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2화 (2/127)

< [2장] 돌아오다(1) >

@ 돌아오다.

평소와 별반 다를 게 없는 하루였었다. 며칠 전에 중요한 대회에서 우승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뭔가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인터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술을 잔뜩 마시고 잠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모든 게 바뀌어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변화에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나마 겨우 정신을 차린 상혁은 일단 거울을 찾아서 지금 자신의 모습을 확인해 보았다.

“마, 말도 안 돼······.”

상혁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자 더더욱 이 말도 안 되는 변화가 거짓이 아닌 사실이란 걸 알 수가 있었다.

거울 속에는 36살의 나이로 자신의 팀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은 노련한 감독 이상혁이 아닌 여전히 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18살의 어린 이상혁이 서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되잖아?’

당연히 꿈같은 건 아니었다. 몇 번이고 확인해도 모든 게 생생한 현실이었다. 아무리 간절히 돌아오길 원했다고 해도 실제로 과거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상혁 역시 똑같았다. 그냥 그건 그의 헛된 망상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망상이 현실이 되었다. 당연히 상혁은 이 상황이 너무나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후우, 일단 진정하고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자.”

상혁은 새벽녘 잠에서 깬 후 벌써 5시간째 이 어처구니없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순 없었다.

그는 전생에 아이스맨(Ice Man)이라 불릴 정도로 매우 냉철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차분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현재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시작했다.

‘확실한 건 난 과거로 돌아왔거나 혹은 아주 긴 꿈을 통해 내 미래를 미리 생생하게 경험한 것일 거야.’

둘 다 말도 안 되는 가정이었지만 지금은 말도 안 되는 가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중 더 가능성이 높은 걸 꼽으라면 아무래도 과거로 돌아온 것이겠지? 뭐가 됐건 중요한 사실은 미래가 내가 알고 있는 대로 흘러갈 수도 있다는 것이겠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난 그토록 원했던 대로 다시 한 번 살아갈 기회를 얻을 수가 있는 거야.’

너무나 당황스럽긴 했지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뭔가 굉장히 기분이 이상해졌다.

‘진짜 너무나 간절히 원하니까 신(神)이 나에게 기회를 한 번 준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초자연적인 현상은 보통의 방식으로는 설명이 부족했다. 그렇기에 평소엔 존재 자체를 거부했던 신까지 끌어다가 억지로 이해를 해버렸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상혁은 자신의 좌우명을 중얼거리며 거울을 보았다. 이 좌우명은 인생이 밑바닥까지 떨어졌을 때 우연히 보았던 문구였다. 물론 지금 시점에선 미래의 일이 되어버렸지만 어쨌든 지금의 상혁은 18살의 몸을 지닌 36살의 남자였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많이 달랐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지만 언제까지 믿을 수 없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이미 비논리의 극치라 할 수 있는 시간 회귀가 일어난 이상 이제는 모든 걸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상혁이 모든 걸 인정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는 며칠 정도가 걸렸다.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주변 사람들이나 학교 친구들을 만나며 지금 이건 꿈같은 게 아니란 걸 확인할 수 있었고 그걸 통해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다는 확신을 가질 수가 있었다.

솔직히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받아들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18살의 이상혁이 아닌 36살의 이상혁이었기에 생각보다 더 빨리 정리를 할 수가 있었다.

모든 걸 인정하자 슬슬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상혁은 지금이 2026년, 즉 자신이 18살(고등학교 2학년) 때라는 걸 알고는 있었다. 구형 휴대전화에 찍혀 있는 날짜는 정확히 2026년 12월 22일이었다.

‘고3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직전 내 인생을 뒤바꿀 그 일이 정확히 11개월 뒤에 일어난다.’

11개월 뒤 인생을 나락(奈落)으로 떨어트릴 그 일이 발생하고 상혁은 그 뒤로 5년을 더 나락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렸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과거의 추억처럼 떠올리는 게 좀 이상하긴 했지만 어쨌든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미래가 흘러간다면 그렇게 될 예정이었다.

물론 상혁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없다. 다시 한 번 얻은 이 인생을 후회 없이 살려면······ 많은 걸 바꿔야 한다.’

보육원은 기본적으로 19살 이후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으면 보육원에서 나가야 했다. 상혁은 정확히 2028년 2월까지만 보육원에 있을 수가 있었다.

당연히 대학에 갈 수가 없었던 상혁은 다른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전생(前生)에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론 최악의 선택이었지만 당시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었다.

