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
스토브리그 (2)
“우리 강남이 정말 혼자 미국에 있어도 되겠어? 한국 와서 조금 쉬었다가 하지.”
“괜찮아요. 그래도 구단 측에서 배려를 많이 해줘서 같이 밥도 먹고 뉴욕 여행도 해서 좋네요. 이번에는 한국에 가기 힘들었거든요.”
“그래. 힘든 일 있으면 아빠한테 꼭 전화하고 난 언제나 우리 아들 편이니까! 최씨 가문은 어느 분야에서도 빛이 나는 법이다.”
가족과 뉴욕에서 보내는 3일간의 평화로운 일상.
하지만 한국으로 가서 이 여유를 더 만끽할 수는 없었다.
올해 내 몸은 정규 리그 절반도 뛰지 않고 완전히 지쳐버릴 정도로 체력이 다 떨어졌으니.
올해에는 운이 좋았다.
애런 분 감독은 어린 나이에 유격수로 뛰는 내 상황을 고려해서 리그에서 휴식 기간을 틈틈이 줬다.
물론 이것도 뉴욕 양키스가 일찌감치 지구 우승을 확정 지은 것이 이유긴 했지만.
당장의 목표는 내년에 열리는 2023시즌에 풀시즌을 치러도 지치지 않는 몸을 만드는 것.
거기에 웨이트를 비롯해서 핵심 코어 운동에도 많은 투자를 해야 했으니, 가족만 한국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가족을 비행기에 태워 한국으로 보내고 난 코퍼레이션의 대표인 커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오랜만이에요. 그럼 어제 말했던 것처럼 오늘 오후 2시에 뉴욕에서 뵙죠. 아 그리고 그때 말했던 분은 섭외가 됐나요?”
“그럼요.”
전화를 받은 커너가 내 옆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다.
살짝 당황했지만 인기척을 줬기에, 놀라지는 않고 그쪽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이제 1시인데 빨리 오셨네요?”
“5분 전에 도착했습니다. 부모님이 오셨다는 이야기는 들어서 공항으로 미리 왔죠. 슈퍼 루키, 아니 슈퍼스타를 택시에 태워서 오게 하실 수 있나요. 당연히 제가 데리러 와야죠.”
“극존칭은 뭡니까? 오글거리게.”
“제 이름을 메이저리그에 알려주신 귀인에 대한 일종의 예의라고 하죠. 농담은 여기까지 합시다. 그런데 오프시즌에 유능한 코치 명단을 양키스에서 보냈는데, 최강남 선수는 전혀 다른 코치를 원하시더라고요?”
“섭외됐나요?”
“그럼요. 그 코치로 확정이신가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제 차로 이동하시죠. 코치가 2시까지 온다고 했으니, 그전에 저희 코퍼레이션 트레이닝 센터에 대한 설명드릴게요. 물론 작년 이맘때쯤에 뛰어서 더 잘 아시겠지만.”
“알겠습니다.”
야구 선수의 몸 관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간인 스토브리그.
그렇게 나도 미국에서의 두 번째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했다.
***
“그러면 이렇게 진행하면 될까요?”
“응. 자네의 의견을 전폭적으로 수용했어. 최근 몇 년간 투고타저일 때 관중이 많이 줄었으니, 타고투저로도 한번 시도해봐야지. 이걸로 바로 관중이 눈에 띌 정도로 늘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늘어날 겁니다. 라이트 팬들은 삼진이나 화려한 수비보다 홈런을 선호하는 경향이 훨씬 컸으니까요.”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10대 커미셔너인 롭 맨프레드.
그는 이번 월드시리즈를 지켜보면서 약간의 생각이 바뀌었다.
롭 맨프레드가 커미셔너로 일하면서 바꾼 메이저리그의 룰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흥미 위주의 속전속결.
고의사구를 굳이 공을 던지지 않고, 자동으로 1루로 보내게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20초 투구 제한 초시계를 만들었고, 기존 인터리그에서 같은 지구가 아닌 다른 지구와도 경기를 붙을 수 있게 룰을 개정했다.
반응은 꽤나 뜨거웠다.
메이저리그를 예전부터 지켜보던 올드팬들은 룰 개정 초반에 고의사구를 던지는 동안 생기는 예상 밖의 사고, 또는 투수의 긴 인터벌도 경기의 일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도 그동안의 야구는 너무나 러닝 타임이 긴 지루한 영화임은 분명했다.
빠른 승부, 훨씬 짧아진 러닝 타임.
그것은 대부분의 야구팬들을 만족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거기에다가 다른 지구의 인터리그의 대결까지.
이를테면 NL 서부 지구의 LA 다저스와 AL 동부 지구의 뉴욕 양키스는 월드시리즈가 아니면 영원히 만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인터리그의 확대로 그들은 종종 정규 리그에서 만났고, 그것은 야구팬들의 신규 유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렇기에 10대 커미셔너인 롭 맨프레드는 9대 커미셔너 버드 셀릭에 못지않게 상업적으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갈 길이 멀었다.
