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스토브리그 (1)
[최강남이 켄리 잰슨의 다섯 번째 공을 완벽하게 쳐냅니다! 쭉쭉! 쭉쭉! 뻗는 타구!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그의 라이벌이라고 평가받는 LA 다저스의 중견수 코디 벨린저가 쫓아가는 것을 멈추고 최강남의 타구를 지켜봅니다!]
[담장을 가볍게 넘어간 타구는 전광판을 타격하며 떨어집니다! 슈퍼 루키 최강남의 끝내기 홈런! 월드시리즈 9회 말 2아웃에 최강남이 끝내기 홈런을 쳐내며 양키스에게 우승을 안겨줍니다!]
[1, 2차전에 이어서 7차전에도 끝내기 홈런을 쳐내는 최강남! 2022년도 월드시리즈의 주인공은 겨우 16세에 데뷔한 슈퍼 루키! 그가 베이스를 돌고 있습니다!]
[홈 플레이트를 밟음과 동시에 뉴욕 양키스의 선수들 모두가 최강남에게 달려듭니다! 그와 동시에 양키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팬들의 환호가 경기장을 뒤덮습니다!]
[오늘 양키 스타디움을 찾은 팬들은 정말 엄청난 선물을 받았네요. 2009년 이후 양키스의 13년 만의 우승! 그 우승에는 최강남 선수가 7차전에서만 보여줬던 3홈런이 정말 크게 작용했습니다!]
[폭죽이 양키 스타디움에서 터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뉴욕 양키스의 선수들뿐만 아니라 이 순간을 만끽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이번 월드시리즈의 챔피언입니다!]
YES Network의 해설진들은 양키스의 우승과 더불어서 최강남의 활약을 강조했다.
당연했다.
오늘 열린 7차전에서만 무려 3홈런.
그것은 그 어떤 위대한 선수도 이루지 못했던, 최초의 기록이었다.
물론 여태 최연소 기록을 모두 갈아치운 최강남이었기에, 해설진들은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을 한 듯 보였지만.
“최! 최! 최!”
잠깐의 퍼레이드가 끝나고 난 후에 월드시리즈 최우수 선수상에 대한 발표가 시작되기 직전.
양키 스타디움의 47,000여 명의 관중들은 일제히 최강남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약간의 텀을 둔 후에 마이크 앞에 선 메이저리그 사무국 위원회 최고의 자리에 있는 10대 커미셔너 롭 맨프레드가 입을 열었다.
“2022년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MVP는 최! 강! 남!”
와아아―
최연소 월드시리즈 MVP, 이번 시즌에 좋은 수비와 완벽한 타격을 보여줬던 최강남.
그에게 양키 스타디움을 찾은 팬들은 휘파람을 불고, 소리를 지르고, 이름을 부르며 그의 MVP 수상을 축하해주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10대 커미셔너 롭 맨프레드.
그의 머릿속에서 메이저리그의 재도약을 위한 새로운 방법이 떠올랐다.
[결국 모두의 예상처럼 월드시리즈 MVP는 최강남 선수에게 돌아갑니다!]
[20년 코리 시거, 21년 코디 벨린저에 이어서 22년도 월드시리즈 MVP의 주인공은 최강남! 어떻게 보면 꽤 당연한 결과였죠?]
[그렇습니다. 정규 리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 선수의 포스트시즌 활약은 너무나도 대단했죠! 오늘 중계는 여기서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올해에도 감사했습니다! 영원히 최강의 자리에 있는 뉴욕 양키스를 지켜보고 계시는 팬 여러분! 저희는 내년에 뵙겠습니다!]
양키스의 프런트에 소속되어 있는 YES Network의 해설진들.
그들의 인사에도 인터넷 방송 시청자들은 줄어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늘고 있는 상황이었다.
― 방금 옛날 생각나서 켰는데, 16살이 끝내기 홈런을 쳤다고?
ㄴ 심지어 그 친구가 10경기 연속 홈런 기록까지 세웠잖아 메이저리그 최초로
ㄴ 그것도 16살의 기록이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ㄴ 그것이 바로 양키스다
ㄴ 타격도 타격인데 수비가 진짜 좋던데
ㄴ 오늘만 3홈런인데 수비도 수비인데 타격이 진짜 좋은 거 아니냐?
