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월드시리즈 (11)
“스트라이크 아웃!”
2회 말에 마운드에 올라온 조 켈리.
그는 특유의 강속구를 바탕으로 무실점으로 3아웃을 잡아냈다.
3회 초 LA 다저스의 공격.
5점이나 앞선 뉴욕 양키스였기에, 여유는 충분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인생과 야구는 예상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볼! 포볼!”
8번 타자 오스틴 반스에게 5구 만에 볼넷을 내준 게릿 콜.
따악―!
거기에 다음 타자인 스티븐 수자 주니어는 초구부터 적극적인 타격으로 안타를 만들어냈다.
노아웃 1, 2루의 상황.
평범한 야구팀이었다면 번트를 댈 상황이었다.
하지만 5점 차이에 상대는 LA 다저스.
거기에 다음 타자는 이번 해에만 30개가 넘는 홈런을 때려낸 1번 타자 무키 베츠였다.
“타임!”
양키스의 더그아웃도 다저스와 마찬가지로 평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애초에 오늘 경기가 올해의 마지막 메이저리그 일정인 월드시리즈 7차전.
거기에 어제 선발 투수였던 코리 클루버는 2이닝을 채 던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모든 선수들이 불펜에서 대기 중이었다.
게릿 콜은 그렇게 노아웃 1, 2루에 마운드에서 내려왔고 다음 투수로 잭 브리튼이 올라왔다.
이번 시즌 필승조 계투로 AL 최다 홀드를 기록했던 잭 브리튼.
그는 이런 위기 상황에서 늘 믿을만한 투수였다.
잭 브리튼이 마운드에 올라오자 나를 포함한 모든 내야수들은 더욱 자세를 낮추고 경기에 집중했다.
잭 브리튼의 결정구는 싱커와 너클 커브.
전형적인 범타를 유도해내는 스타일이었다.
“스트라이크!”
LA 다저스의 1번 타자 무키 베츠는 초구로 들어온 싱커에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허공을 가르는 배트.
당연했다.
그라운드 볼이 80%가 넘는 것은 물론이고, 홈 플레이트 근처에서 변화하는 싱커 덕분에 K/9(9이닝당 탈삼진 수)가 10이 넘어가는 잭 브리튼의 싱커였으니까.
따아악―!
그 후에 볼 2개를 던지고 2-1의 카운트.
무키 베츠는 4구로 들어온 몸쪽 높은 싱커를 그대로 당겨서 쳤다.
3유간으로 향하는 빠른 타구.
3루수는 슬라이딩을 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공을 잡지 못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내가 있었다.
백핸드로 공을 잡아냈고, 잭 브리튼이 3루로 커버 플레이를 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3루 주자를 아웃으로 잡기에는 타이밍이 늦었다.
타자가 발이 빠른 무키 베츠였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자리에서 뛰어 올라서 1루로 공을 던졌다.
마치 그림 같은 역동작 점프 스로우.
내 송구는 마치 빨랫줄과도 같았다.
빠르고 일직선의 정확한 송구.
1루수 히오 우르셸라가 다리를 최대한 벌려서 잡았지만, 무키 베츠의 발이 워낙 빨랐기에 접전.
심판은 잠깐의 고민 후에 오른손 주먹을 앞으로 내지르며 소리를 질렀다.
“아웃!”
투수인 잭 브리튼은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내게 엄지를 치켜세우고 마운드로 돌아갔다.
“나이스 수비!”
“최! 최! 최!”
“이게 무적 양키스지!”
몇몇 목소리가 큰 관중들의 함성이 내 귀에도 들려왔다.
무사 만루가 될뻔한 위기가 1사 2, 3루로 바뀌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여전히 안타 하나면 2실점을 할 수 있는 득점권의 상황이었다.
타석에 들어서는 다저스의 2번 타자 코리 시거.
전형적인 스프레이 히터로 선구안이 좋고 실투 위주의 타격을 하는 코리 시거.
이런 타자들은 잭 브리튼처럼 범타를 유도하는 투수들에게 특히나 강한 면모를 보였다.
