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
도전자에서 디펜딩 챔피언 (2)
내 홈런으로 1회 말부터 3:0으로 앞서게 된 뉴욕 양키스.
이후로 양 팀에게 추가 점수는 나지 않았다.
바뀐 공인구로 인해서 작년과 비교해 올해 시범 경기에서는 방어율이 크게 올랐다.
하지만 정점에 있는 두 투수에게 그런 것 따위는 개의치 않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게릿 콜은 메이저리그 투수 최고 연봉을 받는 선수답게 돈값을 그대로 보여줬고, 크리스 세일 역시 그에 못지않은 엄청난 플레이를 보여줬다.
그렇게 3:0의 균형은 7회 초까지 계속 이어졌다.
따아아아아아악―!
그리고 그 균형은 7회 말에 깨졌다.
오늘 중견수 선발 출장인 클린트 프레이저를 대신해서 대타로 나온 애런 힉스.
그는 1아웃 주자 없는 7회 말에 크리스 세일의 2구를 그대로 당겨서 우측 담장을 넘기는 솔로 홈런을 만들어냈다.
와아아―
작년 정규 리그 말부터 올해 시범 경기까지.
상당한 부진 끝에 나온 그의 아름다운 아치를 그리는 홈런은 양키 스타디움을 들썩이게 하기 충분했다.
4:0으로 뉴욕 양키스가 앞서고 있는 상황.
8회 초 마운드 위로 올라온 투수는 23년도에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개막전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 스티브였다.
그는 1실점을 허용했지만 추가 실점을 하지 않으며, 8회를 막아냈다.
8회 말에 추가 득점 없이 맞이한 9회 초.
3점 차이로 세이브 요건인 상황.
뉴욕 양키스의 마무리 투수인 아롤디스 채프먼이 마운드 위에 올라왔다.
“스트라이크 아웃!”
앞의 두 타자를 땅볼과 뜬공으로 유도해낸 아롤디스 채프먼.
그는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고 가만히 서서 잠시 응시하는 세리머니까지 보여줬다.
와아아―
개막전 4:1 승리.
양키 스타디움을 찾은 관중들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개막전 승리에 환호하는 모습이었다.
경기 수훈 선수, 다른 말로는 경기의 MVP 수여가 시작됐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나온 MVP는 1회에 3점 홈런을 쳐내면서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지은 내가 받게 되었다.
“오늘 3점 홈런 하나를 포함해서 2루타 하나와 볼넷 2개, 그리고 도루까지 하나 성공시키면서 개막전 최고의 기량을 뽐내주셨습니다. 이렇게 된 비결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시범 경기에서부터 열렬한 응원을 보내주셨던 팬 여러분들의 힘이 컸죠. 그리고 오프 시즌 내내 제 몸 관리를 체크해주신 스미스 코치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서 고맙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네요.”
“아무래도 작년 뉴욕 양키스의 우승에 있어서 최강남 선수의 포스트시즌 활약이 컸잖아요? 그런 대단한 모습을 봤던 팬들의 관심이 올해에도 정말 큰 것 같습니다. 그런 최강남 선수의 개인적인 목표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개인적인 목표는 골드 글러브와 실버 슬러거, 그리고 홈런왕이죠. 물론 이런 개인적인 목표보다 더 집중하는 것은 뉴욕 양키스의 2년 연속 우승이고요. 올해에도 정말 많은 팬분들이 작년과 같은 모습을 기대하시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작년과는 다를 것 같습니다. 올해의 양키스는 작년보다 훨씬 강할 것이니까요.”
“역시 올해에도 패기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최강남 선수네요. 이것으로 인터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첫 경기부터 홈런에 이어서 MVP 인터뷰까지.
만족스러운 개막전 날을 마치고 선수들과 함께 숙소로 향했다.
“정말 그 스미스라는 코치가 큰 도움이 된 건가? 아니면 단순한 립 서비스?”
“설마 입에 발린 소리일까요. 정말 도움 많이 됐죠. 그 코치가 코어 근육 향상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됐거든요. 확실히 오프 시즌에 체력과 피지컬 키우는 데만 집중했더니 컨디션이 좋은 것 같긴 하네요.”
“이번 시즌 끝날 때까지 기록이 좋으면 나도 당장 스미스 코치한테 찾아가 봐야겠는데?”
“물어보시면 언제든 연락처 알려줄게요.”
