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3화 (3/127)

< [2장] 돌아오다(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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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혁은 차분히 기억을 더듬은 결과 자신이 2027년의 소드 앤 매직을 너무나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때 소매는 정말 엄청난 실수를 하며 미리부터 이터널 라이프(EL)에게 최고의 게임 자리를 내줄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었다.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긴 했는데 앞으로 9개월 후, 정확히 2027년 9월에 소드 앤 매직은 4번째 대규모 패치를 단행하는데······ 이게 흔히 소매를 똥매로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물론 대규모 패치 이후에도 몇 가지 자잘한 실수를 더 하고 그 뒤 DN 가상현실게임의 혁명이라 불리는 EL이 인기를 얻으면서 완전히 무너졌었다.

하지만 이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고 현재는 소매가 최고의 게임인 게 맞았다.

상혁이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소매를 똥매로 만든 4번째 대규모 패치에 포함된 한 가지 변경 점이었다.

이 변경 점은 너무나 뜬금없는 것이라 유저들에게 엄청나게 욕을 먹긴 했었지만 상혁 입장에선 너무나도 꿀 같은 정보라고 할 수 있었다.

헬멧형 VR 기기를 뒤집어쓰고 있던 상혁은 아주 능숙하게 드림 네트워크의 기본 인터페이스를 불러왔다. 사실 DN을 처음 이용하는 유저들은 이런 것 자체를 잘하지 못했다.

지금 상혁이 서 있는 이 온통 하얗게 칠해져 있는 이 공간은 ‘D-룸(D-Room)’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DN은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전 세계에 존재하는 가상현실 서비스들을 하나로 묶어놓은 거대한 인트라넷이었다.

일반 유저들은 상혁이 서 있는 이런 개인용 D-룸에서 각종 가상현실 서비스로 접속할 수가 있었다. 당연히 상혁이 접속하려는 소드 앤 매직도 여기서 접속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소드 앤 매직은 한 달에 7만 원이라는 다소 큰 금액을 이용료로 내야 했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가상현실 서비스들도 있었지만, 그것들 역시 광고를 본다거나 여러 과금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DN에서 돈을 내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 기준에선 소매의 한 달 이용요금이 비싸 보기인 했지만 한 달에 무려 12만 원의 이용료를 내야 했던 EL과 비교하면 그리 비싼 것도 아니었다.

상혁은 미리 기프트 카드를 사서 자신의 계정에 충전을 시켜놨었기 때문에 가볍게 7만 원을 결제하고 소매에 접속했다.

DN의 게임, 특히 소드 앤 매직과 같은 RPG게임들은 아무래도 튜토리얼이 길고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혁에게 이런 튜토리얼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는 가볍게 튜토리얼을 건너뛴 후 바로 소매에 접속했다.

기본적으로 소매는 잘 만든 게임이었다.

그렇기에 벌써 3년째 DN 최고의 게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신규 유저가 기존 유저를 따라가는 게 힘든 건 사실이었다.

당연히 상혁도 지금부터 레벨을 올려서 기존 유저를 따라잡을 생각을 하진 않았다.

어차피 상혁이 소매를 플레이하는 목적은 짧고 굵게 돈을 버는 것이었다. 그걸 위해 상혁은 시작 지점부터 초반 직업까지 모두 무작위 선택이 아닌 자신이 직접 선택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선택은 모두 그가 5년 간 노예처럼 굴려졌던 작업장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결정이 되었다.

기본 근력과 민첩성이 가장 높은 1차 직업인 ‘아처’와 보통 사람은 잘 선택하지 않은 산악지대에 있는 중소규모의 도시인 ‘팬우드’를 시작점으로 선택한 상혁은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쓴웃음을 지었다.

“그땐 정말 이 모든 게 지옥처럼 느껴졌었는데······ 지금 보니까 제법 풍경이 좋네.”

상혁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소드 앤 매직에 대한 기억들은 모두 좋지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당시 상혁은 좋아서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억지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이 얘길 위해서는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앞으로 10개월 정도 뒤에 발생할 사건 하나를 얘기해야 했다.

전생의 상혁이 고등학교 3학년생일 때 그가 있던 보육원에 낯선 사람들이 찾아왔었다. 상혁이 기억하기엔 그들은 ‘요보호아동 홀로서기 도우미’라는 제법 긴 직책이 적혀 있는 명함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 명함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어쨌든 당시엔 상혁과 같이 미래가 캄캄한 아이들에겐 꽤 주목을 받을만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유보호아동의 홀로서기를 돕는다며 앞으로 올해 안에 보육원을 나가야 하는 모든 아이를 대상으로 한 가지 테스트를 했다.

