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1화 (1/127)

< [1장] 최고의 순간? >

@ 최고의 순간?

“축하합니다. 이번 우승으로 SKY팀의 통합 그랜드슬램 우승이 결정되었는데요. 모든 사람이 이 위업을 달성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이가 감독님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상혁은 우승 이후 밀려드는 인터뷰는 대부분 거절했지만 그래도 오래전부터 SKY팀의 라이브(Live) 방송을 거의 전담해서 중계해주었던 LGN(Live Game Net)의 인터뷰까진 거절하지 못했다.

“제 공이 아닌 선수들과 코치진의 공입니다. 전 그저 그들에게 별거 아닌 조언을 해주는 존재였을 뿐입니다.”

겸손한 이상혁의 대답. 하지만 이건 그저 방송용 코멘트일 뿐이었다. 상혁 스스로도 사실상 SKY팀의 우승은 자신이 만들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팀의 에이스이자 ‘이터널 라이프(EL)’의 최강자로 인정받고 있는 크래쉬(Crash) 최상열이 자랑하는 ‘천룡패법(天龍牌法)’ 역시 상혁이 완성한 것이었다.

최상열이란 최고의 선수를 만들기 위해 상혁은 SKY 텔레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그동안 이론으로만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던 카드 마스터(Card Master)를 실제로 현실에 등장시켰고 그 수혜를 입은 선수가 바로 최상열이었다.

그 밖에도 수많은 것들이 상혁을 통해 완성되었다. 사실 SKY팀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상혁이 직접 만들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팀이었다.

애초에 SKY 텔레콤은 3년 연속 ‘EL 마스터리그’ 꼴찌를 한 자신들의 프로게임단을 거의 해체하다시피 리빌딩 하면서 당시 온라인에서 화제를 일으키고 있던 상혁을 스카우트할 때부터 상혁에게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3년 안에 SKY팀을 최고의 팀으로 만들어달라고 했었고 상혁은 약속대로 3년 만에 완전무결한 SKY팀을 만들어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참 많은 일이 있었지만 어쨌든 상혁은 약속을 지켰다.

“이미 팬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너무 겸손하시네요.”

“사실을 얘기했을 뿐입니다.”

상혁은 혈기왕성한 20대가 아니라 30대, 그것도 4년만 지나면 40대가 되는 늙은 아저씨였기 때문에 젊은 감독들처럼 튀는 인터뷰는 별로 좋아하질 않았다.

당연히 인터뷰하는 쪽에선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리포터는 원래 대본에는 없던 질문을 기습적으로 던졌다.

“그럼 혹시 이것도 사실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최근 여러 커뮤니티에 이번 대회를 끝으로 SKY팀과 감독님이 결별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는데 이게 정말 사실인가요?”

“사실무근입니다.”

상혁은 짧게 대답했다. 애초에 대본에 없던 질문이었기 때문에 길게 대답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대답을 한 상혁의 머릿속엔 자신이 한 말과는 전혀 다른 생각이 떠올라 있었다.

‘사실이지. 아주 짜증 나지만······ 사실이야.’

그는 실제로 이미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건 최소 앞으로 3개월 후에 공표될 사실이었기 때문에 미리 말하면 법적으로 걸릴 수가 있었다.

상혁의 재미없는 대답에 리포터는 살짝 울상을 지으며 계속 인터뷰를 이어갔다. 보통 이러면 다른 사람들은 억지로라도 재미있는 대답을 해주려고 했는데 상혁은 자신의 별명이 왜 ‘아이스 맨’인지를 알려주려는 듯 시종일관 굳은 표정과 재미없는 대답만 반복했다.

결국, 인터뷰는 별 재미도 감동도 없이 끝나버렸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정말 건질게 하나도 없는 인터뷰가 되어버린 게 억울했던 리포터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대본에 없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지금 이 순간이 감독님이 꿈꾸던 최고의 순간이신가요?”

다시 한 번 대본이 없는 질문을 받은 상혁은 잠시 질문을 곱씹어보았다.

최고의 순간······. 그것이 가지는 의미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아주 잠깐 생각해본 상혁은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물론입니다. 저에겐 지금이 최고의 순간입니다.”

이것도 거짓말이었다.

절대 최고의 순간이 될 수가 없었다.

비록 절망의 밑바닥에서 간신히 기어 올라와 이곳까지 도달했지만······ 그가 원했던 최고의 순간은 이런 게 아니었다.

인터뷰가 끝났지만 상혁은 꽤 오랫동안 리포터의 마지막 질문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내가 진정 원하던 최고의 순간······ 그건 아마도 영원히 이루지 못하겠지······. 결국 현실적으로 내가 이룰 수 있는 한계는 여기까지인 건가?’

상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더 화가 나는 건 그렇게 간신히 이룬 현실적인 한계마저 통째로 빼앗기게 생겼다는 점이었다.

계약서를 자세히 검토하지 못한 건 상혁의 실수가 맞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했다. 사실상 이 모든 건 상혁이 만들어낸 것이었는데 그들은 이 모든 걸 포기하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SKY 텔레콤 쪽과 아주 많은 의견충돌이 있었던 건 사실이었지만 그들이 이렇게 뒤통수를 칠 것이라곤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하아······ 힘들구나.”

상혁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주로 빼앗기는 인생을 살아온 그였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한 번 빼앗기게 되었으니 모든 게 부질없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상혁은 모든 걸 되돌리고 싶었다. 만약 정말 모든 걸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땐 정말 빼앗기는 인생이 아닌 빼앗는 인생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이건 상혁의 헛된 망상(妄想)일 뿐이었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아니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상혁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이건 절대 이뤄질 수 없는 것이었다. 상혁도 그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워낙 후회가 많은 삶을 살았기에 매일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쌓이고 쌓이는 상혁의 간절함.

그는 그렇게 계속 간절함을 쌓고 또 쌓아갔다.

< [1장] 최고의 순간? > 끝

ⓒ 성진(成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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