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
월드시리즈 (9)
5차전이 끝난 당일.
뉴욕으로 돌아와서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했다.
“우리 아들! 아빠랑 엄마가 여기서 TV로 LA에서 열리는 경기 지켜봤어. 잘하던데?”
“아쉽게 2패 했는걸요.”
“에이. 상대 홈이었는데 뭘. 그리고 이제 1승만 더 하면 우승이잖아? 아빠는 몰랐는데 양키스가 오랫동안 우승을 못했더라?”
“13년 동안 못 했죠. 여긴 한국보다 팀이 3배나 더 많으니까요.”
“하긴 한국도 20년 넘게 우승 못한 팀이 세 팀이나 있으니까.”
“그 팀도 언젠가는 우승하겠죠.”
사실 그 세 팀 중에서 2038년까지 우승을 경험하는 팀은 단 한 곳밖에 없기는 했다.
어쨌든 난 그렇게 부모님과 식사를 마치고 집합 시간에 맞춰서 숙소 로비로 향했다.
그곳에는 각자 가족과 식사를 마친 선수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뉴욕 양키스의 감독 애런 분이 나타났다.
“다들 가족이랑 식사는 맛있게 했나?”
“그렇습니다!”
“이제 내일모레부터 대망의 월드시리즈 6, 7차전이 시작된다. 3승 2패로 앞서고 있는 상황이지만, 7차전까지 가면 힘든 거 다들 알지? 내일은 딱히 잡혀있는 일정은 없으니까, 알아서 컨디션 관리 잘하고 6차전에서 되도록 월드시리즈를 끝내보자.”
“알겠습니다!”
애런 분 감독은 양키스 멤버들의 사기를 일깨워주는 말을 하고 자리에서 떠났다.
우리는 선수들과 잠깐의 수다를 떤 후에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이제 남은 것은 단 1승.
그것을 위해 모레 선발 투수와 나올 수 있는 투수들에 대한 분석을 하다가 잠에 들었다.
***
“6차전까지 오게 됐네요. 계획대로 진행하면 될까요?”
“응. 이번 월드시리즈는 향후 10년 가까이 나오지 않을 최고의 축제가 될 거야.”
“알겠습니다. 지상파 방송이랑 언론에 이번 월드시리즈에 대한 기사 잔뜩 흘리겠습니다.”
“알겠어. 그리고 이번 일만 잘 해결되면 진급도 걱정하지 말라고.”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커미셔너님의 계획대로 수립시키겠습니다!”
“그래. 가서 일 보라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10대 커미셔너 롭 맨프레드.
그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미국 최고의 인기 팀인 뉴욕 양키스와 LA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거기에 모든 팬들의 바람대로 시시한 승부가 아닌 6차전까지 오게 된 상황이었다.
각종 언론을 통해 월드시리즈의 핵심 키워드를 알렸고, 또한 지상파 방송을 중심으로 각종 방송사에 특별 방송까지 지시했다.
최근 애매한 관심에 그쳤던 메이저리그.
하지만 요즘 포털 사이트를 비롯해서 각종 커뮤니티 최대 관심사는 단연 월드시리즈였다.
그렇게 메이저리그 사무국도 최대 축제인 월드시리즈에 대한 준비를 끝마쳤다.
***
모두의 관심사가 쏠린 월드시리즈 6차전.
양 팀의 선발 투수는 2선발인 코리 클루버와 트레버 바우어였다.
포스트시즌은 물론이고 정규 리그에서도 주전 선수들이 부상으로 마이너리그에 갔을 때 혼자 묵묵히 양키스를 지켜낸 코리 클루버.
거기에 2차전에서도 좋은 모습으로 양키스의 승리를 도왔기에, 당연히 모든 야구팬들은 그런 코리 클루버의 활약을 기대했다.
따아아아아아악―!
하지만 야구와 인생은 끝까지 모르는 법.
