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
월드시리즈 (7)
“스트라이크 아웃!”
LA 다저스의 2번 타자 코리 시거가 삼진으로 물러나며, 3회도 끝이 났다.
양 팀의 선발 투수인 루이스 세베리노와 워커 뷸러.
때로 장타를 허용하기는 했지만, LA의 무거운 밤공기는 두 투수에게 공평하게 적용됐다.
공격적인 피칭 성향의 두 투수의 대결은 그렇게 3회까지 무실점으로 진행됐다.
그리고 이어진 4회 초 뉴욕 양키스의 공격.
선두 타자는 3번, 나였다.
전 타석과는 다르게 이번 타석에서는 자동 고의사구로 거르지 않고, 승부를 하는 워커 뷸러.
아무래도 앞서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만 날 피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볼!”
워커 뷸러의 초구는 81마일(130km/h)의 낙차 큰 너클 커브.
하지만 이전에 만났던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맥컬러스 주니어 급의 무브먼트는 아니었다.
“볼!”
2구는 홈 플레이트 근처에서 존 바깥으로 빠진 슬라이더.
이 공도 저번에 승부했던 크리스 세일의 슬라이더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과거로 돌아오기 이전에 선수 생활을 20년 가까이 했으니, 더 이상 발전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 역시 미국으로 건너왔던 작년 12월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 있었다.
‘정말 대단한 투수들을 많이 상대했지.’
스포츠의 기술, 전략들은 언제나 변화하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그 변화가 발전이라고 했지만,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내가 미국으로 건너온 30대때 했던 야구와 현재 메이저리그의 야구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
그리고 난 2022년 메이저리그의 야구에 완벽하게 적응에 성공했다.
0-2의 카운트.
상대의 결정구는 포심, 커터, 싱커.
그중에서 난 커터와 포심 대부분을 홈런을 친 기록이 있다.
하지만 싱커 홈런의 경우에는 포스트시즌에 단 하나.
마운드 위의 워커 뷸러는 싱커로 카운트를 잡을 확률이 높았다.
세 번째 공도 볼이면 사실상 볼넷이고, 내 주루 실력이 상당히 부담이 될 테니.
‘왔다.’
예상대로 세 번째 공은 낮은 코스로 들어오는 싱커.
무릎 높이로 오는 낮은 공이기는 했지만, 좌우 제구가 애매한 투수답게 존 가운데 방향이었다.
그 공에 허리 회전을 바탕으로 배트를 힘차게 휘둘렀다.
따아아아아아악―!
완벽한 타이밍에 최대의 힘으로 스윗 스팟에 맞춰낸 타구.
난 배트를 집어던지고, 1루로 전력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타자들에게 악명 높은 다저 스타디움이었으니까.
내 타구는 무거운 밤공기를 뚫으며, 좌측 담장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전에 다른 타자들이 보여줬던 타구와는 다르게 힘이 꺾이지 않고 쭉쭉 뻗어나가는 타구.
내가 1루 베이스를 밟고, 2루로 향하면서 바라본 타구는 악명 높은 다저 스타디움의 밤공기를 이겨냈다.
그렇게 내 타구는 좌측 담장을 넘어갔다.
“나이스 홈런! 역시 너야. 믿고 있었다고!”
“대체 몇 경기 연속 홈런이야? 메이저리그 기록을 다 갈아치울 생각이야?”
“나이스 배팅! 뉴욕까지 갈 것도 없이 LA에서 월드시리즈를 끝내자고!”
더그아웃에 들어오자 환호하는 양키스의 선수들이 내 헬멧과 등을 손으로 두들겼다.
그렇게 4회 초에 3차전 첫 득점이 나왔다.
좌측 담장을 넘어간 솔로 홈런.
그 홈런으로 1:0으로 앞서게 된 뉴욕 양키스였다.
***
[최강남이 쳐낸 타구는 좌측 담장을 향해 쭉쭉! 날아가는 모습입니다! 좌익수가 점프 캐치를 시도하지 않고 펜스를 바라만 봅니다! 최강남의 솔로 홈런! 이번에도 양키스의 0의 침묵을 깬 것은 16세의 초특급 유망주! 최강남이었습니다!]
[이번 홈런으로 무려 11경기 연속 홈런 기록을 달성하게 되었네요. 그것도 포스트시즌에서요! 이 정도면 첫 해이지만, 양키스 가을 야구의 사나이라고 불러도 충분합니다!]
[지금 이 타격은 정말 군더더기 하나 없을 정도로 완벽했어요. 이야 저 허리 회전이랑 완벽하게 고정된 하체를 보세요. 거기에 타격 후에 힘을 빼는 팔로우 스윙까지! 이러면 타구에 힘이 실려 훨씬 멀리 뻗어갈 수 있죠. 이건 타자들의 교과서에 실릴만한 자세입니다!]
