게 정리해버렸다. 팔 수 있는 건 다 팔자 상혁의 통장에 정확히 1억 3천7백4십만 원이 쌓여 있었다.

얼마 전까지 십만 원 단위의 돈을 가지고 있던 상혁에게 이 돈은 정말 큰돈이었다. 만약 상혁이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면 잔뜩 흥분해서 여기저기 돈을 막 쓰고 다녔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혁은 평범한 고등학생이 아니었기에 전혀 흥분하지 않고 평소와 똑같이 행동했다. 지금은 오히려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을 때였다.

‘정확히 며칠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11월 말이었어. 그러니 11월까지는 쥐 죽은 듯이 지내자.’

상혁이 기다리고 있는 것. 그건 바로 자신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트린 쓰레기들의 방문이었다.

* * * *

소매를 완전히 정리한 상혁은 심지어 가지고 있던 헬멧형 VR 기기도 팔아버렸다. 어차피 EL의 출시에 맞춰 최신식 캡슐형 VR 기기가 출시될 예정이었으니 구형 기기는 값이 내려가기 전에 파는 게 좋았다.

그렇게 모든 걸 아주 깔끔하게 정리한 상혁은 뜬금없이 명상(冥想)을 배우기 시작했다. 상혁이 감독 생활을 할 때 발표된 논문에는 꾸준히 명상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다스린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VRA 수치가 높다고 나와 있었다.

즉, 명상이 VRA 수치를 조금이나마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뜻이었다. 물론 상혁의 VRA 수치는 이미 한계치에 가까울 정도로 높았지만 그럼에도 상혁은 방심하지 않았다.

이미 그는 VRA 수치란 게 여러 가지 이유로 확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걸 몸으로 경험해봤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VRA 관리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상혁은 명상만 배우는 게 아니라 검도(劍道)까지 시작했다. 물론 검도를 하는 이유가 검도를 통해 검을 쓰는 법을 배워서 그걸 게임 안에서 써먹겠다는 의도는 아니었다.

언뜻 상상하기엔 현실에서 검도를 배우면 가상현실게임 안에서 도움이 될 것 같았지만, 현실과 가상현실은 그렇게 단순하게 이어져 있지를 않았다.

VRA가 낮으면 현실에서 아무리 검도를 잘해도 가상현실에선 검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할 수도 있었다. 반대로 현실에선 운동에 소질이 없는 사람도 VRA만 높으면 얼마든지 가상현실에서 뛰어난 육체 능력을 보여줄 수가 있었다.

괜히 VRA가 새로운 형태의 재능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상혁이 검도를 배우는 이유는 오히려 검을 다루는 법을 배우려는 게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며 동시에 몸을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감독 생활을 하면서 가상현실에만 집착하다가 결국 자신의 몸 자체가 상해서 가상현실에 접속조차 하지 못하게 된 프로게이머들을 수없이 봤었다.

그렇기에 그는 늘 프로게이머가 되려면 먼저 몸부터 건강해야 한다고 얘기했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상혁은 검도를 배우며 차분히 자신의 몸을 단련했다.

시간은 이번에도 역시나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2027년 11월 27일.

절대 상혁이 잊을 수 없는 악마 같은 두 남자가 상혁의 눈앞에 나타났다.

‘박상철, 김대식.’

상혁은 그들의 이름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으득, 잊고 있던 그들의 얼굴을 다시 보는 순간 절로 이가 갈렸다. 하지만 지금은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참는다. 하지만······ 절대 그냥 넘어가진 않는다.’

마음 같아선 경찰에 신고를 해서 당장 잡아넣고 싶었지만, 문제는 놈들이 주기적으로 거처를 계속 옮기며 작업장을 운영했기 때문에 신고하고 싶어도 그들이 어디에서 작업장을 운영하는지 알지를 못해서 신고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당시 경찰에 잡혀갔던 놈들이 돈의 힘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위기를 벗어났던 걸 생각하면 경찰은 절대 좋은 응징 방법이 아니었다.

‘내 방식대로······ 너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빼앗은 후 처참히 짓밟아줄게. 그게 바로 내 응징이 될 거야.’

그래서 상혁은 아예 경찰의 도움이 아닌 자신의 방식대로 놈들을 응징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렇게 응징을 하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좀 필요하겠지만, 그 정도는 참고 기다릴 수 있었다.

박상철과 김대식은 상혁이 기억하는 대로 유창한 언변으로 아이들을 혹하게 하였다. 그리곤 바로 VRA 테스트를 시작했는데······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전생의 상혁이 그랬듯이 너도나도 좀 더 높은 VRA를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상혁은 그런 아이들에게 박상철과 김대식의 정체를 까발리고 그들을 따라가는 걸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보육원의 관계자들까지 놈들과 한패인 지금 상황에서 어설프게 아이들을 선동했다간 오히려 상황이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아이들이 상혁의 말을 믿어줄 가능성 자체가 낮았다. 상혁은 의정부 지역 쪽의 보육원에 있다가 그 보육원이 폐쇄되며 1년 전 이곳 파주 지역의 보육원으로 온 경우였기 때문에 이곳엔 친한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애초에 상혁의 성격도 누군가와 잘 어울리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 아웃사이더가 되었고 결국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시점에서 상혁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상혁은 조용히 눈을 감고 간단하게 명상을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리곤 자신의 차례가 되자 천천히 앞으로 나가 머리에 VR 기기를 뒤집어썼다.

< [3장] 절망을 벗어나다 (1) > 끝

ⓒ 성진(成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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