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
스프링 트레이닝 (1)
“몸이 더 좋아졌는데? 몸 단단해진 것 좀 봐.”
“이번 겨울에 트레이닝에 좀 신경을 썼죠.”
“트레이닝은 누구한테 받은 거야? 프런트 이야기 들어보니까 추천해 줬던 코치들 말고 다른 사람한테 받았다던데.”
“개인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코치한테 받았어요.”
“이번 시즌 기록 내는 것 보고 나도 추천이라도 받아야겠는데?”
“기회가 되면 소개라도 시켜줄게요.”
오늘은 야수조 집합 날.
오랜만에 만난 루그네드 오도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겨울방학이 지나고 친구를 만난 것 같은 편안함.
오도어는 연신 밝은 표정으로 자기의 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무래도 딸바보란 말은 전 세계 공용어가 아닐까?
따악―!
가벼운 스트레칭 후에는 펑고 훈련이 이어졌다.
마이너리그의 선수들은 겨울에 다른 리그에서 뛰고 오는 경우도 있지만, 메이저리그의 선수들은 그런 경우는 없다.
거기에 야구란 것이 생각보다 전신의 근육이 필요한 운동이다.
그렇기에 메이저리그의 선수들은 스프링 트레이닝 전까지 코어근육을 비롯한 단순 피지컬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지금 펑고가 올해 처음으로 공을 잡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를 뛰고 있는 선수들이 어떤 사람인가.
아주 어린 나이부터 야구공을 잡았던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뛰는 재능 있는 선수들.
거기에 대부분의 선수들은 여전히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본인이 사랑하는 야구를 위해서.
“최! 나이스 플레이!”
3달 만에 착용하는 글러브와 나에게 향하는 내야 땅볼.
하지만 몇 번을 반복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너무나 익숙한 행동이었다.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기억하고 있는 노력의 흔적들.
안정적으로 10개의 타구를 모두 아웃 처리 시킨 내게 타격 코치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펑고에 이어서 가벼운 주루 훈련까지 진행하고 끝이 났다.
야수조 스프링 트레이닝의 첫날은 가벼운 일정이었고, 생각보다 빠르게 끝이 나서 오도어를 비롯해서 작년에 친해진 몇몇 선수와 저녁을 함께 먹기로 했다.
“최. 우리도 같이 먹어도 될까?”
“전 좋아요. 오도어나 클루버도 괜찮아요?”
“당연하지. 루키는 언제나 환영이라고.”
나와 함께 마이너리그에서 뛰었던 포수 로버슨과 스티븐과 케이든이 내게 물었다.
그러한 이야기에 격하게 동의하는 오도어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코리 클루버.
그렇게 우리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싱글 A에서 뛰던 시절에 종종 들렸기에, 약간의 감회에 젖어 있던 그때 오도어가 입을 열었다.
“루키들! 많이 먹으라고. 오늘 저녁은 내가 살 테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함께 밥을 먹는 것이 너무 꿈같네요. 저도 베네수엘라 출신인데 오도어 선수는 정말 제 롤모델 중 하나였습니다.”
“뭐야. 베네수엘라 출신이었어? 동향 사람을 여기서 만나네. 잘 부탁해. 기왕이면 시범경기 마지막까지 이곳에서 봤으면 좋겠네.”
“최선을 다해서 버텨보겠습니다! 영광입니다!”
우리 사이에서는 괴짜라고 불리는 베네수엘라 출신의 케이든.
하지만 그 역시 존경하는 선수 앞에서는 한 명의 순한 야구팬일 뿐이었다.
그렇게 야수조 소집일 첫 날.
우리는 일상에 복귀한 듯 편안하게 야구에 대한 적응을 시작했다.
***
“김 과장. 이번에는 입찰 가격이 무려 6배나 뛰었어. 그래도 우리가 이 중계권을 사는 것이 이득일까? 혹시라도 잘못되면 작년 우리의 실적은 한순간에 다 사라질 수도 있네.”
“부국장님! 메이저리그 독점 중계권 연장은 MBS 스포츠에게 있어서 최고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강력 주장하는 근거도 확실합니다.”
MBS 스포츠국 스포츠 기획부 과장 김동환과 부국장 박민철.
작년에는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잡은격으로 운이 좋게 승진에 성공했다.
하지만 올해는 이야기가 달랐다.
무려 6배가 오른 독점 중계권 가격.