1회 초 LA 다저스의 4번 타자 코디 벨린저는 만루 홈런을 쳐내는 기염을 토했다.
이어서 2회에도 2실점을 한 코리 클루버는 2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5선발인 도밍고 헤르만이 마운드를 이어 받았지만, 한번 불이 붙은 다저스의 타선은 쉽게 꺼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결국 6회까지 9실점을 한 양키스의 투수진.
반면에 트레버 바우어는 2차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호투를 보여줬다.
6이닝 2실점.
거기에는 내 1타점 2루타와 지안 카를로 스탠튼의 솔로 홈런이 있었지만, 이미 너무나도 기울어진 경기는 되돌릴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내 타석에서 아웃 카운트가 쌓였거나,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는 노골적으로 승부를 피하는 모습.
오늘 경기에 두 개의 볼넷과 더불어서 단 한 차례도 나에게 좋은 공을 던지지 않는 LA 다저스의 투수들이었다.
11:3의 패배.
그나마 다행인 점은 초반부터 경기가 기울었기에, 양키스의 필승조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는 것.
하지만 월드시리즈 3승 3패에서 아무 위안도 되지 않는 장점이었다.
그렇게 양키스와 다저스의 대결은 최종 7차전까지 가게 되었다.
***
[양키스와 다저스 3승 3패의 상황, 최종 7차전에서 월드시리즈의 승자를 정한다!]
[다저스의 코디 벨린저 1회부터 경기의 승기를 잡는 만루 홈런!]
[최강남 최근 2경기 연속 무홈런, 16세 선수에게 너무 큰 부담감인가?]
[양키스 테이블 세터의 부진. 7차전 애런 분 감독의 노림수는?]
뉴욕 양키스의 감독 애런 분.
그는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 올라온 인터넷 뉴스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확실히 최근 양키스의 타선에는 상당히 문제가 생겼다.
2번 애런 저지와 4번 게리 산체스의 부진.
이것은 월드시리즈에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최강남의 활약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정규 시즌이었다면 그래도 그들을 믿고 더 기회를 줬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 남은 일정은 단 한 경기.
그것도 월드시리즈 7차전뿐이었다.
“감독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 들어와.”
그런 애런 분의 연이은 한숨을 감독실의 노크 소리가 멈춰줬다.
그와 동시에 들어오는 코치들.
올해 애런 분 감독의 눈과 귀와 손과 발이 되어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었다.
그들을 한번 둘러본 애런 분이 이윽고 말을 시작했다.
“이 이른 시간에 코치님들을 부른 건 오늘 타순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어서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죠. 최강남을 1번, DJ 르메이휴를 2번, 지안 카를로 스탠튼을 3번에 배치할 생각입니다. 다른 의견 가지고 계시는 코치님 있으신가요?”
어느 정도는 코치들도 예상한 이야기.
약간 눈치를 보던 코치들 사이로 타격 코치인 마커스 템즈가 입을 열었다.
“저는 대찬성입니다. 최강남의 선구안과 야구 센스, 거기에 주루까지. 리드오프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다가 최근 2번 애런 저지와 4번 게리 산체스의 낮은 출루율이 최강남에게 힘을 실어주지 못했으니까요.”
“그렇다고 최근 패배의 원인을 그 두 선수에게 돌리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산체스를 4번, 저지를 5번에 배치시킬 생각이고요. 그들의 장타력은 언제나 변수를 창출할 수 있는 양키스의 강력한 무기이니까요. 다른 의견 있는 코치님 있으신가요?”
설명을 마친 애런 분 감독은 다시 한번 코치들을 둘러봤다.
그리고 재차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없으시다면 오늘 회의대로 타순을 제출하겠습니다. 올해 제게 많은 힘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양키스가 월드시리즈까지 올라오고, 우승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남은 일정은 단 한 경기, 7차전뿐이네요. 여기 있는 모두와 우승 반지를 낄 수 있게 된다면 정말 좋겠네요. 다 같이 마지막까지 힘내봅시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7차전 당일 오전.