이제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성장한 미식축구는 둘째치더라도, 나날이 성장하고 있는 NBA에게 이미 메이저리그가 따라 잡혔다는 평가까지 있는 상황.
그런 위기 상황에 몰린 롭 맨프레드에게 이번 월드시리즈는 많은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다.
현 최고의 홈런 타자 코디 벨린저와 최연소 데뷔에 이은 최고의 재능이라고 평가 받는 최강남.
두 선수의 홈런 대결은 인터넷과 언론에서 정말 큰 화제가 되었고, 덕분에 최고 시청률까지 갱신하게 되었다.
물론 두 팀이 빅리그인 다저스와 양키스라는 사실이 더 힘을 실어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식을 통해서 야구를 처음 보는 팬들이 복잡한 야구의 룰을 전부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에 라이트 팬들은 더욱 홈런에 열광하기 마련이다.
‘이번 선택도 좋은 결과를 냈으면 좋겠네.’
그런 라이트 팬들을 완벽하게 잡기 위한 메이저리그의 바뀐 여러 가지 정책들.
그것은 최강남이 돌아오기 전보다 3년이나 빨리 바뀐 룰들이었다.
공인구 변경, 스트라이크 존 축소, 스핏볼 징계 강화, 심판 재교육까지.
그렇게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2023년도 시즌을 위한 치밀한 준비를 마쳤다.
***
“알겠습니다. 그러면 당장 내일부터 준비된 일정으로 훈련 진행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15만 달러를 제의했지만, 겨울이 끝나고 만족스러운 몸이 된다면 5만 달러를 추가로 지급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메이저리그 풀시즌을 치를 수 있는 최고의 기량을 가진 몸으로 만들겠습니다. 약속하죠. 내일 뵙겠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양키스의 프런트가 제의한 수많은 오프시즌 코치들.
물론 그들 역시 양키스의 역사를 써 내려간 많은 선수들을 코치해준 대단한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와 악수를 하는 코치 역시 그런 사람들과 결이 비슷한 엄청난 인물.
2년 전까지 하던 아이스하키 대학 감독을 그만두고 코치로 전향한 스미스.
스미스는 지금부터 10년 정도가 지난 후에는 각종 스포츠 슈퍼스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엄청난 스타 코치가 된다.
그런 코치가 한가로울 때 집중적으로 몸 관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스포츠 선수에게 있어서 로또 당첨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스미스 코치와의 계약을 마치고 스미스는 자리를 떠났다.
“뭐··· 무명의 코치에게 3달에 20만 달러는 좀 많은 것 같긴 합니다만, 그래도 최강남 선수의 선택은 틀린 적이 없으니까요.”
“이력을 살펴보는데 저 코치가 제게 가장 맞을 것 같아서요.”
“하긴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피지컬이 워낙 좋긴 하니까요. 한국에서 정말 많은 광고 문의가 들어왔는데 이건 어떻게 진행할까요?”
커너 코퍼레이션의 직원 제임스.
그가 내게 온 광고제의 메일들이 가득 띄워진 노트북을 보여주며 이야기했다.
“지금 당장 한국에 들어가서 광고를 찍기에는 몸 관리하기도 빠듯하네요. 목소리 들어간 광고만 받아주세요. 당일에 끝낼 수 있는 간단한 것들로만요.”
“알겠습니다. 혹시나 계획에 없는 일 생기시면 꼭 말씀해주세요.”
“네. 오랜만에 봬서 좋네요. 다음에 또 봅시다.”
“예. 전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대표님이랑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제임스는 업무에 관련된 이야기를 마치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자리에 남게 된 나와 커너.
우리는 밥을 먹으며 향후 계획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를 나눴고 커너가 제공하는 숙소에 짐을 풀었다.
“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늘 사무실에 출근하니,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시면 찾아오시면 됩니다. 아니면 전화 주셔도 괜찮고요.”
“알겠습니다.”
커너 코퍼레이션 트레이닝 센터 근처의 숙소.
작은 거실 하나와 방 두 개가 있는 구조로 혼자 살기에는 충분한 크기였다.
뭐··· 이보다 좁거나 넓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으니.
당장의 목표는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기.
적어도 이번 스토브리그에는 다른 일까지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오프시즌 코치와 숙소, 그리고 트레이닝 센터까지 모두 확인한 후에 이번 겨울을 보낼 준비를 다 마쳤다.
***
“고생하셨습니다! 확실히 어린 게 좋긴 좋네요. 미성년자 선수는 처음 관리해보는데 3달 만에 이 정도로 몸이 변화할 수도 있군요. 물론 최강남 선수가 남들에 비해서 이해력이나 운동 능력이 높은 것도 큰 영향을 끼쳤죠.”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5만 달러는 오늘 중으로 에이전트 거쳐서 입금하겠습니다.”