그 테스트는 바로 VRA(가상현실능력)를 측정하는 테스트였다. 그들은 그 테스트를 기준으로 돈이 될 만한 아이들에게 게임을 즐기면서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아주 근사한 직장이 있다며 계약서를 내밀었었다.

당연히 그 계약서는 말도 안 되는 노예계약서였지만 당시 어린 상혁에겐 그들의 모든 말이 달콤하게 들렸기 때문에 별로 고민도 하지 않고 그 계약서에 사인했었다.

특히 보육원 관계자들도 적극 사인을 권유했기 때문에 별다른 의심조차 하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나쁜 어른들이었지만 사실 전생의 상혁이 좋은 사람보다 나쁜 사람을 훨씬 많이 경험했다는 걸 고려하면 크게 억울할 것도 없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상혁은 그 테스트에서 말도 안 되는 수치를 기록하며 유보호아동 홀로서기 도우미, 아니 DN작업장을 운영하는 쓰레기들을 엄청나게 놀라게 했다.

그때 상혁은 사람들이 자신을 크게 인정해주자 아무것도 모르고 들떠서 그들이 내민 계약서에 사인을 해버렸다.

그리고 그들의 제안대로 고등학교 3학년을 다 마치지도 않고 취업이란 명목 아래 학교도 가지 않고 그들의 작업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 뒤 얘기들은 더 할 필요도 없었다.

그때부터 정확히 5년 동안 상혁은 제대로 외출도 하지 못하고 진짜 노예처럼 굴려졌다. 그나마 아이들을 인신매매하듯 납치해 노예처럼 부린다는 제보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이 작업장을 덮치지 않았다면 더 오랫동안 그 생활을 해야 했을지도 몰랐다.

19살에 끌려가서 24살에 풀려났다. 작업장 놈들은 상혁의 재능이 워낙 출중하다 보니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독하게 굴렸다. 그리고 결국 사고가 터졌었다.

그 사고 덕분에 그나마 좀 편해졌다면 편해지긴 했지만, 그 대가로 상혁은 찬란하게 빛나는 재능을 잃고 말았다.

어쨌든 상혁은 이런 지옥 같은 경험 때문에 24살의 나이에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해야 했었다.

작업장에서 보낸 5년의 세월은 상혁에게 굉장히 끔찍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었지만 적어도 그곳에서 배웠던 것들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살아남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배운 것들이라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가 없었다.

“맞기 싫어서 또는 먹을 걸 얻기 위해 미친 듯이 캤던 약초를······ 이제는 돈을 벌기 위해 캐야 하는 건가?”

상혁이 6개월 동안 소매에서 한 일은 바로 약초를 캐는 일이었다. 작업장마다 각자 돈을 만드는 방식이 달랐는데 상혁을 데리고 간 작업장에선 소매의 약초 리스폰 포인트를 줄줄이 꿰고 있었다.

상혁은 그걸 토대로 미친 듯이 약초를 캐러 돌아다녔었다.

약초를 캘 수 있는 지역들은 대부분 최소 레벨이 30은 넘어서 2차 직업을 얻은 이들이 갈 수 있던 지역이었지만 상혁은 불과 10레벨만 찍고 그 지역들을 돌아다녔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당연히 상혁이 가지고 있는 그 특별한 재능 덕분이었다.

소매는 여타 다른 RPG 게임들과 비슷하게 초반 레벨업은 빠르게 되는 편이었다. 상혁은 게임에 접속해 불과 5시간 만에 레벨 10을 달성했다. 초반에는 자신의 움직임에 적응하기 바쁜 일반 유저들과 달리 상혁은 접속과 동시에 능숙한 모습으로 사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레벨 10부터는 레벨을 올리는 데 필요한 시간이 확 늘어났기 때문에 상혁은 더는 레벨을 올릴 생각이 없었다. 약초 수집을 위한 최소레벨을 엄청나게 빠르게 달성한 상혁은 곧바로 소매의 3대 절경으로 손꼽히는 팬우드 절벽지대로 이동했다.

팬우드 절벽지대는 현재 소매 최고 레벨인 70레벨 유저들도 쉽게 돌아다니지 못하는 지역이었다. 그곳은 몬스터 같은 건 전혀 나타나지 않는 지역이다. 정확히는 지형이 워낙 험해서 한 번만 실수해도 아래로 떨어져 죽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몬스터 조차 살지 않는 그런 지역이었다.

실제로 레벨이 높은 몇몇 유저들이 자신의 스킬과 캐릭터 육체 능력을 믿고 이곳에서 까불다가 종종 추락사(墜落死)하곤 했다.

레벨이 70에 가까운 유저들도 그 정도였으니 당연히 레벨이 낮은 유저들에겐 마치 금지(禁地)처럼 여겨지는 곳이었다.