경기 스쿼드에 대한 간단한 회의가 끝이 났다.
***
[전 세계 모든 야구팬들의 관심사가 쏠린 월드시리즈 7차전! 뉴욕 양키스와 LA 다저스가 올해 마지막 경기를 치를 준비가 끝이 났습니다!]
[오늘 양키스의 선발은 1선발 게릿 콜. 다저스의 선발은 클레이튼 커쇼네요. 4차전에 이어서 또 다시 등판한 양 팀의 에이스 투수들! 그들의 손에 7차전 초반의 향방이 달려 있는 상황입니다.]
[다저스의 타선은 크게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양키스의 타선은 변화가 꽤 크죠?]
[그렇습니다. 최근 고의사구가 많았던 최강남 선수를 1번에 세운 양키스입니다. 기존 1번이었던 DJ 르메이휴가 2번, 5번 타자로 포스트시즌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스탠튼이 3번 타자로 선발 출장했네요.]
[아무래도 최근 몇 경기에서 집중 견제를 받고 있는 최강남의 부담감을 좀 덜어주려는 생각이 크겠죠?]
[그렇죠. 거기다가 주루와 타격에 능한 최강남 선수에게 최대한 많은 기회를 제공하려는 양키스 프런트의 생각이 돋보이는 전략입니다. 심판이 경기 시작 콜을 외치며, 3승 3패의 상황에서 7차전! 월드시리즈 마지막 경기가 지금 시작! 합니다!]
YES Network의 해설진들은 양키스의 바뀐 타선에 집중하며, 해설을 시작했다.
최근 경기에서 패배의 원인은 강력한 다저스의 타선에 초반에 무너진 양키스의 선발 투수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포스트시즌 막바지에 쉽게 변화가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타선은 달랐다.
역대 메이저리그에서도 손에 꼽는 강력한 타선이라고 불리는 다저스의 타선.
결국 3년 연속 우승에 도전하는 다저스를 꺾으려면 양키스의 타선 또한 그 이상의 활약을 보여줘야 했다.
― 와 다저스 vs 양키스 월드시리즈 7차전이 현실에서 일어나다니
ㄴ 요즘 주변에 야구팬들 늘어나지 않았냐?
ㄴ 신규 팬들도 많아지긴 했는데, 기존에 야구팬들이 진짜 많이 돌아온 듯
ㄴ 내 주변에도 최강남이 진짜 16살, 06년생 맞냐고 물어보는 사람들 엄청 많아졌다
ㄴ 그건 나도 아직도 안 믿기긴 해
ㄴ 16살 에이스는 좀 농담 같긴 하지
― 최강남 오늘 1번 타자로 나오는 거 괜찮은 선택 맞아? 그래도 3번이 낫지 않나
ㄴ 달리기 빠르고 선구안 좋잖아
ㄴ 거기다가 요즘 집중 견제를 너무 많이 받았어 차라리 1회부터 홈런 하나 때리는 게 낫지
ㄴ 홈런이 쉬운 것도 아니고
ㄴ 그렇긴 한데 최강남은 뭔가 기대가 되지 않냐?
ㄴ 인정 1회 말 선두 타자 최강남 너무 기대되긴 한다
13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단 한걸음이 남아있는 뉴욕 양키스.
야구에 미쳐있는 뉴욕의 팬들은 물론이고, 한때 야구를 뒤로 하고 현실을 살던 팬들.
거기에 이번에 처음으로 야구를 접하는 신규 팬들까지 모두 모인 YES Network의 인터넷 방송 시청자들.
무려 700만이 넘어가는 최고 시청자 신기록까지 세우게 된 오늘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양키스의 우승에 기대하며 경기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
“스트라이크 아웃!”