작년에 중계권 가격의 9배의 이득을 취했지만, 이번에는 같은 소득이라면 1.5배의 이득만 취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그마저도 떨어진다면 시말서는 물론이고 정말 최악의 상황까지 걱정해야 하는 박민철 부국장.
하지만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한 김동환은 너무나 확실한 목소리와 눈빛으로 박민철 부국장을 계속해서 설득했다.
“작년에 최강남 선수의 활약이 한국의 야구팬들에게 알려진 것이 8월부터입니다. 7월에 데뷔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하루 이틀 활약하다가 다시 마이너리그로 갈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어떻습니까? 최강남 선수는 결승전에 가서 우승까지 해내지 않았습니까? 올해는 시범경기부터 수많은 언론과 팬들이 관심을 가지고 최강남 선수를 지켜볼 것입니다.”
“만약 떨어진다면 책임은 우리가 져야 될 거야. 우리 둘 말고는 위쪽 의견이 대부분 회의적이거든. 확실한 이유라도 있어?”
“12월 말에 메이저리그 개정안이 나왔습니다. 거기에서 투수에게 많은 페널티를 주고 타자가 활약할 수 있는 룰로 개정했죠. 공인구도 바뀌었고요. 저는 승산이 높은 충분히 해볼 만한 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흠··· 좋아. 자네의 의견을 수용해서 작년 계약에서 승진까지 했으니, 이번에도 믿어볼게. 또 같은 배를 타게 됐네. 부탁하네. 김 과장.”
“잘 부탁드립니다. 부국장님!”
“그래. 내가 자리를 걸어서라도 이번 독점 중계권 따오도록 하지. 자네는 이번 독점 중계권 광고에 최강남 선수를 꼭 섭외해줘. 무조건 영상으로.”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제 의견을 수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사람은 야구에 인생을 걸기도 한다.
선수로, 코치로, 때로는 야구장 앞에 식당을 차리면서.
그리고 이곳에는 다른 이유로 야구에 인생을 건 두 명이 존재했다.
한국 메이저리그 독점 중계권.
올해에도 그것은 MBS 스포츠가 가져가게 되었다.
***
따아아아아아악―!
“자네들이 보기에는 어때? 내가 봤을 때는 공인구 변경으로 인해서 이번 메이저리그는 엄청난 타고투저가 될 것 같은데 말이야.”
“저희 생각도 그렇습니다. 투수조 먼저 소집해서 던졌을 때도 느낌이 왔지만, 타격하는 모습을 보니까 더욱 체감이 크네요.”
“특히나 우리처럼 작은 경기장을 쓰는 팀들은 홈경기에서 투수들 부담감이 더욱 클 거야. 그렇게 되면 투수들의 부상 위험이 올라가니까, 각별히 멘탈에도 신경 많이 써주도록 하고.”
“예. 알겠습니다.”
뉴욕 양키스의 감독 애런 분.
그는 시범경기 개막을 앞두고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늘 하는 고민들.
만약 어떤 선수가 부상을 당한다면 누구로 채워야 할까?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에 대비해서 플랜 b와 c를 구상하는 애런 분 감독.
다행히 올해 양키스의 단장인 브라이언 캐시먼은 이름값을 톡톡히 해주었다.
작년에 계약이 만료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선발 투수들과 타자들 모두를 재계약에 성공시킨 캐시먼.
그렇기에 당장 누구를 주전으로 쓸지에 대한 고민은 한시름 덜은 애런 분이었다.
하지만 양키스의 최대 단점은 노령화.
천문학적인 페이롤은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선수들을 양키스에 모으는데 성공했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언제 잔 부상에 시달려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들이었다.
거기에 작년 우승에 최대 활약을 세웠던 최강남.
그가 만약 부상을 당하거나 슬럼프가 온다면?
저 자리를 누가 메꿀지, 그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경기를 손해 볼지를 미리 걱정하는 것은 애런 분 감독에게 큰 두통을 초래하는 고민거리였다.
다행히 최강남의 컨디션은 그를 처음 봤던 작년 중순처럼 좋아 보였다.
거기에 일주일 전에 소집한 선발 투수들은 이번 겨울에 몸 관리를 잘했는지 평소보다 더 좋은 무브먼트를 보여줬다.
이번 시즌인 2023년도 메이저리그는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타자의 활약에 집중했지만, 애런 분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타자들의 활약 속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투수진.
그것이 이번 시즌 메이저리그 전반기의 핵심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 애런 분.