“그래. 오늘도 운동가지?”
“그럼요. 언제나 경기 끝나고 루틴 중 하나였잖아요?”
“좋아! 그러면 개막전부터 기분 좋은 마무리 해보자고!”
오늘 볼넷과 안타를 얻으며 2출루에 성공한 양키스의 2루수 루그네드 오도어.
그와 함께 트레이닝 센터로 향해서 간단한 운동 후에 숙소로 돌아왔다.
샤워를 마치고 잠에 들기 전.
190cm에 93kg의 몸을 거울로 비추어 확인했다.
이전과 비교했을 때 확연하게 굵어진 허벅지와 팔뚝.
특히나 몸 전체를 지탱하고 있는 굵은 허리는 야구 선수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몸이었다.
물론 몸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보디빌더와는 사뭇 달랐지만, 이 모든 근육은 야구를 잘하기 위한 용도의 근육.
겨울을 열정적으로 보낸 노력의 산물이었다.
‘이제 정말 시작이다.’
오늘 내 홈런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이제 겨우 정규 리그 첫 경기.
앞으로 이런 일정을 161경기나 더 치러야 끝이 난다.
그 후에 포스트시즌까지 완벽하게 끝이 나야 오프시즌이 되는 것이고.
거울을 보며 심호흡을 한 나는 침대에 누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잠에 들었다.
***
“이볼디! 컨디션은 괜찮아?”
“그럼요. 오늘은 저 빌어먹을 양키스 놈들한테 패배를 안겨줘야죠.”
“역시 화끈하네. 잘 부탁할게.”
오늘 보스턴 레드삭스의 선발 투수인 네이선 이볼디.
투수 코치는 이볼디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 다시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일단 40개는 던졌는데. 여기서 끝낼까?”
“커터랑 스플리터 하나씩만 더 던지고 끝내자고.”
“알겠어. 커터부터!”
퍼엉―
퍼엉―
강력하게 꽂히는 이볼디의 커터와 스플리터.
미트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듯이 네이선 이볼디의 오늘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그는 포수와 몸을 풀고 난 후에 반대편에서 역시나 몸을 풀고 있는 양키스의 선발 투수를 쳐다봤다.
오늘 뉴욕 양키스의 선발 코리 클루버.
오랜 시간 마이너리그를 전전했지만 규정 이닝 소화 첫 시즌에 사이 영 상을 받은 코리 클루버.
하지만 부담감은 전혀 없었다.
아무리 연봉이 실력의 척도가 아니라지만 이것만큼 객관적인 것은 없었다.
이볼디의 연봉은 코리 클루버에 비해서 무려 600만 달러나 높은 1,700만 달러.
연봉은 프로에게 자존심이나 다름없었고, 이볼디는 그것에 자부심을 가지는 투수였다.
보스턴 레드삭스가 아닌 스몰 마켓이었다면 당연하게도 1선발 투수의 자격이 충분한 네이선 이볼디.
하지만 보스턴 레드삭스에는 무려 3,000만 달러를 받는 크리스 세일이 있었기에, 2선발로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이번 시범 경기에는 크리스 세일보다 좋은 1.13의 방어율을 기록했다.
그것은 크리스 세일뿐만 아니라 게릿 콜이나 저스틴 벌렌더보다 훨씬 압도적인 기록.
당당하게 시범 경기 AL 방어율 1위에 본인의 이름을 새기기에 충분했다.
물론 시범 경기는 비공식적인 경기고 다른 선수들도 기록에 얽매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1위라면 그 무게가 다른 법.
‘오늘은 드디어 이 빌어먹을 양키 스타디움에서 최고의 호투를 보여줄 수 있겠네.’
이 작은 경기장에서 강한 투수는 없었지만, 네이선 이볼디는 유독 양키 스타디움에서 피홈런이 많은 투수 중 하나였다.
커리어 최대 피홈런도 뉴욕 양키스에서 뛰던 2016년 24경기 23개였으니까.
하지만 그때의 이볼디와 지금의 이볼디는 전혀 달랐다.
작년 33경기 6개의 피홈런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거기에 오늘은 컨디션이 최상.
올해 양키스의 타선이 메이저리그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한다고는 언론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네이선 이볼디는 그들을 압도할 자신감이 있었다.
“플레이 볼!”
그렇게 2차전이 시작됐다.
1회 초 보스턴 레드삭스의 공격.
“스트라이크 아웃!”