‘쥐꼬리만 한 정착금만 믿고 있을 순 없다. 우리를 그 쓰레기들에게 팔아먹을 정도로 썩은 놈들이 제대로 정착금을 줄 리도 없다. 무조건 내가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해.’

상혁은 이미 한 번 밑바닥에서 맨손으로 기어 올라간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 정도 상황은 별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는······ 상혁의 상태가 매우 멀쩡하다는 점이었다.

“내가 가진 재능. 그것만 있으면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들을 이룰 수 있어!”

쓰레기 같은 놈들에게 빼앗기지 않은 재능. 그게 아직 상혁에게 남아 있었고 그것만 있다면 모든 게 자신 있었다.

사실 그걸 잃은 후에도 꾸역꾸역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왔었던 상혁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 * *

많은 것이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크게 불편한 건 없었다. 원래 성격 자체가 조용하기도 했었고 또래의 아이들은 절대 가질 수 없는 36년 묵은 노련한 눈치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적당히 튀지 않게 융화될 수가 있었다.

그렇게 며칠 만에 현실에 적응한 상혁은 진지하게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그가 알고 있는 미래의 정보들이 100% 정확한 것일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지만, 며칠 동안 살펴본 결과 그가 알고 있는 미래와 현실의 흐름은 거의 똑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알고 있는 정보를 이용하지 않는 건 너무나 미련한 짓이었다.

‘일단 제일 먼저 필요한 건······ 역시 돈이겠지?’

이제 1년 후면 혈혈단신으로 세상에 내쳐질 상혁에게 돈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무엇을 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이제 겨우 고등학교 2학년밖에 되지 않은 상혁이 돈을 벌 방법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마저 거의 노예처럼 부려지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너무나 적은 돈을 버는 게 다였다.

“아르바이트로는 절대 내가 원하는 수준의 돈을 벌 수가 없어. 그렇다면 결국······ DN(Dream Network)에서 돈을 버는 게 답인가?”

DN은 흔히 말하는 VR(Virtual Reality:가상현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며 2020년에 만들어진 하나의 거대한 세상이었다.

과거 인터넷처럼 DN은 빠른 속도로 발전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인터넷이 차지했던 거의 모든 영역까지 흡수하며 세상 속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세상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아직 DN의 혁명이라 불리는 EL(이터널 라이트)이 출시되려면 1년이 좀 넘게 남은 건가?’

2028년 3월에 출시된 EL은 출시 후 4개월 만에 세계 최고의 VR 게임이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무려 15년이 넘게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오질 않았다.

“EL이 나오기 전까지 EL에 전념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해.”

어차피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상혁이었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왔다고 해서 특별히 다른 뭔가를 할 수 있진 않았다.

특히 상혁은 자신이 어떤 특별한 재능을 가졌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그 재능을 이용해 최고 중의 최고가 되어볼 생각이었다.

“이 시점에 나온 VR게임 중 가장 잘나가던 게 뭐였더라?”

상혁은 이미 과거로 돌아온 그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휴대전화의 메모장에 과거의 중요한 사건이나 정보들이 기억이 나는 대로 적어놓고 있었다.

메모장을 살펴보던 상혁은 ‘소드 앤 매직’란 이름을 찾을 수 있었고 이내 그 게임이 EL이 출시되기 전에 DN에서 가장 히트를 쳤던 게임이란 걸 기억해냈다.

“맞아. 이 게임이 한동안 인기를 끌었었지.”

상혁은 아주 많은 경험은 아니었지만, 대략 6개월 정도 소매(소드 앤 매직)을 해본 적이 있었다.

‘맞기 싫어서 억지로 했던 경험이지만 적어도 지금은 도움이 좀 되겠네.’

상혁은 그때의 기억만 떠올리면 몸이 절로 부르르 떨릴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어쨌든 그때의 경험이 지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나마 아직 캡슐형 VR 기기가 나오지 않아 다행이네.’

캡슐형 VR 기기는 EL과 함께 히트를 친 물건이었다. 정확히는 EL을 제대로 즐기려면 무조건 캡슐형 VR 기기가 필요했다.

소매는 헤드셋형 VR 기기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게임이었고 이 헤드셋형 VR 기기는 중고를 싸게 구하면 40만 원 정도에도 구할 수가 있었다.

“문제는 당장 나한테 40만 원이 없다는 점이겠지.”