팬우드가 수많은 스타팅 포인트 중 가장 선택받지 못하는 지역인 이유도 주변에 이러한 절벽지대가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상혁은 레벨이 10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거침없이 절벽지대로 향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미친 짓이 되었겠지만 적어도 상혁에겐 이게 미친 짓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오래전 레벨 10의 몸으로 이 절벽지대를 누비고 다닌 경험이 있었다.

“확실히 오니까 더 기억이 생생하게 나네.”

휘익, 탁!

상혁은 건너편 절벽으로 가볍게 건너뛰며 손가락 끝으로 절벽의 튀어나와 있는 부분을 강하게 붙잡았다.

손가락 끝에 마치 접착제라도 발라놓은 것처럼 너무나 쉽게 절벽에 매달린 상혁. 일반 유저라면 벌써 아래로 떨어졌겠지만, 그는 아주 능숙하게 절벽을 타고 있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그가 일반 유저와 달리 손가락 끝까지 모든 힘을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뛰어나고 민감한 제어 능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바로 VRA 350의 위엄이었다.

“저기, 그리고 저기······.”

예상대로 직접 와보니 처음엔 잘 떠오르지 않던 약초의 리스폰 포인트가 마구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곳은 작업장에서 제공해준 포인트가 아닌 나중에 절벽지대에 익숙해진 상혁이 혼자서 개척한 포인트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위험도 없었다.

물론 그만큼 지형이 매우 험했지만, 지형이 험한 건 상혁에게 별로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설사 상혁이 실수를 해서 떨어져 죽는다고 해도 상혁은 잃을 게 거의 없었다.

10레벨 이하였기 때문에 레벨도 다운되지 않았고 심지어 아이템도 떨어트리지 않았다. 잃을 게 없었기 때문에 상혁은 더더욱 과감하게 절벽을 탈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왜 다른 10레벨 이하의 유저들은 왜 이런 도전을 하지 않는 걸까? 그 이유 또한 간단했다. 그들은 이런 절벽지대에서 몇 발자국도 이동하지 못했다.

애초에 VRA 350은 아무나 찍을 수 있는 수치가 아니었다.

그런 수치를 기록한 이가 있다고 해도 이곳에서 약초 작업을 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즉, 지금 상혁이 하고 있는 이 약초 작업은 오로지 상혁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뜻이었다.

상혁은 아무런 장비 없이 맨손으로 클라이밍을 하며 기암절벽(奇巖絶壁)을 옮겨 다녔다. 그가 캐는 약초는 좀처럼 구하기 힘든 희귀 약초들이었기 때문에 팔면 제법 짭짤한 골드를 벌 수가 있었다.

물론 그렇게 모인 골드를 현금화하면 편의점 아르바이트보단 훨씬 더 돈을 벌 수가 있었다. 하지만 상혁은 그런 푼돈을 노리고 약초 작업을 하는 게 아니었다.

상혁은 약초를 팔아 얻은 골드로 하려고 하는 일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 아주 큰 대박을 치려는 중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절대 칠 수 없는 대박.

오로지 미래를 알고 있는 상혁만이 칠 수 있는 대박이 하나 있었다.

소매를 떠올렸을 때 그걸 먼저 떠올리고 그걸 이루기 위해 약초 작업을 추가로 떠올렸었다.

앞으로 8개월 후에 있을 4번째 대규모 패치에서 일어난 한 가지 변화. 상혁은 그 변화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또 하나의 높은 절벽에 기어올라 한 뿌리에 100골드나 하는 구엽적초(九葉赤草)를 두 뿌리나 뽑은 상혁은 잠시 고개를 돌려 아찔한 경치를 감상했다.

“크으······ 이 느낌······ 진짜 그리웠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상혁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빛나는 재능을 잃고 이런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었을 때 느꼈던 답답함은 정말 상혁을 미치게 하였었다.

“하지만 EL과 비교하면 이건 애들 장난이지.”

소드 앤 매직도 잘 만든 게임은 맞았지만 이터널 라이프(EL)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EL은 그냥 가상현실게임의 끝판 왕과 같은 존재였다.

‘패치까지 남은 시간은 8개월······ 그때까지 최대한 그걸 모은다!’

잠시 경치를 구경하며 숨을 돌렸던 상혁은 구엽적초를 가방에 집어넣고 다시 절벽을 타기 시작했다.

예전의 상혁이 타의(他意)에 의해 미친 듯이 절벽을 탔다면 지금의 상혁은 자의(自意)로 미친 듯이 절벽을 탔다.

새로운 기회를 잡아 과거로 돌아온 상혁, 그의 새로운 삶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2장] 돌아오다(2) > 끝

ⓒ 성진(成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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