[다저스의 선발 투수인 워커 뷸러가 오늘 볼넷 2개를 제외하고는 피안타가 없었거든요. 첫 번째 피안타를 솔로 홈런으로 기록하는 최강남! 양키스가 3차전에도 슈퍼 루키의 활약으로 좋은 흐름에 탑승합니다!]
최강남의 타격 장면을 다시 보며 열광하는 YES Network의 해설진.
그들은 특히 최강남의 뼈를 깎는 노력으로 완성된 스윙 폼에 극찬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었다.
― 그렇게 스윙 자세가 좋나? 되게 평범해 보이는데
ㄴ 평범한 자세에서 저런 기록이 나오니까 더 대단한 거지
ㄴ 맞아 다저스 벨린저를 봐 온몸을 쥐어짜듯 스윙하잖아
ㄴ 그게 왜?
ㄴ 홈런이 많이 나오긴 하지만, 타율이 낮고 삼진이 많잖아. 반면에 최강남 스윙은 변화구 대처에도 훨씬 쉽지
ㄴ 타율이랑 삼진이 벨린저에 비해서 훨씬 적게 나오긴 하네
― 머리 아픈 이야기는 난 모르겠고, 그냥 최강남이 홈런 쳐줄 때마다 너무 짜릿하다
ㄴ 인정 자세나 기록에 열광하는 건 세이버매트릭스 전문가나 해설진 이야기지
ㄴ 맞지 진정한 야구의 매력은 홈런과 삼진이라고
ㄴ 크 뭘 좀 아는 올드스쿨 팬들 다 모였네
ㄴ 2:0으로 앞서는 상황에서 선취 득점! 이게 월드시리즈의 양키스지!
전문적으로 야구를 분석하는 헤비 야구팬들과 퇴근 후에 재미만을 추구하는 라이트 야구팬들.
무척이나 다른 두 부류였지만, 그들의 눈에 최강남은 똑같이 보였다.
앞으로 뉴욕 양키스를 이끌어갈 초특급 유망주.
그렇게 3차전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
4회 초 내 홈런으로 뉴욕 양키스의 1:0 리드.
4회 말 LA 다저스는 점수를 내지 못했다.
따아아아아아악―!
1점 차이의 아슬아슬한 리드는 5회 말 LA 다저스의 1번 타자 무키 베츠의 손에서 깨졌다.
현재 LA 다저스 최고 계약금의 선수인 무키 베츠.
12년 3억 6천 5백만 달러(4075억)의 선수는 본인의 가치를 월드시리즈 3차전에서 증명했다.
루이스 세베리노가 우타자에게 위닝샷으로 자주 던지는 90마일(144km/h)의 몸쪽 슬라이더를 그대로 당겨 쳐낸 무키 베츠.
그의 타구는 좌측 담장을 훌쩍 넘겼고, 다저 스타디움은 그 홈런에 열광했다.
내 홈런과 다른 점이라면 주자가 있었다는 것.
2명의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3점 홈런을 쳐낸 무키 베츠.
그렇게 5회 말 1:3으로 경기는 뒤집어졌다.
“타임!”
양키스의 더그아웃은 3점 홈런을 맞은 루이스 세베리노를 교체했다.
바뀐 투수는 나와 함께 마이너리그에서 뛰었던 스티브.
그가 2아웃에 첫 월드시리즈에 등판했다.
따악―!
2번 타자 코리 시거는 스티브의 싱커를 쳐냈고 타구는 2루수 정면 땅볼.
그렇게 스티브는 본인의 장기인 싱커로 6회를 추가 실점 없이 마무리했다.
이어지는 6회 초 양키스의 공격.
LA 다저스는 5이닝 1실점의 호투를 보여준 워커 뷸러를 조 켈리로 교체했다.
다저스 입장에서는 0승 2패의 상황이니, 5회에 2루타를 하나 맞은 뷸러를 빠르게 교체해주는 모습이었다.
그런 조 켈리를 상대로 양키스의 선두 타자는 2번 애런 저지.
따악―!
그는 2구로 들어온 101마일(162km/h)의 포심을 쳐냈고,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만들어냈다.
노아웃 1루의 상황.
내 세 번째 타석이 돌아왔다.
와아아―
이곳은 뉴욕이 아닌 LA.
그렇기에 내 타석에서 관중들이 함성을 지를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평상시에 볼 수 없는 특이한 상황이었기에, 팬들은 그런 다저스 더그아웃의 선택에 환호를 하는 모습이었다.
두 번째 자동 고의사구.
어떻게 보면 환호가 아닌 안도의 함성일 것이다.
노아웃 1루에서 자동 고의사구는 평소라면 절대로 내릴 선택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완벽하게 정점을 찍은 내 기량과 0승 2패의 다저스의 상황이 맞물리며, 난 그렇게 1루로 걸어가게 되었다.
노아웃 1, 2루의 상황.
4번 타자 게리 산체스의 타석이 돌아왔다.
첫 번째 타석에서 병살타, 두 번째 타석에서 삼진.
오늘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던 게리 산체스.
따아악―!
그는 2구로 들어온 포심을 타격했다.