따악―!
하지만 야구라는 것이 아무리 잘해도 4할을 넘기기가 힘들고, 아무리 못해도 2할은 넘기는 스포츠.
코리 시거는 1-2에서 4구를 타격했지만, 싱커에 감기는 타구가 나왔다.
“아웃!”
완벽하게 빗맞은 타구는 내야를 벗어나지 않았고, 2루수 루그네드 오도어는 그 공을 안정적으로 잡아냈다.
당연하게도 주자들은 각자의 베이스에 묶여있을 수밖에 없는 타구.
1아웃 2, 3루의 상황에서 아웃 카운트만 하나 늘어났다.
이제 2아웃 2, 3루의 상황.
다음 타자는 3번 저스틴 터너였다.
최근 3경기에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따악―!
터너는 최근에 삼진이 많았던 것이 신경 쓰였는지,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타격에 임하는 모습.
좌익수 앞에 떨어질 법한 안타성 타구였지만, 아슬아슬하게 라인을 넘어가는 파울이 되었다.
2아웃인 상황이기에 주자들은 플라이 아웃을 신경 쓰지 않고 뛰어도 된다.
그 말은 안타 하나면 2실점이 되는 상황.
그런 위기에 양키 스타디움의 관중들은 조용히 숨을 죽이고 경기를 지켜봤다.
따아악―!
풀카운트까지 가는 접전.
저스틴 터너는 6구를 타격했고,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만들어냈다.
워낙 느린 타구였기에 홈 송구 대신에 타자를 1루에 묶는 중계 플레이를 선택한 우익수 애런 저지였다.
2실점을 하면서 이제 경기는 5:2.
하지만 아직 3점의 여유는 있었다.
거기에 다음 타자인 코디 벨린저가 좌타자였으니, 마찬가지로 좌투수인 잭 브리튼은 계속해서 마운드 위에 자리했다.
따아아아아아아악―!
전혀 실투가 아니었다.
3회 초에 올라와서 가장 완벽하게 보더라인 제구에 성공한 95마일(152km/h)의 싱커.
그렇지만 코디 벨린저는 그 공을 우측 담장으로 넘기는 홈런을 만들어냈다.
5:0의 스코어가 두 타자 만에 5:4가 되었다.
오늘 컨디션이 좋아 보였던 잭 브리튼.
하지만 야구라는 것은 때로는 운도 필요한 법이다.
그는 그렇게 3회 초 2아웃에 쓸쓸하게 마운드를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다음 바톤을 이어받은 투수는 알렉스 콜로메.
“스트라이크 아웃!”
알렉스 콜로메는 꽉 차는 포심으로 카운트를 잡고 커터로 5번 타자 맥스 먼시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잭 브리튼, 알렉스 콜로메, 아롤디스 채프먼으로 이어지는 뉴욕 양키스의 필승 투수조.
3회 만에 벌써 두 명을 꺼냈지만, 오늘 열리는 경기는 월드시리즈 7차전.
말 그대로 1아웃마다 모든 것을 쏟아붓는 뉴욕 양키스의 더그아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LA 다저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1아웃을 잡아내고 조 켈리는 마운드에서 내려왔고, 미치 화이트가 그 뒤를 이었다.
다저스 역시 어제의 선발 투수를 제외하고는 전원 불펜에서 대기 중인 상황.
3회 초와 말에 이어서 4회 초까지도 5:4의 스코어는 계속 이어졌다.
다시 돌아온 4회 말 뉴욕 양키스의 공격.
선두 타자는 루그네드 오도어였다.
“아까 만루 홈런이 내 역할이 컸지?”
“그럼요. 1아웃 2, 3루였으면 절 고의사구로 승부를 피했을 확률이 높았겠죠.”
“그래서 악착같이 버텨서 볼넷을 얻어냈지. 오늘 난 모든 타석에서 출루할 거야. 머리에 공이 날아와도 피할 생각이 없어.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는 그만큼 의미 있는 거니까.”