ㄴ 저런 선수가 MVP 받는 거야 당연하지 뭐
ㄴ 근데 진짜 잘하긴 하네 대체 저런 꼬맹이를 캐시먼은 어디서 데려온 거야?
ㄴ 쟤 속해있는 코퍼레이션 이름도 처음 들어봄
ㄴ 저 강력한 다저스를 꺾고 양키스가 우승을 하네
ㄴ 올해의 양키스는 달랐다!
― 그래도 16살이면 진짜 앞으로가 기대되긴 하네
ㄴ 지금 피지컬에서 조금 더 올라오면 홈런도 훨씬 잘 나오지 않을까?
ㄴ 오히려 웨이트 급하게 하면 감 떨어지지 않을까?
ㄴ 그렇지 2년 차에 소포모어 징크스 심하게 와서 망한 유망주가 몇 트럭인데
ㄴ 레드삭스 팬들은 이제 가봐라 축제 끝났다
ㄴ 지들 선수나 잘하지 허구한 날 하는 거라고는 양키스 선수들 후려치는 거밖에 없냐
ㄴ 내년의 레드삭스는 다르다!
ㄴ 응 들어가고
정규 리그 중간에 올라온 최강남의 엄청난 활약.
그것은 어떤 팬들에겐 경외심과 더불어서 끊었던 야구를 다시 보게 만들고, 내년을 기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즐거운 소식이었다.
또 어떤 팬들은 최강남이 혹시나 2년 차에 다른 유망주들처럼 부진한 모습을 겪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을 즐기는 모든 야구팬들은 알고 있었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그러므로 현재를 즐기는 것만이 야구팬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유희라는 것을.
거기에 이런 현재들이 모여서 영광스러운 과거가 된다는 것까지.
그렇게 양키 스타디움에 왔거나 TV나 인터넷 방송으로 지켜보는 팬들은 13년 만의 양키스의 우승을 한껏 만끽했다.
***
“슈퍼 루키! 너도 맞아라!”
MVP 인터뷰를 마치고 라커룸으로 들어오자, 선수들의 샴페인이 쏟아졌다.
순식간에 젖은 머리와 유니폼.
그와 동시에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끓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난 우승 복이 참 없는 선수였다.
한국에서 뛰는 12년 동안 단 한차례의 우승.
그것마저도 9월 중순에 햄스트링 부상으로 한국시리즈에 참여하지 못했었으니.
거기에 30대 중반이 되고 나서야 도전했던 메이저리그.
그곳에서는 우승은커녕 챔피언십 시리즈도 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부상이 없는 완벽한 몸은 내가 마음껏 훈련을 해도 전혀 뻐근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월드시리즈 MVP라니.
“으아아아!”
울분을 토해내듯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같은 팀의 선수들.
난 눈앞의 2루수 루그네드 오도어에게 샴페인을 하나 받아서 선수들에게 뿌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당황한 선수들도 활짝 웃으며 서로에게 샴페인을 뿌렸다.
20년 가까이 우승에 도달하지 못했던 울분이 어쩌면 그냥 16살 어린 유망주의 격한 흥분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까지는 모르겠다.
그냥 이 순간이 너무 즐겁고 짜릿했다.
그렇게 한바탕 샴페인 소동이 끝나고 오도어는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하도 야구를 잘해서 잠깐 잊고 있었는데, 너 미성년자 아니냐? 미국은 미성년자 음주에 대해서 엄격한데.”
“알죠. 그래서 입 다물고 샴페인 맞았습니다. 오늘 경기 뛰느라 고생 많았어요.”
“에이 아니야. 네가 고생이 많았지. 난 그냥 9번 타자였고, 넌 월드시리즈 내내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MVP잖아.”
“오늘 활약도 오도어가 앞 타석에서 끈질기게 승부해서 저에게 기회가 온 거죠. 고생했어요. 진심이에요.”
“하긴 내가 오늘 좀 멋있긴 했지? 딸이 멋있게 봐줬으면 좋겠네.”
“그럴 겁니다.”
샤워실로 향하며 오도어와 가볍게 농담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다들 고생 많았다! 난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양키스의 감독 애런 분.
그는 우리에게 고생했다는 인사를 시작으로 향후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월드시리즈 진출과 동시에 가족들을 초청했던 양키스의 프런트.