LA 다저스의 2번 타자 코리 시거가 출루에 성공했지만, 4번 코디 벨린저가 삼진을 당하며 1회 초 공격이 끝이 났다.
‘그럴 수 있지. 3년간 내게 힘이 되어줬던 에이스니까 오늘도 보여주겠지.’
그 모습을 지켜본 오늘 다저스의 선발 투수 클레이튼 커쇼.
그는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고 글러브를 챙겨 마운드로 향했다.
NL, AL 양대 리그 기준 최초의 4년 연속 평균자책점 1위, 라이브볼 시대 최초의 2년 연속 선발 투수 FIP 1점대, 데드볼 시대 포함 5년 연속 선발 투수 WHIP 0점대, 사이영 상이 생긴 이후 5년 연속 3위 이상을 기록한 투수, 라이브볼 시대 1000이닝 이상 WHIP 선발 투수 역대 1위 등 그를 수식하는 표현은 너무나도 많았다.
이미 명예의 전당이 확정이라는 평가를 받는 투수인 클레이튼 커쇼.
그에게는 당연하게도 최고의 메이저리거라는 자존심이 있었다.
비록 1차전에서 홈런을 하나 맞았고, 더그아웃의 지시로 인해서 최강남에게 자동 고의사구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다음 타자인 4번 게리 산체스를 잡을 자신이 있어서 동의했던 하나의 작전.
클레이튼 커쇼는 1번 타자로 나온 선수에게 주눅들 그런 투수가 아니었다.
포수의 사인에 고개를 끄덕인 커쇼는 초구로 바깥쪽 존에 꽉 차는 커브를 던졌다.
“스트라이크!”
1차전에서 홈런을 맞았던 똑같은 코스.
하지만 1차전에 비해서 오늘 커쇼의 컨디션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그런 커쇼의 커브는 평소보다 훨씬 큰 낙차와 무브먼트를 자랑했고, 최강남은 그 공을 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뭐··· 단순히 커쇼의 생각이기는 했지만.
“볼!”
“볼!”
2구와 3구는 존에서 살짝 빠지는 포심과 슬라이더를 던졌지만, 속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커쇼는 당연하게도 다르게 생각했다.
‘감히 칠 엄두도 내지 못하는 모습이네.’
압도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근거 있는 자신감.
그런 커쇼가 포수의 사인에 고개를 끄덕이고 빠르게 네 번째 공을 던졌다.
따악―!
몸쪽 높은 포심에 배트를 휘두르는 최강남.
빗맞은 타구를 3루수 저스틴 터너가 끝까지 따라갔지만, 관중석으로 향하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개의치 않는 마운드 위의 클레이튼 커쇼.
2-2의 카운트에서 그는 삼진을 잡아낼 자신감이 있는 투수였다.
오늘 포수 마스크를 쓴 오스틴 반스.
그는 다섯 번째 공으로 위닝샷인 커브를 요구하는 사인을 보냈다.
그 사인에 커쇼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어서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초구와 비슷한 코스였지만, 존에서 공 한 개 정도 빠지는 낙차 큰 커브.
‘됐다. 이건 삼진이다.’
커쇼는 그런 다섯 번째 공이 손에서 떠나는 순간 느꼈다.
최근 던졌던 커브 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챈 느낌.
또한 그가 원하는 곳에 정확한 제구까지 성공했다고.
이제 커쇼의 입장에서는 최강남이 배트를 휘둘러주기만 하면 됐다.
부웅―
예상대로 최강남은 배트를 휘둘렀다.
예상하지 못한 점은 공을 배트에 맞췄다는 것.
따아아아아아악―!
그것도 배트 스윗 스팟에 정확하게.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하는 타격, 거기다가 여기는 우측 담장이 짧은 양키 스타디움이었다.
클레이튼 커쇼가 포스트시즌에서 최고의 공을 던지고 마운드 위에서 고개를 푹 숙였다.
와아아―
그와 동시에 양키 스타디움의 관중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