“그래도 머리에 날아오면 피해요. 몸은 다치지 말아야죠. 앞으로 우승 반지 추가하려면.”
“남들이 그런 소리 했으면 농담 같은데. 네가 얘기하니까 왠지 기대가 되네. 어쨌든 난 출루할 테니까 뒤를 부탁한다.”
“기대할게요.”
나와 키스톤 콤비로 뛰고 있는 2루수이자 9번 타자 루그네드 오도어.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내게 이야기를 하고 타석으로 걸어갔다.
LA 다저스의 마운드 위 투수는 3회 말에 이어서 4회 말에도 미치 화이트가 자리해 있었다.
한국계 선수인 미치 화이트.
그는 박찬오를 닮은 선수로 한국에서 유명세를 얻기도 했다.
구위와 속력 모두 훌륭하지만 여전히 제구력은 애매하다는 평가를 받는 투수.
따악―!
그리고 루그네드 오도어는 그런 미치 화이트의 단점을 잡고 끈질기게 늘어졌다.
사실 싱커라는 구종은 장타를 노릴시에 범타를 유도하기 좋은 공이지, 저렇게 작정하고 커트에만 집중하면 삼진을 유도하기는 힘든 공이다.
따악―!
포심, 싱커, 슬라이더, 거기에 커터까지 커트해내면서 벌써 11구째 승부.
“볼! 포볼!”
미치 화이트의 12번째 포심이 존에서 빠지며 결국 볼넷을 얻어낸 오도어였다.
오도어는 타석에 들어서는 나에게 씩 웃으며 1루로 뛰어갔다.
“타임!”
다저스의 코치가 마운드로 올라왔지만, 투수 교체 없이 몇 마디를 나누고 다시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올라왔다는 자체가 나와 승부를 하겠다는 생각.
물론 나눴던 말은 볼넷도 괜찮으니 존 바깥(보더라인) 위주의 피칭을 하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대단한 투수들도 실패하는 그것을 마운드 위의 미치 화이트가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최! 이번에도 하나 크게 보여주라고!”
“믿는다! 슈퍼 루키!”
내 응원가가 끝나자 관객들은 내게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내야수들은 평소처럼 뒤로 물러나는 시프트 수비를 취했다.
‘이 정도면 기습번트 해봐도 되겠는데?’
더그아웃에 난 초구에 번트를 노리겠다는 사인을 보냈다.
동의하는 사인이 나오자 잠깐 타임을 외치고 배팅 장갑을 다시 동여맸다.
시간을 꽤 끌어줬으니, 1루 주자인 오도어도 사인을 전달받았을 것이다.
딱―!
초구에 들어오는 몸쪽 높은 포심.
스트라이크 존을 공 한 개 반은 빠졌지만, 번트를 대기 이보다 좋은 공은 없다.
3루 방향으로 향하는 완벽한 번트.
후방 수비를 하고 있던 3루수는 내 타구로 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구를 돌아볼 여유는 없다.
난 1루 베이스를 바라보며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이상하게 많은 선수들은 번트 시도를 한 후에 1루 베이스로 슬라이딩을 하곤 한다.
살아남고 싶다는 심리적인 압박에 의한 충동적인 행동.
하지만 의욕이 앞선 멍청한 행동이다.
1루에는 2루로 향하려는 행동이 없다면 오버런 아웃이 적용되지 않는다.
슬라이딩보다 달리기가 빠른 유일한 베이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고 싶다는 욕구를 참아내며, 1루 베이스를 향해 전력 질주했다.
밟음과 동시에 LA 다저스의 1루수 맥스 먼시의 글러브에도 공이 들어왔다.
엄청난 접전.
나와 맥스 먼시, 또한 이 경기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심판을 쳐다봤다.
“세이프!”
심판은 양손을 좌우로 뻗으며 세이프를 외쳤다.
그와 동시에 다저스의 더그아웃에서는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다.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다저스의 투수 미치 화이트는 그렇게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바뀐 투수는 다저스의 2선발 트레버 바우어.