DN으로 돈을 벌려면 VR 기기는 무조건 있어야 했다. 그 얘긴 적어도 VR 기기를 살 돈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모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 * * *

36살의 정신으로 18살의 아이가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 생각보다 고역이었다. 상혁이 선택한 아르바이트는 그나마 가장 만만하고 평소에도 종종 했었던 편의점 아르바이트였는데······ 어릴 땐 몰라서 넘어갔을만한 수많은 불합리함이 보이지만 이걸 억지로 참아야 한다는 사실이 상혁을 제일 많이 힘들게 했다.

하지만 어차피 자신이 나선다고 바뀔 것들이 아니었고 지금은 일단 최소한의 돈을 만드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고 넘어갔다.

그렇게 한 달 동안 편의점에서 시간제로 일해 60만 원의 돈을 만든 상혁은 곧장 쓸 만한 중고 헤드셋형 VR 기기를 구매했다.

VR 기기에 대해선 전문가급 지식을 지니고 있는 상혁이었기 때문에 감히 중고매매 사이트에 상주하는 사기꾼들이 수작을 부릴 수가 없었다.

아쉬운 건 보육원에서 이 VR 기기를 돌리는 건 무리라는 점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보육원 측에는 자신이 VR 기기를 샀다는 것 자체를 비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상혁은 몰래 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기에 보육원 근처에 있는 허름한 VR방 사장과 얘길 잘해서 한쪽 10만 원을 내고 VR방 한쪽 구석에서 두 달간 게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허름한 VR방 한 달 정액이 15만 원이었던 걸 고려하면 조금 비싸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하루라도 빨리 게임을 시작하는 게 더 중요했다.

이미 학교는 자퇴할 생각마저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적당히 보육원에 연락이 가지 않을 정도로만 출석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워낙 문제아들이 많이 다니는 고등학교였기 때문에 적당히 며칠에 한 번 정도만 얼굴을 비춰도 크게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상혁은 그렇게 허름한 VR방 구석에서 새롭게 얻은 기회의 첫걸음을 시작했다.

VR 기기를 통해 DN에 접속할 때 느껴지는 특유의 어지럼증은 많은 사람을 힘들 게 했었다. 이건 훗날 기술이 발전해 캡슐형 VR 기기가 등장하면서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완벽하게 없애진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상혁은 이 특유의 어지럼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이건 그가 전생에 이미 VR에 익숙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상혁이 타고난 빼어난 재능. 그는 바로 그 재능 덕분에 어지럼을 전혀 느끼진 않았다.

가상현실 기술이 발달하고 DN이라 불리는 진정한 가상의 세상이 등장하면서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형태의 재능이 큰 주목을 받았다.

현실이 아닌 가상현실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하고 움직일 수 있는 건 물론이고 남들이 볼 수 없는 것도 볼 수 있는 능력.

현실에선 보통 이런 사람들이 프로 스포츠 선수가 되었지만 DN에선 너무나도 당연하게 프로게이머가 되었다.

어쨌든 이 능력을 VRA(Virtual Reality Ability : 가상현실능력)라고 불렀는데 처음엔 그저 추상적인 능력처럼 여겨졌지만 수많은 전문가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정확한 측정방법이 등장했다.

VRA 수치 측정은 당연히 DN안에서 이뤄졌는데 절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100~150 VRA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상현실에 적응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70~100 VRA가 나왔고 반대로 적응력이 좋은 사람들은 200전 후로 나왔다.

흔히 VR 프로게이머들이라 불리는 특별한 이들의 VRA 평균값은 무려 250이었다.

250 VRA는 현실로 따지면 거의 프로스포츠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운동능력을 지닌 것과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상혁도 평범함과 거리가 먼 VRA 수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기억으론 그가 망가지기 전 가장 높게 기록했던 VRA 수치는 무려 350이었다.

프로게이머들마저 압도하는 엄청난 수치······. 정확한 건 아니지만, 그의 이러한 VRA 수치는 거의 세계신기록감이란 얘기도 들었었다.

물론 그 수치를 찍고 정확히 4년 후 완전히 폐인이 되며 VRA 40이란 말도 안 되는 수치를 기록하게 되었지만 어쨌든 현재의 상혁은 엄청난 수준의 VRA를 지니고 있었다.

“앞으로 반년 안에······ 보육원을 나와 독립할 수 있을 수준의 돈을 번다!”

상혁은 DN에 접속하기 전 스스로 다짐을 하듯 중얼거렸다. 그는 ‘소드 앤 매직’을 통해 돈을 벌어 독립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미 거의 모든 단물이 빨려 있는 소매를 통해 돈을 버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혁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몇 가지 정보와 자신의 특별한 재능이라면 분명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 [2장] 돌아오다(1) > 끝

ⓒ 성진(成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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