그들의 배려로 가족들의 출국 날짜는 3일 후였고, 그 시간 동안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 있도록 일정을 조정했다고 한다.
3일 후에 연봉 조정 협상자들은 협상을 하고, 각종 훈련에 대한 일정을 공지한다는 이야기를 마치고 애런 분 감독은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선수들의 가족이 로비로 들어왔다.
“우리 아들 너무 멋졌어! 모든 사람들이 최! 이러면서 소리를 지르는데 엄마가 소름이 쫙 돋더라니까.”
“역시 우리 최씨 가문이야! 같이 저녁 먹으러 가자!”
내 활약에 기뻐하는 부모님을 데리고 저번에 가본 뉴욕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스테이크와 빠네와 피자를 시켜서 먹으며 가족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소박하지만 행복한 일상.
몇 달 동안 야구에만 집중했던 내게 정말 소중한 하루였다.
“왜 이러세요! 당연히 돈은 안 받죠. 정 음식 값에 대한 지불을 하고 싶으면 사진 한 장이랑 사인이라도 해주세요. 제 아들이 올해 11살인데, 태어나기도 전에 양키스가 우승을 했었죠. 얘가 곧 중학교를 가는데 그때까지 양키스의 우승을 한 번도 못 봤거든요. 그런 우승의 핵심 멤버한테 돈을 받으라니요. 그건 말도 안 되죠.”
“그럼 펜 하나만 주세요. 사인은 얼마든지 해드릴게요.”
“아이고 영광입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많은 노력 하겠습니다.”
“하하. 이 사인이랑 사진은 레스토랑 입구에 걸어도 될까요?”
“물론이죠! 다음에 올 때 아들 위한 유니폼도 하나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언제든 무상으로 드리겠습니다. 언제든 찾아주세요!”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하자 레스토랑의 주인이 한사코 거부하는 모습.
그런 주인에게 사인과 사진을 드리고 밖으로 나왔다.
영어 회화가 완벽하신 아빠는 그런 나와 사장의 대화를 보고 웃었고, 엄마는 무슨 일인지 궁금해 하셨다.
“이야. 우리 아들 정말 슈퍼스타가 됐네? 야구 선수되는 거 막았으면 큰일 날 뻔했네.”
곧 아빠에게 이야기의 전후를 들은 엄마도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그런 내게 엄지를 치켜세우셨다.
그렇게 월드시리즈 우승 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
“그러면 기존에 계획했던 최강남 선수의 겨울리그는 없던 일로 하면 될까요?”
“당연하지. 애초에 정규 리그에서 보여줬던 활약으로 충분했는데, 약간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서였거든. 그런데 포스트시즌에서 보여줬던 자기 관리와 치밀한 분석까지. 솔직히 기대 이상이었어. 이런 말을 하프 시즌을 치른 1년 차에게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증명을 해야 하는 선수가 아닌 이미 증명을 완료한 선수. 그게 내가 판단한 최강남의 현재 위치니까.”
“그렇다면 어떤 조치를 취하면 될까요?”
“양키스의 선수들이 주로 받는 오프시즌 트레이너 몇 명 추려서 최강남 선수 코퍼레이션 쪽으로 보내자고. 그 정도만 해도 영리한 선수니까 알아서 잘하겠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계약 끝나는 선수들이랑 다른 팀 FA로 풀리는 선수들 전부 서류 정리해서 나한테 보내.”
“네. 다 정리했는데 금방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1998년도부터 뉴욕 양키스의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브라이언 캐시먼.
그는 비서에게 이야기를 끝낸 후에 의자 등받이에 잠시 머리를 기댔다.
그리고 눈을 감은 후에 이번 시즌에 가장 필요한 것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구단주의 입김과 극성맞은 뉴욕 언론들의 비난 그리고 어마어마한 페이롤로 과소평가받는 브라이언 캐시먼.
하지만 그는 현역 최장수 메이저리그 단장.
그것도 그 어디보다 뜨거운 뉴욕 양키스의 단장이었다.
어떤 팀의 단장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엄청난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브라이언 캐시먼이었다.
프로 야구의 한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이 시작하기 전까지는 선수보다 단장이 더 바쁜 스토브리그 기간.
그리고 언제나 겨울에 가장 주목받는 양키스의 단장이 올해에도 일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