그렇기에 그의 장점인 완벽한 타이밍의 투수 교체가 빛을 발할 것이라고 느꼈다.
‘물론 타자들이 작년처럼 좋은 모습을 보여줬을 때 이야기지만.’
최강남, 게리 산체스, 지안 카를로 스탠튼, 애런 저지.
그들의 활약이 특히나 중요한 이번 시즌.
그렇게 애런 분 감독은 시범 경기 시즌에 많은 것을 시도해 볼 생각을 하며, 스프링 트레이닝에 대한 만반의 박차를 가했다.
***
“영상 광고요?”
“네. 내일 시간만 괜찮으시면 제임스와 관계자가 카메라를 들고 가서 촬영할 계획입니다. 한국에서 독점 중계권이 있는 방송사다 보니, 이걸 거절하면 한국 언론 관리에 있어서 꽤나 피곤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최강남 선수는 오늘 괜찮으신가요?”
“네. 시간은 어느 정도 걸릴까요?”
“1시간 안에 끝낼 수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연락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한국 중계권 광고를 제가 하면 그것도 저에겐 영광이죠.”
“예. 그러면 내일 오후 1시까지 인원들 그쪽으로 보내겠습니다.”
5일의 훈련이 끝나고 첫 번째 주말인 토요일.
이번 시범 경기 개막전은 금요일에 열렸기에, 이제 6일이 남아있었다.
그렇기에 마지막 트레이닝에 박차를 가하던 그때, 커너 코퍼레이션에서 전화가 왔다.
내용은 간단했다.
이번에 한국에서 메이저리그 독점 중계권을 갖고 있는 MBS 스포츠에 대한 15초짜리 광고.
정말 길게 잡아서 1시간이지, 그보다 훨씬 짧게 걸릴만한 광고였다.
물론 언론이 무서워서 찍는 것은 아니었다.
언론이라는 것은 잘하면 언제나 날 찬양하고, 못하면 언제나 날 욕하기 마련이니까.
거기에 몸 관리를 하기에도 바쁜 기간이기도 했지만, 그냥 수락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부모님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될 것 같아서.
미리 말하지 않는 일종의 깜짝 선물.
다음 날.
커너 코퍼레이션의 직원인 제임스와 촬영 관계자 몇 분이 스프링 트레이닝이 열리는 플로리다에 도착했다.
“이게 대본이고 5초 정도의 멘트는 자유롭게 하셔도 됩니다. 저희 코퍼레이션에서 이 5초를 위해서 힘 좀 썼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랑스러워하는 제임스의 말에 살짝 웃음이 났다.
대본에는 올해 메이저리그 중계도 역시나 MBS! MBS에서 저를 비롯한 선수들의 경기를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이 5초에 어떤 표현을 하면 좋으려나?’
잠깐의 고민을 하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떤 말을 할지 고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광고 촬영이 이어졌다.
최근 몇 달간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연락을 제외하고는 사용하지 않았던 한국어.
그렇기에 뭔가 좀 어색했지만, 역시 사람에게 모국어만큼 편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이전에 찍었던 몇 개의 광고 중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촬영을 마쳤다.
“영어를 너무 자유롭게 구사하셔서 잊고 있었는데, 역시 외국인이 맞으시군요. 시간 괜찮으시면 식사라도 하실까요? 회사 카드가 있어서.”
“모국어 썼다고 신기하다는 이야기를 듣다니 그것도 흥미롭네요. 네. 가볍게 밥이라도 먹고 들어가시죠.”
제임스는 촬영 동안 살짝 긴장했던 내게 농담을 건넸다.
이놈의 촬영은 몇 번을 해도 적응이 잘 되지는 않는다.
사실 오늘의 경직된 표정마저도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 30개가 넘는 광고 촬영을 하면서 많이 좋아진 것이었으니.
근처의 식당에서 촬영 관계자들과 제임스와 간단하게 밥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바로 트레이닝 센터로 향했다.
확실히 오프시즌에 몸을 단련시키는 것만 집중하다 보니 타격감이 조금은 떨어져 있는 느낌.
따아아아아악―!
따아아아아아악―!
피칭 머신을 타격하면서 그 감각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그동안 노력해왔다.
물론 시범 경기가 열리는 이유가 겨울 동안 사라진 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다.
그렇지만 노력은 언제나 더 완벽함을 만들어주기 마련이다.
그렇게 시범 경기 시즌이 코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