단기전의 경우에는 선발 투수들이 이렇게 중계 투수로 뛰기도 한다.
훌륭한 중계 투수는 평범한 선발 투수와 비슷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야구 전문가들.
그런 의미에서 트레버 바우어는 리그 최상위의 중계 투수나 다름이 없었다.
양키스 더그아웃의 사인은 보내기 번트.
딱―!
오늘 2번 타자로 출전한 DJ 르메이휴는 작전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1아웃 2, 3루의 상황.
최근 좋은 타격 감각을 보여주고 있는 지안 카를로 스탠튼이 타석에 들어섰다.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는 완벽한 제구의 85마일(136km/h) 슬라이더.
상하는 물론이고 좌우까지 완벽하게 컨트롤 되는 것을 보니 오늘 유독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따악―!
1-1의 상황에서 3구를 쳐낸 스탠튼.
하지만 타구는 애매하게 뻗었고, 중견수가 앞으로 한참을 달려 나와 공을 잡아냈다.
3루 주루 코치는 뛰지 말라는 사인.
그렇게 2아웃 2, 3루의 상황에 4번 타자 게리 산체스가 타석에 들어섰다.
최근 좋지 못한 타격감을 보여주고 있는 게리 산체스.
하지만 그는 뉴욕 양키스의 4번 타자였다.
아무리 최근 4번 타자가 예전만큼의 위상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올드 스쿨 팬들에게 강력한 한방을 가지고 있는 타자는 언제나 4번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경기장의 분위기가 후끈 올라왔고, 게리 산체스는 초구를 맞이했다.
스트라이크 존으로 향하다가 홈 플레이트 앞에서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고속 슬라이더.
산체스는 배트를 휘둘렀지만, 헛스윙에 그쳤다.
타석에 있는 산체스와 내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주루에 집중하고 있는 내 눈빛을 보더니 의외의 행동을 했다.
짧게 쥐어진 배트.
그것은 월드시리즈 내내 부진했지만, 처음으로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자존심보다 팀의 승리.
저것이야말로 진정한 팀워크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악―!
컨택 능력은 평범한 수준이지만 파워는 남들보다 월등히 좋은 게리 산체스.
그가 파워를 포기하고 때려낸 타구는 평소보다 컨택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
2아웃 상황이었기에, 나는 상당히 빠른 스타트를 끊은 상황.
3루 주루 코치는 미친 듯이 손을 흔들고 있었고, 난 베이스를 밞음과 동시에 홈으로 달렸다.
넓은 수비 범위와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현재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의 우익수라는 평가를 받는 무키 베츠.
LA 다저스 최고 연봉의 주인공인 그는 공을 잡아서 홈으로 바로 송구했다.
낮고 빠른 노바운드 송구.
오스틴 반스의 미트로 향하는 공은 내 슬라이딩 포인트에 정확하게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약간 늦은 타이밍.
하지만 여기서 멈춘다면 런다운에 걸려서 공격이 끝날 뿐이다.
난 자세를 낮추고 태그를 준비하는 포수의 위로 뛰어 올랐다.
그리고 한 바퀴 굴러서 홈 플레이트를 손으로 찍었다.
전방낙법과 같은 플레이.
상당히 격한 플레이에 헬멧이 바닥에 떨어졌고 경기장이 조용해졌다.
모두의 이목이 심판에게 몰린 상황.
심판은 양손을 쭉 뻗었다.
“세이프!”
와아아―
그와 동시에 양키 스타디움이 함성으로 가득 메워졌다.
내 득점으로 7:4로 다시 달아나는 뉴욕 양키스.
“나이스 플레이!”
오도어는 내 헬멧을 주워서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 내게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난 그런 오도어의 손에 하이 파이브를 격하게 쳤다.
“최! 최! 최!”
“아크로바틱 최!”
“이게 양키스지!”
내 슬라이딩을 보고 격하게 흥분을 분출하는 관객들.
뉴욕 양키스가 4실점 후에 빼앗긴 흐름을 다시 가져오는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