깔끔하게 쳐낸 타구는 유격수 정면으로 향했다.
LA 다저스의 유격수 코리 시거는 그 공을 잡아낸 후에 2루 주자 애런 저지를 태그했다.
노아웃 1, 2루가 순식간에 2아웃 1루가 되었다.
“세이프!”
그래도 난 도루에 성공해서 다시 득점권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하지만 지안 카를로 스탠튼은 삼진으로 물러났다.
조 켈리의 마지막 공은 102마일(164km/h)의 포심.
그것도 보더라인에 완벽하게 꽂히는 치기 너무나도 힘든 공이었다.
3:1로 벌어진 점수 차는 6회와 7회에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8회 초 뉴욕 양키스의 공격은 1번 타자 DJ 르메이휴부터 시작했다.
LA 다저스의 바뀐 투수는 블레이크 트라이넨.
“스트라이크 아웃!”
낙차 큰 슬라이더에 삼진으로 돌아서는 DJ 르메이휴.
확실히 트라이넨의 공은 치기 쉬운 스타일이 아니었다.
따악―!
2번 타자 애런 저지는 싱커를 받아 쳤지만, 빗맞은 타구는 내야를 벗어나지 못했다.
순식간에 8회 초 공격도 2아웃이 되었다.
이번 타석에는 자동 고의사구가 아닌 승부를 하는 LA 다저스였다.
“스트라이크!”
초구로 2차전에서 나에게 끝내기 만루 홈런을 맞았던 싱커를 같은 코스로 던지는 블레이크 트라이넨.
카운트 여유가 있었기에, 굳이 건드리지는 않았다.
“볼!”
“볼!”
이어서 들어오는 2개의 볼.
스트라이크 존에서 살짝 빠지는 슬라이더와 커터에 속지 않으며, 2-1의 카운트가 만들어졌다.
네 번째 공에는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무브먼트가 좋은 99마일(159km/h)의 싱커.
내 빗맞은 타구를 3루수가 잡아냈다.
하지만 심판의 사인은 파울 타구.
1루로 전력 질주하던 나는 다시 타석에 돌아와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제 카운트는 2-2.
트라이넨의 결정구는 늘 싱커였기에, 방금 봤던 공의 궤적을 계속 상기하면서 다섯 번째 공을 기다렸다.
‘역시 싱커네.’
바깥쪽 코스로 꽉 차서 들어오는 싱커에 그대로 배트를 휘둘렀다.
따아아아아아악―!
배트 정중앙에 완벽하게 맞춘 타구는 이번에는 우측 담장을 향해 날아갔다.
양키 스타디움이었다면 평범하게 홈런이 될만한 타구.
하지만 이곳은 다저 스타디움이었고, 심지어 오늘 경기는 공기가 무거운 밤에 열렸다.
무거운 밤공기를 이번에는 뚫어내지 못했다.
펜스 위쪽에 맞고 튀어나오는 타구.
상대의 수비 대처가 좋았기에, 3루로 가지는 못하고 2루 베이스에 멈춰 섰다.
이제 타석에는 오늘 안타가 하나도 없는 4번 타자 게리 산체스가 올라왔다.
3번의 타석에서는 병살타, 삼진, 병살타.
“스트라이크 아웃!”
그는 1-2의 상황에서 100마일(160km/h)의 싱커에 배트가 돌아갔다.
이렇게 8회 초 뉴욕 양키스의 공격도 끝이 났다.
9회 초에는 선두 타자 지안 카를로 스탠튼이 솔로 홈런을 때려냈지만, 추가점을 뽑아내지는 못했다.
경기는 2:3 뉴욕 양키스의 패배.
“미안하다. 나 때문에 오늘 경기를 놓쳤네. 한 번만 제대로 쳤어도 이겼을 텐데.”
“신경 쓰지 마요. 늘 잘할 수가 있나요.”
게리 산체스는 계속해서 득점권에 나가 있던 나에게 사과를 했다.
난 그런 산체스의 어깨를 다독여주며, 다음 경기를 위해서 오늘 경기는 잊어버리라고 말해줬다.
바로 다음 날 열린 4차전.
LA 다저스의 선발 투수는 훌리오 유리아스, 뉴욕 양키스는 조던 몽고메리가 선발 투수로 출전했다.
완급 조절이 뛰어난 두 선수의 대결.
하지만 경기는 너무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맞춰 잡는 피칭에 능숙한 양키스의 선발 투수 조던 몽고메리.
그는 경기 초반부터 계속해서 두들겨 맞기 시작했고, 2회를 채우지 못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1.1이닝 6실점.
초반부터 벌어진 점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뉴욕 양키스는 결국 4:9로 패배했다.
오늘도 3번 타자로 타석에 들어선 나는 안타 하나와 볼넷 2개를 얻어냈다.
하지만 홈런을 치지는 못하며, 내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은 11경기에서 멈추게 되었다.
순식간에 월드시리즈 스코어는 2승 2패.
그렇게 LA에서의 마지막 경기인 5차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