마운드 위의 투수는 코리 클루버.
그는 1번 타자인 키케 에르난데스를 삼진으로 잡아냈다.
따악―!
“아웃!”
따악―!
“아웃!”
이어서 나온 타자들은 땅볼과 뜬공 아웃.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레드삭스의 1회 초 공격은 그렇게 삼자범퇴로 막을 내렸다.
1회 말 뉴욕 양키스의 공격.
보스턴의 2선발 투수인 네이선 이볼디는 자신 있게 마운드에 올라갔다.
오늘 뉴욕 양키스의 1번 타자는 어제와 동일하게 DJ 르메이휴.
그와 동시에 47,000명의 관객으로 만석이 된 양키 스타디움이 들끓기 시작했다.
‘뉴욕은 여전히 열정적이네.’
뉴욕 양키스에서 뛰던 시절 네이선 이볼디는 만신창이나 다름없었다.
팔꿈치 염증, 오른팔 굴곡근 손상과 팔꿈치 인대 파열.
거기에 토미 존 수술까지.
16년도에 방출을 당했지만 양키스가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17년도에 재활에 집중해서 18년도에 탬파베이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
그 후에 18년도 레드삭스에서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맛봤으니까.
‘그냥 아쉽네. 양키스에서도 이렇게 잘 던졌으면 좋았을 텐데.’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1번 타자 DJ 르메이휴에 이어서 2번 타자 루그네드 오도어까지 삼진 아웃.
단 7개의 공만으로 삼진을 두 개나 잡아냈다.
원망보다는 아쉬움.
16년도에 이루지 못했던 호투를 23년도에 바로 이곳 양키 스타디움에서 다시 보여주고 있는 네이선 이볼디였다.
와아아―
그와 동시에 양키 스타디움의 관중들은 아까보다 훨씬 큰 환호를 보냈다.
“Strong Man! The Strongest Man! Choi! Gang! Nam!”
3번 타자 최강남의 타석.
이볼디 역시 작년에 그에게 홈런을 허용한 기록이 있었다.
하지만 밋밋하게 들어간 실투성 커터를 맞은 것.
그리고 오늘 그의 컨디션은 최근 몇 년 동안 중에서도 최고였다.
이볼디가 빠르게 와인드업 후에 초구를 던졌다.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에 정확하게 걸치는 코스의 강속구를 지켜보는 최강남이었다.
뒤를 돌아 전광판을 보니 구속은 무려 100마일(160.9km/h).
평균 구속 98마일, 최대 102마일의 포심까지 던지는 이볼디였지만, 오늘처럼 완벽한 보더라인 피칭을 선보이는 경우는 드물었다.
따악―!
2구는 몸쪽 높은 101마일의 포심.
최강남이 배트를 휘둘렀지만, 빗맞은 타구는 여유롭게 3루 관중석으로 향했다.
0-2로 압도적으로 투수에게 유리한 카운트.
레드삭스의 포수인 크리스티안 바스케스는 이볼디에게 3구로 바깥쪽으로 빠지는 커터를 요구했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지.’
하지만 고개를 가로젓는 네이선 이볼디.
그는 바깥쪽 낮은 코스에 꽉 차는 포심을 던지겠다는 사인을 보냈다.
최고의 컨디션을 바탕으로 1회부터 잘 나오는 구속.
거기에 공이 손가락에 채는 느낌 역시 최상이었고, 제구 역시 완벽했다.
잠깐 숨을 크게 뱉은 네이선 이볼디는 역동적인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머리 위로 힘껏 올리는 양손, 가슴팍까지 올라오는 왼쪽 무릎에 이어서 힘찬 투구.
‘됐다. 이건 삼진이다.’
그 공을 던지는 순간 네이선 이볼디는 느꼈다.
이 공은 자기가 던질 수 있는 최고의 공이라는 것을.
마치 게임처럼 완벽하게 우타자의 낮은 바깥쪽으로 향하는 포심.
최강남은 그 공에 배트를 휘둘렀다.
따아아아아아악―!
그리고 자신이 던진 최고의 공을 완벽하게 맞는 순간 후회했다.
유인구 하나는 던졌어야 했다고.
네이선 이볼디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뒤로 돌았고 타구는 여유롭게 우측 담장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전광판을 바라본 이볼디는 더욱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103마일(165.7km/h).
그곳에는 네이선 이볼디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 최고의 구속이 찍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