“에이 아닙니다. 그냥 나중에 인터뷰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면 제 이름이나 한번 언급해주신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당연히 언급해야죠. 이 5만 달러는 나중에 유명해지셔도 제 바디 체크 좀 해달라는 일종의 뇌물입니다.”
“하하. 어린 나이인데 가끔 보면 정말 무서운 면도 있으시네요. 알겠습니다. 다음 오프시즌에 더 좋은 스케줄 가지고 뵙겠습니다.”
순식간에 3달의 시간이 지나갔다.
스미스 코치의 트레이닝의 효과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애초에 이전에는 그에게 전속 코치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스미스는 아직 일이 거의 없는 신인 코치였고, 3달 동안 특별한 일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일 내 스케줄에 함께 했다.
그렇게 나온 결과는 190cm에 93kg.
아직 성장기가 끝나지 않았다 보니, 2cm의 키가 커졌고 몸무게는 5kg가 늘어났다.
하지만 지방을 빼고 근육으로 채운 5kg.
이것은 시즌 중에 먹어서 늘어나는 5kg와는 차원이 다른 수치였다.
당장 다음 주부터 열리는 메이저리그 스프링 트레이닝.
투수들의 소집 기간은 3일 전부터였고, 타자들은 내일부터 참여하면 됐다.
그렇게 나도 스프링 트레이닝에 참여할 준비를 모두 마쳤다.
***
‘여기도 오랜만이네.’
싱글 A 탬파 타폰스의 홈구장인 조지 M. 스타인브레너 필드.
싱글 A치고 과하게 좋던 이 시설은 뉴욕 양키스의 스프링 트레이닝을 위한 장소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최! 오랜만이야!”
“아직 1년도 안됐는데요. 오랜만은요.”
“싱글 A에서 1년도 안된 친구를 양키스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보는 일도 흔하지 않지. 물론 그놈이 메이저리그 주전으로 뛰는 건 아직 들어본 적조차도 없고.”
“화끈한 단어 선택은 여전하네요.”
“당연하지. 싱글 A에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선수들에게는 내가 꼴 보기 싫어야 하거든. 뭐··· 그렇게 말하는 게 성격에 맞는 편이기도 하고.”
싱글 A 탬파 타폰스에 뛰던 시절, 선수들에게 너무나 과격한 독설을 쏟아내던 케니스 감독.
그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인사를 하며 오른손을 건넸다.
애초에 난 그에게 독설을 들었던 적이 없었기에, 별다른 악감정은 없는 상황.
가볍게 악수를 하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슈퍼 루키! 아니 이제 진짜 루키가 아닌가?”
나와 R+부터 AA까지 함께 뛰었던 포수 로버슨.
그가 내게 크게 인사를 건네자 옆에 있던 케니스 감독이 먼저 입을 열었다.
“로버슨. 너도 올라왔네? 역시 재능보다는 노력이 더 중요한 세상이 온 건가?”
“케니스 감독님도 잘 계셨죠? 처음에는 되게 얄미웠는데 왜 싱글 A에 계시는지 알겠더라고요. 올라가니까 나에게 그렇게 직접적인 조언을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다들 소극적인 코치만 하지. 가끔 생각나더라고요. 그렇게 욕먹던 과거가 미화됐나?”
“그래도 내 조언이 꽤나 크게 작용했나 보던데? 작년 트리플 A 타율이 3할을 넘긴걸 보면 말야.”
“제 기록 검색도 해보십니까?”
“잠들기 전에 가끔 하는 취미가 두 개 있거든. 전에 사귀던 여자 친구들 뭐 하고 사는지 보는 거랑 전에 가르쳤던 선수들 뭐하고 사는지 검색하는 거.”
케니스 감독의 농담에 로버슨은 입을 벌리고 크게 웃는 모습.
그리고 나와도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 후로도 마이너리그에서 소집된 선수들 중에서 아는 얼굴이 꽤 보였다.
AA에서 마무리로 함께 뛰던 베네수엘라 출신의 케이든.
포스트시즌에서 중계 투수로 3경기를 출전했던 스티브.
그들과도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애런 분 감독이 등장했다.
“다들 잘 지냈나? 여기 있는 선수들 중에서 대부분은 정규 리그 개막전에 같이 뛰지 못하겠지. 하지만 당연하게도 나는 아직 그 선수들을 한 명도 확정하지 않았어. 모두에게 기회가 공평하게 있는 상황이다. 다들 좋은 모습으로 마지막까지 함께 했으면 좋겠네.”
“알겠습니다!”
주전 선수들에게는 컨디션 관리 기간이라고도 불리지만, 누군가에게는 1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간인 스프링 트레이닝.
그렇게 23년도 뉴욕 양키스의 스프링 트레이닝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